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매트 위의 명상 - 요가적인 삶에 관한 365일 명상
롤프 게이츠 지음, 카트리나 케니슨 엮음, 김재민 외 옮김 / 침묵의향기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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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타이핑 하려다가 포기했다. 읽다 보니 이러다가는 글 전부를 옮겨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렇게도 만나는구나, 요가와 관련된 자료를 찾다가 드디어는. 아무렴, 이래야 보람도 느끼지, 그 동안의 방황이 헛된 탐색이 아니었음을.

책도 독자와의 궁합이 있다고 했던가. 어떤 이에게 절실하게 닿았다고 해도 내게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다. 내게 절실하다고 다른 이에게까지 그러하지는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이 책 안의 글은, 내게 마치 종교처럼 온다. 오고 있다. 그렇다고 이대로 종교인이 되겠다는 것은 아니고. 그저 끄덕이며 끄덕이며 읽고 있는 중이다. 요가하는 마음이 이러해야 하는 것을.

요가의 근원에 대해 알고 싶었다. 이를테면 어떤 이론 같은 게 있는지, 사상이라든가 지침이라든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고 싶어 구한 책인데 내 바람에 딱 맞는 책이라는 생각으로 읽고 있다. 다 읽은 게 아니라 1부만 읽었다. 그리고 쓴다. 다 읽었다고 덮을 날이 없을 듯해서다.

책은 365일을 나누어 놓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1년 동안 하루에 한 편씩. 책을 받고 이렇게 읽으려고 했다. 이틀째 포기했다. 이것조차 요가의 정신에 반하는 어떤 욕망이라고 욕심이라고 나무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았지만 계속 읽었다. 읽고 싶었다. 내게는 인내심이 없었고 호기심이 넘쳤고 더 깊이 더 빨리 들어서고 싶다는 실천 의지만 생생했다. 그나마 1부에서 멈추고 이 글을 쓰고 있는 건데 더 읽고 싶을 뿐이다.

글을 계속 읽고 싶은 마음은 요가에 이대로 더 다가서야겠다는 마음과도 통한다. 그동안 요가를 하면서 내가 했던 생각이나 느꼈던 감정들이 조금 더 환하게 떠오른다. 자칫 앞서 나가려고 했던 조급함과 자만도 떠오른다. 그래, 그래서는 안 되었던 거지. 요가를 하면서 경쟁을 하려고 했다니. 적어도 그건 아니었던 거다.

요가의 동작도 명상도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새롭게 열리는 기분이 든다. 요가 책을 통해 이런 전환점을 느끼기는 처음이다. 좋은 글, 그런데 권할 수가 없다. 종교처럼 여겨진다는 게 부담이 되는 탓이다. (y에서 옮김2023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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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여름 2023 ㅣ 소설 보다
공현진.김기태.하가람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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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소설 세 편. 2022년과 2023년에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른바 신인 작가들의 작품이다. 이들이 소설을 어떻게 써 나가려고 하는지, 이를 알고 싶은 나에게는 아주 작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다. 잘 만난다면 나로서는 순수한 기쁨 하나를 챙기게 될 테니까.

세 편 중 공현진의 글(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에 끌렸다. 처음 읽을 때 인상적이었고 남은 두 편을 다 읽은 뒤에도 첫글만 나를 잡아당겼다. 등장인물의 힘이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웅이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닌 이가 소설의 주인공일 경우 대체로 읽는 마음이 고단하게 마련이다. 현실과의 대결 상태에서 번번이 지는 쪽에 처해 있기 일쑤이므로. 이들이 지는 원인이나 지는 모습이나 지고 난 후의 절망 등은 소설에서 꽤나 자주 다루고 있는 편이고 이런 내용을 나는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 이 소설처럼 읽는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게 되면 작가의 이름을 한번 더 새긴다. 기억에 남아 있기를 바라면서. 다음에 나오는 글도 반갑게 읽게 되기를 기다리면서.

