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의 이틀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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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인터넷 서점에 들어올 때마다 마주치는 광고의 책이었다.얼핏보면 글씨체가 특이하고, 사진에 가려서 책 제목이 구월의 아들(?)인가 하면서 얼핏 얼핏 지나쳤는데, 눈길을 끄는 것은 또한 작가의 사진이었다.'M 자형 대머리를 한' (p125) 작가였다. 별로 낯익은 작가가 아니라는 생각과 호기심때문에 읽게 된 소설이다. 제목에서 부터 시작되었던 오류는 책을 몇 장 넘기면서 더욱 혼돈스러웠다. 별 생각없이 읽게 된 책이지만, 이런 주제는 좀 불편한 느낌이 든다. 시대적 배경은 노무현 정부의 출범에서 탄핵까지이다. 정치적 색깔이 들어간다는 것부터 별로라는 기분....
그건 내가 정치적 이슈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때문이다. 시사토론에 나와서, 나올 때 중무장을 하고 나온 사람들처럼, 상대방의 의견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만 옳든 그르든 끝까지 사생결단을 낼 것처럼 말하는 그런 사람들이 싫은데, 소설에서까지 그런류의 내용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 싫었다. 그렇다고 내가 참정권을 포기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꼬박꼬박 그래도 선거를 하는 민주(?)시민이다. 
'좌파'와 '우파','보수'와 '진보'를 이분법적 잣대로 나누는 것이 과연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역사를 더듬어 보면, 정치 권력에 있었던 자들도, 우매한 국민들도 정권, 정권마다 모두 잘잘못이 있지 않았을까?  '이건 아니다'라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가 있을 까?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궁금해서 읽다말고 '작가후기'와 '작가 인터뷰'를 훑어 보았다. 작가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20년간에 걸쳐서 한국의 성장 소설은 좌파 청년 일대기면서 예술가 소설이었다고 한다. 결말은 대개가 소설가나 시인이 되었단다.그래서, 우리나라처럼 뿌리가 얕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에서는 길을 잃고 길을 찾아가는 두  젊은이의 모습을 통해서 우파 성장 소설을 쓰기로 했고, 그리고 실제로 2002년부터 대학교 내에서 뉴라이트 단체가 생기고 있는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둘째는 성장소설, 연애 소설이 천편일률적으로 이성을 찾는 이야기인데 작가는 인간은 전부 다 잠재적인 '양성애자'이고 젊은이들이 연애에 앞서 남자와 연애를 할까? 여자와 연애를 할까? 하는 것을 정해야 하며, 이제 남자와 여자 찾기 게임으로서의 성장소설을 새롭게 생각해야 한다. 는 두 가지 의도가 결합된 소설이라고 인터뷰기사가 나와 있었다. '모호하다'. 아니 '모호 그이상이다.'
그렇다면 더 모호한 소설의 제목은? 이것에 대한 자세한 답은 책 (p125~133)까지에 소설의 내용으로 나온다. 앞에 잠깐 썼던 'M 자형 대머리를 한 키 작은 교수 ' (p125) 는 '현대문학의 이해'를 강의하는 소설속 주인공인 '금'과 '은'의 교수이다. 그 교수는 신입생 첫 수업에서 매번 류시화 시인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에 수록된 詩인 '구월의 이틀'을 설명해 준다. 이 '구월의 이틀'은 꼭 '구월'이 아니어도 된다. '이틀'이면 된다. 그 '이틀'은 절대적인 것이며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p131)이다.        '이 詩로부터 찾아낸 문학의 비밀'(p132)은'문학은 내 삶을 구구절절이 받아 적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내 삶이 망각해 버린 이틀, 혹은 내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2인치를 잡아 내는'(p132)것이다. "'구월의이틀'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또 하나의 비의는 '인생'또는 '청춘'에 관한 것"(p132)이다. '구월의 이틀'에 나오는 이틀은 '모란이 피기까지는'에 나오는 하루와 같(p133)다. 즉, 이 '이틀'의 의미는 '문학'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고 '삶'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인생은 청춘의 어느 한때가 지나고 나면 나머지 인생은 내가 생각할 때 부록, 덤 같은 것이다. 20대 초반이 청춘의 끝이다. 그래서 빛나는 인생의 이틀 즉 스무살 시절 1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소설이다."(모 인터넷 서점의 인터뷰 기사 중에서)  소설속에서 이 '이틀'을 다시 요약해 본다면, "빙하시대를 불태울 열정으로 이 짧은 청춘을 살아라"하는 것이다.
