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고병권 지음 / 그린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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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수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의 사회. 

  국가의 시대에 추장의 마음으로 대한한국을 읽는다.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고추로 담은 장과 관련된 책인줄 알았다. 고추장으로 세상을 어떻게 말하지? 라는 의아한 생각으로 책을 보았었는데, 저자의 성에 부족사회의 추장이 결합된 단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대표라는 직함대신에 부족사회의 명예직이자 권력을 늘 가지고 있지 않았던 추장이란 단어를 좋아하는 저자가 소수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의 모습과 그가 읽은 책에 대한 소개가 2부로 나뉘어 실려있다.

  머리말에 등장하는 그가 책을 구분한 4개의 잣대에 동의한다. 세상을 변혁하는 책과 세상을 해석하는 책, 세계를 반영하는 책과 세계를 낭비하는 책으로 나누는 구분속에서 이 책은 양극화, FTA, 이라크전쟁 등의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고, 그 뒤에 숨겨진 함의를 해석하고, 작은 외침으로 세상을 변혁하는 책이다. 2003년부터 06년까지 저자가 매체에 기고한 글과 책을 엮으면서 새로 추가한 글이 모인 책이다. <수유 + 너머>의 집단을 좋아하거나, 주류의 시선이 아닌 소수의 관점을 받아들일 여유가 있는 독자에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책이다.


 

# 고추장! 책 속으로 뛰어들다.


  그린비에서 나온 리라이팅 클래식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저자이기 때문일까. 자유, 행복, 도덕, 기억, 역사, 사실, 여성, 기술, 화폐, 선물, 사회, 인권, 국가, 혁명 14개의 주제와 연관된 저자가 읽어낸 책 이야기가 실려있다. 인문학에 무지한 내게는 저자가 소개한 책들이 생소했지만, 저자의 논리적인 글솜씨에 저자가 이야기하는 주장에 동의하고, 저자가 소개한 책을 읽어싶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현실을 살아가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생을 살아가는 자신의 가치관에 큰 틀을 잡아줄 수 있는 주제와 관련된 책들, 그리고 책의 본문의 내용이 좀 더 많이 소개된 고추장의 독서메모 를 마지막에 붙여 저자의 이야기를 좀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 에피쿠로스의 <쾌락>,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 등 그냥 책의 제목만 들었을 때는 읽을 엄두도 나지 않는 책들이다. 하지만 저자의 메시지 안에서 그의 글에 공감이 가면서, 소개된 책들의 내용도 이해할 수 있는 틈을 얻게 된다. 자유는 선택이 아닌 능력이고, 인간은 행복조차 배워야 하는 짐승이며, 건강한 신체와 멀쩡한 정신만 있다면 누구도 행복에 대한 스승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 선과악이란 인간 자신의 생각과 이익에 맞추어 판단하면서 생겨난 것으로, 자연 전체로는 선악이 존재할 수 없다는 말, 기억력과 함께 기억증도 있다는 말, 치열한 '기다림'의 실천의 중요성, '사실'을 추려내는 역사학자들의 작업과 한 목소리의 위험성, 여성을 대하는 남자의 미숙함 등과 저자가 추구하는 코뮨주의의 근간을 살펴볼 수 있다.
 

# 고추장, 지식인의 책무를 다하다.

   세상의 소수자와 연대하기.