단편소설은, 소설이 쓰인 시대를 가장 가깝게 느끼게 해 준다고 생각한다. 해당 시대의 문제, 해당 시대의 성과, 해당 시대의 삶과 죽음을 작가의 주된 관심과 연결시켜 있을 법한 이야기로 엮어 놓고 있다고. 그러니 지금 나오는 소설에서는 지금 우리가 느끼는 각종 사회 문제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지독하게 답답하고 막막하게도.

작가들은 사는 게 얼마나 불편하고 얼마나 조급할까. 요즘처럼 곳곳에서 사람 사는 어려움의 증거들이 터져 나오고 있을 때 작가들이 쓰고 싶다는 의욕은 사명감에 더 커질까 절망으로 인해 줄어들까. 괜히 쓸데없는 궁금증만 돋는 더운 날이다.
(y에서 옮김20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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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23 ㅣ 소설 보다
강보라.김나현.예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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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출판사에서 나오는 이 계간지는 내 읽기 목록 중 사소한 도전 상대에 들어간다. 우리의 젊은 작가들 중 내 취향과 맞는 사람 혹은 작품을 찾아내는 재미를 위해서. 한 계절에 세 편, 적어 보이나 결코 적은 게 아님을 계속 읽으면서 깨닫는다. 특히 내 마음에 드는 글을 만나기까지는.

이번 호의 세 작품은 모두 내 취향과 가깝다. 사건과 이야기에 충실하고 인물 간의 관계를 그려 보이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이런 경우도 생기는구나, 세 편 다 마음에 드는 경우도. 흡족하다. 한여름에 봄호를 읽고 있어서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지도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만 빼고.

작가 이름을 쉽게 떠올릴 만큼 익숙해지려면 더 많이 읽어야 하겠지. 등단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 작가들이라 나로서는 마음에 드는 작가라고 해도 이름을 다 익히는 게 어렵기만 하다. 게다가 어쩌면 다들 이렇게 예쁘기만 한 것인지. 조금씩 덜 힘들어 하면서 좋은 글, 재미있는 글 자꾸자꾸 써 주셨으면 좋겠다.

강보라의 -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 발리의 우붓이라는 곳을 배경으로 한다. 가 보고 싶다, 아니, 가고 싶지 않다. 요가도 사진도 그림도 춤도 삶 다음이다. 삶 자체가 아니라. 나는 이러하다.

김나현의 - 오늘 할 일 : 세 편 중 제일 인상적이었던 글. 사는 게 이토록 치밀하면서도 낭만적이어야 하나 싶었다. 이 부부 괜찮을까? 괜찮았으면 좋겠는데 괜찮을 것 같지가 않아서 마음이 아프다. 대책도 없이.

예소연의 - 사랑과 결함 : 좋은 것과 안 좋은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삶을 대하는 시선이 달라질 것이다. 이 태도는 천성일까, 후천적 노력에 따라 얻는 것일까. 이만큼 살고 보니 노력만으로 안 되는 게 있더란 말이야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때가 잦은데. 좋은 것을 당당하게 누리는 바람직한 사회에서 살고 싶어진다. (y에서 옮김2023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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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와 맥주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4
서머싯 몸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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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재미있게 읽었다. 이 작가가 풀어나가는 글솜씨는 익히 알고 있던 바이고, 어느 한 구절 걸리는 대목 없이 술술, 이걸 이렇게 평온하게 읽어도 되나 스스로를 의심하면서 재미를 따라갔다. 화자인 어셴든과 이어지는 등장인물들의 사연을 차례로 접하면서 책을 읽기 전에 언뜻 본 소개글의 '풍자'라는 특성이 글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나 챙겨 보려고 했는데 읽는 동안에는 내내 실패했다. 내가 소설 밖으로 거의 나오지 못했던 탓이다. 끝날 무렵에서야 간신히 발견했다고 해야 할지.

그때도 그랬단 말인가. 그곳에서도 그랬단 말인가. 이건 도대체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지 않는가. 작가도 아니지만, 우리의 문단이라는 곳이 어떤지 아는 바도 없지만, 꼭 문단의 모습이라고 할 수만도 없을 것 같은,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으레 있을 법한 풍경이라는 생각에 한탄보다 신기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없다고 해도 계급과 신분은 있고, 아니라고 해도 후원자의 힘이 중요하고, 남자보다는 여자가 본능에 충실하다는 것으로 더 비난을 받는 상황이라는 것. 화자인 어셴든이 로지에 대해 그토록 강하게 호의적인 평가를 하는 대목에서야 비로소 '아, 풍자!' 했으니까.

