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질 때마다 일어서면 그만,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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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던진 말처럼 느껴지는 한 마디의 말이 가슴에 와 닿듯이, 이외수가 지극히 당연한 말을 글로 써 놓으면 그 글을 읽는 독자들은 이 글들이 가슴에 와 박히는 것을 느끼곤 한다.

이렇게 이외수는 여러 권의 감성 에세이를 독자들에게 '툭' 던져 준다. 그 책 속에는 정태련의 세밀화가 살아 숨쉬듯이 꿈틀거린다. 야생초가 바람에 흔들리고, 물고기가 물 위에서 파닥거린다.

이외수의 글과 정태련의 그림의 만남도 다섯 번째가 되니, 이제 독자들은 이 책들을 시리즈처럼 한 권, 한 권 읽으면서 마음의 양식으로 삼고 있다.

이외수는, " 정태련 화백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키게 됩니다." (p. 303)고 말하고, 평생을 사라져가는 한국의 동식물을 세밀화로 되살려내는 일을 소명으로 가지고 있는 정태련은 '작업후기'에서 그동안은 이외수와의 작업이 " 큰 주제를 정하고 따로 작업한 뒤에 각자의 고유성을 살리면서도 조화를 이룬 책을 만들고자 했" (p. 305)지만 <쓰러질 때마다 일어서면 그만, >의 작업은 공동작업 방식으로 이루어졌음을 말한다.

그래서인지, 책 속의 글과 그림이 다른 책들 때와는 달리 어우러지면서 조화를 이룸을 느낄 수 있다.

<쓰러질 때마다 일어서면 그만, >은 책제목에서부터 이 글이 끝나지 않았음을 '그만,'으로 알려준다.

인생에 있어서 살다 보면 왜 쓰러질 때가 없겠는가, 쓰러지고, 거꾸러지고, 터지고, 피가 흐르고....

어쩌면 바로 서 있기 보다 쓰러져 있을 때가 더 많을 수도 있는 인생, 그 인생에서 희망도, 절망도 겪게 되지만, 결코 물러서지 말고, 포기하지 말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작가는 독자들에게 전한다.

'자유의 연금술사'인 이외수의 화법은 항상 '지당하신 말씀'을 쉽고도 현실적으로 풀어나간다. '인간을 인간답게, 세상을 아름답게'보려는 시각이 문장 마다 담겨 있다.

" 사랑에는, 물음표가 있어도 괜찮다. 느낌표가 있어도 괜찮다. 쉼표가 있어도 괜찮다. 줄임표가 있어도 괜찮다. 가끔 퍼센트, 골뱅이, 샵, 별표가 있어도 괜찮다. 다만 마침표만 없으면 좋겠다. 언제나 현재진행형이었으면 좋겠다. " (p. 15)

" 뿌리가 쓰든 달든 꽃은 아름다운 법.

가시가 있든 말든 사랑도 아름다운 법." (p.20)

" 당신이 걷는 인생길은, 때로 꽃잎에 덮여 있기도 하고 때로 빗물에 젖어 있기도 하고 때로 낙엽에 덮여 있기도 하고 때로 눈에 덮여 있기도 하다. 유심히 보면 같은 길은 없다. 다만 당신의 시선만 새롭지 않을 뿐, 길은 언제나 새롭다." (p. 63)

트위터를 비롯한 SNS에 다는 댓글에 대한 생각을 그는 이렇게 말한다. '판을 두드릴 때마다 복사꽃이 흩날리는 사람, 자판을 두드릴 때마다 쐐기풀이 돋아나는 사람, 자판을 두드릴 때마다 쓰레기가 흩날리는 분' 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누군가 댓글에 상처받는다는 생각을 하면 함부로 자판을 두드리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 그대는 그대처럼 사랑하고 나는 나처럼 사랑하고" (p. 193)

"  성공하고 싶다면 그대가 추구하는 일에 전념하라. 꽃 피는 시기가 따로 있고 열매 맺는 시기가 따로 있나니, 나태하면 막상 기회가 와도 그것이 기회인 줄 모르게 된다. 지나간 다음에야 그것이 기회였음을 알고 한탄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 (p. 255)

다른 책들을 통해서도 젊은이들에게 애정을 갖고 충고와 격려의 글을 아끼지 않았는데, 이 책에서도 이외수는 젊은이들에게 실패와 절망을 피해 다니지 말고 그것들이 젊은이들에게 투지와 인내를 가르치는 스승들임을 일깨워준다.

