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룡경찰 LL 시리즈
쓰키무라 료에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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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반성의 시간을 가지고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처음 이 작품을 알았을 때는 그저 그런 일본의 라이트노벨이라고 생각을 해서 관심 밖이었습니다. 메카닉이 나오는 소설이라니... 일본에서 일본 SF 대상을 받고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도 오르는 작품이란 걸 알았지만 간간이 라이트노벨 같은 작품들도 오르고 일본에는 이런 마니아적인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습니다. 그렇다고 읽어볼 생각은 아예 안 한 건 아니기에 서점에 갈일 있으면 여러 책을 담을 때 눈에 보이면 같이 담아두었다가 좀 책 구입이 오버인 것 같다 생각이 들면 일 순위로 뺐던 게 이 책이었습니다. 그러다 이번 구정 연휴에 가볍게 읽을거리를 찾다가 마침 이 작품의 두 번째 작품도 나와있길래 전자책으로 구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전 소설이 어떤가 몇 장만 읽어볼까란 생각에 읽었다가 거침없이 끝까지 내달리고 말았습니다. 다 읽은 후 그동안 내가 너무 편협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다는 생각과 저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이제야 이 작품을 읽은 것에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2018년 저에게 있어 최고의 재미를 안겨줬던 <개구리 남자>이후 얼마 안 된 현시점까지 통틀어 최고의 재미를 안겨준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장르를 SF 소설이라고 해야 할지 경찰 소설이라고 해야 할지 장르가 애매하지만 어떤 장르에 두어도 양쪽 팬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그런 균형감을 가진 이 작품이 쓰키무라 료에의 데뷔작이란 게 놀랄 정도입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두 가지 작품이 떠올랐는데 이 책을 읽은 많은 분들이 얘기하는 패트레이버 시리즈 중 저는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2-The Movie(1993)>와 국내 PC 어드벤처게임 <디어사이드 3>가 생각났습니다. 이 두 작품 다 오시이 마모루와 연관이 있는데 한편은 감독을 다른 한편은 오시이 마모루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그런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두 편 다 조직 내의 갈등과 테러리스트를 대항에 싸우는 내용, 그리고 기갑병장이 나온다는 점인데 '기룡 경찰' 역시 비슷한 맥락의 내용인지라 개인적으로 이 세 작품 다 유사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패트레이버>나 <디어사이드 3>는 그 주제가 무겁고 내용이 철학적인 부분이 많아 난해한 부분이 많지만 <기룡경찰>은 어깨에 힘을 빼듯 가볍게 즐길 수 있다는 게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미도리는 옆에 놓인 라이저의 가죽 재킷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그 무게에 놀란 것 같은 표정을 보였다. 

안에 꽂혀 있는 M629를 본 모양이었다. 

미도리가 총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 라이저가 말했다.

"탄은 들어 있다." 

나직한 목소리였다. 

"쏘고 싶다면 쏴도 좋다. 네게는 쏠 자격이 있고, 내게는 맞을 이유가 있다."


이 소설은 경시청 내의 특수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특수부는 수사원과 현장 투입되는 돌입 요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돌입 요원들이 타는 병기가 이족보행을 하는 기갑병장으로 통칭 '드래군'이라고 하고 그들을 일컬어 암흑가에는 '기룡경찰'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특수부는 경시청 소속이나 경시청 내 조직에서나 경찰 조직 내에서 나 미움받는 존재들로 그들과 매번 갈등을 일으킵니다. 이 소설은 그런 조직 간의 갈등 문제와 일련의 벌어지는 사건들을 조사하고 싸워나가는 얘기를 주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히 드래군을 조종하는 돌입 요원 3명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소설중간마다 그들의 과거를 엿볼 수 있게 해 놓았지만 겉핥기 정도라고 할까..) 이 소설의 장점은 빠른 전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불필요한 잔가지들은 최소화함으로써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부분들이 없도록 이야기가 구성되어있어 전혀 지루한 감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무식하게 앞만 보고 달려가는듯한 느낌마저 드는데 오히려 그런 부분이 좋았다고 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느끼는 단점도 있는데요 이 작품은 기갑병장이 등장하는 소설로 메카닉 관련 내용들이 다소 나오고 있습니다. 근데 이 부분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상상이 잘 안되는 부분들이 나온다는 것이죠. 특히 저에게는 드래군이 어떤 모양일지 잘 상상이 안되다 보니 메카닉 관련 내용에서는 이해하고 넘어가기 힘들기도 하였습니다. 다나카 요시키 작가의 <은하영웅전설>처럼 중간중간 일러스트를 첨부했더라면 좀 더 이해하며 쉽게 넘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간간이 나오는 용어들에 주석 번호들을 달았는데 주석 내용들은 책 후반에 있기에 일일이 용어를 찾기 위해 책 뒷장을 보고 다시 본 내용으로 넘어가는 번거로움이 있기에 아예 안 읽고 넘어가는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차라리 하단에 주석 내용을 달았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 책만 이렇게 주석을 달아놓은 것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주석단 책들을 간혹 만나게 되는데 책 읽는데 흐름을 깨는 주요 요인 중에 하나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 부분만 없었다면 저에게 있어 완벽한 책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해봅니다.


