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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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얼마나 오락가락 하였는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왔는데 겉모습에 먼저 놀랐다. 두꺼운 표지와 600쪽이 넘는 분량, 이 책은 빌려 읽어야 할 게 아니라 사서 봐야 하는 게 아닐까? 읽으면서 행복한 고민을 해 보자, 긴 독서가 될 것 같으면 반납하고 책을 사고 계속 읽게 되면 읽는 것이고. 그러다가 다 읽고 말았다. 좀전에 리스본을 떠나온 듯하다. 시간으로는 짧았으나 느낌으로는 오랜 여행이었던 탓에 퍽 피곤하다. 


스위스 베른의 고전문헌학 교사 그레고리우스. 어느 날 어떤 충격적인 만남으로 다니던 학교를 나와서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오른다. 이런 식의 충동, 나도 꽤 상상해 보았는데 끝내 실행으로 옮기지는 못했지. 그럴 듯한 충격적인 사건도 없었고 그만둘 용기는 아예 없었고 무엇보다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을 수가 없는 여건이기만 하니. 내게는 아주 좋은 핑계인 셈이기도 했고. 고전문헌학 교사라 언어 능력이 남달랐던 그레고리우스는 포르투갈어를 배우면서 리스본으로 간다. 바로 배우고 바로 번역하고 바로 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라니.


그레고리우스는 우연히 발견한 포르투갈어로 쓰인 책의 저자 프라두를 찾아 리스본으로 간다. 소설은 프라두의 책과 이 책을 읽는 그레고리우스의 의식을 교차시켜 서술하고 있다. 덕분에 나는 이 소설로 세 사람의 의식을 따라가야 했다. 의사이자 작가이자 저항 운동에 참여한 프라두, 프라두의 삶의 궤적을 찾아가면서 교사였던 자신의 생을 겹쳐 읽고 있는 그레고리우스, 그리고 혼란스러우면서도 재미가 깊어 두 사람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 비교도 우월도 자책도 후회도 아닌 채 한숨을 쉬어가며 읽었다. 


나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알 수 있기는 한가. 내가 아는 나와 남이 아는 내가 다르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다는 것도 알고, 본연의 나와 되고 싶은 내가 다르다는 것은 너무 잘 알고 있고. 이것은 모른다는 말과 같은 게 아닐까? 하물며 내가 나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면서 남을 어떻게 알 수 있다는 말일까? 내가 본 당신은 당신 자신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 것일까? 내가 이렇게 내 식대로 보고 이해하는 것을 당신은 얼마나 허용해 줄 수 있는가?


프라두가 쓴 책을 들고 프라두를 알고 있던 가족과 친구와 지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레고리우스가 알게 된 프라두는 누구일까? 이런 여정, 내가 참 좋아하는데, 이런 것을 좋아하는 나는 어떤 사람인 것일까? 내가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을 찾아내는 과정, 찾아가서 만나고 싶은 사람과 그러고 싶은 이유를 탐색하는 시간, 몸을 움직여서 목적지까지 기어이 가는 나의 의지, 프라두를 좇는 그레고리우스를 따라다니면서 나는 계속 나를 되돌아보고 있었다. 괜찮은가, 물어 보고 확인하면서.  


그레고리우스는 베른으로 돌아왔다. 나도 분명히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런데 아직도 리스본에 남겨져 있는 것만 같다. 무수한 물음들에 잡혀서. 다행인 것은 전혀 무섭지 않다는 점이다. 포르투갈어를 하나도 모르는데도. 내 언어로 나를 생각할 수 있으니. 

자기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고 다른 논리를 지녔던 어떤 한 사람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일까. 이게 가능할까. 자기 시간이 새어나가고 있다는 자각과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호기심은 서로 어떻게 조화를 이룰까. - P137

하지만 가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오랫동안 생각해온 소원을 실현하기 위해 움직이기. 나중에도 언제나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는 습관을 깨부수기. 메멘토를 안락함과 자기기만과 꼭 필요한 변화에 대한 불안에 대항할 도구로 사용하기. 오래 꿈꾸어오던 여행을 떠나기. 이런 언어들을 배우고, 저런 책들을 읽기. 이 보석을 사고, 저 유명한 호텔에서 하룻밤 묵기. 스스로를 잃어버리지 않기.
여기에는 더 큰 일들도 속한다. 좋아하지 않던 직업을 그만 두고, 싫어하던 환경을 떠나기. 더 진실해지고 자기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일들을 하기. - P477

