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동물원
츠츠이 야스다카 지음, 양억관 옮김 / 북스토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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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SF 블랙 유머의 진수를 보여준다. - 츠츠이 야스타카가 선사하는 세상 비틀기.
 

  <최후의 끽연자>를 통해 츠츠이 야스타카의 SF 소설을 접하게 되었다. 재미있고, 시간과 공간을 비틀면서, 지금 사회의 문제점을 웃음으로 고발하는 그의 소설을 읽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헐리웃 헐리웃>까지 이제까지 3편의 소설을 만났다. 네 번째 만나는 <인간 동물원>은 40년 이전에 쓴 1969년 일본에 출간된 작품이다. 40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현재에도 생생하게 살아숨쉬는 사회를 바라보는 문제의식과 문제점이 지금 현재 사회에도 유효하다. 로봇이 집안일과 생활속에 조금씩 침투하고 있고, 정신분석과 장기이식 등의 문제점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시선에 현재의 세태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 心理學 * 社怪學

 
  이 작품의 일본어판 제목은 <心理學 * 社怪學>이다.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심리와 괴이한 사회라는 단어에서 현대인의 내면의식과 사회현상에 대한 풍자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나르시시즘>, <욕구불만>, <우월감>, <사디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최면암시>라는 제목들에서 마음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 이전에는 순결을 중요시하지만, 결혼 이후에는 성적 능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여성지와 사회의 시선을 비꼬는 <욕구불만>,  주택단지 사는 가구와 아파트 단지 사는 가구의 대립을 풍자한 <우월감>, 자신의 모습과 똑같은 모형 로봇이 나타났을 때의 자신의 단점을 부정하는 모습과 지나치게 인간를 닮아버린 기계와 기계와 인간을 착각해버려 생기는 에피소드가 담긴 <사디즘>, 정신분석의 모습을 보여주며, 한번 더 웃음을 선사해주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쉽게 걸리는 최면에 공간을 이탈해버리는 <최면암시> 등 작은 상상력 하나만으로 재미있게 일상을 비틀어 내는 작가의 글솜씨에 반해버렸다.   

  후반부에는 실제 일본 대학에서 투쟁했던 전공투와 제도에 노예가 되어버린 세태를 고발한 <원시공산제>, 총리, 부총리, 장관등이 사고를 당해 동물의 장기를 이식했을 때의 모습을 그린 의회제 민주주의, 매스미디어에 의해 좌우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매스 커뮤니케이션>, 기차에서 오물을 투거와 개인의 권리에 관한 <근대도시>, 지하 20층 넘게 살고있는데, 공사가 진행중이여서 집이 굴삭기에 밀릴 위험에 처한 <미래도시>, 개의 심장, 말의 간, 돼지의 위장을 이식하고 본능을 억제하지 못했을 때 생겨나는 <조건반사> 등 기발한 상상력 속에서 현재 사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인문학에서 이야기하는 어렵고 딱딱한 이야기들은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지만, SF 소설로 상상력과 재미가 가미된 글을 읽으며, 즐거움과 함께 현대 사회의 모습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답답하고 무기력한 일상에서 작은 활력소를 얻기위해 책을 읽었는데, 덤으로 지금 사회가 걸어가는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고 할까. 로봇이 개발되고, 편리한 생활이 진행되더라도 인간의 인격과 심성이 높아지지 않는다면, 도리어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생히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자위, 순결, 불륜, 살인 등 거침없는 묘사에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블랙유머를 좋아하지 않는 이라면 과도하게 느껴질 수 있는 표현에 마음이 불편할 수 있다 생각한다. 블랙유머를 좋아하거나, 문학에서의 표현에 관대한 사람이라면 즐겁게 소설을 읽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고전의 매력은 시간이 흐르더라도 생생하게 전해지는 문제의식이라 생각한다. 고전의 기준은 잘 모르겠지만, 재미로 읽는 시간을 지겹게 만들지 않고, 읽은 후에 곰곰히 책의 내용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책이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두 가지 기준에 만족하는 책을 만났다. 여운이 길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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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 김열규 교수의 열정적 책 읽기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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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함께 지내온 77세의 인생. 책에 대한 최고의 예찬서.