  제목이 명확히 기억나지 않는 책에서 지식인이란 노동자 등의 생활인들의 욕구를 대변하는 존재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노동자가 생존의 시위를 하기 이전에, 현실을 읽고 부조리한 부분을 글로 세상에 알리고 소통하는 책무가 지식인에게 있다고 할까. 지식사회로 가면서 지식과 개인의 안위가 연결되고, 세상과 유리되어 세상을 게임처럼 객관적 시선에서 풀려고 하려는 이들이 많은 가운데, 고추장, 저자는 지식인의 책무를 다하고 있다. 최저생계비의 현실화를 요구하다 쓸쓸히 죽어간 최옥란씨, 비가 통계적으로 오지 않아 장애인의 날이 된 4월 20일을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로 주장하자는 목소리, 폭력을 조장하는 언론과 경찰,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의 현실, 빈곤의 투쟁과 빈민들의 정치세력화의 당위성, 한미FTA를 반대하는 이유, 마을이 무너지고 있는 농촌사회의 현실, 학자와 교수의 관계, 미국 대학원으로 전락한 서울대의 모습, 국가보안법 철폐, 이라크 전쟁, 한일 극우주의의 해법 등 주류의 시선에서 벗어난 소수의 시선에서 바라본 한국 사회의 모습을 글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신문에서 소개되어 양쪽의 주장을 살펴보지만 마음속의 울림으로 다가오지 않던 이야기들이 저자의 글을 읽으니, 소수자의  불편한 현실들이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이런 현상이 일어난 원인 뒤의 철학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다고 할까. 실제 보이는 현실의 지표들이 아닌, 좀더 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 이런 시선들을 외면하고 그냥 내 안위를 위해 살아가다 보면, 주류들의 시선에 의해 무기력해지고, 한탄만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각하게 느끼지 못했던 사안들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 것만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던 점에 만족한다. 깊이있게 다가서고  싶지만, 부족한 지식으로 어렵게 다가왔던 철학적 내용들도 저자의 글을 통해 편하게 다가설 수 있었다. 현실의 문제를 외면해 버리면 결국 피해보는 이는 서민과 비주류일 뿐이라는 현실도 느껴진다.
 
  에필로그에 실린 '돈 없이 살 궁리'를 하는 저자의 모습에 색다른 감동을 느꼈다. 연구자들이 서로 각출해서 연구도 하고 마음의 정도 나누는 관계. 70년대 다들 없이 살았던 시대의 따뜻한 인정의 모습을 보는 느낌이라 할까. 연대를 하기 위해서는 모두의 연대의 필요성과 그에 걸맞는 노력과 책무가 필요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돈을 벌려 노력하는게 아니라, 더 적게 자본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삶, 꿈처럼 생각은 몇 번 해 보았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존재할거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온 세상에 돈만 없는 부자들로 가득 찬 세계, 나 역시 그런 날이 오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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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고병권이 쓴 '민주주의'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5-25 14:56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무엇인가’를 묻는 책들이 태풍처럼 출판계를 흔들어놓고 있다.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바람이 채 가라앉기 전에, 뒤를 이어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 바람이 불고 있다. 이제 여기에 다시 고병권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바람을 추가해야 한다. 그러나 고병권이 몰고 올 바람은 일시적으로 불고 지나갈 바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해서 되돌아올 바람이다. 그것은 한국의 정치·사상 지형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파열을 내는 이...
 
 
 
우연한 축복
오가와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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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망의 삶의 한가운데 찾아오는 우연한 축복.

 

  무기력한 나날이다. 무료한 일상에 마음이 지쳐가도, 막다른 골목길에 서 있는 느낌이 드는 날이 있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도서관에 갔다 이 책을 발견하였다. <우연한 축복>이라는 제목보다는 <박사가 사랑한 수식>으로 이전에 만났던 즐거운 경험으로, 작가의 책을 선택했다. 아기 침대에서 아들의 숨소리가 들려오고, 침대 아래에는 레트리버 종의 개 아폴로가 잠들어 있다. 온 세상이 내게 등을 돌리고 있다 느끼는 여류 소설가의 절망속에 찾아오는 어린 시절의 추억에서 글은 시작된다.

 힘겨움에 빠졌던 첫 소설을 집필했을 때의 일화, 아버지에게 선물받은 만년필과 관련된 일화, 첫 월급으로 레트리버를 만났을 때, 아이의 아버지와의 첫 만남, 그리고 이별까지... 7편의 단편소설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연작소설은 절망에 빠진 주인공에게 찾아오는 소소한 우연한 축복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소소한 축복, 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축복을 통해 주인공을 생의 더 살아나갈 힘을 얻게 된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 역시 생의 희망을 얻는다.