이 소설은 기룡경찰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입니다. 작가가 처음 쓸 때부터 연작을 생각을 하고 쓴 것처럼 전체적으로 앞으로 전개될 내용들에 대한 맛보기라고 해야 할지 떡밥들을 남기고 끝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전개될 내용은 그리 가볍지만은 않을 거란 생각이 들게 하는데요 궁금증을 일으키며 다음 작품을 읽고 싶게 만들면서 끝나는 아주 영악하고 얄미운 작가의 농간에 계속 당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다행히 다음 작도 출간되어 소장하고 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이 소설이 국내에 출간된 게 2017년 8월이고 두 번째 작품이 2018년 12월이니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출간이 안되었으니 세 번째 작품은 나오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아예 안 나오는 건 아닌 지하는 생각이 들다 보니 지금도 상상만 해도 끔찍해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웬 오버냐' 할 수도 있을 것이고 각기 취향이 있으니 호불호도 있을 수 있지만 지극히 제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나오는 쓰키무라 료에의 작품은 그냥 '묻지마 구입'이 될 확률이 높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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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늑대의 피
유즈키 유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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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구레하라 동부서로 처음 출근한 히오카는 그의 상관이자 파트너인 오가미를 만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히오카는 야쿠자보다 더 야쿠자스러운 그의 모습이나 행동에 불만을 가지게 되지만 어느 날 구레하라 금융의 직원 우에사와란 자가 실종되고 구레하라 금융을 관리하던 가코무라구미라는 야쿠자 조직이 그를 찾기 시작하고 거기에 우에사와의 여동생이 실종신고를 내면서 본격적으로 오가미가 소속된 폭력단 담당 2과가 수사를 맡게 됩니다. 수사 도중 우에사와가 히로시마의 한 모텔에서 가코무라구미 조직원들에게 잡혀간 것을 알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가코무라구미의 상대 조직인 오다니구미사무소의 다카시가 가코무라 조직원에게 살해당하게 되면서 사건은 두 조직 간의 전쟁으로까지 번질 조짐을 보이게 됩니다. 오가미는 자신과 관계가 있는 오다니구미를 위하면서 이 두 조직 간의 전쟁을 맡기 위해 중재에 나서게 되지만 두 조직 간의 총격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갈등은 깊어지기만 합니다. 거기에 과거의 사건에 대한 익명의 제보로 인해 오가미는 정직을 당하게 됩니다. 히오카는 오가미를 위해서라도 이 사건을 해결하려 하고 오가미는 자기 나름대로 비밀리에 사건을 해결하고자 합니다

 

 

