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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믿음을 일으키는 글 - 대승기신론 원효소 별기
법공양 편집부 엮음, 원순 옮김 / 법공양 / 2003년 6월
평점 :
나는 한국사상사에 가장 뚜렷한 흔적을 남긴 사람이 원효대사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 날 불교는 한국의 주류 문화와는 많이 벗어나 산 속에 숨어있는 고로 막상 한국불교에 대해 알기가 어렵고 따라서 원효사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함을 항상 부끄럽게 여겼다. 그렇다고 춘원 이광수가 가야마 미츠오(香山光郞)로 이름을 고친 다음다음에 신문에 연재했다는 <원효대사>의 원효를 실존의 원효로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는 서문에 원효를 "국민으로서는 애국자요, 승려로는 높은 보살이다"라고 썼다. 여기서 국민은 당연히 황국신민(皇國臣民)이며 그에게 원효는 애국자가 제 1의요 보살은 제 2에 불과하다. 재물이 없으면 몸조차 없을건가라는 류의 보시행과 임금께 목숨조차 아낄소냐하는 군사부일체의 찬가를 지어부르는 것이 그의 "원효"는 영락없이 사이비 종교의 교주이다. 거기다 동시대의 화랑도의 정신을 충효일본(忠孝一本)에 귀일한다고 보는 것도 그렇다. 그래서 이제는 이러한 잘못된 시대의 가짜 원효가 아닌 진짜 우리 민족의 사상가 원효를 인식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원효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그의 저작의 한글 번역작업을 높이 평가한다. 이 책은 원승 스님께서 옮기신 것이다. 여담이지만 한 가지 아쉬움은, 승려들이 옮긴 책들은 대부분 과연 경전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상태에서 신뢰할 만하지만 산 속에 계시는 고로 속인인 나와는 좀 소통되기 어려운 언어들이 있어서 답답하다. 더 큰 아쉬움은, 일반 학자들이 옮긴 책들은 오히려 학자아닌 일반인에게 거꾸로 더 어려운 것이 우리나라의 병통이란 것이다. 이는 물론 한역경전의 번역에 있어서의 대체적 경향이다.
내가 이 글을 통해 보는 원효는 결코 난해한 사상가가 아니다. 그는 기신론을 쓰게 된 것이 글은 간단하고 뜻이 풍부한 논만을 기대어 경전에서 말하는 뜻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을 위해서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바로 이 저서이다.
이 책의 주제가 되는 키워드 중 첫째인 "대승"이란 말은 모든 중생이 다 탈 수 있는 크고 넉넉한 수레이다. "기신"이란 말은 수행할 마음을 일으키도록 논을 짓는다는 말로서 마명이란 사람이 썼다는 <대승기신론>에 원효대사가 일종의 주석을 다룬 것이 <소, 별기>이다. 다른 어떤 주석보다도 빼어난 것이라고 한다.
주 모티브는 부파 불교이래 있어오던 각 종파간의 논쟁을 이라는 일체법을 포괄하는 "마음"을 내세워 종식시키고 공과 불공, 생멸과 진여, 각과 불각 등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으로 인정한 바탕위해 제각기 분란을 종식시키고 수행을 통해 정진해야 한다는 것을 훌륭히 설명하고 있는 듯하다. 역설적이기도 하지만 그 중심에 "마음"이 자리잡고 있다는데 묘한 매력을 느낀다. 개인적인 느낀 바를 말하자면 어차피 인생은 있었다가 사라지는 꿈과 같은 것일 진대 오늘 내가 오르냐 그르냐 하고 싸우느니 나의 길만 진정 부처님의 길이고 내 견해만 부처님의 견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서로 인정하는 가운데서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가는 것이면 그 뿐이지 않을까? 혼란한 이 시대에 원효대사의 이와 같은 사상이 더욱 많은 사람들을 바람직하게 인도하는 등불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