" 꽃 피울 때가 되면 눈부신 꽃을 피우겠다. 가시 뻗을 때가 되면 무상한 가지를  뻗겠다. 단풍 들 때가 되면 아름답게 단풍으로 불타겠다. 헐벗을 때가 되면 모든 것 다 버리고, 하늘만 우러러 침묵하겠다. 오직 순리대로만 살겠다. " (p. 298)

이외수는 당연한 말이지만 빗대어 아름답게 표현한다.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지만 글로 아름답게 표현한다. 그리고 그 글들 속에는 가슴에 새기고 새기면서 삶을 살아갈 많은 긍정의 아이콘들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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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와 그, 영원히 넘을 수 없는
감성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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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이 책은 벽을 모티브로 한 사진과 함께 짧은 글들이 돋보이는 책이다. 구태여 서평을 써야 한다면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그저 짧은 글들을 읽으면서 공감을 하고, 그 페이지에 담긴 벽을 소재로 한 사진들을 보면서 '이곳에 이런 벽이 있었구나! 나도 이곳을 갔다 왔는데, 내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네'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나중에 벽을 소재로 한 사진을 찍어 볼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느리게 읽어 나가다가 맘에 드는 문장이 있으면 마음 속에 담아 두기도 하고, 어딘가에 적어 놓기도 하면서 천천히 읽고 싶은 그런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감성현'은 스토리디렉터, 포토 에세이스트, 소설가, 작사가.

내가 읽은 그의 책으로는 <낯선 설렘, 크로아티아>가 있다. 아마도 TV를 즐겨 보는 사람들이라면 <우리 결혼했어요와 >라는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인 <Sweet Love>와 <우리가 정말>의 노랫말을 작사했다고 하니 저자의 성향을 이를 통해서 알 수 있으리라.

'벽'하면 뭔가에 부딪히는 느낌, 답답함, 갑갑함, 불통을 생각하게 된다. 그녀와 그, 사랑할 때는 무엇이든간에 다 이해할 수 있고, 배려할 수 있고, 즐겁기만 하지만, 어느새 그녀와 그는 벽에 부딪힌 느낌을 받게 된다. 그래서 싸우고, 헤어지고.... 때론 헤어진 후에 다시 만나고, 또 싸우고...

이런 것이 우리네 삶의 모습,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살다 보면 남자와 여자는 영원히 평행선을 그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으니, 그래서 젊을 때는 싸우면서 사랑하지만, 늙으면 측은지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책의 부제는 '그녀와 그, 영원히 넘을 수 없는 사랑과 다툼에 관한 짧은 기록'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너무도 공감이 가는 문장들이 많이 나온다.

구성을 보면, 다툼 前, 다툼 中, 다툼 後.... 그래서 그녀와 그는 어떻게 됐을까?

"아주 먼, 낯선 벽에서 너와 나를 만났어. " (책 속의 글 중에)

우리 주변의 그녀와 그, 거의 모두는 이렇게 낯선 벽에서 만났을 것이다.

♡ 고백의 고민  (his story)

짝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며.

그건 말주변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없어서야.

처음부터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그게 아니라면 짝사랑이 아닌 거야. 그건 고백을 미루고 있는 거겠지.

쇼핑하기 전에 고민하듯 고백을 고민하지는 마.

♣ 어떤 것도  (his story)

사랑은 서로 다른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서서 지금의 모습을 바라봐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날 위해 니가 굳이 뭘 바꾸려 하지마.

★ 잘못   (her story )

사랑은, 잘못을 용서하는 게 아니라 잘못도 사랑하는 거래.