이 소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이 한 장의 포스터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올해 부천판타스틱 영화제에 출품작으로 예고편부터 하드보일드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영화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 글을 보면 하드보일드란 말을 많이 쓰는데 생긴 거와는 다르게 마초적이거나 하드보일드 한 작품들을 좋아해서 그런 것만 찾아봐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원작이 있는 작품이란 걸 알았을 때 국내에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출간이 되어서 나오자마자 바로 구매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 독서 재미의 기준은 얼마나 책을 빨리 넘기냐인데 그 기준으로 봤을 때 이 <고독한 늑대의 피>는 미친 듯이 빨리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재미는 보장되어 있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소설의 첫 장을 넘기면 야쿠자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출동 준비하는 경찰들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이때부터 이 소설은 야쿠자와 경찰 간의 전쟁을 다루나 보다라는 생각을 하며 기대를 했지만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야쿠자와의 전쟁이 아닌 오가미와 히오카를 따라 전개되는 그런 경찰 소설이었습니다. 야쿠자 조직들 간의 갈등은 오가미와 히오카를 보조하는 그런 배경 같은 설정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소설은 전체적으로 8,90년대 흔히 봐온 경찰 버디무비를 연상하게 합니다. 성격이 상반되는 두 캐릭터가 티격태격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동질감을 느끼면서 우정을 키우는 설정과 매우 흡사하다고 봤습니다. 오가미는 경찰이지만 불법이나 편법을 일삼기도 하는 그런 경찰입니다. 야쿠자스러운 행동과 조직으로부터 뒷돈도 받기도 하고 취조를 할 때는 폭력도 행사하기도 합니다. 그와는 반대로 히오카는 원리원칙에 맞추어 수사를 하려고 하며 경찰로서 불법적인 일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다 보니 히오카는 오가미의 행동이 못마땅하기만 합니다. 선배가 담배를 물었을 때는 담뱃불을 붙여주는 게 형사의 기본이라는 말에 이해를 못 하는 히오카에게 오가미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2과의 규칙은 야쿠자 세계의 규칙과 같아. 쉽게 말해서 운동선수들처럼 선후배 관계가 확실하다고 보면 돼. 선배의 터무니없는 설교나 기합도 묵묵히 견뎌야 하는데 거기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야쿠자는 평소에도 불합리한 세계에서 살아. 두목이 희다고 하면 까마귀도 흰 거야. 그런 녀석들을 상대로 싸우는 거라고. 야쿠자를 이해하려면 그들처럼 불합리한 세계에 살아야 하는 거야

히오카는 시간이 지나면서 오가미를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과거 오가미는 부인과 자식을 교통사고로 잃습니다. 거기에는 야쿠자 조직이 결부되었다고 하는데 히오카의 이름 '히오카 슈이치'에서 슈이치가 오가미아이의 이름이었다는 점과 나이도 비슷하다는 것에서 오가미는 어쩌면 히오카를 죽은 자신의 아이를 대신에 아버지처럼 그를 보살피고 가르쳐주려 한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히오카 자랑을 하는 마치 자식을 사람들에게 자랑하듯이 말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히오카와 오가미는 서로에 대해 깊은 신뢰를 하게 되고 여러 작품에서 많이 봐왔듯 끝에 가서는 히오카는 오가미의 뒤를 따라가기로 합니다. 작품에서는 그런 매개체로 이용한 것이 늑대 문양이 있는 지포라이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가미가 히오카에게 가지고 있으라고 준 이 지포라이터는 히오카가 어떤 결정을 할 때마다 이 지포라이터를 만지며 마음을 다지는 역할을 해주게 됩니다.

히오카는 상복 주머니에서 지포 라이터를 꺼냈다. 돋을새김 된 늑대를 손끝으로 어루만졌다.
괘종시계가 7시를 알렸다. 8시에는 현경 본부에 출두해야 한다. 예전 상사에게 호출을 받았다.
히오카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키코를 보았다.
결심이, 섰다  
"저도 동지입니다."

