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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평점 :
이 책은 제목이야기부터 하려고 한다. '고등어를 금하노라' 는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책정보를 검색하여 보니 재독 한국인의 가족 이야기이다. 머리에 스쳐가는 생각으로는 우리가 여행을 하다보면 그 도시에서 풍기는 냄새가 있다. 대만에 가면 야시장이나 음식점 근처에서 나는 초두부 냄새, 터키의 거리거리에서 풍기는 케밥의 냄새... 역시 유럽의 도시에서도 뭐라고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서양 특유의 음식 냄새들이 있다. 고등어 역시 비릿한 냄새가 심하니 독일의 식탁에서 고등어 요리가 풍기는 냄새로 인해서 생기는 에피소드가 담겨 있지 않을까하는 얄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제목은 은유적이고 상징적이라는 것을 책을 읽는 중간에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때 가족들과 함께 독일로 이주를 한 후 35년 동안 그곳에 살고 있는 한국인 건축가인 임혜지 씨가 그곳에서 독일인 남편을 만나서 아들과 딸을 키우면서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돈보다는 시간을, 순간의 안락함보다는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강요와 간섭보다는 자유를 존중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가치관을 가진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가족들은 아주 유별나다.(?) 고집이 센 남편은 물리학 박사이지만 첨단기기를 개발하는 회사의 말단 직원이다. 그리고, 이 글의 저자인 아내 역시 고집이 남편 못지 않게 센 프리랜서 문화재 실측조사업무를 담당하는 건축학 박사이다. 아들은 어릴때 난독증으로 책읽기와 구구단 암기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당당한 물리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다. 딸은 가족중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유행도 즐기면서 남자 친구와도 어울릴 줄 아는 예쁜 고등학생이다. 이런 가족들은 식탁이 곧 토론의 장소가 되는 것이다. 몇 시간이고 자신들의 주장을 펼 수 있는 자유분방한 모습의 저녁 식탁인 것이다.
책의 구성은 3부로 되어 있다.
* 자유로워라, 즐거워라
* 내가 자유로운 만큼 내 아이도 자유롭게
* 공존을 위한 예의

'자유로워라, 즐거워라'는 저자를 중심으로 한 가족들의 이야기를 적고 있다. 물론, 평범하지 않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다. 항상 그들의 관심사는 돈대신 시간이다. 남편이 환경보호가이기에 그들의 에너지 생활습관은 남다르다. 추운 겨울에도 난방대신 물주머니를 가지고 침대에 들어가며 온수 역시 마찬가지로 생활에서 포기했다. 자동차대신 자전거로 다니며, 심지어는 자전거를 타고 가족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고등어를 금하는 이유도 가족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독일은 바다를 접하지 않은 내륙국가이다. 그러니 고등어가 자국에서 잡힐 수가 없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바다 생선을 먹지 않았다. 바다 생선을 먹지 않고도 살아 왔는데, 자신들이 고등어를 먹는다면, 생선에 맛이 들여지고 그 결과는 바다 생선들이 없어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식탁에서 고등어를 포기하기로 했다. 가족이 포기한 '난방, 온수, 자동차, 고등어' 이것들은 우리곁에 너무도 착 달라 붙어 있기에 소중한지도 모르고 살아 가는데, 이들 가족들에게는 커다란 결단의 포기인 것이다.
'환경이라는 공동의 자산을 지키는 것이 내 것을 남에게 주는 것보다 훨씬 공평하고 당연할 뿐아니라 쉽기도 하다'(p46)는 말로 책에서는 표현되고 있다.