# 소소한 일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다.


  심오하고 깊은 갈등을 직면하고 고난을 헤쳐내거나 괴로워하는 주인공을 통해 고난을 극복해 내는 힘을 얻어거나, 현재의 문제에 대해 인식하는 소설을 많이 보아왔다. 하지만, 작고 소소한 아이템 하나를 통해 긴장감있게 이야기를 끌어내는 소설은 많지 않았다. <실종자들의 왕국>에서는 고모의 <구토봉투>와 유년시절의 추억으로, <도작>에서는 재활병원에서 만난 여인과의 에피소드, <기리코의 실수>에서는 글쓰기에 힘을 실어준 만년필, 리코더와 관련된 그녀의 배려, <에델바이스>에서는 그녀의 동생이라고 자처하는 스토커와의 하루와 사랑하는 이가 전해준 축전의 노래가, <누선수정결석증>은 아폴로의 병과 첫 월급이 , <시계 공장>에서는 섬에서 과일일 가득 싫은 노인과의 만남과 자신의 작업공간과 아이의 아버지인 이별과 임신소식이, <소생>에서는 아이와 자신의 주머니 제거수술과 병실에서 아나스타샤와의 만남을 통해 우연히 찾아오는 축복과 그를 통해 생의 희망을 얻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잔잔한 행동들 속에 펼쳐지는 진한 감동이라고 할까. 이런걸 감동이라 할 수 있을까 하는 것들이기에 더욱 마음이 움직인다 생각한다. 저자의 인생의 여러 순간 순간에 찾아온 우연한 축복 처럼, 나의 인생 속에서도 많은 우연한 축복이 있었지만 내가 돌아보고 살펴보지 않아 그냥 지나치고 있었던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료할 수도 있는 인생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틈을 주었다고 할까. 깊게 고민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나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진 책이라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책을 읽는 순간 내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에 더욱 위안이 된 부분도 있다.


# 생의 희망을 전해주는 우연한 축복


  이 책을 읽기 전 <임신 캘린더>와 <박사가 사랑한 수식>, <호텔 아이리스>를 읽은 기억이 있다. <에델바이스>의 단편에서 작가가 소개한 책의 내용에서 <호텔 아이리스>의 내용이 소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실제 작가가 집필한 작품이 미묘하게 섞여 있어 작가 자전적 이야기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좀 더 생생하게 작품을 읽을 수 있었다. 묘하게도 역자 역시 종이 시추인 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강아지와 딸 아이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한다. 번역자와 작품의 주인공의 상황이 묘하게 겹쳤다고 할까. 번역자에게 우연한 축복을 안겨준 책은 일상에 지친 나에게는 삶은 소소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우연한 축복으로 다가왔다.

 
  첫 단편에서 여류소설가가 이야기하는 소설의 정의처럼 소설은 숲을 떠올린다는 말에 공감한다. 깊지 않지만 서늘한 동굴이 있는 숲을 헤쳐나온 느낌이다. 어둠과 절망의 순간에 찾아오는 우연같은 축복을 잃지 않는다면, 생을 더욱 감사하게 살아갈 수 있을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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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공감 - 김형경 심리 치유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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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 마음을 감싸주는 에세이에 몸을 맡기다.

 
  좋은 글은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라 생각한다. 어둠 속에서 혼자서 고민하는 상담자의 마음이 담긴 글을 감싸안아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그녀의 글에서 마음씨 따뜻한 누이의 따스한 손길과 냉정하게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을 함께 느낀다. 많은 사례들 중 간추려 뽑은 44개의 사례를 책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자신의 마음을 토로한 글, 부모와 친구 사이의 관계를 맺는 일에 애로사항을 겪은 글, 성과 사랑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글 등 책은 둘로 나누자면 자신을 제대로 응시하는 방법과 타인과의 관계를 보다 나아지게 하는 글로 나뉘어 진다. 결국 자신을 마음을 제대로 알게 되면, 타인과의 관계에서의 애로사항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은 정신분석과 심리치료의 전체의 글을 꿰뚫는 맥락이다.