그런데, '금과 은'  19살 두 주인공의 1년간의 생활은 과연 이런 취지의 생활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구태여 이분법적 잣대로 나누었던 좌파, 우파를 대변하는 가정을 가진 두 주인공의 대학 생활은 실제 대학생들의 생활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생활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많은 대한민국의 대학생들은 이데올로기라든가, 정치적 이슈보다는 그들 나름대로의 목표를 향해서 묵묵히 면학을 하면서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19살의 청소년이 40살 가량의 여인과의 사랑(?)을 하거나, 양성애적 사랑을 하는 것이 과연 타당성이 있는 설정일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그리고,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우파 성장소설의 모델인 '은'의 사고 방식이다. "강한 것은 선하고, 강한 것은 아름답다. 못 배우고 못 가지고, 못난 것들은 죽어야 한다. 아니면 최소한 끽소리 없이 고분거리고 있거나! 사실 그런 떨거지들은 볼펜의 똥 찌꺼기보다도 못하다. 못 배우고 못 가지고 못난 것들은 국가는 물론이고 문명의 애물단지에 불과하다. 함께 진화하며 성장하고 함께 적자생존의 단맛을 나누지 못할 낙오자들은 대한민국을 위해서나 인류 문명을 위해 빨리 사라져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못 배우고 못 가지고 못난 것들이 어떻게 나라를 경영하나? 대한민국의 명운을 위해 다시는 노무현 일당처럼 못 배우고 못 가지고 못난 선동 전문가들이 권력을 넘보거나 나눠 먹자고 덤벼드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강하고, 실력있고, 아름답다." 은이 쓴 글을 일고 난 작은 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런 조카와 대학가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는 '자유의 나무'의 젊은 대학생들로 부터 희망의 전조가 보였다. " 그래, 은 네가, 아주 정확하게 파악했다. 젊은 우파라면 적어도 이런 수준에서 시작해야 해(...) " (p268~269)
앞서도 이런 류의 내용들이 있었지만, 여기에 제시된 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다. 작가는 인터뷰 기사에서 이 소설은 대학 신입생들이 읽었으면 한다고 했다. 이런 글을 19살 청소년들이 읽는다. 그리고, 그 청소년들 의 '이틀'을  "빙하시대를 불태울 열정으로 이 짧은 청춘을 살아라"라고 이야기 한다는 것인가?
'은'의 작은 아버지는 대학 교수이다. 그리고 '은'은 명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신입생이다. 장차 중고등학생을 가르칠 예비 교사의 사고방식이 이렇다면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앞날이 걱정된다. 아니면 '은'이 소설가나 시인이 된다고 해도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걱정이 되는 것이다. 문장의 단어들을 다시 살펴보았다. '떨거지''볼펜의 똥 찌꺼기''적자생존의 단맛''문명의 애물단지''빨리 사라져야 한다''일당'....
이것이 '우파 성장소설'(?)  더이상의 아무런 글도 리뷰로 작성하고 싶지는 않다. 소설이 허구의 세계이기는 하지만, 소설이 미치는 파장은?
마지막으로 '인터뷰 기사'에서 작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세번 크게 웃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책값이 아깝지 않을 것 아니냐고....그러나, 나는 단 한 번의 미소도 나오지 않았다.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독자들의 수준만큼이기에 나의 리뷰는 이 수준밖에 안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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