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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공감 - 김형경 심리 치유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 마음을 감싸주는 에세이에 몸을 맡기다.
좋은 글은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라 생각한다. 어둠 속에서 혼자서 고민하는 상담자의 마음이 담긴 글을 감싸안아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그녀의 글에서 마음씨 따뜻한 누이의 따스한 손길과 냉정하게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을 함께 느낀다. 많은 사례들 중 간추려 뽑은 44개의 사례를 책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자신의 마음을 토로한 글, 부모와 친구 사이의 관계를 맺는 일에 애로사항을 겪은 글, 성과 사랑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글 등 책은 둘로 나누자면 자신을 제대로 응시하는 방법과 타인과의 관계를 보다 나아지게 하는 글로 나뉘어 진다. 결국 자신을 마음을 제대로 알게 되면, 타인과의 관계에서의 애로사항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은 정신분석과 심리치료의 전체의 글을 꿰뚫는 맥락이다.
# 에세이로 다가서는 정신분석의 세계.
정신분석에 나오는 '동일시', '투사', '회피', '양가감정' 등의 생소한 용어들도 저자의 경험이 스며든 따스한 답변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성인과 성장의 시기에 내가 직면하는 어려움은, 과거의 나의 유년시절의 행동을 통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인간에게 다가오는 최초의 연금술은 엄마이며, 두번째 연금술은 정신분석으로 얻을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감한다.
저자의 풍부한 경험과 지식의 적절한 결합과 상담자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첫 문장과 문제점을 명확히 짚어주는 냉철함, 그리고 달라질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주는 해결책까지 가슴에 콕콕 들어온다. 책을 읽다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을 때, 그 부분이 자신도 그 부분에 공감하기 때문이라는 그녀의 말처럼, 책을 보며 내 안에 억압된 마음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지만 가지고 있는 마음의 얼룩들을 보게 되었다. 밝아 보이는 사람도 힘겨운 사람도 누구나 마음의 얼룩은 하나 둘 씩 지니고 있기 마련이고, 그 얼룩은 누가 닦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발견하고 지워야만 한다는 말을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책 머리 마지막에 나오는 말이다. 무언가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의 눈빛이 아닌,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는 아이의 마음처럼 내 마음을 쏙쏙들이 아는 듯한 글에 마음을 움직였던건 저자의 심리치료의 경험과 낮은 눈높이의 글쓰기와 단호한 말투에 끌렸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일기장에서 발견한 경구들은 상담의 마지막에서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을 짚어주며 한 번 더 공감을 끌어낸다.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때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마음이 옳지 않다는 사실도,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내적인 이상형을 세운 마음에는 '꼭 훌륭한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는 위로의 말이, 좋은 자신의 모습과 함께 '못난 나'의 모습도 인식하고 그래도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일의 필요성을 저자의 글을 통해서 힘을 얻게된다.
좋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표현은 아무나 말할 수 없다. 마음속에 두려움과 괴로움이 생길 때, 타인과 부모, 친척 등의 관계에서 힘겨움을 느끼거나, 사랑의 진행과정에 자신을 느끼지 못한다면, 책 속에 담긴 저자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한다. 누구나 '정신병'을 가지고 있고, 정신병원에 가는 일을 '마음의 감기'로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은 이 책을 읽은 또다른 수확이다. 마음의 아픔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깊이 멍들고, 치유도 오래 걸린다고 생각한다. 혹여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는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도, 편견의 눈으로 보면 안된다는 점을 책을 통해 새삼 깨달았다.
정신분석은 큰 문제가 있는 치료가 아닌,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이라는 점, 단기분석을 꾸준히 함으로써 장기치료와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정신병 역시 의사가 치유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도록 돕는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결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문제를 직면하려는 내 의지, 피하지 않고 극복하려는 마음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정신분석'에 대한 인식과 내 자신이 누구인가를 돌아볼 수 있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