 

  # 에세이로 다가서는 정신분석의 세계.

 
  정신분석에 나오는 '동일시', '투사', '회피', '양가감정' 등의 생소한 용어들도 저자의 경험이 스며든 따스한 답변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성인과 성장의 시기에 내가 직면하는 어려움은, 과거의 나의 유년시절의 행동을 통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인간에게 다가오는 최초의 연금술은 엄마이며, 두번째 연금술은 정신분석으로 얻을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감한다. 
 
  저자의 풍부한 경험과 지식의 적절한 결합과 상담자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첫 문장과 문제점을 명확히 짚어주는 냉철함, 그리고 달라질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주는 해결책까지 가슴에 콕콕 들어온다. 책을 읽다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을 때, 그 부분이 자신도 그 부분에 공감하기 때문이라는 그녀의 말처럼, 책을 보며 내 안에 억압된 마음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지만 가지고 있는 마음의 얼룩들을 보게 되었다. 밝아 보이는 사람도 힘겨운 사람도 누구나 마음의 얼룩은 하나 둘 씩 지니고 있기 마련이고,  그 얼룩은 누가 닦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발견하고 지워야만 한다는 말을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책 머리 마지막에 나오는 말이다. 무언가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의 눈빛이 아닌,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는 아이의 마음처럼 내 마음을 쏙쏙들이 아는 듯한 글에 마음을 움직였던건 저자의 심리치료의 경험과 낮은 눈높이의 글쓰기와 단호한 말투에 끌렸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일기장에서 발견한 경구들은 상담의 마지막에서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을 짚어주며 한 번 더 공감을 끌어낸다.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때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마음이 옳지 않다는 사실도,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내적인  이상형을 세운 마음에는 '꼭 훌륭한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는 위로의 말이, 좋은 자신의 모습과 함께 '못난 나'의 모습도 인식하고 그래도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일의 필요성을 저자의 글을 통해서 힘을 얻게된다.

 
  좋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표현은 아무나 말할 수 없다. 마음속에 두려움과 괴로움이 생길 때, 타인과 부모, 친척 등의 관계에서 힘겨움을 느끼거나, 사랑의 진행과정에 자신을 느끼지 못한다면, 책 속에 담긴 저자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한다. 누구나 '정신병'을 가지고 있고, 정신병원에 가는 일을 '마음의 감기'로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은 이 책을 읽은 또다른 수확이다. 마음의 아픔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깊이 멍들고, 치유도 오래 걸린다고 생각한다. 혹여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는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도, 편견의 눈으로 보면 안된다는 점을 책을 통해 새삼 깨달았다.

 
  정신분석은 큰 문제가 있는 치료가 아닌,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이라는 점, 단기분석을 꾸준히 함으로써 장기치료와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정신병 역시 의사가 치유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도록 돕는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결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문제를 직면하려는 내 의지, 피하지 않고 극복하려는 마음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정신분석'에 대한 인식과 내 자신이 누구인가를 돌아볼 수 있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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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의 연애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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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을 기록하는 무심한 여진 이진.

  그녀를 사랑하고, 사랑의 힘을 믿는 이현의 2년간의 계약 결혼 이야기.

 

  아버지를 따라 성대한 결혼식장에 간 여섯살 꼬마 아이는 결혼식에서 무심한 표정으로 부케를 들고 있는 아름다운 신부를 보고 첫사랑에 빠진다. 그녀가 허리를 굽혀 볼에 살짝 입맞춘 이후 빠진 첫사랑의 추억을 가진 마흔 살이 넘은 경제경제부 국제기구과 과장 이현은 지하매점에서 그녀와 똑같은 모습의 지하 매점 아르바이트 생 여인 이진을 만나게 된다. 세 번의 결혼을 하였고, 모두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왠지 모를 싫증으로 모두 이혼을 해 버린 이현은
아이 또한 좋아하지 않는다.