끝으로 소설 속 야쿠자와 경찰 조직은 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이익과 과오를 없애기 위해 남을 희생해서 밝고 올라가려 하는 법의 테두리에 둘러싸여 있느냐와 테두리 바깥에 있느냐의 차이일 뿐 그러기에 <고독한 늑대의 피>는 경찰 조직과 야쿠자 조직에 맞서 싸우는 외로운 인간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소설 제목인 <고독한 늑대의 피>는 외로이 두 조직에 맞서 대항하는 오가미의 희생과 같은 삶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런 오가미의 뒤를 이어간다는 히오카를 뜻하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읽고 있으면 어디서 많이 본 뻔한 스토리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반전이 있는 그런 작품은 아닙니다. 그러나 뻔한 스토리 같은 내용을 맛깔스럽게 풀어낸 작가의 역량이 훌륭하다고 봅니다. 저는 이 소설의 시대적 감성이 좋습니다. 삐삐, 공중전화 같은 물건이 등장하고 지금보다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많이 들어가있는 8,90년대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을 좋아하는데 그래서인지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빠져서 읽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소설의 작가는 유즈키 유코로 여성작가입니다. 이 작품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전조사를 했는지는 소설을 읽는 글 속에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하다고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여성작가가 이런 남성들의 세계를 그리면서도 남성 작가들 못지않게 남성스러운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래서인지 남성 영화를 주로 만들어온 '캐서린 비글로우'을 많이 떠올리게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소설에 나오는 야쿠자 조직 이름이나 계보가 헷갈리는 것 빼고는 정말 오랜만에 즐겁게 읽은 하드보일드 경찰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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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미스의 검 와타세 경부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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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미스의 검>은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를 통해 등장했던 와타세반장의 젊은 시절을 거슬러 올라가 시간의 흐름 속에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변해가는 와타세 경부의 성장소설이자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게 되는 원죄에 대한 문제를 다룬 사회파소설이기도 합니다. 책은 크게 연대순으로 4개의 챕터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사건의 발단이 된 쇼와 59년(1984) 그리고 재판이 벌어지는 쇼와 61년(1986), 와타세를 변하게 만든 계기가 된 1991년 마지막으로 모든 사건의 원인과 해결을 맞게 되는 헤이세이 24년(2012)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부동산업을 하는 부부의 강도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그들이 불법 고리대금업을 하는 것을 알게 된 와타세와 그의 파트너 나루미는 그들이 남긴 장부를 토대로 용의자를 압축하던 중 구스노키 아키히로라는 인물을 알게 되고 임의동행 형식으로 경찰서로 데려와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취조를 하기 시작합니다. 거기에 더불어 피 묻은 점퍼까지 나오게 되고 취조에 지친 아키히로는 범행했다는 자백을 하게 됩니다. 법정에서 강압적인 취조에 어쩔 수 없이 범행 인정을 했지만 자신은 아니라고 주장하던 아키히로는 결국 사형 판결을 받게 됩니다. 아키히로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구치소에서 자살하게 됩니다. 5년 후 예전 부동산 살인사건과 범행이 일치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범인을 체포하고 취조하던 중 5년 전 사건의 범행 역시 자백 받게 되면서 와타세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소설을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합니다.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는 <개구리 남자>에서는 형법 39조의 문제점을 다루었다면 이 소설에서는 원죄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 작가의 작품을 지금까지 3권을 읽었는데 책에 대한 흥미로움이나 묵짐함들이 각각 다 틀리게 다가온다는 겁니다. <작가형사>는 가벼우면서도 유쾌한 작품이었고 <개구리남자>는 차갑고 어두웠다면 <테미스의 검>은 역사소설을 읽는듯하면서 무거운 무언가가 내 몸을 누르고 있는듯한 그런 감정을 느끼면서 읽었고 가장 분노를 느끼면서 읽었던 작품이었던 같습니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처음 단추만 잘 끼워 맞췄더라면 억울하게 죽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고 그와 주변 사람들까지 고통을 받지 않아도 되는데 단추 하나 잘못 끼는 바람에 너무나 많은 사람이 불행해지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는 것에 답답함과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거기에 자신들의 과오로 일어난 문제를 감추기에 급급한 경찰 조직들. 말로는 정의 실현을 얘기하지만 실상은 그들도 범죄자들과 별반 다름없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게 됩니다.

이 수첩과 수갑, 권총은 전부 국가가 우리 경찰에게 부여한 힘입니다. 이 세 가지만 있으면 경찰은 어느 누구에게서든 진술을 받아 낼 수 있고, 어느 집에든 들어가고, 혐의가 있는 이들을 구속하고, 필요하면 발포할 수도 있죠. 평범한 이들에게는 절대 허용되지 않는 힘입니다. 하지만 전 어느 검사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정의가 없는 권력은 그저 폭력일 뿐이라고요. 집행한 권력이 정의롭지 않았다면 그것을 조사해서 밝혀내야 한다고요

자신으로 인해 죄 없는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다고 자책하는 와타세는 모든 사건을 바로잡으려고 하지만 조직에서는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 자신들의 밥줄이 끊기는 걸 원치 않는 조직 내의 사람들. 그들은 와타세에게 폭력을 행사하면서까지 막으려고 합니다. 그런 조직문제는 세월이 지난 2012년에 와서도 여전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와타세는 이 원죄 사건을 통해 제대로 된 올바른 경찰이 되고자 다짐하게 됩니다.