 
  어렸을 적 할머니에게 들었던 옛날 이야기, 목사님이 들려주었던 만화교실 등 이야기를 좋아했던 소년은 책에 흠뻑 빠지고 만다. 일제 강점기 때문에 조선어 대신 일본어로 공부해야 하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지만, 낭독의 매력과 책에 빠진 소년은 책과 함께 77년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함께 생활하고 공존하며 자신을 지탱해 주었던 책, 서문의 마지막에 적힌 '책님들이시여, 고맙습니다!'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일 만큼, 저자는 다양한 방법으로 책을 읽고, 책 읽는 삶을 즐겼다. 책과 함께 한 평생을 지내온 저자의 독서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생의 곳곳에 실린 책과 함께 그의 삶을 살펴볼 수 있다. 힘겹고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던 그 마음, 그리고 책과 함께 생활하는 즐거움의 향기가 책 곳곳에 스며있다. 

 시, 소설, 비극, 희극 등등 장르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책을 읽어냈던 방법과 자신만의 장르읽기의 방식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속독과 통독, 징검다리 읽기, 누워서 책읽기, 부모님 몰래 책읽기 등 책에 관한 많은 에피소드들에게 저자에 대한 인간적인 친근감을, 책읽는 다양한 방법과 방식을 통해 수준높은 독서의 방법의 비결을 엿볼 수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책 예찬론을 책을 통해 만나는 일,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 인간에 대한 이해, 작품에 대한 공감!

 

  책은 2부로 나뉘어져 있다. 제목인 讀書에 어울리게 1부는 서, 책에 얽힌 저자의 한 평생의 시절을, 2부에서는 요령, 의미, 장르, 작품 읽기로 나누어 책에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요령과 책을 읽어내는 저자만의 방식이 소개되어 있다. 

  어리고 병약해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책에 빠져지냈던 책에 빠진 저자의 유년시절과 일제시대, 광복 이후 등 저자가 살아온 생의 흔적과 함께 얽혀있는 책의 이야기를 즐겁게 만날 수 있다. 읽는 것 자체를 좋아했던 유아와 소년 시절, 고독과 고통과 죽음에 관한 책들을 읽어가며, 생과 죽음의 의미를 찾아갔던 청년시절, 노년이 되어 능숙한 달인처럼, 산책하듯이 편안하게 책을 읽고, 책과 하나가 된 듯한 책읽기까지, 저자가 살아왔던 삶과 그 삶을 걸어가는데 변화의 계기가 되었던 책들과의 만남이 1부에 실려있다. 당신이 이제껏 읽어온 책들을 말해준다면, 당신이 누군지 말해주겠소 라고 말했던 옛 사람의 이야기처럼 책이 저자의 인생을 변화시켜온 과정을 알 수 있다.

   2부에서는 꼼꼼하게 책 읽는 방법, 속독과 숙독의 차이와 경계, 클로즈 리딩 등의 책을 읽는 요령과 책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게임과 물고기, 금을 캐는듯한 즐겁게 책을 읽어가는 방법, 시와 소설 논설문, 등의 다양한 장르를 읽는 저자만의 노하우와 저자의 삶이 되어버린, 도스토예프스키, 체호프, 토마스 만, 릴케 등의 작품들이 소개되어 있다. 토마스만과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했던 지인이 생각나기도 하고, 지인과 다른 저자만의 작품이해와 깊이있는 책과의 추억도 좋았다. 

   맛있는 사과를 먹고, 맛있다 라고 말을 하는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어떻게 맛이 좋은지 표현하는 건 개개인의 능력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했던 책읽기의 매력의 흔적을 1부에서 느끼면서 공감할 수 있었고, 다양한 책 읽기의 방식과 그 매력을 2부를 통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되었다. 다양한 책읽기가 있었지만, 한 가지 방식에 편독되어 읽던 나의 책읽기 습관을 돌아 볼 수 있었던 건 책이 내게 준 작은 덤이었다.

  책을 읽고 나자, 저자의 다른 책이 궁금해졌다. 많이 듣고 있었지만, 아직 읽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던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와 <한국인의 자서전>을 읽는 것부터 저자에 대해 알아나갈 기회를 만들 계획이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그 책이 다시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다. 좋은 책은 좋은 사람을 만들고, 좋은 사람은 좋은 책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볼 계기를 얻는다고 믿는다. 책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사람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다 생각한다. 나쁜 책에서도 좋은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반면교사의 능력을, 좋은 책을 만났을 때 그 의미를 잊지 않고 찾으려 노력하는 독서의 자세의 중요성을 다시 절감했던 시간이었다. 꾸준히 한 글자씩 읽어나간다면, 어제보다는 나은 독자가 될 수 있을거라 기대해 본다. 독서의 '매력'과 저자에 대해 알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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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있었다 - 그리고 다시 한 사람...
김종선 지음 / 해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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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 사람..