 첫사랑을 만난 결혼식장의 사진을 매개로 아르바이트생과 그는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는다. 대화를 통해 그는 그녀가 결혼식에서 만난 신부의 딸임을 알게 된다. 자신은 영혼을 기록하는 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세상일에도 사랑에도 관심없이, 오직 살아숨쉬는 영혼들의 인생을 기록하는 그녀는 영혼을 기록하는 작업을 할 공간이 필요하지만 현실의 생활을 영위할 능력이 없는 무기력한 존재이다. 이현은 그녀에게 3년간의 계약결혼을 제안한다. 3년이 지난 후 일을 하지 않고, 영혼을 기록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위자료를 주겠다고 제안하고, 그녀는 승낙한다.

  조금의 움직임에도 관절의 고통을 느끼는 그녀의 아버지 이세 공은 젊었을 적 유명한 시인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부인의 죽음 이후 사업에 몰두하고, 딸 이진과 신부와 관계된 일은 히스테리적 반응을 보인다. 결혼승낙을 받으러 온 이현에게 연민의 마음으로 결혼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지만, 이현은 그녀를 사랑하며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녀를 행복하게 해 주려는 마음을 버리라며,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는 마음이 없어 사랑을 베풀어도 고마워 할 줄 모른다고 이야기하지만 이현은 굴하지 않고, 이세는 진정 그녀를 사랑하거든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이현이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동안 그녀는 영혼을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퇴근 이후에는 평범한 가정생활을 하자는 이현의 제안과 자신을 겉모습을 존중하듯, 자신의 작업 노트를 보지 말아달라는 그녀의 부탁으로 그들의 결혼은 시작된다. 매우 작은 채식의 식사와 소식을 하는 그녀를 배려해서 그녀에 맞게 자신의 식단을 맞추게 되고, 외부의 출입을 싫어하는 그녀를 배려하는 헌신적인 그의 노력으로 그들은 평온한 결혼생활을 지내게 된다.

  결혼생활이 된 2년이 되었을 즈음, 경제부총리의 만찬에 참석하고 난 후 이현은 부총리에게서 정계로 진출할 생각이 없냐는 제안을 받게 되고 마음속에서 명예욕을 가지고 있던 그는 아내의 폐쇄적인 성격으로 고민을 하게 된다. 부총리로부터 그녀의 작업 노트를 보고, 보안에 위촉되는 내용은 버려야 한다는 제안을 받게 되고, 이현은 아내의 부탁과 자신의 욕망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는데...

 

# 사랑이란 이름의 환상과 그 안에 숨어있는 나르시시즘의 결을 느끼다.


  자신이 영혼을 기록하는 일지를 보지 말아달라는 부탁과 이세 공의 그녀와 결혼하지 말고 대가를 바라지 말라는 말에서 신화 속의 비극의 씨앗을 엿보았었다. 신화 속의 뒤를 돌아보면 돌이 된다는 경고를 들은 아내와 선악과를 먹으면 안된다는 하느님의 이야기를 들은 아담과 하와, 상자를 절대 열어보면 안된다고 이야기를 듣는 판도라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모두 하지 말라는 일'은 꼭 하고 만다.
 
  마음이 없는 그녀를 자신의 사랑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고 믿었던 그의 무모한 열정과 사랑의 대가를 받고 싶어하는 마음 안에서 사랑이란 이름의 환상에 기대었던 이현의 무모함과 나는 그녀를 바꿀 수 있어라고 믿었던 나르시시즘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그녀는 달라질꺼야, 내 마음을 알아줄꺼야 하는 그 마음 역시, 사랑의 이면인 동시에, 베푸는 사랑에 대한 기대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할까. 이현의 마음에 공감하며, 그 욕망의 덧없음도 함께 느꼈다.
 
