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이도우 지음 / 수박설탕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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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장르의 하나다, 연애소설이.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 연애소설을 읽고 싶어진다.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안 내키는데 남의 연애는 궁금한 것이다. 꽁냥꽁냥 어떻게 하고 있는지, 나이 따라 시절 따라 연애의 방식은 어떻게 바뀌고 흐르고 있는지, 내가 알고 있던 연애와 무엇이 비슷하고 어떤 게 다른지 그런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대체로 실패했던 것 같은데, 연애소설이라 해서 봤는데, 너무 환상적이거나 너무 현실적이어서 내가 바라던 느낌을 만나지 못하곤 했는데, 이 책, 내 마음에 흡족했다. 그럼, 남자와 여자가 만나 서로를 그리워하게 되기까지 이렇고 이런 감정과 단계가 있어야 하지, 아무렴. 사랑한다면서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에 상처를 준다고 해도 그게 배신이나 회복될 수 없는 망나니 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게 아니고, 자신도 어쩔 수 없는 태생적 한계나 성품 탓으로, 미워도 끝내 미워만 할 수는 없는 그런 잘못 아닌 잘못들로 갈등을 겪는 연인의 모습. 소설이니까, 소설 속 사랑이니까 나는 더 너그러워졌다.    


아닌 듯 해도 내 안 어딘가에는 연애의 속성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대부분은 존재감 없이 바닥에 누워 있다가 계절이 바뀌거나 날씨가 적당하거나 누가 오고 누가 가거나 하면 스르르 일어나면서 내 감정을 건드려 보는 것처럼. 나이와는 상관없이 갱년기와도 상관없이 그저 사람으로 살아서 사람으로 눈 떠 있는 동안에는 놓치지 말고 챙기라는 듯.   


진솔을 향한 건 피디의 투정도 귀여웠고 건 피디를 대하는 진솔의 사랑하는 태도도 마음에 들었다. 그렇지, 내 모든 것을 거는 사랑 따위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사랑이라도 아무리 소설이라도. 내가 먼저 건강하게 존재해야 사랑도 할 수 있는 일이고. 나를 버려야 하는 사랑 따위? 비웃고 싶다. 그런 건 상대를 속이기 위한 말이라고.


마음에 드는 연애소설을 읽고는 괜히 애매하게 사랑에 화풀이를 하는 기분, 내가 이렇다는 것이겠지. (y에서 옮김2023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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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 기형도 30주기 시전집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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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의 검은 잎>과 <기형도 전집>이 있으나 이 책을 또 샀다. 미발표 시까지 함께 묶은 시집이라고 해서 이참에 다시 읽어 보아도 좋겠다 싶었다. 한번을 다 읽었다. 자꾸만 구절들에 마음이 잡히면서 시간이 걸렸다. 모든 시를 천천히 따라 적어 보고 싶다는 열망 아닌 열망에 빠지기도 했다. 그래서 선택했다. 한 편의 시에서 딱 한 줄만 골라 적어 보자고.

 

신기했다. 각각의 시에서 단 한 줄씩 옮겨 적는데, 적으면서 보니 이대로도 감정이 흐르는 것이 보이는 거다. 도대체 단 한 편의 시도 그냥 넘길 수 없게 만드는 이 힘을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지(딱 한 편의 시에서 고르지 못했다). 시인은 나를 이렇게 1981년으로, 내 젊은 날로, 온통 스산하고 춥고 쓸쓸한 그 겨울로 사정없이 불러들였다.

 

시인이 소리내어 말하는 시어들이 여럿 있다. 그 중에 내가 뽑는 대표는 다음의 넷이다. 겨울, 눈, 늙음, 어림. 이들 말고도 더 많이 있지만 다 더듬어 보기에는 내 역량이 모자란다. 나는 이 넷만으로도 벅차다. 더욱이 이 네 단어 사이사이로 공기처럼 물처럼 스며들어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사회 문제까지 짚다 보면 시를 읽는 것인지 소설을 읽는 것인지 영화를 보는 것인지 그만 현실에 내동댕이쳐진 것인지조차 구별이 되지 않는다.