 
  사랑에 빠진 남녀는 자연스레 연애를 시작한다. 밀고 당기면서 설레는 마음을 간직하기도 하고, 헌신없이 주기도, 이유없이 사랑을 많이 받기도 한다. 눈에 씌워졌던 콩깎지가 벗겨지는 권태기에 좀더 냉정하게 자신과 상대와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기도 한다. 여러가지 여건에 의해 이별을 하고 나면, 다시 혼자가 된다. 이별후에, 찾아온 혼자라는 느낌, 이별하기 전 느끼게 되는 감정의 변화의 풍경들을 이야기한다. 깊은 밤 새벽녁에 감미로운 목소리의 DJ가 들려준다고 생각하고 글을 소리내어 읽어보면 느낌이 참 다르게 느껴진다. <지현우의 기쁜 우리 젊은 날>에서 반응이 좋았던 이별이야기가 묶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다. 

   그 사람을 다시 만날까봐, 그 추억들이 다시 생각날까봐, 그 사람과의 추억이 얽힌 곳에 마음은 가고 싶지만, 발걸음을 울리지 못하기도 하고, 이별 후에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그 사람의 감촉, 기분전환을 위해 머리를 바꾸고, 지나와서 예전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면서 이별의 감정에 젖어있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스스로를 자책해 보기도 하고, 지난 후의 그이의 큰 사람에 감사하기도 하고, 이별을 예감하면서 두려워하는 그 모습들을 한 장의 글로 느낄 수 있다. 그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하는 수많은 거짓말들은 이별 후에 사람들이 많이 하게 되는 행동이라는 점도 느낄 수 있었다.


 
# 99편의 이야기가 모여서..

 
  소리내어 읽으면 2분 정도 걸리는, 짧은 이야기들이 99편이 모였다. 이별을 예감하면서 흔들리는 마음, 이별후에 다시 깨닫게 되는 회환, 기분을 전환하려 소개팅을 했다가 그의 친구를 조우했을 때, 멋지게 차려입었지만 아무런 약속이 없을 때 등등 공감을 원하는 저자의 바램처럼, '이럴 땐 이런 마음이였겠구나'하는 장면들이 많았다. 질투가 사랑보다 더 강해서 상처받을까봐 먼저 헤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애인이라는 말 대신, 친구라고 소개했을 때 느껴지는 서운함, 헤어짐의 원인이 자신에 대한 컴플렉스였다는 것을 발견한 순간 등 많은 장면과 그 속마음들이 나타나 있다. 순서에 관계없이 아무때나 짧게 하나 읽을 수 있어 편리하기도 하고, 한 편을 읽으면 전체 내용이 어떻겠구나 다 알 수 있어 식상하기도 했다.

  책을 읽어가며, 이별 후의 이야기들은 사랑을 시작하기 전의 싱글이나 사랑중인 연인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다 읽고 난 후,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할 수 있을 때 마음껏 사랑해도 남는게 아쉬운 마음이지만, 마음껏 사랑하지 못했을 때 마음에 남아있는 빚과 같은 무거운 마음들이, 흐린 날씨나 기분이 쳐질때 더욱 스스로를 힘겹게 한다고 할까. 사랑때문에 아파한 이에게는 공감을, 다른 이들에게는 경계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글들이 많다.

 

# 연애는 함께 내딛는 2인 3각게임.

 

  친구와 연애의 차이는 관계의 종료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멀어졌다가도 다시 가까워질 수 있지만, 연인 사이는 서로 헤어짐을 경험하고 나면, 다시 재결합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사이로 되돌아가기도 어려운 것 같다. 이별의 아픔과 상대와의 헤어짐을 인정하는 시간이 지나고 다시 편안해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고 할까. 쿨하게 만나고 헤어진다지만, 역시 연애는 피가 뜨겁기 때문에 쉽게 냉정하게 하기 힘든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초심을 기억하고, 서로 노력해야 하는 일이 중요한만큼, 더이상 진전이 없는 정체된 사이에서 마음도 없는데, 나쁜 사람이 되기 싫어 질질끄는 일을 피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타인의 연애에는 쉽게 답이 보이지만, 내 문제에서는 왠지 주춤할 것 같은 이 기분..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연애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스케치북과 물감을 동일하게 주어도 각자의 생각에 따라 다른 풍경들이 나오듯, 연애 역시 둘이 함께 그려가는 그림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때로 마음이 맞지 않아 그림을 찢고 다시 그리는 경우가 있어도, 헤어짐은 순간 서로 함께 그리는 순간들을 즐거운 기억이 될 수 있게 노력하는 일은 멈추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다 찢어버린 후에, 다시 테이프로 이어 붙이려 해도 그때는 이미 늦은 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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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웃 헐리웃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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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날 실망시키지 않는 작가, 츠츠이 야스타카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최후의 끽연자>로 츠츠이 야스타카를 알게 되었다. 일반적인 상상을 뛰어넘는, 생각의 틀을 뛰어넘는 소재와 발상의 전환으로 즐거운 SF세계를 만나게 해 주었다. 처음에는 즐거운 재미를, 두 번째는 자유로운 상상을, 세 번째는 사회와 현실에 대한 강한 메세지를 만날 수 있다. 30편의 짧은 장편(掌篇)이 모여있는 <헐리웃 헐리웃>에서는 세 번째 메세지를 다른 소설에서 보다 좀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머리속이 복잡하고, 재미있는 것을 찾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지만, 한바탕 웃고 난 후에는 저자의 글 뒤에 숨어있는 강한 메세지를 느낄 수 있다. 날카로운 사회풍자와 재치있는 상황들, 일본 소설의 가벼움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 작가만은 독특하게 다가온다.
 

