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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100 여개의 리뷰가 달린 소설.... 내 기억에 아마도 출간과 함께 '리뷰'대회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까지 리뷰를 쓴다는 것이 좀 어색한 느낌마저든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김훈의 소설을 읽고 리뷰를 쓰는 것은 언제나 거북스러운 느낌이 들어 왔다. 내가 작가의 의도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읽었는지를 항상 물어보게 되는 글들이었다. '칼의 노래'도, '남한산성'도...
나는 이 책이 출간 된 당시에 '칼의 노래'나 '남한산성'이 그러했듯이,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에 대한 작가만의 새로운 시각이 부여된 그런 고전적 주제를 가진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다. 학창시절 '고전'앞 부분에 나와서 누구나 쉽게 접했던 '공무도하가'의 시대적 배경을 고스란히 담은 소설로 알았다. 그런데 작가는 '공무도하'의 여옥의 노래를 주제(?)로 빌려 온 것도 아니고 백수광부가 물에 빠져 죽어서 강을 건너갔다고 생각하는 '피안의 세계'를 노래한 것도 아니고, 강건너가 아닌 강을 건너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다. 백수광부의 혼을 떠나보낸 여옥의 울음만이 남겨진 세상의 이야기를....
작가가 첫 연재를 시작하면서 한 말을 여기 적어 본다.
멀고 아득한 것들을 불러서 눈앞으로 끌어오는 목관악기 같은 언어를 나는 소망하였다. 써야 할 것과 쓸 수 있는 것 사이에서 나는 오랫동안 겉돌고 헤매었다. 그 격절과 차단을 나는 쉽사리 건너갈 수 없었다. 이제, 말로써 호명하거나 소환할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을 터이고, 나의 가용어(可用語) 사전은 날마다 얇아져간다.(……) 제목으로 정한 공무도하(公無渡河)는 옛 고조선 나루터에서 벌어진 익사사건이다. 봉두난발의 백수광부는 걸어서 강을 건너려다 물에 빠져 죽었고 나루터 사공의 아내 여옥(麗玉)이 그 미치광이의 죽음을 울면서 노래했다.이제 옛노래의 선율은 들리지 않고 울음만이 전해오는데, 백수광부는 강을 건너서 어디로 가려던 것이었을까.백수광부의 사체는 하류로 떠내려갔고, 그의 혼백은 기어이 강을 건너갔을 테지만, 나의 글은 강의 저편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강의 이쪽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그 옛노래는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그 사내의 뒷모습을 떠오르게 했는데, 들리지 않는 옛노래의 선율이 나의 연필을 이끌어주기 바란다._‘연재를 시작하며’
5월 1일 첫 일일연재를 시작하며 작가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는 또한,
“약육강식은 모든 먹이의 기본 질서이고 거대한 비극이고 운명이다. 약육강식의 운명이 있고, 거기에 저항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이 있다. ‘공무도하가’는 강 건너 피안의 세계로 가자는 것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더러운 세상에서 함께 살자는 노래이다. 나는 인간 삶의 먹이와 슬픔, 더러움, 비열함, 희망을 쓸 것”이라 밝혔었다. “말로써 호명하거나 소환할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을 터”이고, 그의 “가용어 사전은 날마다 얇아져간다”고 했지만, 그의 책상 위에 쌓인 지우갯가루는 매일같이 높아져갔고, 그렇게 5개월, “멀고 아득한 것들을 눈앞으로 불러왔던” 긴 노래는 끝이 났다.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이 문장은 소설에서 여러번 반복되어서 나온다)
작가의 글에서 볼 수 있는 '써야 할 것과 쓸 수 있는 것 사이에서 나는 오랫동안 겉돌고 헤매었다'는 것은 작가가 오랜 세월 기자로서 활동을 했고, 그이후에 작품 활동을 하면서 '써야 할 것과 쓸 수 없는 것'에 예민하게 반응했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도 문정수라는 신문사 사회부 기자의 생활을 통해서 그런 면이 많이 나타난다. 써야 할 기사와 쓰지 말아야 할 기사를 스스로 선택하기도 하고, 자신이 올린 기사가 몇 줄로 줄어들거나, 아예 삭제되기도 한다. '해암'과 '창야'라는 지방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들.... 그것을 취재하는 기자.