 

한번 어렸을 시절이었을 텐데, 그 가난하고 슬픈 시절은 어찌 이리도 오래 시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었을까. 한번 늙어 본 적도 없으면서, 주변의 늙은이를 보는 것만으로 어떻게 이렇게 처절한 늙음을 그려낼 수 있는 것일까. 시인의 시에서 은빛으로 빛나기만 하는 태양은 따뜻하게 비춰주는 날이 없는 것 같고, 바람도 구름도 안개까지도 겨울 눈 사이에서만 제 몸짓을 하는 것 같았다. 마치 시인이 살아서 겪은 계절은 겨울만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런데 시를 읽고 있는 나는 또 어쩌자고 이런 겨울이 좋아서 못내 그립기만 하단 말인지.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란에서 당선작을 본 게 이리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데. 그 이후로 안개 낀 날을 맞을 때마다 시인의 당선작을 떠올리지 않은 순간이 없었는데. '빈 집', '질투는 나의 힘', '엄마 걱정'은 국어 수업으로 만나기까지 했는데. 암울하면서도 괴기스럽지 않고, 가난하면서도 누추하지 않고, 절망을 노래하는데도 아름답기만 한 시들.     

 

어쩌면 이런 글들을 쓸 수 있을까. 어쩌다 그 젊은 나이에 생을 마칠 수 있을까. 스스로 질투를 노래하였으나 시인이 더 많은 질투를 받았던 게 아니었을까. 누구도 말해 주지 않는 시인의 짧은 생, 나는 빼앗긴 것마냥 안타깝다.

 

이번이 끝이 아님을 나는 알고 있다. 어느 춥고 쓸쓸한 어느 날, 나는 또 다른 시구를 찾아 이 시집을 뒤적일 것이다. 그때 발견하는 구절들은 내 생의 또 다른 면을 밝혀 줄 것을 믿는다. (y에서 옮김2019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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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으로 걸어간 산책자
엘링 카게 지음, 김지혜 옮김 / 다른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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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ing one step at a time". 이 책의 제목이다. 이 말이 어떻게 '남극으로 걸어간 산책자'로 바뀌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정말 남극에서 산책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줄 알고 빌린 책인데(극한의 남극 산책 이야기로 자극을 받고 싶은 마음에). 남극이 나오기는 한다. 작가가 남극에 가 보기도 했으니. 그러나 주인공은 남극이 아니라 '산책', 즉 '걷기'다. 처음부터 걷기에 주목하고 읽었더라면 책 제목에 속은 듯한 이 낭패감이 없었을 텐데. 


책은 작고 얇은 편에 속하며 한 편 한 편의 길이도 길지 않다. 대개 두 쪽에서 네 쪽 정도? 한 쪽짜리도 다섯 쪽짜리 이상의 글도 있기는 하지만. 읽기에 부담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 순서대로 읽을 것도 아닌 구성이다. 아무 쪽이나 펼쳐도 걷는 일과 그 일로 느끼고 있거나 품고 있는 작가의 생각과 만날 수 있다.


걷는 데에 이런 좋은 점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기는 하는데 막 새롭지는 않다. 세상에는 걷는 게 좋다는 사람이 아주 많고 그들 중 그 좋은 면을 혼자 간직하고 있기에는 섭섭하다고 책으로 말로 드러내 보여 주는 사람도 아주 많아서 종종 봐 왔던 덕분이다. 이 작가만의 특별한 면이라고 한다면 자신이 사는 곳 주변을 걷다가 북극에, 남극에, 에베레스트까지 가 보았더라는 것이겠다. 아무리 잘 걷는 사람이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는 하다.


날이 걷기에 점점 좋아지고 있다. 태풍이 온다고 하는데, 짧은 가을 날씨를 아쉽지 않게 누려야겠다. (y에서 옮김2021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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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시편 - 개정판 ㅣ 민음의 시 52
이문재 지음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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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이라는 말은 참 정답다. 정말 '산책'이라는 것을 하면 시를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냥 돌아다닌다는 말과 산책을 한다는 말 사이에는 야릇한 차이가 있다. 그게 꼭 우리말과 한자말의 차이를 의미한다는 게 아니라 어쩐지 산책을 한다는 말에서는 몸과 마음을 한 길에서 만나게 해 주려는 것 같은 산책하는 사람의 의도적인 느낌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산책이라는 것을 해 보고 싶을 때면, 내 몸과 내 마음이 하나로 만나 시가 되고 음악이 되고 영화가 되었으면 하고 꿈을 꿀 때면, 이 시집을 펼치곤 했다. 그러면 이곳에는 이미 산책을 끝낸 한 젊은 남자의 시와 노래들이 제 각각의 음성으로 울리고 있었다. 어느 한적한 시골길을 거닐기도 하다가, 그 길 밖에서 중얼거리기도 하다가, 갑자기 메마른 도시의 어두운 길을 걷기도 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공해에 찌들려 신음하는 지구의 한쪽 아픈 몸을 종일 쓰다듬고 있는 것이다.