죽음을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기.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자신이 행한 잘못을 사과하며, 속 좁은 마음 때문에 하지 못했던, 다른 사람을 인정한다는 말을 소리 내어 발음하기. 다른 사람들의 빈정댐, 잘난 척, 그 외에 타인이 누군가에 대해 지닌 변덕스러운 판단 등 지나치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더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메멘토를 다르게 느끼라는 권유로 받아들이기. - P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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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40대에 결혼
타카기 나오코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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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작가의 성장을 만화로 지켜봐 온 듯하다. 고향에서 도쿄로 올라와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시절부터의 작품을 계속 봐 왔으니. 마라톤에 도전하던 모습이나 맛있는 음식을 찾아 다니며 여행하는 모습 등 아기자기하고 유쾌한 재미를 주던 만화 작가인데 마침내 결혼을 했나 보다. 삶이 곧 만화의 소재였을 작가이니 결혼 또한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있었겠지. 게다가 출산까지.

 

이제는 아득한 내 경험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봤다. 그래, 그랬었지, 이렇게 만나서 이렇게 설레고 이렇게 얘기를 꺼내고 이렇게 결혼을 했지. 그리고는 아이를 가지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웠지. 나쁜 그리고 아픈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고 좋았던 모습만 생각나서 그게 더 좋았다. 좋은 느낌은 더 좋은 기분을 불러일으키나 보다.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그림으로 그리는 일은 그리 어려울 게 없었겠으나 입덧이 심했을 임신 기간이나 출산 이후의 시간에 그림을 그리는 일은 힘들었을 것이다. 충분히 짐작이 된다. 그래도 작가는 아마 즐겁게 일을 했으리라. 그림에서도 그게 보인다. 이 책이 나올 때쯤 아이가 돌을 지났다고 하니 지금도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부지런히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 과정이 또 작품으로 만들어지고 있겠지.  

 

한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고 나이를 먹어 가는 과정을 주-욱 지켜보는 일, 새삼스럽게 대단하게 여겨진다. 살아가는 일도 그 삶을 지켜보는 일도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이토록 사는 게 고단하게 와 닿는 시대에. 하루하루 제 삶을 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다른 이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순수하고 성실한 사람들에게 경의를 보낸다. 그것만이 세상을 지키는 힘이 될 것이니. (y에서 옮김2019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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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 해피엔딩
강화길 외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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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선생의 8주기를 기념하면서 오정희의 추천서에 29명의 작가들이 함께 참여한 작품집이다. 작가의 이름 따라 가나다순으로 글이 실려 있는데 실린 순서대로 읽으려고 강화길의 작품을 읽고 나서는 마음을 바꿨다. 내가 좋아하고 내가 알고 있는 작가들의 글부터 읽어 보기로. 골라 읽는 재미를 찾듯이. 

 

읽은 순서는 다음과 같다.

강화길(이 작품 이전에 모르고 있었던 작가)

조경란-정세랑-전성태-최수철-한창훈(내가 좋아하는 작가들)

조남주-윤고은-함정임-김숨(이름을 아는 작가들)

그리고 여러분들......

 

다들 박완서라는 거대한 분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라서 그런지, 내가 작품마다 박완서 작가를 이어 가며 읽어서 그런지 색다른 기분을 느끼기는 했다. 어느 한 편 소홀하게 넘길 수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치 박완서 작가의 새 작품을 읽는 기분이랄까? 좋은 영향력의 힘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  

 

선입견일 수도 편견일 수도 온갖 좋지 않는 잣대를 갖다댈 수도 있겠는데, 순서대로 읽다 보니 집중력이 떨어지기는 했다. 아무래도 모르는 이름의 작가 작품은 끌리지 않는다는 것이지. 이들 가운데 새로 좋은 인상을 받는 작가를 만나서 내 소설 목록을 넓힐 수 있다면 그 또한 반가운 일이겠지만 그렇지는 못했다. 뒤로 갈수록 박완서의 작품을 읽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으니. 그래도 이만한 게 어딘가 하는 마음으로 작가의 이름을 또 불러 본다. (y에서 옮김2019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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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마카롱 수수께끼 ㅣ 소시민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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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입장에서는 재미있게 읽기만 해도 좋다. 그런데 가끔 궁금하다. 작가는 어떤 생각에, 어떤 의도로, 어떤 기대를 품고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꾸며 내 보는 것일까. 작가에게도 취향과 특기가 당연히 있을 테니 즐겨 쓰는 소재나 배경이나 사건의 유형이 또 저마다 마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새삼스럽지 않기는 한데. 지극히 평범한 배경과 인물들로 독특한 소설의 분위기를 만들어내어 보여 주는 이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내 궁금증은 답도 못 찾은 채 흥겹게 떠돌곤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과 여학생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이 둘을 주인공으로 삼은 책이 이미 3권 나와 있어서 낯익은 독자에게는 여러 모로 다정하게 다가올 테고 처음 접한 독자들에게는 다소 요상한 풍경을 던져 주게 될 것 같다. 이를테면 이게 뭐지?, 무슨 이런 일로 추리씩이나?, 이렇게 골똘하게 궁리할 가치가 있는 일인 건가? 등등. 묘한 것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재미있게 읽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신기한 노릇이다.