# 현실을 잊게 해 주는 독특한 상상력.


  얼굴도 못생기고, 공부도 못하는 무력한 나. 유일한 취미는 헐리웃 영화를 보는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영화잡지에서 나온 '영화의 신'은 무력감에 빠진 나에게 소원 하나를 들어주겠다고 하고, 난 얼굴 예쁘고 몸매좋은 여배우를 얻게 된다.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그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학교로 데리고 가게 되고, 친구들의 시선은 달라지게 된다. 다른 학생들도 사정을 알게 되고 영화의 신에게 다들 부탁을 하게 되는데... <헐리웃 헐리웃>

   때론 키우던 강아지 불독의 생각을 알게 되기도 하고<불독>, 도산 직전의 회사를 살리기 위해 악마와의 계약을 시도하기(악마를 부르는 자들)도 한다. 전화를 하나 최초의 전화기가 일본에 들여온 궁내성과 통화<최초의 혼선>를 하기도 하고, 학생인 척 끼여드는 도깨비와의 추억<다다미 도깨비>을 만들기도 한다.  모두가 소멸해버리고 넷만 남아버린 페허의 시대, 여자를 발견하지만 놓치기도 한다<폐허>.

 이제까지 만났던 SF 소설들은 현실을 뛰어넘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 화성이라던지 목성이라던지, 2000년 후의 첨단 과학 세대등을 배경으로 했다면, 츠츠이 야스타카에 등장하는 단편들은 현실을 기반으로 작은 하나를 비틀어 놓은 느낌이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내가 UFO와 소통을 한다면, 갑자기 강아지와 대화를 하게 된다면, 소소한 현실에서 살짝 바꾸어 놓은 하나로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전해준다. 일상을 지겹고 지루하게 생각이 드는 이유는 내가 바라보는 현실의 시각을 고정되어 바라보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즐겁게 웃은 후, 느껴지는 밝지 않은 사회의 모습.  



   소설의 책무는 읽고싶게 만들어야 한다 생각한다. 어렵고 딱딱하고 진지한 내용은 철학, 인문서적을 읽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재미없지만 유익한 소설이 인기없는 건 독자의 탓이 아니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야스타카의 소설을 읽고나면, 즐겁게 웃고 난 후 보여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의 느껴진다. 과학기술이 발전해가면서 더 이상 상상을 하지 않는 사람들 <피투성이 토끼>에서 만날 수 있고, 인생의 계획보다 빨리 승진하고 돈을 많이 벌게 되어 할 일을 잃어버린 부부<마이 홈>에서는 직장사회에서 계급에 매여 생활습관과 타인의 생활을 의식하며 생활해야 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암 치료약을 개발했지만, 아버지의 죽음이 연장될까 두려워 출시를 두려워하는 약학박사와 회사의 회장과 마누라의 죽음을 기다리는 사장과의 대화<특효약>를 통해 돈에 지나치에 매여있고 그런 사람들이 특별한 존재가 아닌 현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지나친 경쟁에 빠져있는 모습<타쿠 건재한가>, 남자가 아이를 낳는다면<산기>, 유행에 따라 그날 하루가 달라지는 상황을 보여주며, 유행에 빠진 일본사회의 모습<유행>, 일시적 스트레스가 쌓여가며 이상행동을 보이는 현대인의 모습 <어떤 죄악감> 등을 볼 수 있다.

