EBS와 국사편찬위원회가 공동 기획한 프로그램인 <역사채널 ⓔ>는 한국사의 주요사건이나 사실에 대해서 5분 가량의 강렬한
메시지와 세련된 영상으로 한국사의 한 부분을 살펴본다.
이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는,
" 역사를 불러내는 미디어로서, 죽어 있는 역사가 아니라 역사의 한 조각을 현재로 호출해
내기 위해서" (p. 5)이다.
또한 연산군이 남긴 말인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다.(人君所畏者
史而已)" 라는 문장에서 방송은 시작된다.
박물관 속에 갇혀 있고, 교과서 안에 잠들어 있던 낡고 고루한 역사는 가라! 세련된
영상과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 잠들어 있던 우리 역사에 숨을 불어 넣는다! '우리 자신'에 대한 관심이 지극히 높아지고 있는 요즘, '우리'의
진정한 모습은 과연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그 답을 얻기 위해 '역사채널e'가 한국사 속으로 들어간다. (프로그램 소개글
중에서)

2011년 11월부터 지금까지 방송되니 많은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그 중에서 21개의 한국사 에피소드를 3개의 주제로 나누어서 이 책 속에
담아 놓았다.
1부 어떻게 살 것인가 Quaestio
2부 나는 누구인가
Cogito
3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Memento
여기 소개되는 역사적 사건이나 사실들은
역사전문가들에 의해서 고증되고 확인된 내용들이기에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교과서 등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내용들이기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물론 역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다른 매체를 통해서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이기는 하지만, 역사에 관심이 없거나 역사를 처음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지루하지 않게 역사를 알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첫 번째 이야기인 조선말 명문가 우당 이회영가 이야기부터 가슴을 울린다. 당시 조선 갑부인 이회영은 차근차근 가문의 재산을 정리하여 만주
망명길에 오른다. 안락함이 보장된 고향을 등지고 조국 독립을 위해서 만주로 떠나는 그들, 신흥무관학교를 세우는 등 조선의 안위를 걱정했던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이성을 가졌던 이회영 형제들, 그러나 그들은 만주에서 끼니 걱정을 해야 할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하였으니...

" 우리 형제가 당당한 호족 명문으로서 차라리 대의가 있는 곳에 죽을지언정, 왜적
치하에서 노예가 되어 생명를 구차히 도모한다면 이 어찌 짐승과 다르겠는가?" (p.20)
또다른 이야기로는,
" 내가 죽은 뒤에 뼈를 하얼빈 공원에 묻어두었다가 우리의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옮겨다오" (p. 177)라는 유언을 남겼던 안중근 의사는 해방이 된 지 70여 년이 되었지만 그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으니 효창공원에는 그의 가묘만이 덩그라니 남아 있다.

거기에 요즘도 일본관료들의 망언이 계속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은 역사 속 아픈 조각들이다.

그런 반면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강압에 의해 조선에 출병했으나 명분 없는 전쟁에 환멸을 느껴 귀화한 일본인 사야가, 그는
동방성인의 백성이 되고 싶어 조선인인 김충선이 되었다.

그림에 관한 이야기로는 윤선도의 증손자인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을 소개한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천재화가 3재(三齋- 재는
겸손하다는 뜻)중의 한 사람인 윤두서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리얼리티를 중시한 화가인데 서민의 삶을 들여다 보는 작품들도 많이 그렸다.
그의 대표작인 자화상은 실학의 등장과 관련이 깊으며 이 자화상의 특징은 겉으로 드러난 얼굴과 내면의 정신이 서로 어우러진 윤두서의 철학적 기운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은 1893권 888책으로 구성되었는데 조선 25대(태조~철종까지,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일제에 의해서 편찬되었기에 역사적 사실 왜곡이 많아서 제외된다)472년간의 기록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 연산군 조차도 두려워한
역사적인 기록을 담고 있는 조선왕조 실록.

그런데 사관들은 왕의 생존시에 따라 다니면서 왕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하고 왕의 사후에 실록이 완성되면 사초를 물로 씻어 흔적을 지워
버린다고 하는데, 어느 사관의 무덤에서 실록이 되지 못한 채 발견도 사초가 있었다고 하니 그 사연은 무엇일까.

요즘 들어 재조명되는 광해군의 외교정책, 조선의 천민들의 삶, 아라비아 중국에 이어 세 번재로 일식을 예측했다는 조선의 과학기술, 병자호란
이후에 청에서 돌아온 환향녀들, 왕의 남자인 환관, 한국전쟁 당시에 폭파 위기에 처했었던 덕수궁....
역사 속의 한 조각 이야기들이 흥미있게 펼쳐진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조선 말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에 얽힌 사연이다. 아마도 고종과 순종이 일본식 복장을 입고
나란히 찍은 사진을 기억할 것이다. 조선의 왕이라면 위풍당당하여야 하겠으나 왜소하고 나약한 모습. 일본은 조선의 왕을 한 장의 사진으로
'식민지 군주'로 무력하게 만들어 버렸다. 19세기 서양 열강들은 식민지 모습을 찍어서 사진엽서로 만들어서 팔았다고 한다. 그곳에 가보지는
못하지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사진이었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초대 통감인 이토 히루부미는 현실정치에 사진을 활용했다. 일본의 사진사들을 동원하여 조선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좋은
모습 보다는 조선을 열악하고 미개한 이미지로 전락시키는 수단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래서 사진 속의 이미지들은 조선인의 모습이 무력하고 나약하고
지저분하고 미개한 모습오 왜곡되게 찍었다. 칼을 쓰고 관아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죄인의 모습,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의 모습, 조선의병들이
잔혹하게 처형당하는 모습, 일본의 상징이 벚꽃이 가득한 광화문의 모습, 퇴락한 왕조를 보여주기 위해서 잡초만 무성한 근정전의 모습...
사진 속의 이미지는 이렇게 현실을 왜곡시켰다. 그나마 남아 있는 일본인이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것이 그당시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으니...

" 사진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 눈 앞에 있는 이미지가 현혹시키는 힘을 꿰뚫어 보는
것이다. 우리는 사진에서 피사체보다 먼저 보이지 않는 시선, 카메라 뒤에 선 이들의 시선을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때에 비로소 진실을 볼
수 있다. " (p. 235)
역사는 지나간 과거를 담고 있다. 현재는 과거의 연속선 상에 놓여 있다. 역사를 그저 지나간 사건이나 사실 쯤으로 생각하거나 이런
이야기들이 지루하고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역사 속에는 과거의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모습과 성찰이 담겨 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한,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를 찾아내야 한다.
<역사 e>는 역사를 싫어하는 독자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