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 박인환 전집
박인환 지음, 문승묵 엮음 / 예옥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세월이 가면>, <목마와 숙녀> 등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시인 박인환의 전집을 접하니 어떤 설레임같은 것이 느껴진다. 단지 시인으로서 그의 시를 읽을 뿐만이 아닌 다른 산문들을 통해 그의 시와 문화에 대한 관점을 대함에 있어 시작의 동기를 알수 있으리라는 것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산문을 읽어보아도 이 점은 그다지 뚜렷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의 약력을 살펴보면 스무살 나이에 해방을 맞은 청년으로서 보안법 위반혐의자로서 그리고 전향한 종군기자로서의 시국에 대한 고뇌와 갈등은 별로 찾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의 관심사는 새로운 시대의 각종의 문화 경향에 대한 냉정한 관찰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외래의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 또는 헐리웃으로 대표되는 영화 그리고 철학적 경향으로서의 실존주의 등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시 어느 곳 또는 산문 어디에서도 그의 시국에 대한 불만은 찾아 볼 수 없었다. 현실은 그의 문학에서 철저히 배제되게 되는 것이다. 어찌보면 그것은 현실도피라고 봐 줄 수도 있지만 아니면 오히려 미래에 대한 희망을 노래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까 싶다. 첫 동인 시집의 제목인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함창>에서 보듯 박인환은 이러한 폐허 속에서도 희망의 합창을 원했던 것이다. 비록 "자본의 군대가 진주한 시가지는 지금은 증오와 안개 낀 현실이 있을 뿐"이지만 "그러나 영원의 일요일이 내 가슴속에 찾아"들고 "사랑하던 사람과 시의 산책의 발을 옮겼던 교외의 원시림으로" 갈 수 있는 그러한 공간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리고 현실적인 가난에 연연하지 않았던 초현실주의자로 결코 불행한 현실을 혐오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히 받아들인다. 그러기에 헐벗은 인천항이 식민지의 화려한 국제도시인 향항(香港)일 수도 있는 것이며 이 나라가 크메르 신과 앙코르와트의 나라일 수도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곳에서 전쟁터 마저 "포연"과 "초연"이 공존하는 장엄하고도 낭만적일 수 있다. 그런 그에게서 언제나 "우리나라" 또는 "이 민족"이란 단어를 듣기는 어려운 것이다. 간혹가도 "한국"이라고 쓰기는 하는데 그의 이런 이국적인 취향은 국제주의적인 것으로 외래문화를 이렇게 거부감이나 편견없이 채용할 수 있어 국수적인 구습에 사로잡힌 대다수 한국 지식인들에 비해 매우 선구적이란 생각마저 든다. 

아이러니는 그가 글을 긍정적으로 썼다고 해서 정말로 긍정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라는 점이다. 어떤 글에서는 비록 종군기자로 일종의 완전한 전향을 한 입장이지만 당시의 남한 사회의 부정부패에 대한 환멸적인 시각을 암시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아마 서른 하나의 나이로 요절한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닌가 하면 참으로 사람의 속은 알수가 없다는 생각이다.  어서 편자의 말대로 더 온전한 형태의 개정판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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