검은 힘을 뜻하고 천칭은 선악을 판단하는 정의를 뜻한다. 힘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라는 뜻일까. 그러나 테미스 상에는 검을 치켜든 것과 천칭을 치켜든 것 두 종류가 존재한다. 최고 재판소의 테미스 상이 오른손에 쥔 검을 높이 치켜든 것은 정의보다 힘을 과시하는 자세에 대한 통렬한 자기비판 아닐까

책 제목에서도 나와있듯 테미스는 오른손에는 검을, 왼손에는 천칭을 든 법의 여신입니다. 이 문장 하나만으로도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나타내고 있는듯합니다. 묵직한 주제와 내용 그리고 생각지 못했던 반전까지 미스터리 소설이지만 읽다 보면 미스터리 소설이 아닌듯한 느낌으로 읽게 되는 작품이었으며 한 작가의 작품을 읽다 보면 분위기나 전개 방식이 매 작품마다 유사한 부분들이 있다거나 패턴들이 있는데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에서는 그런 부분이 별로 없는듯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읽을 때마다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됩니다. 

두 번 다시 틀리지 않겠다.
억측과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겠다.
깨달음이 부족하면 깨달음을 바로 흡수하겠다. 관찰력이 부족하면 관찰력을 반드시 얻어내겠다. 지식이 부족하면 지식을 끝까지 찾아내겠다. 타인이 이야기에 조금 더 귀 기울이고, 조금 더 책을 읽고, 조금 더 다양한 곳에 가서 세상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말겠다.
그렇다.
나는 부끄럽지 않은 형사가 될 것이다.

그 마음 변치 않는 와타세 경부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며 또 다른 나카야마 시치리의 다음 작품에 손을 대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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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스토리콜렉터 59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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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션 13층에서 잔혹하게 죽어있는 여성 시체의 발견을 시작으로 연쇄적으로 잔혹하게 죽은 시체들이 발견되기 시작합니다. 여성, 노인, 어린아이 등 범행의 패턴도 일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항상 시체 옆에는 아이가 쓴 것 같은 쪽지가 남겨져 있습니다. 그 속에는 개구리와 관련된 글이 쓰여있었기에 언론에서는 그 살인마를 개구리 남자로 지칭하기 시작합니다. 사건의 단서도 찾지 못하던 경찰들은 50음도 순으로 살인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추론하게 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언론에서도 이 사실을 알리게 되면서 도시는 혼란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다른 때라면 사건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재미있어할 대중이라는 집단 및 무책임하고 파렴치한 사람들이 이 사건만은 절대 건드리려고 하지 않아. 관계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 거지. 한시라도 빨리 종결되기를 갈망하고 있어. 선량한 시민이라면 올바른 태도겠지. 그런데 스캔들 좋아하고 남의 말에 쉽게 동조하면서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왜 갑자기 선량한 시민들로 변했을까? 잘못된 믿음 때문이야. 이 사건에 대해 의연해지고 안전거리만 확보해 두면 최소한 나한테는 피해가 없다. 그런 식으로 믿고 있어. 아니, 믿지 않을 수가 없는 거지....

 

요즘 독서 슬럼프가 와서 읽는 날보다 안 읽는 날들이 더 많은 날을 보내고 있다가 이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흥미를 끌만한 책을 찾던 중 전에 읽었던 <작가형사 부스지마>의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들을 골라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작가형사>를 워낙 재미있게 읽었던지라 다른 작품은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고 워낙 평들도 좋아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책장을 펼치고 읽기 시작했을 때 제일 처음 느낀 것은 <작가형사>와는 상반되는 묵직함이었습니다. 이 책은 형법 39조를 큰 주제로 놓고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형법 39조란 심신 상실자나 정신이상자에게는 죄를 물을 수 없다는 법 조항인데 작가는 과연 이법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비슷한 사례들이 있기에 다른 나라의 법문제이지만 이해를 하면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어떤 죄를 범하든 아무도 벌할 수 없습니다. 살해된 네 사람의 유족들은 틀림없이 원통하겠죠. 이번만은 여론도 39조를 존속시킨 걸 후회할 겁니다. 그때 법정의 단상에서 재판장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유족들 감정과 처벌하는 감정은 다르다고. 그걸 누가 모릅니까! 법정은 복수의 장이 아니라고? 그것도 누가 모릅니까! 그렇기 때문에 법정 밖을 복수의 장으로 택한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귀축이라도 되겠다고 저는 맹세했어요.