사랑스러운 걸 사랑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

♤ 07 : 22  (her story )

멈춰 있는 시간.

넌 오전 일곱시 이십이 분을 말했고,

난 오후 일곱시 이십이 분을 말했어.

같지만

다르게 보고, 다르게 말했어.

그러나

다름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고 믿게 만든 것처럼

우리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야.

◆ DON‘T KNOW (her story)

몰랐겠지.

그래, 몰랐지.

모르니까 그랬겠지.

아픈 말

마지막인지 모르니까.

모르니까, 그렇게 했겠지.

이해는 해.

용서가 안 될 뿐이지.

♧ 낙화 (his story)

모든 꽃은 결국에는 떨어지게 되어 있어.

그러나 좋은 꽃은 잊지 못할 향기를 남기지.

화려하기보다 향기로운 사람이 되길 바랄게.

보통의 경우에 이런 사랑과 이별의 에세이는 여자의 경우, 남자의 경우만을 중심으로 쓰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은 '그녀와 그' 즉,  her story 와 his story 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녀와 그의 사랑과 다툼에 관한 짧은 기록을 한 권의 책에서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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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의 하늘 1
윤인완 지음, 김선희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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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의 하늘>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갖지 않은 상태에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심지어 판타지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웹툰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 마음대로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기도 하다.

첫 느낌은 붕괴된 건물 속에서 빠져 나갈 수 있는 길을 찾아 헤매는 한 고등학생의 이야기라는 것만으로도 세월호 속의 고등학생들이 떠오른다. 과연 그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볼 수 있을까....

깜깜한 암흑 속에서 휴대폰의 불빛에 의지하여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는 참담한 남학생의 모습에서 과연 그가 처한 상황이 어떤 상황일까 궁금해진다.

자연재해? 건물 붕괴?  등등의 의문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몇 페이지를 넘기니 붕괴된 건물 안에 갇힌 듯한 남학생이 길을 찾기 위해 헤매는 컷에서 학생의 신발 밑에서 신문 기사가 얼핏 보인다.

'화산 폭발의 전조?! ' 그리고 또 하나의 단서를 찢어진 신문에서 찾게 되는데...

" 합정역 5 만명 실종...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악의 재난 사고라 일컫는 이번 8.11 합정사고에 대한 유엔 합동 조사팀의 발표가 이루어졌다. " ( 책 속의 글 중에서)

그러나 이 이야기는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명확한 사건의 진상을 밝혀 주지는 않는다. 또한 그 남학생은 건물 안에 갇힌 것이 아니라 건물 밖에서 있으며 누군가가 벽 위에 래커 칠로 써 놓은 " 심연의 끝에서 하늘을 보라"는 의미를 찾아야만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심연 (深淵), 나는 심연이란 낱말의 뜻을 깊은 연못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

(2) .

(3) .

(4) .

이 책을 읽다보면 이 4가지 뜻 중에 어떤 의미로 읽어도 무관하다고 본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면, 남학생은 살기 위해서는 광화문으로 가야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곳으로 가던 중에 한 여학생을 만난다. 여학생은 이 재난이 어떤 상황인가를 알고 있는 듯하나, 스스로 그것을 찾으라는 말만 한다.

어둠 속에서 핸드폰 불빛을 비추게 되면 나타나는 흡혈 벌레, 그리고 여기 저기 몰려 다니면서 사체를 뜯어 먹는 귀신들, 애완견이었지만 재난이 일어난 후에 사체를 뜯어 먹다보니 맹견으로 돌변한 개떼들....

아비규환 속에 놓인 남녀 고등학생은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게 된다.

그런데, 이 사고는 갑자기 북한산 쪽에서 버섯구름이 보이더니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세상이 어두워지고 합정역 부근이 침몰되었다고 하는데 벌써 62일이란 시간이 흘렀다고 한다.

그렇다면 남자 주인공은 학원 책상에서 졸다가 깨어나 보니 이런 상황이 되었는데, 어떻게 62일 동안 생존할 수 있었단 말인가...

