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들려줘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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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앞선 글들에 나온 인물들이 나이가 든 채로 등장한다.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 그리고 한 사람씩 세상을 떠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가는 길로.


아흔에 이른 올리버, 예순이 넘은 루시와 밥. 배우자와 자녀와 이웃들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대체로 아프고 대체로 고단하고 가끔 반짝였다가 자주 안심하고 더 자주 절망하는 생의 낱낱의 이야기들. 읽는 내 삶의 어떤 면과 겹치든 겹치지 않든 저절로 다가서게 된다. 당신은 이렇게 살아왔는가, 나는 이렇게 살아왔는데, 우리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이 세상과 이별하게 될까, 궁금한 듯 물어가면서.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아프기 시작한다. 나도 아픈 곳이 늘어난다. 늙어 죽는 것이 복이라는 말을 최근에 인식하게 되었는데 늙어가면서 아픈 곳이 자꾸 생기는 것은 별로 좋지 못하다. 그런 면에서 소설 속 주요 인물들은 건강한 편이라 괜히 마음이 놓였다. 물론 몸보다 더 아파하는 마음 때문에 생을 그치는 인물도 등장하고 가족 중 누군가는 질병으로 생을 끝내기도 하지만, 이것도 저것도 다 넓게 보면 평범한 세상의 평범한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프거나 안 아프거나 살거나 죽거나 중의 하나일 테니.


재미있게 읽고 유익한 감동을 얻었다. 어떻게 늙어가는 것이 조금이라도 나은 것일지, 어떻게 나를 조절할 수 있겠는지 알게 된 기분이다. 이 글 쓰고 나면 바로 다 잊어버리고 말더라도. 올리버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루시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이든 사람이 잘할 수 있는 일들 중의 하나가 아닐까. 쉽지는 않겠지만.


밥과 루시의 서로에 대한 감정이 애틋하면서도 의아하다. 이런 감정에는 나이 제한이 없는 것일까? 예순이 넘어도 이렇게 생생할 수 있다고? 내가 메마른 사람이라 이런 것일까? 사랑과 우정의 감정 밀도가 어느 선 위로 오르면 구별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아닐지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좀 오그라드는 마음이 된다. 삶이 딱히 축복도 아니고 운명도 아니고 그저 자연의 일부라는 것이 위로도 안 되는데 편해지는 느낌이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쩌라고, 투덜거리고 싶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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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3 1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8-23 17: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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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타카코 씨 4
신큐 치에 지음, 조아라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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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작은 순간에 일어나는 일들을 알아채고 그 일을 다행스럽게 여기거나 고마움을 느끼는 일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요즘 절감한다. 행복한 느낌이라는 게 거창하거나 거대한 사건에서 오는 게 아님을,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아무런 사고 없이 반복되어 주는 것만으로도 크게 고마워해야 할 일임을 이런 상황을 통해 깨닫는다는 게 좀 딱하기는 하지만.

 

만화는 여전하다. 주인공 타카코 씨는 변함없이 성실한 태도로 일상을 보낸다. 직장에서 일을 하고 동료랑 짧은 인사를 나누고 주위에서 들려 오는 모든 소리에 감탄하면서 고맙다고 다행이라고 행복한 마음이라고 확인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져서 내가 다 행복하다. 나의 이런 일상 또한 당연히 고마워해야 할 상황임을, 한걸음 떨어진 세상에서 인정한다.

 

별로 달라질 것이 없는 우리네 인생살이, 그날이 그날 같고 또 그 다음날이 오늘 같겠지만 지금 평화와 안정을 누리고 있다면 충분히 즐기고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세계를 마비시키고 있는 전염병 앞에서는 잘난 인간이라도 딱히 할 일이 없어 보인다. 그저 잠잠해지기만을 바랄 뿐. 만화책 모아 보는 재미마저 없었더라면 어떠했을지, 봄이 아직도 멀리 있는가 여전히 춥다. (y에서 옮김2020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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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가의 열두 달
카렐 차페크 지음, 요제프 차페크 그림, 배경린 옮김, 조혜령 감수 / 펜연필독약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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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손바닥만 한 정원이라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딛고 있는지 알기 위해선 작은 화단 하나는 가꾸며 살아야 한다.' 책을 펼치면 제목 다음 쪽에 작가의 이 말이 실려 있다. 손바닥만 한 정원이라, 다행인지 부담인지 내게는 내 손바닥보다는 훨씬 큰 마당이 있고 이 마당 곳곳에 꽃과 나무와 풀을 심고 있기는 한데... 다만 아직은 살리는 것들보다 살리지 못하는 것들이 더 많아서 행복한 마음보다 가여운 마음을 더 자주 느끼고는 있는데...


다음 장을 열면 작가의 형제 사진이 흑백으로 실려 있다. 삽과 물조리개를 들고 있는데 100년 전 모습이지만 퍽 친근하게 보인다. 이웃에 살고 함께 정원을 가꾸면서 카렐은 글을 쓰고 요제프는 그림을 그렸다는데 부러울 만한 일이다. 프라하에 이 형제의 이름을 딴 거리와 집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이름을 남기기도 하는구나 싶다. 