신입 경찰 고테가와는 젊은 혈기와 열정을 가진 형사로 이 소설을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명 와타세 반장은 노련함과 냉철한 판단력을 가지고 고테가와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며 결정적인 순간에 사건을 풀어가는 역할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말했듯이 고테가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소설 속 고테가와의 성격 때문인지 모르지만 초반을 넘어 중반까지 고리타분함과 답답한 전개로 인해 약간의 지루함을 느끼면서 읽었습니다. 물론 현재 사건 전개 사이에 개구리 남자의 어린 시절의 내용을 삽입되어 있는데 이 부분은 읽는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릴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어린아이에 대한 학대 부분이나 동물들을 잡아 잔혹하게 죽이면서 희열을 느끼는 부분들은 개인적으로 굳이 세밀하게 묘사할 필요가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반까지 흥미로움보다 지루함이 커져갈 때쯤 드디어 소설은 급반전을 시작하기 시작합니다. 말 그대로 소설은 폭발하기 시작했고 저의 가독력도 덩달아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시민들과 경찰청사 안에서 대치 상황이 벌어지는 부분부터 고테가와의 일명 '다이하드'가 시작되었고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내용 전개에 긴장감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방패 너머로 남자들이 거리를 좁혀 오는 모습이 보인다. 크게 벌린 입, 입속으로 보이는 혀, 그리고 고테가와에게 초점을 맞추면서도 실제로는 다른 뭔가를 보는 눈....
조금 전 사이코들이라고 했지?
그건 당신들이야.
고테가와는 끓어오르는 머리와는 반대로 냉정한 시선을 남자들에게 보낸다.
하지만 뜨거운 감정 한편에서 차가운 사고가 또 다른 의문을 품는다.
그러면 너 자신은 어떤가 하고.
자기 자신이 소중해서 위험 분자의 정보를 손에 넣으려는 인간과, 죄를 범했지만 선악을 판단할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아무 벌도 받지 않은 자를 지키려는 자신.
어쩌면 제정신이 아닌 것은 이쪽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내면이 아니라 제도에 의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 이성을 읽고 있는지도....

고테가와의 고군분투로 사건이 해결되었음에도 안도감보다는 39조의 법 모순 때문에 일어날 결말 내용 부분 때문에 씁쓸함을 가지고 마지막 장을 넘겼습니다. 끝이 아닌 또 다른 이야기의 전개 그러나 그것은 좋은 전개가 아니기에 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현실을 보면서 말이죠..) 나카야마 시치리는 근래 제가 본 작가 중에 최고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게 끌고 가는 힘이라던가 반전을 풀어가는 능력이라던지 모든 게 훌륭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읽으면서 와타세반장의 독립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읽었는데 마침 <테미스의 검>이 출간되었습니다. (고테가와보다 와타세반장의 임팩트가 워낙 강력하게 다가왔습니다.) 아마 다음에 읽을 책은 <테미스의 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다른 작품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한동안은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을 쭉 읽게 될 것 같습니다. 오래간만에 한 작가의 작품들을 모아 읽게 만드는 그런 인물이 나온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공항에 빠지고 경찰이 외압에 못 이겨 괜히 서둘러 해결하려고 하다 보면 결국 오인 체포와 원죄 문제가 생길 거야. 그건 별로 자랑할 수 없는 경찰의 지난 역사가 증명하고 있어. 하지만 그것만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실수야. 원죄라는 건 진범을 들판에 풀어 준 채 무고한 사람의 인생을 매장시키고 경찰에 대한 신뢰를 실추시키는 삼중의 대죄야. 그런 대죄를 만들 정도면 사건이 미궁에 빠지는 게 나아.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느니 살인자 한 명쯤 놓치는 게 더 낫다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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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과 십자가 버티고 시리즈
이언 랜킨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소녀는 한 번 비명을 질렀다. 딱 한 번.
엄밀히 따지면 그의 실수였다. 하마터면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갈 뻔했다. 수상쩍어 하는 이웃들이 경찰에 신고하면 끝장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앞으로 재갈을 더 단단히 물려놓으리라 다짐했다. 조금만 더 단단하게. 아주 조금만.

