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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비포 유 ㅣ 미 비포 유 (살림)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깊은 밤에 <미 비포 유>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게 되었다. 이 책을 덮는 순간의 느낌은 '가슴이 먹먹하다'는 표현 보다 더 적합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한참을 아무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태로 있다가 문득 인터넷을 검색해 보게 되었다. 검색창에 '스위스 안락사'라고 치니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두 편의 동영상 중에 한 편을 보았다. 어떤 이유로 이런 선택을 하였는가는 알 수 없으나 곱게 늙은 할머니가 치사량에 달하는 수면제를 마시고 생을 마감하는 모습이다.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생을 마치는 모습이지만 차마 마지막 '졸립다'는 말을 한 이후의 동영상까지는 볼 수가 없다.
존엄사와 안락사는 환자가 죽음을 선택한다는 공통점은 있으나 존엄사는 무의미한 치료행위의 중단으로 자연적으로 죽을 수 있는 것을 말하며, 안락사는 인위적인 약물을 사용해 인위적으로 죽음을 앞당기는 것으로 조력자살이라고 하기도 한다.
스위스에서는 엄격한 기준에 한하여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과연 이런 존엄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 <미 비포 유>이다.
이 책의 저자인 '조조 모예스'는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인데, <미 비포 유>로 인하여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된다.

이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겠지만 로맨스 소설로 읽을 수 있는 주인공 윌과 루의 사랑이야기와 그들을 둘러싼 가족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지지만 그 바탕에는 불의의 사고로 사지마비가 된 장애인의 힘겨운 세상과의 사투 그리고 그가 선택하고자 하는 조력자살에 대한 깊이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야기는 2007년 어느날 일어난 불의의 사고로 시작되지만 시간을 건너 뛰어 2년 후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35살 윌리엄 존 트레이너는 영국의 작은 마을의 성을 가진 촉망받는 젊은 ceo인데, 누군가가 일으킨 오토바이 사고의 폭발로 인하여 사지마비 환자가 된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는 성공적이고 활동적인 삶을 살았던 윌이지만 지금은 간병인의 도움이 없이는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는 그런 일상 속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윌은 지금의 자신의 처지에 적응하지 못하고 끊임없는 굴욕과 좌절 속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
"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요, 미스 클라크. 이제는 아무 것도 못한다고요. 앉아 있어요. 그냥 존재한다고 할까" (p. 56)
성 밑의 마을에 살고 있는 루이자는 카페에서 일을 하다가 카페가 문을 닫는 바람에 실업자가 되어 직장을 찾던 중에 사지마비 환자인 윌의 6개월 간병인으로 들어가게 된다.
간병인으로서의 자질도 능력도 없지만 윌의 기분전환을 도와주는 일을 하면 높은 시급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끌려 일을 하게 되지만 첫 출근부터 루이자는 순탄하지 못한 앞날이 기다리고 있다.
활기차게 활동을 하던 젊은 사업가인 윌은 휠체어에 앉아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런 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으니 극도로 짜증스럽고 까다로운 환자로 루이자를 힘겹게 만든다.
그런데, 그 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윌은 그런 삶을 살기 보다는 스위스로 가서 삶을 마감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부모들은 그런 윌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간병인으로 루이자를 선택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윌의 가족들은 암묵적인 동의하에 6개월의 시간이 흐르면 윌이 원하는 바 대로 해 주기로 결정한 상태이다.
" 보통 사람의 시간이 있고 병자의 시간이 따로 있다. 시간은 정체되거나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고 삶은, 진짜 삶은 한 발짝 떨어져 멀찌감치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 (p. 114)
"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 이건 내가 선택한 삶이 아니에요. 회복될 가망은 없으니까. 내가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방식으로 끝내 달라는 부탁은 철저히 합리적이란 말입니다. " (p. 155)
그런데, 그렇게 까다롭고 날카로웠던 윌의 마음이 서서히 열리게 된다. 루이자는 윌에게 삶의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경마장, 바이올린 콘서트, 자신의 생일파티, 화랑 방문, 소풍 등의 집 밖의 세상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물론 장애인의 바깥 나들이가 그리 쉽지는 않은 일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기도 한다.
루이자는 이렇게 윌에게 그가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확신을 주려고 노력을 하고....
윌은 루이자에게, 루이자는 윌에게 사랑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윌이 계획한 스위스로 떠나는 죽음의 여행을 어떻게 될까....
'인생에서 의미를 찾고, 세상 밖으로 여행을 떠나고, 야심을 갖고, 용기를 있게 도전을 하고...' 윌은 루이자에게 모든 걸 바라보는 생각을 바꿔 놓는 사람이 된다.
윌 자신이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이 소설의 화자는 루이자이지만 25장에서는 루이자의 동생인 카트리나의 시선으로 바뀐다. 그만큰 힘든 일을 겪게 되는 루이자를 대신하여 윌과 루이자의 마지막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카트리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해 준다. 그리고 2009년 9월 4일 작성된 서류가 첨부되고, 윌의 편지글까지 에필로그에 실린다.
소설을 읽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독자들은 이 부분에서 소설에서 벗어나 실제 상황을 대하는 듯한 생각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미 비포 유>는 소설이지만 소설 그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다. '만약 내가 이런 경우에 처하게 된다면', ' 만약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불의의 사고로 고통 속에 삶을 유지하게 된다면' 이런 생각이 가슴을 울린다. 그래서 책장을 덮는 독자들의 마음은 소설을 읽었다는 생각 보다는 실제 상황 속의 이야기를 접하는 그런 느낌으로 가슴이 더욱 먹먹해진다.
진정한 삶의 의미를 그리고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나 책을 덮고 한참을 생각해 보면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삶을 의미있게 아름답게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닉 부이치치', '스티브 호킹'
<미 비포 유>를 읽은 후에 맞은 아침은 다른 날의 아침 보다 더 아름다웠다. 공원길에서 만난 산새들의 지저귐. 풀 숲 사이로 수줍게 내민 이름 모를 풀꽃, 파아란 하늘을 수놓은 구름들.
이미 책은 다 읽었지만 아주 천천히 다시 한 번 읽어 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