평범한 생활 안에서 가끔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일을 겪을 때가 있다. 주의깊게 살펴보고 이유나 근거를 찾아내는 이도 있겠지만 나처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넘겨버리는 이들도 많을 것 같다. 꼭 알아야 할 이유가 없거나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을 것 같은 요상한 상황이라면, 그저 요상하군, 하면서.


이렇게 사소한 듯 보이는 사건들을 온 마음을 다해 추리하고 해결해 보이는 두 주인공의 활약을 지켜보고 있자니 세상을 대하는 남다른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 있겠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아주 하찮은 의문도 그냥 넘기지 못하겠다는 성격을 지닌 사람이나, 그가 그 사소한 의문을 해결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크나큰 동기나 위로가 되어 주기도 할 것 같고. 삶이 그렇게 거창하고 화려한 것으로만 번쩍이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게 이 작가의 의도인가 싶은 생각까지.


소설에 등장하는 또다른 주인공, 네 가지의 디저트가 관심을 끈다. 마카롱도 치즈케이크도 튀김빵도 슈크림도 하나씩 먹어 보고 싶다. 빵을 먹기만 하는 게 아니고 누군가는 이렇게 상큼한 글로도 만들어내고 있는 세상이다. (y에서 옮김2021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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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 ㅣ 오늘의 젊은 작가 9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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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시대다. 나도 아프고 너도 아프고, 살아 있는 사람도 아프고 이미 떠난 사람도 아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이전 사람들도 사는 동안 그렇게 느꼈을까. 살아 있는 것도 힘들고 죽기도 힘들고 살아갈 일은 더 힘들고. 치료해 주겠다고 위로해 주겠다고 같이 아파하면 좀 나아질 거라고 그래야 한다고 무수한 사람들이 무수한 곳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좀처럼 와 닿지가 않는다. 여전히 아프다. 여전히 속상하고 여전히 억울하고 여전히 화난다.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잘못하기 시작한 걸까. 나는 뭘 그리 잘못하고 살아온 걸까.

 

소설 속 여주인공, 보건 교사 안은영. 자신의 삶이 고단하다 하면서도 씩씩하게 운명을 받아들이고 온 힘을 다 쏟는 선생님. 내가 이 사람처럼 할 수 없다는 자괴감이 들면 대신 이런 사람이 내 주위에 있어 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내가 나서면 제일 좋겠지만, 내가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뭐라고 요구하지 않아도 되고 눈치 받지 않아도 되고 왜 못하느냐고 불평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렇게 되는 게 제일 좋은 상황이겠지만, 우리는 또는 나는 그럴 때 꼭 약해지거나 두려워지거나 소심해지거나 비겁해진다. 나는 못하겠지만, 너는 좀 해 달라고 기대하고 요청하게 되는 마음. 내가 아니라 너에게서.

 

그래서 아프게 된 걸까. 내 아픔이 될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 외면하려고 했던 대가로, 자신은 처리하지 않으면서 남들이 처리해 주기를 미룬 대가로, 나는 편하게 구경하면서 다른 사람이 힘들게 해결하기를 요구한 대가로, 그래서 우리 모두 아프게 된 걸까. 소설의 배경은 사립학교이지만, 소설 속 인물은 학생과 교사들이지만, 그대로 확대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위 무대가 되는 것을. 학교 안의 갈등이 곧 사회의 갈등이고 국가의 갈등이고, 사람 사는 모습이나 관계가 거기서 거기인 것을. 누군가는 제 욕심 때문에 다른 이를 해치려고 하고, 누군가는 제 어리석음 때문에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게 되고, 그 안에서도 사랑은 피어나고 가여운 영혼을 구하고자 하는 갸륵한 인물은 살아 있고. 보건 교사 안은영과 한문 교사 홍인표처럼. 

 

관심이 많이 생긴 작가이다. 소설 초반에는 좀 무서웠는데 읽어 나갈수록 마음이 훈훈해졌다. 세상이 좀 이래야 하지 않을까. 무섭기는 하지만 서로 손잡으면 훈훈해지는 세상. 마음의 나쁜 귀신이나 옴 따위는 서로 잡아서 없애 주기도 하면서. 안은영 교사가 나타나 지금 우리나라 안에 퍼져 있는 이 나쁜 기운을 플라스틱 칼과 비비탄 총으로 물리쳐 주었으면 좋겠다. 달리 기대할 데가 없다. (y에서 옮김201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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