 

# 희생의 끝 뒤에 놓여진 변화의 시작.


  이현의 시각에서 보는 둘만의 결혼 생활이라고 생각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다 읽고 난 후, 영혼을 기록하는 이진의 일상처럼 이진에 의해 기록되어진 이현의 삶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중간 중간 담긴 이진의 기록으로 명명된 4편의 단편 속에 담긴 복잡한 삶을 살았던 각 편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책 전체의 완결된 형태가 이현의 삶의 기록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온갖 정성을 다했지만 전혀 변하지 않는 그녀를 증오하고 원망하던 이세 공과는 달리, 이진의 희생뒤의 이현은 이세와는 다른 삶을 선택했다. 그녀를 볼때마다 표현하기 힘든 고통과 자신의 배덕으로 인한 회환의 마음을 평생 안고 가야하지만, 원하지 않는 아이와 성의있는 아버지가 되려는 선택을 보며 변화의 가능성을 보기도 했다.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의 모습과 실수 뒤에 더욱 성장하게 되는 인간의 마음을 함께 볼 수 있었다고 할까. 이현의 열정과 이진의 은둔의 마음을 공감하기에 또 글을 써 내려가는 소설가의 길을 선택한 저자의 또다른 작품이 기대가 된다.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는 인물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써 내려가는 일에서 소설가와 이진의 작업의 유사성을 느낀다. 소설가인 저자가 작업 중 절대 절대 건드리지 마세요 라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면 조금 무섭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이가 생긴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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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오프 더 레코드 - 여자들끼리만 공유하는 연애의 모든 것
박진진 지음 / 애플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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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한 30대 언니의 연애에 관한 40가지 코멘트.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은,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일이라 생각한다. 사랑에 빠지는 일도 설명하기 어렵지만, 누군가와 사랑을 지속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짝을 찾아 다양하게 연애를 하지만, 특별한 공식도 특별한 비법도 없기에 서로간의 노력이 있어야 가능한 2인 3각게임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30을 훨씬 넘긴 작가가 여성들에게 행복한 연애를 바라는 마음으로, 40가지의 칼럼을 썼고, 그 칼럼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섹스'에 관한 언급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헤어진 연인과의 '관계', '그의 사이즈의 진실' 등 좀처럼 말하기 쉽지 않은 부분들을 자연스럽게 기술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소소해서 놓치기 쉬운 부분이 중요한 이유를 이해하기 쉽게 글로 전한다는 점에서 어설픈 연애지침서보다는 더 낫다고 생각한다.

 

# 연애의 시작부터, 섹스, 결혼까지,  솔직하게 '연애'에 대해 이야기하다.

 
  솔직하게 연애를 이야기 한다는 일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닌데, 과감하다고 할까. '섹스'에 관한 거침없는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관계를 맺는 방향의 솔직함이라고 할까. 쉽게 놓치기 쉬운 디테일한 부분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부분에서 공감할 부분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으로 이해하는 일과 경험을 글로 풀어내는 일은 넓은 강의 폭 만큼 큰 차이를 지니고 있다 생각한다. 살아가는 동안 만나는 수많은 관계 중 마음으로 이해하고, 상처받기 가장 쉽고, 힘든 연애의 감정을 공감하는 건 쉽지만, 그것을 글로 풀어내는 일은 만만치 않다. 적지않은 삶을 살아온 경험과 솔직함으로 연애에 대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이미 공감했었던 부분에 대한 저자의 글은 지루하지 않아서 좋았다. 결국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었다고 할까.

  모든 여성이 저자와 같지 않겠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여성도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 좋았다. 너무나 짧기에 더욱 아름다운 사랑의 순간과 단점을 눈감아 줄 수 있었던 시간이 지나고 난 뒤의 대처법, 사랑만이 전부라고 올인하는 일이 겁다는 이유가 '사는게 무섭기'때문이라며,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을 수 밖에 없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서로 다른 '남녀', 차별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는 사회를 꿈꾸다.

