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고재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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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떤 계기로 이 책을 고른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작가 이름에 기본적인 믿음은 갖고 있었고, 차례에 시골 생활에 대해 경고하는 내용이 그득해서 호기심이 생긴 것은 맞다. 시골에서 산 지 20년이 지났는데 내가 살아 본 시골의 생활과 이 작가가 말하는 시골의 위험한 모습을 비교해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해야겠다. 나도 모르고 있었던 시골의 위험함을 더 늦지 않게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조바심도 한몫 했고. 


작가는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고 시골에서 살겠다고 하는 도시인(특히 도시의 직장에서 은퇴한 사람)들에게 꽤나 위협적인 말을 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어지간한 사람들은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쓰윽 사라질 것도 같다. 일본 작가이고 일본의 시골과 도시 상황을 말하는 것일 텐데, 어찌 이리도 우리네 사정과 비슷한 게 많은지 신기하기도 했다. 


시골에서 산다는 것, 그렇지, 낭만적이기만 한 건 결코 아니다. 차례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 말이 '풍경이 아름답다는 건 환경이 열악하다는 뜻이다'였다. 얼마 전 첫눈이 내렸을 때, 우리집은 갇혔다. 각오는 하고 있었는데 예상보다 빨리 눈이 온 것이었다. 시골에서 눈에 갇히면 갇혀 있는 동안 지낼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눈이 내린 앞산 뒷산의 모습이야 더없이 예쁘고 근사하지만, 길이 눈에 덮여 오갈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보면, 하필 이런 때 누가 아프다거나 물, 전기, 가스가 떨어지는 비상 사태가 생기기라도 한다면 시골의 낭만은 원망이 되고 말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 가족은 이런 상황에 불평을 하지는 않는다.


'골치 아픈 이웃도 있다'는 말도 의미 있게 다가왔다. 바꿔 말하면 도시에서 인간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 사람은 시골에서도 역시 인간 관계 때문에 힘든 일을 겪을 수 있다는 뜻이다. 세상 어디에도 좋은 사람들만 사는 곳은 없을 것이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사람이 싫어서 시골로 간다는 생각은, 그러니 위험하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아예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사람처럼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혼자 살 게 아니라면. 적절하게 베풀고 적절하게 친절하고 적절하게 거리를 두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는 게 좀 민망한 태도라고 생각하지만, 여기서 어긋나면 상당히 힘들어질 수 있다. 


'하루가 다 가도 모를 정도로 전념할 것이 있어야 한다'는 말도 중요하게 여겨졌다. 작가가 이 책을 은퇴 후에 시골에서 살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말은 시골 생활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리라 본다. 은퇴한 모든 사람들이 취해야 할 태도가 아닐까? 유행하는 취미를 계속 바꿔 가면서 돈을 쓰고 시간을 보내는 것은 현명한 태도가 아니라고 하는 작가의 말은 유념해야 할 것으로 보았다.   


이외에도 흥미를 일으키는 내용이 많이 있는데, 이 책을 읽어야 할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각자에게 필요한 부분을 골라 시골 생활을 준비하는 데에 이용하면 좋을 듯하다. 예습은 중요하다는 생각을 새삼 해 본다.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는 경험이라면 무턱대고 부딪힐 게 아니라 간접으로라도 연습을 해 보는 게 좋겠다. 그래야 시행착오가 줄어들 테니까. 하물며 은퇴 후 시골 생활은 투자 비용이 너무 크기도 하고 자칫 잘못되었을 때 돌이킬 수 없을 수도 있으니 무조건 신중해야 한다는 게 맞는 말이다.


시골에서 살아볼까 하고 이제 막 생각해 본 사람들은 이 책을 읽어 봤으면 좋겠다. (y에서 옮김2018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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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연 - 앤솔러지 소설집 - 아시아의 젊은 작가들
정세랑 외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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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작가가 기획하고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출간되었다는 소설집이다. 정세랑 작가의 글이 한 편 있고 일본을 포함하여 싱가포르, 중국, 태국, 홍콩, 티베트, 베트남, 대만 작가의 글 8편, 모두 9편의 소설과 대담이 실려 있다. 한중일이 아닌 아시아 국가의 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에 찾아낸 책인데 퍽 만족스럽다. 기획한 정세랑 작가가 더 믿음직스러워진다. 공통 소재가 책 제목인 '절연'이다.


이런 기획 작품집, 독자로서는 고맙기 그지없다.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만나기 쉽지 않은 작품들일 테니. 번역자가 한 사람밖에 나오지 않아 궁금했는데 정세랑 작가의 글을 빼고 일본에서 취합하여 일본어로 되어 있는 것을 우리글로 번역했다고 한다. 약간 아쉬운 기분이 드는 지점이기도 하고. 독자의 문제일까, 번역가의 문제일까, 출판사의 문제일까, 자본의 문제일까... 괜히 아무나 붙잡고 트집을 잡고 싶어진다. 


일본-무라타 사야카의 글을 몇 년 전에 읽었다는 것을 찾아냈다. 그때도 서늘했다는 느낌이 기억났는데 이번 글 '무'에서도 비슷했다. 도무지 현실적이지 않지만 현실보다 더 현실과 같아 보여서 당황스러워지는 소재와 전개. '사는 게 다 그런 거지'라고 대충 얼버무릴 수가 없다, 이런 소설을 읽고 나면. 정신이 반짝 든다. 