우리 사회가 지금 안고 있는 문제점이 그대로 나타난다. 그리고, 언제였던가 신문 기사로 등장했던 사건들이다. 문정수가 군복무 시절에 간첩이 출몰하고 한 명의 도주 간첩을 잡는 과정에서 간첩을 생포하지 않고 쏘아 죽인다. 그 간첩이 잡힐 경우에 밝혀지게 될 간첩 침투 루트와 행동 반경이 미치는 파장을 없애기 위해서 였다. 그 밖에, 뱀섬이 미군 폭격기들의 폭격지였기에 겪게 되는 생태계의 파괴문제와 그 근처 주민들의 삶과 생명의 고통, 노학연대 수배자였던 장철수라는 인물의 배신과 그이후 도주하여 해망에서의 생활, 베트남 신부들의 결혼과 그녀들이 우리나라에서 겪는 아픔, 개에 물린 아이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본 빈곤층의 사회 현실, 캐피털 백화점 화재사건을 통해서 본 백화점 사주의 대책과 그 화재 현장에서의 소방관의 비리, 노동분규에 참여했던 노동자의 투신을 통해 본 진실과 거짓, 1만 년을 내려온 패총이 도로 공사로 도로포장속으로 깔려 들어가 버리고, 패총의 일부는 닭의 사료로 쓰여져 버리는 사적 관리의 행정 허점과 무지와 이기주의, '효순이'사건을 연상하게 하는 도로공사 클레인에 치여 죽게 되는 여고생 방미호의 이야기. 이 모든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생각해 보았던 사건들이었고, 또 새로운 시각으로 보아야 할 문제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어쩌면, 문정수의 '발가락에 들러 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기생하는 무좀처럼,그냥 데리고 살아야 하는'(p222)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는 결코 이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책의 내용중에서) 그래서 작가는 인간 삶의 먹이와 슬픔, 더러움, 비열함, 희망을 쓸 것(책 소개글 중에서)이라고 했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무엇이 '보이는 것'이고 무엇이 '숨겨진 사실'인지..... 우리 모두가 생각해 보고, 잘못된 많은 부분을 고쳐 나가야 한다. 문정수의 발가락에 들러 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기생하는 무좀처럼,그냥 데리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삼십여 년 기자생활을 한 작가가 ‘기자’의 눈으로 들여다본 우리 삶의 이야기
“약육강식은 모든 먹이의 기본 질서이고 거대한 비극이고 운명이다. 약육강식의 운명이 있고, 거기에 저항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이 있다. ‘공무도하가’는 강 건너 피안의 세계로 가자는 것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더러운 세상에서 함께 살자는 노래이다. 인간 삶의 먹이와 슬픔, 더러움, 비열함, 희망을 쓸 것이다.” (책소개 글 중에서)
그러나 작가는 이 소설을 쓴 후에도 자신의 모든 관계에 대한 혐오감을 느끼고 다시 제자리에 온 자신을 느낀다. 이것은 바로 작가가 '공무도하'를 통해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었던 그리고, 쓰고자 했던 이야기를 제대로 다 하지 못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리라.
작가가 다시 한 번 붓을 들어서 무엇인가를 외칠 것이라는 기대를 해 본다. 그런데, 이젠 조금은 부드럽게 변한 모습으로 독자를 찾아 와도 좋지 않을까하는 나만의 생각을 적어 본다.
끝으로 이 소설을 마친 작가의 말을 적어 본다.
'나는 나와 이 세계 사이에 얽힌 모든 관계를 혐오한다. 나는 그 관계의 윤리성과 필연성을 불신한다. 나는 맑게 소외된 자리로 가서, 거기서 새로 태어나든지 망하든지 해야 한다. 시급한 당면문제다. 나는 왜 이러한가. 이번 일을 하면서 심한 자기 혐오에 시달렸다. 쓰기를 마치고 뒤돌아 보니, 처음의 그 자리다. 남은 시간들 흩어지는데, 나여, 또 어디로 가자는 것이냐.' 2009년 가을에 김훈 쓰다. (작가의 말, p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