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이 9권을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바둑판 앞에는 오목을 둘 때만 앉아 본 나에게 이 책은 처음에는 좀 생경스러웠다.
그건 이 책의 배경으로 조훈현 9단과 녜웨이핑 9단이 1989년 9월에 제1회 응씨배 결승5번기 제5국(최종국)의 기보 해설이 바탕이
된다. 이 대국이 어떤 대국이었는지, 녜웨이핑이 누구인지 조차 모르는 내가 이 책을 이렇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바둑을 둘 줄 안다면
훨씬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겠지만, 바둑을 전혀 모르는 문외한이라고 해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이기 때문이다.
미생(未生)이란 바둑에서 두 집을 만들어야 완생이 되는데, 두 집을 만들지 못한, 아직
완전히 살지 못한 상태를 말하는 바둑 용어이다.
아직 완전하지 않으니, 상대방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미생>은 바둑의 세계에 직장생활을 빗대어 이야기를 풀어 나가니, 미생이란 책 제목 자체에서 직장생활의 애환이 묻어 나는 그런
이야기이다.
원 인터네셔널의 계약직 직원인 장그래와 영업 3팀이 보여주는 활약상은 요르단 건을 꼼꼼하게 처리하면서 큰 활약을 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중국건이 문제가 된다.

중국통 전무가 밀어 부치는 중국과 관련된 사업, 전무는 그동안 자신이 중국건에서 성공적인 활약을 했기에 영업 3팀에게 내려진 이 건 보다는
그 다음에 준비하는 사업에 더 집중을 하게 되는데...

장그래는 중국에 가 있는 사원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 그 곳의 실정을 알게 되고, 밀어 부치려던 중국건에 제동이 걸린다. 전무는 중국의
상황으로 본다면 중국으로 부터 '절'을 받아야 할 것을 회사가 '인사'를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니...

이 사건을 계기로 전무가 그동안 쌓아 놓았던 경력과 실적은 추풍낙엽처럼 땅에 떨어지게 되고, 그동안 그가 누렸던 명예와 부도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니....
그렇게 회사를 떠나야 하는 전무를 보면서 영업 3팀은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 회사가 원하는 임원이란 구름 위를 기어 오르는 자가 아닌 두 발을 굳게 땅에 딛고서는
별을 볼 수 있는 거인이었다. " (pp. 92~93)
직장에서는 그 직위에 따라서 책임(역할)이 있으며, 그 평가도 거기에 준하게 된다. 그래서 그 평가는 직장인들을 '진급이냐', '
유지냐', ' 퇴출이냐'로 판가름되기도 한다.
마치 조훈현과 녜웨이핑이 1989년 9월에 제1회 응씨배 결승5번기 제5국(최종국)의 139수 기보 해설과 같이.
" 비정한 바둑판에서 삶과 죽음은 동의어나 다름 없다. 한쪽의 삶은 다른 한쪽의 죽음에
닿아 있다. "
직장생활이란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곳을 떠나게 되는 사람이 있고, 남게 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그곳에서 자신의 꿈을 키워 나갈 수 있다고 생각된다면 미래를 위해서 새로운 곳에 둥지를 틀 수도 있는 것이 직장인이 갖는 선택의 권한일
수도 있다.
아니, 그건 유능한 직장인에게만 따라 다니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의 장그래, 원 인터내셔널에서 계약직 직원으로 처음에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 직장인이었는데, 어느새 직장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잘 해 내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곳에 뿌리를 내리지는 못한다. 상사에서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정착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 장그래는 다시 백수로 돌아가는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직장을 찾아 가야 할까, 아니면 정규직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은 미생으로 태어나 완생이 되고자 노력하는 삶을 산다.

지금은 미생인 직장인들에게 직장생활을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해 주는 책이 바로 <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