  재미와 함께 현대사회의 풍경을 엿볼 수 있는 건, 츠츠이 야스타카 특유의 매력이다. 즐겁고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즐거운 소설이다. 일상의 틀을 넘은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작가를 만날 수 있는 건 독자가 책을 읽는 기쁨 중 하나이다. 그의 다른 책도 한국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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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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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망의 시대, 그래도 걸어야 하는 이유

 
  시계들은 '1:17'에서 멈추었다. 세상은 다 불에 타버렸고, 남아있는 건 페허된 건물들 뿐이다.
남쪽을 향해 길을 떠나는 아빠와 어린 아이의 생존기가 이 책의 큰 줄거리이다. 경찰도 거래도 사라져버린 절망의 현실에서 쇼핑 카트와 배낭을 가지고, 떠나는 여행. 아이의 엄마는 노상에서 인신매매하는 강도들 등  자신에게 다가올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러 떠나버리고, 먹을것이 떨어져가는 절망의 상황에서도  사내는 아이를 위해 공포탄 두 알을 꼭 지닌 채 계속에서 남쪽으로 여행을 떠난다. 사람을 잡아먹는 노상 강도들과 적인지 아군인지 구분할 수 없는 공포의 상태에서 사내와 아이는 계속해서 길을 떠난다. 

  차라리 죽는게 더 나을거 같은 절망의 시대, 먹을 걸 살 수도 없고, 잠을 편하게 잘 수 있는 공간도 없다. 간혹 편하게 쉴 수 있는 자연의 공간을 찾았다고 해도 오래 머물수가 없다. 내가 편한곳은 다른 이도 편한 곳이기에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스스로 보호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그 누구도 쉽게 믿을 수 없다. 주(state), 통조림 등 모든 게 멈추기 이전의 문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낯선 사람들에게 호의적이다. 하지만 사내는 타인을 쉽게 믿을 수 없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겨우겨우 생을 이어가며,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계속해서 여행을 떠난다. 상상 그 이상의 절망의 시대를 보여주는 작가의 메세지는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 절망의 늪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다.

 
  실제 코맥 메카시는 인생의 많은 시기를 궁핍과 은둔의 생애에서 보냈다는 역자 후기를 보았다. 팔년 동안 헛간 같은 곳에 살며 목욕은 호수에 나가서 하곤 했지만,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강연을 해 주면 상당한 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 할 정도로 자기만의 고집이 있는 작가이다. 정말 굶어죽을 경지에 이르면 꼭 어딘가에서 살 방도가 나타났다는 말과 책을 쓰게 된 계기가 9살난 아들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다 산위에 불이 타오르고 모든게 다 타버린 세계를 생각한 후 집필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절망인 아무것도 기댈 수 없는 상황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폐허가 되어버린 유년시절의 집터를 둘러보는 사내와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 문명의 혜택과 화려했던 시기를 보았던 사내와 그 문명에 대한 기억없이 파괴된 세상을 자신의 세계로 인식하며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아이의 모습을  머리속에 그려볼 수 있었다. 화려했던 시기를 머리속에 염두해 두고, 지금 세상 살기 힘들다는 언급이 얼마나 무의미하는지 모든게 파괴되어 버린 세상을 머리속으로 살아보며 역설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생의 순간이 예전보다 살기 좋아졌든지 나빠졌든지는 나의 인생에 관계가 없다. 풍요로운 황금빛 이삭이 보이는 논길 사이를 걷던지, 모든게 무너져버린 황폐한 광야를 걷던지 생존의 이유는 분명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 또 그렇게 인간은 살아갈 것이다
.


  한때 산의 냇물에 송어가 있었다 송어가 호박빛 물속에 서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지느러미의 하얀 가장자리가 흐르는 물에 부드럽게 잔물결을 일으켰다. 손에 잡으면 이끼 냄새가 났다. 근육질에 윤기가 흘렀고 비트는 힘이 엄청났다. 등에는 벌레 먹은 자국 같은 문양이 있었다. 생성되어가는 세계의 지도였다. 지도와 미로. 되돌릴 수 없는 것, 다시는 바로잡을 수 없는 것을 그린 지도. 송어가 사는 깊은 골짜기에는 모든 것이 인간보다 오래되었으며, 그들은 콧노래로 신비를 흥얼거렸다.(323p)

  지구 상에서 가장 폭력적인 생물체가 인간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다른 종들은 그들 스스로 멸망하고 자연에 피해를 주지 않지만, 인간은 지구 자체의 생명체 모두를 멸망시킬 수 있는 힘과 무기를 가지고 있다. 모든 생명체가 사라지고, 인간만이 남은 비극적인 상황. 하지만 다시 지구는 생성될 것이고, 또 그렇게 인간은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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