그래, 젊은 것이겠지. 이제 시집이 나온 지가 10년 쯤 되었으니 그때 그 젊은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또 이렇게 아팠을 것이다. 길에서 아픔을 느낄 수 있는 나이는 그리 길지 않은 것이다. 산책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눈을 감고 사는 사람에게나 눈을 뜨고 사는 사람에게나 시간은 똑같이 흘러가고 있을 것이므로. (y에서 옮김2002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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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사람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7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종일 옮김 / 민음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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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으로 나는 먼먼 나라의 도시 하나를 얻는다. 더블린, 가 보고 싶다고 열망하게 되는, 그러나 가게 될 것 같지는 않은, 마음에 드는 도시라고, 좋아하는 도시라고 말하게 될.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이다. 도시 하나를 얻다니. 더블린을 배경으로 삼은 글을 몇 번 봤다. 호감을 가졌고 이 책으로 굳힌다. 


작가가 쓴 율리시스를 읽어 보려다가 포기하고 대신 잡은 책이다. 더블린이라는 곳은 어떤 곳인가. 1900년대 초를 배경으로 삼은 소설들인데 나는 시공간을 초월하고 읽었다. 지금 여기,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누추한 모습과 바꿔 놓는다고 해도 전혀 달라질 게 없을 것만 같은 모습이다. 사람도, 집도, 인물 간의 갈등도, 각 인물들이 꿈꾸는 이상향도, 인물들이 지닌 내면의 소박한 편견이나 허물까지도. 우리는 다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자각, 다 조금씩 모자라거나 넘쳐서 스스로를 고생으로 이끌어가는 모습에 불쌍하다가도 괘씸해지고 마는 이중성까지 느끼게 된다. 우리는 나아질 수 없는 존재인 것만 같다는 절망마저 친숙해졌으니. 이미 백 년이나 지났으나 여전한 우리. 


더블린에 대해 인터넷 자료로 찾아보았다. 영국과의 역사, 영국과의 관계, 영국에 대한 아일랜드인들의 애증 등 어딘가 우리네 처지와 비슷한 점이 있다. 약자로 살아남는 법을 익혀야 했을 테니, 국가 차원에서도 험난한 시절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게다가 아일랜드 기근은 얼마나 혹독한 사건이었던가. 세상의 일부를 열고 얻는 좋은 방법 하나, 훌륭한 소설을 읽는다는 생각이 단단해졌다. 


책을 읽은 후에 동네를 걸었다. 사람들을 스쳐 지나가고 길고양이를 보고 가게의 간판을 읽고 빈 가게에 허전함을 느꼈다. 어쩐지 모든 풍경이 전과 많이 달라 보였다. 더블린이라는 이름 대신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이름을 넣고 내가 방금 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낱낱이 담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작품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정말 생각만 한 것이지.   


아무 특별할 것이 없는 보통의 사람들, 경제적으로 힘든 삶을 내내 버티는 사람들, 서로 눈치 보고 서로 미워하면서도 서로를 견디는 사람들, 더 나은 내일이 오지 않을 것 같은데도 오늘을 충실하게 사는 사람들, 하찮은 위선과 부질없는 욕망을 대단한 것으로 여기고 제 삶을 망가뜨리면서도 아닌 척 하면서 허영에 찌들어 있는 사람들. 어쩌자고 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도 물리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내용으로는 내 취향이 전혀 아니었는데. 작가의 글솜씨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다. 


율리시스는 아직 힘들겠고 젊은 예술가의 초상으로 넘어가 보나 어쩌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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