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슬 - 제주4·3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김금숙, 오멸 원작 / 서해문집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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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의하면 제주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봉기사태와 그로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양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1948년 4월 3일 이후에도 한국전쟁이 끝날 때까지 선량한 제주도민들이  희생당했다. 약 3만 명이 넘는 양민들의 애닯은 절규를 조금이나마 잠재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2014년부터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어 정부주관 행사가 치뤄지고 있다.

솔직히 나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 자세한 내용은 알지를 못했다. 이렇게 긴 세월에 걸쳐서 일어난 사건을 말한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 책은 오멸 감독의 독립영화인 <지슬>을  만화로 출간하였다. 영화는 민간인 학살이라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슬프지만 때로는 해학적으로 풀어나간 작품으로 국내외에서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런 영화를 수묵화로 재탄생시킨 것이 만화 <지슬>이다. 수묵화이기에 붓터치와 먹의 농담만으로 표현을 하게 되는데, 그림을 그린 '김금숙' 작가는 그녀만이 가진 독특한 그림풍으로 굵직 굵직한 선으로 강렬한 붓놀림을 보여준다. 그것이 더욱 이 작품을 강하게 표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 (...) 김금숙 작가는 그 따뜻한 가슴으로 항상 개인의 슬픔, 사회의 부조리를 읽어내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만화를 꾸준히 그려왔습니다. 아픔을 고통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은유적이고 부드럽게 풀어내는 실력을 갖춘 작가이기도 하고요. " (p. 4 - 만화가 박재동의 추천사 중에서)

책 속의 그림은 온통 흑백으로 표현이 되지만 그 속에서 더 강한 피 비린내가 풍겨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들은 <지슬>이란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절제된 내용만을 보여준다.

이야기는 1948년 11월 제주도 북서부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토벌대에 의해서 인접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다는 소문을 듣고 주민들은 피난을 간다. 어디로 갈 것인가... 되도록 토벌대에 발각되지 않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 산 속으로 들어간다.  

 

피할 수 있는 사람들은 멀리 멀리 도망을 가다가 숨을 장소로 동굴 '큰 넓궤'를 생각해 낸다.

입구는 좁지만 들어가면 많은 사람들이 숨을 수 있는 곳이다. 이렇게 숨어 지내다가 발각이 되어 총살을 당하게 되는데, 그 이야기가 한 컷 한 컷 의미있게 다가온다.

이 책의 제목인 '지슬'( 한자어로 地實 )은 제주도 방언으로 감자를 뜻한다. 땅에서 나오는 열매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지슬은 이 책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무동이 엄마는 다리가 아파서 피난을 가지 않는다. 만약에 자신이 길을 나서게 되면 아들에게 업혀서 가야 되니 그냥 남아 있겠다고 하면서 삶은 지슬을 챙겨 가라고 아들에게 말한다. 그러나 아들은 그 지슬을 집에 두고 온다. 나중에 노모가 총살을 당할 때에 가슴에 안고 죽는 것은 바로 그 지슬이다.

순덕어멈이 산으로 도망을 치면서 자신의 딸이 함께 못 온 것도 모르고 챙겨 온 것도 지슬이다. 

따뜻한 지슬을 동굴 속에 숨어서 이웃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다.

그리고 토벌대 중에 기합을 받느라고 굶은 선임에게 건네 주는 것도 지슬이다. 지슬은 땅에서 땅으로 이어지면서 열매를 맺는데, 바로 이런 어려움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생명줄과 같은 것이 지슬로 표현된 것이다.

아름다운 제주, 아무런 걱정없이 평화롭게만 보이는 제주, 그 땅에서 이런 아픈 역사가 지슬처럼 얽혀 있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봄에는 노란 유채꽃이 만발하는 제주, 그 제주에 이런 아픈 우리의 역사가 숨어 있었다. 자칫하면 왜곡되어 그 진실이 밝혀지지 않을 뻔 했지만 이제는 그 베일이 차츰 벗겨지고 있다.

아직도 유족들 중에는 그 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 중의 한 사건인 '제주 4.3사건'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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