이 이야기는 재앙 속에 놓인 남학생의 모습과 함께 일상 속에 놓인 남학생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판타지 소설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실존하지 않는 세상과 실존하는 세상을 옮겨 다니는 것과 같은 장치가 쓰였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이에 대한 어떤 설명도 없다. 독자 스스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

작가는 ' 이 작품은 절대로 판타지가 아니다' 라고 말하면서 ' 싱크홀에서 착안한 자연재해이지만, 작품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인물들과 재난 상황은 과학적인 모티브를 가지고 있다' 또한 ' 작품 속의 재난이 자연재해이긴 하지만 그 이면에 많은 인재들이 숨어 있다' 고 말한다.

요즘 석촌동을 비롯한 곳에서 싱크홀 현상이 나타난다. 석촌 호수의 물은 줄어들고 있다. 며칠 전에 큰 싱크홀이 생겼지만 당국에서는 그냥 흙으로 그 웅덩이를 덮어 버려서 싱크홀이 왜 일어났는지 조사를 하지 못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안일한 대처가 가져 온 큰 재난이 바로 책 속의 상황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들은 또다른 생존자를 만나게 된다. "거기 누구 있어요?"  " 괜찮아요?"  " 생존자들이 또 있어서 다행이다. "  " 고등학생이에요?"  " 괜찮아요. 울지 마. "  " 곧 구조대가 올 거야." " 우리 힘을 합쳐서 같이 가족 곁으로 돌아가요!"  " 반드시 살 수 있을 거야."  " 포기하지 말자."

이 대목을 읽으면서 우리는 어떤 생각이 드는가? 구태여 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아도 우리의 생각은 똑같을 것이다.

 

" 살려 주세요."   " 제발! "   " 제발 !!"    " 도와주세요!"   " 살... 려... 주...세요..."

" 살... 려... 주...세요..." 라는 이 목소리는 누구의 목소리일까?

세월호 속에 갇혀 있던 학생들의 목소리이기도 하고, 군대에서 가혹행위를 당하던 윤일병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누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왜 아무도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을까? 아니 그 목소리를 들었지만 우린 외면해 버린 것이 아니었던가?

이 이야기 속의 학생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드디어 구조대를 만나게 되는데... 구조대가 내뺃는 이 말을 우린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 뭐야 쟤네들은?"   " 민간인 생존자인가?"   " 황당하군"  " ... 지금 생존자가 나오면 곤란하니까"  " 죽여버려."

  

엄청난 재난 속에서 용기를 갖고 생존한 사람들이 서로를 도와주면서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았는데, 그들에게 놓인 상황은 바로 이랬다.

긴~~~ 한숨과 함께 이 책을 덮는다. 그리고 더 이상 그 어떤 글로도 이 책을 읽은 후의 생각을 적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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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의 집
수전나 클라크 지음, 서동춘 옮김 / 북노마드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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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북단의 모로코는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13km 떨어진 나라이다. 예전에는 아주 먼 나라로 생각되었을지 모르겠으나, 요즘에는 스페인 여행길에 잠깐 들려 오는 관광의 나라이기도 하다. 

작가 폴 보올스는 모로코를 여행자들이 '신비를 기대하고 그 신비를 발견하는 땅'(p.7)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모로코의 옛 수도였던 '페스'에는 가죽 염색으로 파랑, 빨강, 노랑, 갈색 등의 염료가 든 통이 수십개씩 웅더이처럼 놓여 있는 천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추와라'무두질 공장이 있는데 이것이 대표적인 관광 명소이다.

 

그리고 미로처럼 좁아서 두 사람이 함께 걸을 수도 없는 골목길, 짐을 나르는 당나귀, 이슬람 문화권에서 볼 수 있는 건물들 사이로 우뚝 솟은 미나에트,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진 건물의 외벽과 세밀하게 조각이 된 창문틀 등이 생각난다.

