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커피 잔을 들고 재채기
이영도 외 지음 / 황금가지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 -'환상 문학 단편선'이다. 나는 판타지 소설을 즐겨 읽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르는 작가들이지만, 판타지 소설 장르에서는 그래도 꽤 이름이 있는 작가 10명이 쓴 소설이다. '드래곤 라자'로 한국 판타지 문학의 신기원을 이룩한 이영도, 그리고 1억원 고료로 화제가 된 SBS 멀티문학상 제1회 수상작인 장편 소설 '절망의 구'의 작가 김이환을 포함하여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장편 소설 '7인의 집행관'을 연재하는 등 최근 SF 및 환상 문학 작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김보영 등이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은 중편 정도의 소설에서 에세이 1꼭지 정도의 적은 분량의 소설들도 있다. '환상'이라는 단어가 말해주듯이 소설이 배경이 현실과는 확연하게 분리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서 부터 현실의 이야기인듯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서 각색된 이야기들이 선 보인다.
첫번째 이야기인 박애자의 '학교'는 우리와 친숙한 남여공학 고등학교의 이야기인데, 그 학교에서는 1달에 1번꼴로 선거를 한다. 각자 1표씩을 투표한다. 좋은 사람에게 투표하면 플러스 점수, 싫어하는 사람에게 투표하면 마이너스 점수. 이렇게 투표한 점수가 집계되어 가장 마이너스 점수가 많은 학생은 학교의 제물로 교실 바닥이 열리면서 용광로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만약, 독자가 학생이라면 어떻게 학교 생활을 해야 할까? 최대한 다른 학생들의 눈에 띄지 않게, 그리고 적을 만들만한 행동이나 말을 해서는 안된다. 가장 조용하게 있는 듯 없는 듯 학교 생활을 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1표는 자신을 위해서 투표해야 한다. 플러스 1점을 만들 수 있을니까. 이것이 혜경이 이 학교에서 살아 남기 위한 생존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여러 사정에 의해서 학교는 혼란에 빠지고 근처 학교와의 교류때문에 혜경은 근처 학교에 가야하는 표적이 된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 학교 밖으로 도망을 쳐서 그곳에서 생활을 하는 과정이 그려졌다. 환상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일이지만, 작가의 상상력에서 소설로 탈바꿈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환상의 세계에서 가장 쉽게 탈바꿈 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사물의 의인화일 것이다. 은림의 '노래하는 숲'이 그런 경우인데, 작가가 말하듯이 '걷고 노래하고 살아 있다고 소리치는 모든 꽃들을 위해' 쓴 작품이다. 아베의 정원에서는 가장 볼품없는 토란이지만, 밤이 되면 먼 곳까지 걸어 다니면서 세상의 식물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낮에는 소리높여 노래도 부르면서 행복을 만끽한다. 아베는 다른 꽃들처럼 미모를 갖추고 나비들이 선택해 주기를 기다리라고 하지만, 거기에는 아베의 숨겨진 비밀을 있음을 알고 도망쳐서 추운 겨울을 견디고,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 가는 이야기는 동화같은 이야기이다.
만약에, 당신이 양치질을 하는데 달팽이 한 마리가 나와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한다면, 커피잔이 당신에게 말을 걸어 온다면 바로 그것이 판타지의 세계일 것이다. 이 소설이 바로 표제이기도한 김이환의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의 내용이다. 정지원의 '장미의 정원'은 아름다운 장미꽃과 장미향이 어우러진 집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처음의 느낌은 장미꽃처럼 아름다운 이야기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읽을수록 뭔지 모르는 어두운 느낌, 그리고 스산한 기분.... 아니나 다를까, '스릴러'이다. 아들의 뼛가루를 갈아서 장미 정원에 묻은 고모의 비밀, 그리고, 주인공인 조카도 결국엔 '도망가고 싶은데, 일어나서 달려가고 싶은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숨을 쉴 수가 없다. 장미 향기. 사방에 가득한 장미 향기가 나의 코를 틀어막고 폐를 가득 채운다. (...) 작디 작은 세상, 도망칠 수 없는 늪. 짙은 장미 향기. (...) 장미 한송이에 야수의 성으로 가야 했던 미녀, 나는 미녀는 아니지만. (p335~336) 그 아름다운 꽃의 여왕, 장미에 숨겨진 가족의 비밀이 이렇게 끝난다.
그런데, 가장 교훈적이고 서양의 탈무드같은 정말로 에세이 1꼭지에 해당하는 글이 인생의 지침을 주기도 한다. 김보영의 '노인과 소년'이다.여인이 문간에 두고 간 젖먹이가 어느새 소년이 되었다. 이 소년은 예배당의 의자를 광을 내서 매일 닦는다.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그런 소년이 사제에게 자기의 꿈 이야기를 하고 그 해답을 구한다. 사제의 답 "너는 이제 그 답을 안다." 소년의 꿈인 '같은 지점에서 출발했지만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된 여덟 사람의 이야기'를 소년은 스스로 그 해답을 찾았다. 그리고, 소년이 매일 광을 내는 그 의자의 주인도 어젠가는 사제가 아닌 소년임을 이미 깨달은 것이다. '인생에 대한 깨달음'에 대한 탈무드식의 이야기가 짧고 간결하지만, 깊이가 있다. 이 작품은 네이버 '오늘의 문학'에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새로운 시도를 한듯한 작품들이 있지만, 약간은 어설프고 혼돈스럽고 어색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환상 소설'이라는 장르가 '해리포터'시리즈를 통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많은 독자들 곁에 가까이 와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너무 이질감을 느끼거나 괴리감마저 든다면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가 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젊은 세대들을 환상속의 세상이 좀더 가까이 다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10작10색'(?)이라고 해야 할까? 색다른 소재를 가진, 그것도 환상소설을.... 각각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난다는 것이 새로운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