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수메르. 역사 교과서 맨 앞 장에 마땅히 와야 하지만 고교과정에서는 중국사에 밀려 별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다고 막연히 생각해 왔는데 최근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어 수메르를 다시 보게 된다. 하나는 수메르인들이 똑같은 비중으로 설명되는 황하문명에 비교될 수 없을 만큼의 엄청난 양의 사료를 남겼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바로 그들역시 인더스 문명을 창조했던 드라비다인들과 더불어 우리와 비슷한 언어구조를 가진 교착어를 쓰는 민족이었다는 점이다. 빙하기가 끝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기 부터 엄청난 문명을 일으켜 그 역사와 문화가 이처럼 생생히 전해지는 것만도 경이인데 그들이 우리 한민족과 관계가 있는 친척벌의 민족이라는데 대해 놀라움에 더해 어떤 민족적 긍지마져 느끼게 하였다. 사실 참다운 문화인 문명인으로서 한국인의 자격에 대해 심한 비관의 의혹을 품던 나에게 이것은 하나의 희망의 메세지였다.

문학적 가치에 대해 조금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 이 책 역시 놀라움의 연속이다. 특히 이 구약의 창세기가 이 서사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점이 그러하다. 사실 수메르의 다른 문헌들을 보면 수메르 이하 메소포타미아의 명멸했던 수많은 신화와 설화들이 성경에 도용되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남긴 성경을 무시하는 바는 아니지만 수메르 당대에 이스라엘은 이름조차 없는 변방의 무명의 유목민에 불과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여자가 남자의 늑골로 만들어졌다는 것 역시 수메르 이래의 메소포타미아의 오래된 민담임은 물론이고 책을 한 번 쭉 읽어보니 여자란 존재를 문명에 있어서 퇴보적인 그 무언가로 보는 시각이 많아 오늘날의 시각으로는 어색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것을 보고 성경을 쓴 사람과 길가메쉬를 쓴 사람을 싸잡아 "마초"로 보려한다면 그것은 극히 편협한 시각이오 표피적 사고 방식일 것이라고  다시 반성하게 된다. 뭐니 뭐니 해도 수메르 시대는 원시공동체사회가 노예제 고대국가 체제로의 이행을 완결한 시대라는 배경을 가졌음을 이해해야 한다. 당시 수메르의 비옥한 초승달지대는 주변의 야만인들이 출몰하는 산악지대에 외로운 문명의 섬이었다.  축척된 식량과 자신들이 이룩한 문명을 이들 야만인들로 부터 지키는 일 즉 전쟁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또한 여기 나오는 길가메시 역시 무엇보다도 아마 전쟁을 잘하는 인물인데 이러한 인물이 오늘날의 관점에 있어 조그만 흠이 있다고 그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시각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의 이런 용맹함이 바로 문명을 지켜낸 힘이었음을 어느 누가 부인할까. 나는 이렇게 이 글을 문학적인 관점 보다는 고대의 사회사적인 면에 촛점을 두고 읽어 보았다.

문학적인 면에서의 느끼는 바라한다면 이러한 같은 민족의 영웅이 가진 빛과 그림자라고 할 만한 것이라고나 할까. 그보다 2500년 이후의 인물인 중국초대 황제가 된 시황제 영정이 정력적이고 특출난 지략을 짜내 마침내 천하통일을 이루었으나 그 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방탕히 지내는가 하면 불노초를 구하려했던 것 과 마찬가지로 길가메쉬도 수많은 적들을 원정에서 무찔른 아마 진시황만큼의 영토는 아니더라도 당시의 수메르 도시국가 몇개를 많이 병합한 위대한 인물임을 의심치 않는다. 이러한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정력과 능력 그리고 지력이 갖추어져야 하지만 그러한 반면에 그 역시 죽음 앞에서 번민과 갈등을 거듭하여 현세적 영화를 지속하려고 한다. 특히 평생의 정복싸움의 고락을 함께한 동지 엔키두의 죽음앞에서 마침내 그의 참아 왔던 인내심이 폭발한다. 하지만 적어도 3분지 1은 그 역시 인간이기에 이를 받아들여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나아가 이는 길가메쉬를 포함한 인간 보편의 문제로서 우리 모두 함께 인생에 대한 철학적인 각성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여 보다 높은 문화인이 될 것을 요구 받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동일한 고뇌를 그리스도에게서도 볼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야훼가 그에게 그러한 시련을 주었고 제우스가 오딧세우스에게 귀향의 9년간의 시련을 주었든 아누 이하 수메르의 제신들이 길가메쉬을 시험하고자 했던 이유도 분명하다. 그것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지는 신의 시련이며 어느 누구도 그것을 회피해서는 아니되는 성질의 것이다.

비록 이 작품의 문학성을 어느 정도로 낮춰 보더라도 이 글을 통해 수메르 문명이하 오리엔트 문명이 기간상 결코 현대문명에 뒤지지 않는 만큼 섣불리 무시할 수 있는 그런 문명은 아니라는 점은 자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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