 페스는 789년에 건설된 이래로 한때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도시이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페스를 단 두 번 여행하고 이곳의 건물에 매료되어서 집을 구입하게 된다. 바로 수전이 그 주인공이다.

수전나 클라크는 호주에서 20년 이상 신문사에서 포토디렉토로 일하고 있으며, 남편인 샌디 매커친 역시 호주의 국영 방송국에 근무하고 있고 있다. 호주와는 모든 면에서 확연하게 다른 곳에 그것도 항상 거주할 수 있는 것도 아닌 호주에서 직장 생활을 해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페스에 집을 장만하게 된다. 집구입에서부터 순조롭지는 않다. 발품을 팔아서 마음에 드는 집을 사려고 했지만 매도인의 서류 미비로 계약이 파기되고, 다시 선택한 집은 다 쓰러져 가지만 원형이 아름다운 집을 구입하게 된다.

페스의 집은 '다르'와 '리아드'로 구분되는데, 약간의 정원이 있어서 감귤나무도 심고,작은 분수대도 있는 집은 '리아드'이다. 그녀가 고른 집은 바로 '리아드'인데 특히, 아라베스크 문양의 아름다운 천장이 마음에 들었다. 또 바닥의 젤리즈 (그림 퍼즐과 비슷한 구조로, 그림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큰 문양을 이루는 것)도 가치가 있어 보였다. 그리고 모로코 전통을 그대로 담고 있어서 건축학적으로 대단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복원할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구입한 집의 회벽에는 '1292'라는 숫자가 쓰여져 있다. 이것은 서양 달력으로 '1875'년을 의미하는 것으로 마지막 보수한 날을 일컫는 것이다.

'페스'는 유일하게 14c처럼 살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이 곳의 주민들은 빈 집이 있으면 천정, 문짝, 창틀 등을 떼어다가 팔아 먹는다. 모로코안에서 팔기도 하지만, 미국이나 서구의 아름다운 저택의 인테리어로 팔려 나가기도 한다. 수전이 애초에 복원을 만만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수도, 전기를 비롯하여 모든 것을 보수하려면 그 절차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까다롭고, 이곳이 모로코 전통적인 도시이기에 복원사업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류를 갖추어서 관청에 들어가면 모로코 관료주의에 부딪히게 되고, 이 부서에서 다른 부서로 옮겨 다니기도 하면서 승인을 얻으면, 그 서류를 트집잡는 사람이 또 나타나게 된다. 모로코의 관료주의와 일관성없는 업무처리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들이기도 하다. 건축 관련일을 하는 사람들도 자기들 멋대로이고, 시간 관념도 없고, 책임의식도 없다. 쓰레기처리에서 부터 모든 일이 수고비와 연결이 된다. 수리를 맡은 인부들도 처음에 계약할 당시 보다 더 많은 돈을 요구한다. '페스 사람들은 어수룩한 외국인을 등치는데 수 백년의 전통이 있기에 나 정도는 가볍게 속여 넘길 수 있었던 것이다.' (p.131)라고 이야기 할 정도이다.

처음부터 수전이 언어도 안 통하고, 문화적 장벽도 있는 '페스'에 집을 구입한 것이 잘못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수전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리아드'의 복원을 멋들어지게 해내고야 만다. 그녀를 힘들게 하던 사람들도 어느새 친근한 이웃으로 변하게 된다.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에는 수전이 페스에 집을 구입하고 복원하는 과정의 좌충우돌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그것은 주요 구성 요소일뿐이었다. 수전이 페스에서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면서 체험하는 과정에서 모로코의 모든 면이 소개된다. 모로코의 역사, 1940년까지 존재했던 노예제도와 노예를 사고 팔던 곳에 가서 보고 듣는 이야기, 우리의 목욕시설에 해당하는 '함맘' 그리고 결혼식에 관한 이야기, 소년들의 할례, 여성의 권리와 자유신장(2003년 무드와나 가족제도법의 도입으로) 등이 일상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개된다.

모로코는 이슬람국가이기는 하지만 회교율법이 아닌 프랑스법을 따른다. 그것은 프랑스의 식민지 통치를 받았던 역사적 배경때문인 것같다.