자신이 속한 직업의 속사정을 낱낱이 드러내는 일은 쉽지가 않다고 여겨왔다. 그게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아니, 소설이라서 더더욱. 이 작가는 이 일도 참 잘 해낸다. 실제 작가가 실존 인물을 작품 속 인물의 모델로 삼았다는 게 당시 큰 화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당사자의 호소에도 능청스럽게 대응한 걸 보면 여간 대단한 사람이 아닌 듯하고. 솔직하다는 장점을 넘어 고발 수준의 용기로도 생각되는데 이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잘난 척 하는 남자 작가들 말고, 화자가 좋아한 로지라는 여성 인물이 퍽 와 닿는다. 남들이 다 욕을 해도 상관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사람, 그래서 만나는 이를 행복하게 해 줌으로써 스스로도 행복을 느끼는 사람. 누가 나무랄 수 있다는 말인지. 어쩌면 부러워서-자신이 이 여자의 유일한 상대가 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이건 남자 쪽), 자신도 이 여자처럼 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이건 여자 쪽)-부러움을 느끼는 자신이 민망해서 도리어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던 건 아닌지. 나 역시 이런 마음이 들었던 듯하고.

소설 참 무서운 글이다.

작품의 제목인 ‘케이크와 맥주’는 물질적 쾌락, 혹은 삶의 유희를 뜻하는 관용구로 셰익스피어의 희극 「십이야」에 등장한다. 올리비아의 집에서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흥청거리는 앤드루 경과 토비 경에게 집사 말볼리오가 소란을 멈추라고 다그치자, 토비 경이 다음과 같이 응수하는 장면에서다. “자네가 도덕적이라고 해서 케이크와 맥주가 더는 안 된단 말인가?” - [출판사 리뷰]에서 (y에서 옮김202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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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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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라는 장르가 본질상 사회적 배경을 품고 있는 것이므로 고려해서 읽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 소설을 읽을 때마다 이 점 때문에 퍽 고달프다. 남의 나라 이야기를 읽을 때와는 달리 우리의 역사를 말해 놓고 있는 것이라 거리감을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너무 가까운 친밀감이나 동질감은 예상 이상으로 나를 아프게 한다.


인류 역사상 그렇지 않은 적이 없었으리라고 여기는데, 여자의 삶은 남자의 삶에 비해 더 고단했다고 생각한다. 여자가 겉보기만으로라도 남자와 동등해진 것이 최근의 모습이고, 실제로 따져 보면 이것마저 썩 만족스러운 상황이 아니기는 한데, 지금도 사정이 이러한데, 소설 속 상황으로 들어가 보면 딱하고 안쓰럽고 속상하고 기막히기 그지없다. 그 시절에, 그 어려운 시절에, 여자라서 더 힘들고 고통받는 삶을 이어야만 했을 것이니. 소설이지만, 지어낸 이야기라지만, 모조리 거짓은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이 경우만큼은 소설의 허구성이 내게 아무런 효과를 만들어주지 못한다. 


일제강점기(국권상실기) 시대, 백정의 자손, 한국 전쟁, 그리고는 딸, 아내, 엄마로 이어지는 여인의 처지. 또 이혼한 여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 등등. 앞으로도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이런 사정을 품고 있는 글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니 계속 읽고 또 읽어야겠지만(먼저 작가 쪽에서 쓰고 또 써 주셔야 할 것이고), 읽는 마음이 늘 고단할 것임을 예상할 수 있기에, 이 고단함마저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몫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슬프고 또 서글프다. 작가가 이 소설에 등장시킨 여성 인물들의 성격과 태도를 아무리 강하고 꿋꿋하게 묘사해 놓았다고 해도. 그게 또다른 숨김 과정임을 알기에.  


그러니 밤이 밝을 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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