주인공 존 리버스는 SAS에서 특수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특수 훈련까지 받았으나 어떤 한 사건으로 인해 군을 떠나 경찰에 되어 살아가던 중에 에든버러에 소녀들만 유괴해서 살해하는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게 되고 경찰들은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한 체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존 리버스에게 메시지와 함께 매듭과 십자가가 들어있는 의문의 편지들이 발송되기 시작하고 또다른 살인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범인을 찾기 위해 수사하던 중 존 리버스의 딸이 유괴가 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편지와 오래전 잊고 싶었던 군 시절의 일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오랜만에 읽어보는 영국 미스터리 소설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읽었던 영국 미스터리 소설들의 느낌은 굉장히 스피디하다는 겁니다. 여기저기로 시선을 분산하기보다 오직 하나만 보고 달려가듯 불필요하다 싶은 내용들 없이 할 말만 하고 끝내는 그럼 느낌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소설 역시 존 리버스의 배경이나 주변 상황들의 얘기는 최소화하면서 사건에 관련된 내용에 집중해서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존 리버스 첫 번째 시리즈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요즘의 미스터리 소설에 비해서 분량은 짧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소설을 읽고 이해 안 가는 부분이 없고 그 안에 하고 싶은 내용들은 다 담겨있으니 이런  훌륭한 결과물이 나온 것에는 작가 이언 랜킨의 필력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의 느낌은 한마디로 사람들이 왜 이언 랜킨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읽는 동안 중간에 그만두기 아까울 정도로 빠져 읽었고 상황에 따라 짜증도 내었다가 가만히 미소도 지었다가 하면서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어 몰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존 리버스의 가끔 튀어나오는 썰렁한 유머 역시 좋았으며 다른 일련의 작품 속 주인공 형사들이 알코올중독에 무리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는 그런 아웃사이더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면 이 책의 주인공 존 리버스는 대체적으로 중간 정도 되는 인간으로 보였습니다. 알코올중독이 아닌 것만 해도 감사해하며 책을 읽을 정도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가 오늘 저녁에 꼭 하고 싶었던 일이에요. 스코틀랜드 중앙 동부에 사는 변태 성욕자와 성범죄자들의 사건 기록을 훑어보는 것. 왜 저를 이토록 증오하십니까? 제가 무슨 욥이라도 되는 줄 아십니까? 그래서 이러시는 겁니까?

 이번 <매듭과 십자가>는 존 리버스 시리즈의 시작으로는 손색이 없었다고 생각 듭니다. 이제 인물 소개가 끝났으니 정말 제대로 된 본편은 다음 작품이 아닐까 생각이 들면서 빠른 시일 내에 두 번째 작 <숨바꼭질>을 읽어봐야겠습니다. 사람들마다 자신과 궁합이 잘 맞는 작가나 책들이 있는데 저하고 이언 랜킨 작가의 작품은 궁합이 잘 맞는 편인 것 같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슬픔은 아마도 점점 소장해야 할 작품들은 늘어나는데 그걸 받쳐줄 총알이 없을 때 일 것입니다. 제가 점점 그런 상태가 되어가네요..!!

인생이란 게임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대학 밖 세상이 얼마나 호화로운지 알면 이상주의가 싹 사라져버릴걸. 졸업하고 나면 모두 다 가지려고 할 거야. 런던의 좋은 직장, 멋진 아파트와 차, 많은 봉급, 와인 바. 더 이상 이런 궁상은 떨고 싶지 않게 될걸. 하지만 지금은 이해를 못 할 거야. 저건 그저 양육에 대한 반발일 뿐인데. 대학은 학생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부모의 품을 벗어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도록. 리버스도 다르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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