그밖에도, 장례절차에 관한 설명도 자세히 들려준다. 그리고 모로코에서 믿는 주술에 진, 마리드에 관한 이야기, 라마단, 에이드 알 피트르 추제 이야기도 흥미있는 이야기들이다.

 

지금 페스에는 '리아드 열풍'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로코 전통양식의 허름한 집을 서양인들이 구입하여서 관광객을 위한 숙박시설로 개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방이 10개 미만이기때문에 모로코의 전통을 체험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그래서 모로코인들은 불편한 집을 팔고 안락한 아파트로 이주하고 그들의 문화적 가치가 있는 전통적인 집들은 훼손되는 것이다.

'아무나 와서 아무 집이나 선택하지만 돌려주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취향의 문제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있는 그대로 존중해줘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말하죠. 정말 훌륭해 그리곤 그들은 그 훌륭한 것을 없애 버립니다. 환상을 구체화하고 싶은 사람은 다른 곳으로 가야 합니다. 여기 메디나(이슬람의 구시가지, 전통도시)로 오지 말고요' (p.390) 

모로코인들이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지 못한다고 그것을 외지인들이 파괴해서는 더욱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세계문화유산이 아니던가? 또한, 우리들은 문명의 이기를 자유로이 사용하면서 전통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지키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어쩌면 아이러니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수전이 그것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들어보자.

'문제는 현대화가 가져다 주는 돈과 기회를 이곳 주민들이 거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페스를 사랑하는 나로선 그저 이곳 사람들이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문화 유산을 파괴하지 않기를, 그리하여 그 가치를 온당히 매기고 보존하길 소망할  뿐이다.'(p.339)

 

 

수전은 정말로 페스를 사랑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곳에서 아주 거주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페스의 건물들을 사랑한다. 그곳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도 사랑한다. 나무 한 토막, 벽돌 하나하나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지고, 그 위에 손으로 무늬가 새겨지고 세공되는 곳, 인간의 손길로 집을 짓는 그 땅을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p.387) 모로코에 대하여, 그리고 지금도 중세 14세기에 머물러 있는, 그러나 멀지 않아 그 모습이 사라질지도 모르는 그곳에 대하여 관심이 있다면 '페스의 집'을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에는 페스의 역사부터, 사회 풍습, 그리고 사람사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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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한의학 - 낮은 한의사 이상곤과 조선 왕들의 내밀한 대화
이상곤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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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의 국역완료는 많은 사람들에게 당시의 역사, 생활상, 사회상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그래서 이를 기초로 한 많은 도서, 영화, 드라마 등이 봇물터지듯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흥미을 위주로 하다보니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이런 내용들이 정사일까, 야사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경우도 있게 마련인데, <왕의 한의학>은 철저하게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정통 역사서만을 바탕으로 해서 조선 왕들의 건강을 체크해 본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허준>, <대장금>, <마의>등을 통해서 조선의 의관이나 의녀 이야기는 단연 인기를 끌기도 했으며, 그런 이야기를 통해서 조선 왕들의 건강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도 있었다.

또한, 조선의 역사서 중에는 조선왕들의 독살사건에 대한 내용을 다룬 책들도 있는데, 과연 그들이 정적으로부터 독살을 당했을까 하는 의문은 아직까지도 지워지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왕의 한의학>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상세하게 살펴보고 있다. 그 바탕에는 당시에 왕이 건강 상태, 질병에 대한 어의들의 처방, 그 처방이 과연 그 질병에 맞는 처방이었을까 하는 부분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데, 그것은 한의학을 전공한 저자만이 할 수 있는 깊이있는 진단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의 왕들은 어느 정도는 가족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도 가질 수 있다. 많은 왕들이 피부병, 안질, 소갈증(당뇨병), 화증 그리고 심지어는 광증이나 편집증을 앓은 왕들도 있음을 역사서 속에서 찾을 수 있다.