  
  읽고나면 진부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건, 이성적으로 우리가 다 인정하는 내용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여성 스스로 자신의 성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스스로 관계를 리드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 사회 통념에서 벗어나, 남녀 모두 솔직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연애를 살아가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는 현실의 통념이 있기에 더욱 주장이 조금 무리가 아닌가 싶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거침없이 말하는 건 쉽지만, 거침없이 행동한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책을 다 읽은 후, 프로필을 보고, 자유로운 표현으로 연애에 대한 칼럼을 썼던 모 사이트의 연재글이 대부분 실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년의 시간동안 자신이 쓴 글을 정리해서 다시 한 편의 책으로 만들었다고 할까. 여성과 연애하는 완벽한 비법을 책을 통해 알지 못했지만, 저자가 꿈꾸는 이성관과 '잘하는 남자'가 되는 방법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렵지 않지만, 쉽게 할 수 없다는 것도, 또한 연애는 둘 사이의 관계이기에 더욱 더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제가 여자들끼리만 공유하는 연애의 모든 것이지만, 20대 남성이 읽어보더라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친구는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오랜 시간 교제를 할 수 있지만, 연인관계는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상, 한 번 관계가 끝난 후 친구로 되돌아가는 일은 매우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한다. 마음이 쏠려, 정에 끌려 연애를 시작하지만, 서로 관계를 이어가면서 서로에게 후회없이 충실한 관계를 맺는 일은 쉽지 않다. 연애가 지속될수록 '초심'의 마음과 설레임을 늘 간직하고 표현해주길 바라는 여성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

   알면서도 귀찮아서, 때론 어린 마음에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생각한다. 수많은 싱글들을 커플로  맺어 주었지만 제 머리 못 볶는 미장원 언니같은 저자에게도 즐거운 연애의 기운이 닿길 기원한다. 생각이 너무 많은 여성들은 단순하게 생각할 것을, 생각이 너무 없는 남성들에게는 작은 소소함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저자의 말은 잊지 않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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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9-01-10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플라시보 입니다.

님의 리뷰를 읽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예술이건 작품이건 뭐건 간에. 아무튼 어떤 결고물을 대중에게 내어놓은 작가가. 자신이 의도한바 보다 훨씬 자신의 작품을 잘 이해하고 또 좋게 봐주는 이를 만났을때 얼마나 행복한지를 알 것 같다는. 지금의 제가 딱 그런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책에 적은 내용들은 말씀하신바와 같이 이미 다 아는 내용들이지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새로운 이론이 아닌. 익히 알고 있거나 혹은 막연하게나마 생각하고 있던 것들입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고민도 조금 했었습니다. 무릇 연애서라 함은 몰랐던 것을 '아하' 하고 무릎을 탁 치게 만들어줘야 하는거 아닐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제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특별한 나만의 비법 같은걸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인간인지라 이 고민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

그리고 또 언급하신 거침없이 말하는건 쉽지만 거침없이 행동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라는 말. 백프로 공감합니다. 저도 제가 써 놓은 글처럼 연애하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그 글을 썼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렇게 될 확률은 미약하구요.^^ 연애의 모든 문제는 몰라서가 아닌. 어쩌면 알지만 그렇게 하지 못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여자는 여자대로의 사회적 통념상. 또 남자는 남자대로의 사회적 통념상. 자신이 진짜로 하고싶은대로 할 수 있게 되는 경우는 드물지요. 우린 늘 여자란.. 남자란.. 이런 것에 많이 갇혀 사니까요.

아주 간만에 제 책을 클릭해 보았는데 못 보던 댓글들이 많이 달려 있어서 이 늦은 밤에 참 기분이 좋습니다.
많이 늦어버렸지만 새해 인사를 드려도 될까요?
진부하지만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행복한 연애도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