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의 집
수전나 클라크 지음, 서동춘 옮김 / 북노마드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아프리카 북단의 모로코는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13km 떨어진 나라이다. 예전에는 아주 먼 나라로 생각되었을지 모르겠으나, 요즘에는 스페인 여행길에 잠깐 들려 오는 관광의 나라이기도 하다. 

작가 폴 보올스는 모로코를 여행자들이 '신비를 기대하고 그 신비를 발견하는 땅'(p.7)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모로코의 옛 수도였던 '페스'에는 가죽 염색으로 파랑, 빨강, 노랑, 갈색 등의 염료가 든 통이 수십개씩 웅더이처럼 놓여 있는 천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추와라'무두질 공장이 있는데 이것이 대표적인 관광 명소이다.

 

그리고 미로처럼 좁아서 두 사람이 함께 걸을 수도 없는 골목길, 짐을 나르는 당나귀, 이슬람 문화권에서 볼 수 있는 건물들 사이로 우뚝 솟은 미나에트,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진 건물의 외벽과 세밀하게 조각이 된 창문틀 등이 생각난다.

 페스는 789년에 건설된 이래로 한때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도시이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페스를 단 두 번 여행하고 이곳의 건물에 매료되어서 집을 구입하게 된다. 바로 수전이 그 주인공이다.

수전나 클라크는 호주에서 20년 이상 신문사에서 포토디렉토로 일하고 있으며, 남편인 샌디 매커친 역시 호주의 국영 방송국에 근무하고 있고 있다. 호주와는 모든 면에서 확연하게 다른 곳에 그것도 항상 거주할 수 있는 것도 아닌 호주에서 직장 생활을 해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페스에 집을 장만하게 된다. 집구입에서부터 순조롭지는 않다. 발품을 팔아서 마음에 드는 집을 사려고 했지만 매도인의 서류 미비로 계약이 파기되고, 다시 선택한 집은 다 쓰러져 가지만 원형이 아름다운 집을 구입하게 된다.

페스의 집은 '다르'와 '리아드'로 구분되는데, 약간의 정원이 있어서 감귤나무도 심고,작은 분수대도 있는 집은 '리아드'이다. 그녀가 고른 집은 바로 '리아드'인데 특히, 아라베스크 문양의 아름다운 천장이 마음에 들었다. 또 바닥의 젤리즈 (그림 퍼즐과 비슷한 구조로, 그림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큰 문양을 이루는 것)도 가치가 있어 보였다. 그리고 모로코 전통을 그대로 담고 있어서 건축학적으로 대단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복원할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구입한 집의 회벽에는 '1292'라는 숫자가 쓰여져 있다. 이것은 서양 달력으로 '1875'년을 의미하는 것으로 마지막 보수한 날을 일컫는 것이다.

'페스'는 유일하게 14c처럼 살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이 곳의 주민들은 빈 집이 있으면 천정, 문짝, 창틀 등을 떼어다가 팔아 먹는다. 모로코안에서 팔기도 하지만, 미국이나 서구의 아름다운 저택의 인테리어로 팔려 나가기도 한다. 수전이 애초에 복원을 만만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수도, 전기를 비롯하여 모든 것을 보수하려면 그 절차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까다롭고, 이곳이 모로코 전통적인 도시이기에 복원사업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류를 갖추어서 관청에 들어가면 모로코 관료주의에 부딪히게 되고, 이 부서에서 다른 부서로 옮겨 다니기도 하면서 승인을 얻으면, 그 서류를 트집잡는 사람이 또 나타나게 된다. 모로코의 관료주의와 일관성없는 업무처리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들이기도 하다. 건축 관련일을 하는 사람들도 자기들 멋대로이고, 시간 관념도 없고, 책임의식도 없다. 쓰레기처리에서 부터 모든 일이 수고비와 연결이 된다. 수리를 맡은 인부들도 처음에 계약할 당시 보다 더 많은 돈을 요구한다. '페스 사람들은 어수룩한 외국인을 등치는데 수 백년의 전통이 있기에 나 정도는 가볍게 속여 넘길 수 있었던 것이다.' (p.131)라고 이야기 할 정도이다.

처음부터 수전이 언어도 안 통하고, 문화적 장벽도 있는 '페스'에 집을 구입한 것이 잘못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수전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리아드'의 복원을 멋들어지게 해내고야 만다. 그녀를 힘들게 하던 사람들도 어느새 친근한 이웃으로 변하게 된다.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에는 수전이 페스에 집을 구입하고 복원하는 과정의 좌충우돌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그것은 주요 구성 요소일뿐이었다. 수전이 페스에서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면서 체험하는 과정에서 모로코의 모든 면이 소개된다. 모로코의 역사, 1940년까지 존재했던 노예제도와 노예를 사고 팔던 곳에 가서 보고 듣는 이야기, 우리의 목욕시설에 해당하는 '함맘' 그리고 결혼식에 관한 이야기, 소년들의 할례, 여성의 권리와 자유신장(2003년 무드와나 가족제도법의 도입으로) 등이 일상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개된다.

모로코는 이슬람국가이기는 하지만 회교율법이 아닌 프랑스법을 따른다. 그것은 프랑스의 식민지 통치를 받았던 역사적 배경때문인 것같다.

그밖에도, 장례절차에 관한 설명도 자세히 들려준다. 그리고 모로코에서 믿는 주술에 진, 마리드에 관한 이야기, 라마단, 에이드 알 피트르 추제 이야기도 흥미있는 이야기들이다.

 

지금 페스에는 '리아드 열풍'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로코 전통양식의 허름한 집을 서양인들이 구입하여서 관광객을 위한 숙박시설로 개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방이 10개 미만이기때문에 모로코의 전통을 체험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그래서 모로코인들은 불편한 집을 팔고 안락한 아파트로 이주하고 그들의 문화적 가치가 있는 전통적인 집들은 훼손되는 것이다.

'아무나 와서 아무 집이나 선택하지만 돌려주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취향의 문제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있는 그대로 존중해줘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말하죠. 정말 훌륭해 그리곤 그들은 그 훌륭한 것을 없애 버립니다. 환상을 구체화하고 싶은 사람은 다른 곳으로 가야 합니다. 여기 메디나(이슬람의 구시가지, 전통도시)로 오지 말고요' (p.390) 

모로코인들이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지 못한다고 그것을 외지인들이 파괴해서는 더욱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세계문화유산이 아니던가? 또한, 우리들은 문명의 이기를 자유로이 사용하면서 전통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지키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어쩌면 아이러니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수전이 그것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들어보자.

'문제는 현대화가 가져다 주는 돈과 기회를 이곳 주민들이 거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페스를 사랑하는 나로선 그저 이곳 사람들이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문화 유산을 파괴하지 않기를, 그리하여 그 가치를 온당히 매기고 보존하길 소망할  뿐이다.'(p.339)

 

 

수전은 정말로 페스를 사랑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곳에서 아주 거주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페스의 건물들을 사랑한다. 그곳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도 사랑한다. 나무 한 토막, 벽돌 하나하나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지고, 그 위에 손으로 무늬가 새겨지고 세공되는 곳, 인간의 손길로 집을 짓는 그 땅을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p.387) 모로코에 대하여, 그리고 지금도 중세 14세기에 머물러 있는, 그러나 멀지 않아 그 모습이 사라질지도 모르는 그곳에 대하여 관심이 있다면 '페스의 집'을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에는 페스의 역사부터, 사회 풍습, 그리고 사람사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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