" 조선 왕의 몸은 당대 조선의 시대 정신과 과학, 그리고 제도와 정치가 응축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의 왕의 체질과 질병,그리고 처방의 의미를 하나씩 되짚어 보는 것은 역사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좋은 방법 가운체 하나일 것이다. " (p. 8)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태종 역할의 유동근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태종이 후덕한 인상의 기골이 장대한 무인일 것이라고 짐작을 하지만 실제로는 성격은 강명(剛明) 했으나 체질은 허약했다.

세종이 안질과 요병, 소갈증, 종기에 시달렸음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며 성증은 서증(暑症 : 더위 먹은 병)과 치통이, 사도세자는 광증, 영조는 편집증이 있었다.

그런데 조선초기의 경우에는 의관들의 수준이 매우 낮아서, 판수와 무녀들의 말에 많이 의존하였고, 불교의 힘을 빌어서 병을 고치고자하였다.

부모의 비참한 죽음을 알거나 목격한 왕들이 연산군, 경종, 정조도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경종의 경우에는 기록에 '형용하기도 어렵고 치료하기도 어려운 ' 병에 걸렸다는 내용의 기록이 있는데, 그가 복용한 약물로 추측하건대 간질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영조는 체격은 컸지만 약골이었고, 그는 스스로 자신의 질병을 진단하고 몸 상태를 파악하였으며, 자신에게 어떤 처방을 내려야 할 지를 자신이 정확하게 알았고, 강한 의지를 가지고 건강을 지켰기에 83세라는 나이까지 장수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평생을 엄청난 량의 인삼을 먹었다고 하니, 검소한 임금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는 당시로서는 고가의 인삼을 달고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로 유명해진 의녀 장금이는 중종이 남성 의원의 견제에도 수십 년 동안 곁에 두었던 의녀이다. 

<동의보감>을 쓴 어의 허준에 대한 평가를 보면,

" 약을 처방함에 있어 허준의 치료 능력을 잘 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소신대로 옳다고 생각하면 시행하며 정성껏 처신하는 그 뜻을 감안하여 석방한다. " (p. 169)

역사서를 저술한 작가에 의하면 조선왕 27명 중에 10명의 왕이 독살당했다고 말하는데, 거기에 대한 이 책의 저자의 생각은 대부분의 왕의 경우에 의료사고일 가능성이 많음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독살당했다고 하는 왕들의 진료기록이 그대로 사료로 남아 있기에 어떤 질병에 걸려 있었으며, 그 치료 방법이 무엇이었는가, 그 방법이 올바른 치료방법이었는가를 살펴보면서 그런 의문점을 풀어준다.

정조의 경우에는 6월 14일에 증상이 나타나서 6월 28일에 승하하기 까지의 증상, 처방전이 기록되어 있는데, 정조는 의관들 보다도 더 자신의 질병과 처방에 대해서 깊이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도세자의 죽음이후에 화증이 있어서 인삼을 기피하였다, 그런데, 그는 마지막 순간에 의관이 인삼을 처방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우를 범하게 된다. 그것이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처방이었다는 결론이다.

이런 처방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의 저자가 한의사이기에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는 한의학 뿐만 아니라 역사에 대해서도 깊이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이 책은 곧 이 박사가 환자로 만난 조선 시대의 왕들의 이야기이며, 그는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왕뿐 아니라 당대를 괴롭힌 질병들의 실체를 낱낱이 파악한다. 한의학 서적이면서 역사서이기도 하다. 내가 알기로는 이 책은 국내 에서 조선 왕들이 앓은 질병의 실체와 치료법, 그의 죽은 이유를 심도깊게 파헤친 유일무이한 서적이며, 앞으로 조선시대 질병사를 연구하는 이들에게도 지향점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p. 426 : 추천사 중에서)

바로 이 추천사가 가장 이 책을 잘 알려주는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한의학 서적이자 역사서이기에 조선 왕들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부터 생각, 활동, 역할, 질병, 처방전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이 그동안 역사 관련 서적을 통해서 살펴보지 못한 내용들까지 고스란히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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