정원을 가꾸고 보살피는 데에 들이는 기본 시간은? 최소 열두 달, 즉 1년이란 말이렷다. 우리처럼 온대 지방에 사는 사람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겪어 봐야 하고, 12달 각각 해야 할 일이 다르다는 말이겠지. 이 말은 무슨 뜻인지 충분히 알아듣겠다. 내가 어떻게 행동으로 옮기는가 하는 문제는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늘 남아 있지만. 정말로 1년 단위의 정원일기라도 써야 하나 어쩌나 싶을 지경이다. 내 하찮은 경험과 기억력의 주기로는 1년은 커녕 한 달조차도 길고 아득하기만 하니. 작년 이맘 때 내가 무슨 식물과 어떻게 놀았는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말이다.


글은 유쾌하게 읽힌다. 실려 있는 그림도 귀엽고 정겹게만 보인다. 정원을 가꾸는 두 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고스란히 전해 받는 기분이다. 글은 1월부터 12월까지 정원에서 하는 일들을 적절한 유머와 함께 들려주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각 달의 이야기가 끝나면 그 달에 알맞은 주제를 담은 글이 한 편씩 실려 있다. 나는 못하지만 야심이 있는 초보 정원가에게 따라 해 보라고 권해 볼 만한 작업이다. 매달 정원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그리고 특히 그 달에 가장 중점적으로 임했던 게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글을 써 보라고. 그리고 다음 해에 다시 확인해 보라고. 굳이 1월부터 할 것이 아니라 당장 내일부터, 6월을 시작하면서.(그러지 말고 이참에 해 볼까? 작심삼일이라도?)  


책을 읽고 보니 초보 정원가로서의 자질이 아주 조금은 내게도 있음을 알겠다. 나는 요즘 자기 전에 내일의 날씨를 알아보고 아침에 눈 뜨면서 오늘의 날씨를 살펴 보고 있다. 비가 오나 안 오나, 언제 오나 하는 것은 요즘의 내 생활에 아주 중요한 환경 요인이다. 또 하나, 꽃 보러 꽃 앞에 앉았다가 꽃 보는 시간보다 옆에 자라기 시작하는 풀 뽑는 시간이 더 많아지는 것도 정원을 가꾸는 이로서의 하찮은 자질 하나쯤 되지 않을까 여겨 본다.(이것도 아직은 서툴러서 작년에 꽃 졌던 자리에서 씨가 싹터 오르는 것을 모르고 풀로 여겨 뽑아 내고 있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기는 하지만)


작가의 이력이 색다르다. 이 책만 보고 그칠 사람이 아니다. 더 찾아봐야겠다. (y에서 옮김2021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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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타카코 씨 3
신큐 치에 지음, 조아라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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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다는 느낌은 지극히 주관적이라고 하는데도 스스로 잘 모르고 지날 때가 많은 것 같다. 돌아보면 그때 그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었던 것을,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달을 때가 종종 있으니 말이다.

 

이 만화는 나오는 대로 구해서 보고 있는 책 중의 하나다. 그림 예쁘고, 주제 아늑하고, 책장에 잘 꽂아 두었다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다시 봐도 좋을 듯하여 모으고 있는 책들이다. 이를테면 내게는 저금 같은 요소다. 지금도 보면 좋지만 나중에 나이가 많이 들어서 봐도 괜찮을 책들. 노인이 되어서도 독서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도 함께 담아서.

 

앞선 책들에 비해 타카코 씨가 잘 듣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부분이 덜 돋보이는 것 같았다. 그보다는 현재 처한 상황에서 책임감 있게 살아가는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거창한 일을 잘 한다는 설정 말고 남에게 크게 내세울 게 못되더라도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열성을 다하면서 살아가는 삶, 요즘은 이조차도 얼마나 어렵기만 하던지.

 

하루하루 직장 생활에 피곤을 느끼는 사람들이,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지치는 사람들이 이 만화를 보는 동안이라도 자신 속의 좋은 인상을 되찾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 시간이 좋았다. (y에서 옮김2019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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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클럽 - 그들은 늘 마지막에 온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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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이었지만 탐정 역할의 인물이 이어지고 있어서 끊어지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e북으로 읽기에는 단편이 더 적절하겠구나 싶은 생각을 했다. 


누군가를 모함하거나 함정에 빠뜨리는 일에는 상당히 교묘한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범죄는 더 그러할 것이고. 소설은 현실이 아니라 소설이므로 작가는 이중적인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도모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독자를 속였다가 반전을 일으켜야 할 것이므로 결말에서 도입으로 거꾸로 구성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 보게 되고. 


실린 글 중에서 탐정을 이용하여 범죄를 꾀하는 에피소드가 인상적으로 남는다. 이러한 의외성이 추리소설을 읽는 재미를 더하기 때문에 작가가 의도한 것일 테다. 미국 수사 드라마를 보면서 시청자를 속이는 화면 전개 방법에 감탄하곤 했는데, 이 작가의 글은 대체로 나를 만족시킨다. 사람의 마음 속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전해 듣는 것도 흥미롭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누군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 보고 있다면, 그걸 안다면 어떤 마음이 될까 생각해 본다. 죄를 짓지 말아야지. (y에서 옮김201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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