20년간에 걸쳐서 습관이 되어 버린 그들의 '검약 습관'은 문명이 발달한 현대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짜디짜고 지독하다. 그런데, 이런 짠돌이 가족들이 사회에 기부하는 일에는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도움의 손길을 베풀고 있다. 1유로, 2유로에도 목숨을 걸듯이 계산하고 따져가면서 근검 절약하지만, 기부에 있어서는 50유로, 100유로도 서슴치 않고 내놓을 뿐더러, 다른 독일인에게도 그 파장이 번져서 기부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내가 자유로운 만큼 내 아이도 자유롭게'는 아들과 딸을 키운 이야기들이 소개된다. 난독증이었던 자녀의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것에 조급해 하지도 않고 스스로 좋아질 수 있게 한다든가, 딸이 미국 유학을 가려고 하자 스스로의 힘으로 가라는 말을 하는 엄마의 모습이다. 부모의 선택에 의해서 자녀들이 교육을 받고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역할이 저자의 교육 방법이다. 우리의 시선으로 본다면 이런 교육방법이 자녀들이 시행착오를 거듭하거나 인생에서 실패할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가 않다. 그것이 진정으로 자녀들을 위하는 방법인 것이다.
여기까지의 내용들을 읽으면서의 나의 생각은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있기에 이 책의 내용이 모두 다 본 받을 만한 이야기들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분명히 세계의 환경을 생각하고 인류를 생각하는 마음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속에서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고, 나의 생활에서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쳐야 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가족들은 너무 특색이 있고 지나칠 정도이기에 꼭 닮고 싶은 생각은 없을지라도 근검절약과 기부문화, 그리고 환경문제에서 우리들이 고쳐 나가야 할 점은 고쳐 나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장인 '공존을 위한 예의'는 독일사회에 관한 이야기들이기에 이 책에서 내가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이었다. 2차세계대전이후의 독일 사회의 변화, 전쟁후의 피해국가나 피해 국민들에 대한 사과와 배상 문제, 그리고 '신나치주의'등에 대한 이야기가 깊이 있게 다루어 지고 있다. 아직도 독일인에게는 '나치'라는 말을 그들앞에서는 금해야 하는 단어가 되어 있듯이, 반세기가 훌쩍 지났지만 아킬레스건으로 작용을 하고 있다. 저자가 잘 아는 일본인 칼럼니스트와의 대화를 통해서 독일이 전후에 행했던 상황과, 일본이 전후에 행했던 상황을 비교해서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독일사람들은 역사적 사실에 별로 주목을 하지 않는데 반하여 일본인을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일본인 입장에서 본 이 문제는 '우리나라가 진정한 사과와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일본을 움직이는 힘은 일본 지성인들에게서 나온다'(p197)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일본 칼럼니스트의 말을 빌리면 러일전쟁에 대한 생각이나 한일의정서의 불법성에 대하여 지난 사실을 사실대로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지 그 죄과를 묻는 일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낸다고 한다. 그러니까 역사적 사실은 인정하되, 배상이나 사과는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이다. 일본에서도 지식인들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불법성만은 인정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꼭 그렇게 볼 수만은 없다고 생각된다. 시도 때도 없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거나, 일본의 침략행위를 정당화하는 일본 고위층의 행태를 어제 오늘 보아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못된 장난'이라는 소설에서도 독일의 사회 문제로 소설의 사회적 배경이 되기도 했던 독일내의 외국인에 대한 이야기도 거론된다. 독일은 인구의 9%가 외국인이다. 2차세계대전이후 전후의 건설을 목적으로 외국인들이 들어 왔고, 그들도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사람들이지만 독일인들은 외국인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독일인이 낸 세금으로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로 생각하고 멸시하는 것이다. 독일 국적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살고 있는 외국인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당당히 결혼으로 독일 국적을 당연히 가질 수 있지만 당당히 대한민국 국민으로 남아 있다.
이쯤 되면 '고등어를 금하노라'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환경을 위해서, 인류를 위해서 우리가 포기할 수 있는 부분들을 금하라는 것이라는 것을....
모두의 행복한 생활을 위해서 고등어를 금하라는 것임을.....
자유와 자긍심으로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 그리고 독일 사회의 이야기를 들려 주는 책이 '고등어를 금하노라'이다. 그러나, 읽고 이 가족들의 생활이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그리고 본받을 점이 있다면 본받으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