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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33 - 세상을 울린 칠레 광부 33인의 위대한 희망
조나단 프랭클린 지음, 이원경 옮김, 유영만 해설 / 월드김영사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THE 33>의 이야기는 2010년 8월 5일에 일어난 칠레 산호세 광산의 붕괴사고로 매몰되었던 33명의 광부들이 70 일간의 무너진 광산 속에서 어떻게 생활하였으며, 그들의 구조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기록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조나단 프랭클린'은 <가디언>지의 남아메리카 특파원으로 구조 작업 과정상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인 칠레 대통령, 구조대원, 기술자, 가족, 그리고 나중에 구출된 광부 등을 비롯하여 120여명과 나눈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 책을 쓰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에, 이렇게 오랜 시간에 걸친 구조 작업이 있으리라고는, 또 광산에 갇힌 33명의 광부 모두가 살아 돌아오리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칠레 광부 매몰 사건을 접하면서 그저 해외토픽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리고, 1967년 8월 22일에 구봉광산에서 일어났던 양찬선 광부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광산 붕괴사건 중에 큰 이슈가 되었던 사건이었는데, 양찬선은 지하 125m의 갱도에 갇혀 있다가 16일만에 구조되었다. 그는 혼자 갇혔었고, 그가 가지고 들어간 음식물은 도시락 한 개가 전부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해서는 나 역시 이 정도의 내용 밖에는 모른다. 다만 그가 가지고 간 도시락 반찬이 짭짤한 새우젓이었기에 좀 더 견딜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반응들도 있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그후의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1995년 6월 26일에 일어난 삼풍 백화점 붕괴사건일 것이다. 그 무더운 여름날에 움직일 수도 없는 공간에서 16일만에 구조된 여성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칠레의 산호세 광산의 붕괴 사건은 33명의 광부가 70일간을 함께 버티면서 지하 700 m 에서 생활하였다는 것이다.
칠레의 광부들은 항상 '안전'과 '돈'이라는 극단의 선택 앞에 내몰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하는 것은 '돈'일 수 밖에 없는것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닥칠 비극의 씨앗이자 운명인 것이다.
금, 구리가 매장되어 있던 산호세 광산은 100 여년이 넘게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고, 광석을 캐고, 또 터뜨리고, 캐고를 반복하는 동안에 마치 텅빈 해골을 연상시킬 정도로 안정성이 의심스러운 광산이다.
그러나, 다른 광산보다 보수가 좋기에 광부들은 위험을 무릎쓰고 갱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하루를 쉬고 싶지만 출근을 한 사람, 출근 버스를 놓쳤지만 다른 트럭을 얻어 타고 광산 속으로 가면서 오늘은 '운이 좋다'고 생각했던 사람.
그들의 운명은 그렇게 광산 속으로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았습니다. 산허리에서 돌 부스러기가 쏟아져 나오고 광산 입구에서 먼지 구름이 터져 나왔죠. 소리는 길지 않았어요. 마지막으로 무너지는 소리같았습니다. 묵직한 굉음이었죠. (p31)
이 사고로 무게 70만 톤으로 추정되는 바윗덩이가 입구를 막아 버리는 것이다.
33 명의 광부들은 대피소로 피신을 했지만 그들은 이 곳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음식물들과 대피소의 비상식량을 모아서 전체적으로 관리를 하면서 광부들 중의 리더를 중심으로 민주주의적인 방법에 그 속에서의 생활을 해 나가게 된다.
그들에게 가장 힘든 것은 습기와 더위, 그리고 배고픔, 그리고 살아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성.
식량이 참치 캔 2통이 남은 17일째
그날은 침묵의 17일이었다. 희망과 절망이 번갈아 스쳐가고, 헛 것과 망상에 사로잡히고 불길한 식인(食人}의 예감까지, 그들은 가족들에게 유언을 담은 편지를 쓰기도 한다.
광부 33인은 그들을 주님까지 지하 속에 34인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무신론자들까지도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17일째에 드릴이 갱도 안으로 뚫고 들어올 당시.
머리 위에서 돌덩이들이 덜렁거리는 가운데, 그들은 드릴 몸통에 편지와 메모를 묶었다. (...) 이제 갱도 안에는 기적적인 부활의 환희가 가득했다.
아사와 식인, 고통스러운 느린 죽음이 닥치기 일보직전,그들의 간절한 기도에 천국이 답을 해 왔다. (p127)
그러나, 그들의 생존을 확인하게 되고, 음식물도 공급되고, 가족과의 편지왕래도 되고...
그들의 생활하는 공간에 카메라가 설치되고, 전화도 할 수 있게 되면서 그들에게는 구조를 기다리는 많은 날들이 지나가게 된다.
내가 이 사건을 매스컴을 통해서 접하게 되고, 구조 과정이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을 때에 느낌과 이 책을 읽으면서의 느낌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물론, 광부들의 생활이 극한 상황이었지만, 내 생각은 그들이 처한 상황이 더 비참하고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지만, 그들은 생존 사실이 확인되고, 그후에는 음식물의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졌으며, 심지어는 담배, 마약, 필로폰까지도 필로마를 통해서 그들에게 전달되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지하의 광부들과 지상의 심리치료사와의 심리치료가 이루어졌었다는 사실도, 때론 광부들이 심리치료를 거부하기도 했다는 사실이 내가 이 사건을 어렴풋이 접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1) 17일동안 음식도 없이 버틴 암흑의 순간들과 광부들의 일상을 생생하게 기록한 빅토르 세고비아의 150쪽짜리 일기에 대한 판권 매입 경쟁.
(2) 광부들은 땅 속에 갇혀 있는데, 그들이 겪은 사고를 다룬 영화는 이미 제작되고 있다는 것
(3) 피녜라 대통령은 산호세 광산의 사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고 했다는 것.
(4) 각국의 기자들은 이 사건을 둘러싼 가십거리를 찾고 다녔고, 사실과 다른 내용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는 것.
(5) 33명의 광부들의 구조를 둘러싸고 막대한 경비가 들어가게 되지만, 이들때문에 다른 광부 250명은 일자리를 잃고 생계의 위협을 느껴야 했다는 것.
또한, 구조 당시의 이야기도 전세계에 생중계되는 것을 의식하여 중간에 구조 화면에 조작이 있었다는 것은 이 사건이 70 일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리다 보니, 구조 초기와는 다른 사심들이 끼어 들었던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세상을 울린 칠레 광부 33인의 위대한 승리"라는 점에 관심이 있었지만, 이런 극한 상황 속에 처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지만, 구조과정에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의 이기심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 THE 33>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큰 교훈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이 사건의 내면 속에 감추어진 이기심들이 인간의 욕망의 무서움을 가져다 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얻은 것도 많지만, 인간에 대한 실망감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이 책의 주인공인 33명의 광부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궁금해진다.
그들은 지하 700 m에 갇혀 있을 당시에는 아마도 세상 밖으로 나간다면 열심히, 보람차게 생활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그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살아갈지 의구심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