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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몽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1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김영식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라쇼몽>은 '아쿠카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소설 17편이 담긴 단편선이다. '아쿠카가와 류노스케'는 '나쓰메 소세키'의 제자로 일본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근대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작가는 고대에서 제재를 가져온 초기 왕조물을 비롯해 기독교물, 사소설 등 다방면에 걸쳐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그의 초기 작품은 고전에서 제재를 가져왔고, 말기 작품을 쓸 당시에는 정신적 고통이 심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 시기의 작품들은 자기 고백의 사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1892년 도쿄에서 출생했는데, 생모의 광증 발병으로 외삼촌의 양자로 자랐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삶의 어두운 그림과 비관적이고 회의적인 경향의 작품이 많다. 1927년 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자살을 한다. 유서에는 '장래에 대한 그저 막연한 불안'이라 쓰여 있었다 고 한다.그의 자살은 관동대지진과 더불어 일본 근대사에서 '다이쇼'라는 한 시대의 종언을 말한다고 할 정도로 사회적인 파장이 컸다.
요즘 읽은 소설의 작가들 중 몇 명이 자살을 했음은 그들의 작품 속에서도 그런 어둡고 우울함이 있음을 느끼게 한다. ( 헤밍웨이, 로맹 가리 등)
표제작인 '라쇼몽'은 교토 헤이안경의 주작대로 남단에 설치된 문이 라쇼몽이다. 이곳은 황폐하여 여우, 너구리가 드나들고, 도적들의 소굴이며 심지어는 시체를 갖다 버리는 풍습까지 있었다. 교토가 쇠락해지자 집에 있는 하인을 내 보내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쫒겨 난 하인은 갈 곳이 없으니 라쇼몽에 오게 된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니....
'굶을 것인가, 도둑이 될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며 하인은 널려 있는 시체를 피해 누각 2층 사다리를 오른다.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시체들 사이에 관솔불을 켜고 시체의 머리털을 뽑는 노파를 보게 된다. 죽은 사람의 머리털을 뽑아서 가발을 만든다는 노파는 하인의 질책에 '그럼 굶어 죽느냐?'고 되묻는다. 바로 자신의 속마음.
하인은 재빨리 노파의 옷을 벗겨 달아난다.
하인의 이런 행동은 폐허가 된 인생에서 그나마 남아 있던 한 가닥 양심, 노파의 행동에 대한 분노가 결국에는 자신도 그런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음을 말해 준다. 하인의 지금까지의 수동적인 삶의 태도, 행동의 선 악 구분 등은 최소한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삶의 태도로의 변화를 말해 주는 것은 아닐까.
<코>는 코가 다른 사람에 비해서 너무도 긴 선지스님, 스님의 코는윗 입술에서 턱 밑까지 늘어져 있다. 식사하기도 불편하고 다른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는데... 어떤 방법으로 코가 짦아지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더 수군거린다. 그러다가 코가 다시 길어지자 스님은 상쾌한 기분이 든다는 이야기. 이 작품은 타인의 불행을 동정하면서도 즐기려는 인간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두 통의 편지>는 도플갱어라는 소재로 풀어가는 이야기인데, 아내를 의심하는 남편의 이야기인데, 남편도 아내도 도풀갱어이다. 도플갱어는 동시에 2개의 장소에서 동일한 인물이 나타나는 현상이나 인물을 말하는 것이니 여기에서 오는 오해도 있을것이고....
<지옥변>은 '아쿠타가와' 최고의 작품이라는 평을 받는다. 유명한 화공인 요시히데는 '지옥변'이라는병풍 그림을 그려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요시히네는 방자하고 거만하고 고집불통이다. 사실적인 표현의 장면을 그리기 위해서 제자를 사슬로 묶어 놓고 구렁이를 풀기도 하고, 많은 만행을 자행한다.
그에게는 효녀 딸이 있었는데, 인정이 많고 영리했다. 대신이 좋아하기도 했는데....
화공은 불길에 휩싸인 지옥을 그리기 위해서 대신에게 청을 한다. 예쁜 계집을 귀부인 옷을 입혀서 수레 한 량에 태우면 그 수레를 불태우고 그 광경을 그림의 한가운데에 그리겠다고.
대신이 꾸민 수레에는 누가 타고 있었을까. 그녀는 불타는 수레에서 어떻게 죽어 갔을까.
미치광이 화공의 요구에 답한 대신의 행동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미치광이 짓을 하는 화공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요시히데만큼 광적인 인물이 과연 또 있을까.
<귤>은 자신의 동생들을 위한 누나의 따뜻한 마음이 엿보인다.
<위험>은 메이지 24년의 대지진이 배경이다. 지진으로 무너진 대들보에 깔린 아내를 구하려다 실패하고 그곳에 불길이 덮치자 남편이 한 행동은 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광인이 되는 슬픈 이야기이다.
<가을>은 노부코가 사랑하는 사촌 오빠를 동생인 테루코가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되는데....
이루어 지지 못한 사랑, 자신이 양보한 사랑이지만 동생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는 노부코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지만 인간의 심연에서 나오는 질투심 그리고 자신의 현재의 상활이 쓸쓸한 가을 풍경과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

나는 그동안 많은 책들을 읽었지만 일본 근대문학 작품은 몇 작품 읽지 않았다. 그런데 <라쇼몽>을 읽으면서 서양의 고전문학 작품에 뒤지지 않는 좋은 작품들이 많음을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