싱가포르-알피안 사아트의 '아내'는 서글펐다. 그 나라의, 그 민족의, 그 종교의, 그 사람들의 풍습이고 전통이고 문화라고 해도, 내가 인정하는 바와 느끼는 바는 다르니까. 


중국-하오징팡의 '긍정 벽돌'은 좀 무서웠다. 중국 SF소설을 몇 편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고 낯익은 분위기와 낯선 분위기가 섞이면서 자아내는 생소한 느낌에 어리둥절해졌던 기분도 생각났다. 가까운 듯 먼 중국의 문화로부터 내 쪽에서 물러나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태국-위왓 럿위왓웡사의 '불사르다'는 다른 글에 비해 다가서기 어려웠다. 시점이 바뀌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태국과 태국 사람과 태국 문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너무 없어서 느껴지는 거리감이 아닐까 생각했다.


홍콩-홍라이추의 '비밀경찰'에서는 낯익은 오싹함이 떠올랐다. 때로 비슷한 경험이 절망을 가져다 주는 경우가 있다. 그게 간접 경험이라고 해도. 여기에서 이렇게나 끔찍한 일이 있었는데 거기에도 그런 끔찍한 경우가 있다고? 사람이 끔찍한 것일까, 사람이 만든 제도가 끔찍한 것일까? 제도를 끔찍하게 이용하는 사람이 끔찍한 것이겠지? 소설로 얻는 간접 경험은 편하지만 지독하게 남는다. 


티베트-라샴자의 '구덩이 속에는 설련화가 피어 있다'. 이 작품도 내 서글픔의 영역으로 담는다. 티베트에서 태어나 자라고 살아야 하는 과정이 담겨 있는 글이다. 


베트남-응우옌 응옥 뚜의 '도피'는 우리 각자의 어머니를 부른다. 어머니는 누구인가, 어떤 사람인가, 누구여야 하는가. 내 어머니는 나에게 누구이며, 내 자식에게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떤 인연으로 이어져서 끊어지지 못하는가.  


대만-롄밍웨이의 '셰리스 아주머니의 애프터눈 티'도 내 서글픔의 영역으로 보낸다. 대만은 어떤 곳인가, 중국과는 어떤 관계에 놓여 있나, 티베트나 대만이나 중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이룬 곳이 아니라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데. 그 영향이 평범한 사람의 삶에 끼치는 바가 때로 두려워서 주저앉게 된다. 읽는 일만으로도 힘겹다.


우리나라-정세랑의 '절연'. 그래, 인연을 끊어야지, 이런 사람들과는. 한때는 친했으나, 한때는 믿고 의지했으나, 한때는 존경하고 따랐으나, 상대는 결코 원하지 않지만 내 쪽에서 편집해야 하는 지점이 오는 때가 생긴다. 오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오는 것 또한 인연의 한 형태일 것이고 절연이 될 것이다. 나는 이렇게 믿는다.  


여행에서 얻는 것보다 아주 많은 감흥을 얻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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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잔 인생 한입 44
라즈웰 호소키 지음, 문기업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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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맑은 겨울 오전에 낮술 이야기를 쓰려니 괜히 쑥스러워지는 듯한데 이 또한 내가 가진 편견 중 하나. 취해서 남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면 낮이든 밤이든 아침이든 좋아하는 술을 기분 좋게 마셔도 되지 않겠나? 그냥 해 보는 소리는 아니고, 그럴 수 있으면 나도 그래 봤으면 하는데 도저히 못할 것 같고, 그래서 괜히 소다츠를 부러워해 본다. 소다츠든 작가든 그저 술이 좋아서 마시든 술을 마셔야 만화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직업을 가져서 그러하든.  

이번 호는 겨울에서 시작한다. 연말 분위기로 술 한 잔, 연초를 맞이하여 한 잔. 사는 일에 별다를 게 없는 사람들은 날이 바뀌고 해가 바뀌었다고 기념을 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게 인생 전부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루하루 어제와 같이, 오늘도 비슷하게, 내일도 달라질 것 없이 이어져 주기를. 그러니 상쾌하게 한 잔!!! 이렇게 술을 계속 마실 수 있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건강과 재물을 지키고 또 지켜야 할 테고.

이케부쿠로라고 술집이 많은 동네를 취재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다. 가 보고 싶은 것까지는 아니고 그림과 글로 구경만 하는데도 아늑하고 다정해서 더불어 취하는 듯하다. 우리나라 곳곳에도 이런 공간들이 있을 것이고 건강한 술꾼들에게 건전한 장소를 제공하고 있을 테지. 새해에도 눈으로 마시는 이 재미를 놓치지 않게 되기를. (y에서 옮김2024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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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편의점 인간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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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사람살이가, 사람들의 취향이 비슷비슷해지는 것 같다. 이것도 세계화 영향일까. 나라나 지역이나 문화를 막론하고 비슷한 문제가 생기고 비슷한 결과가 나타나는 것 같다. 설마 내 공감 능력이 갑자기 확 늘어난 것은 아닐 테고.

 

편의점, 편리한 곳이다. 소설의 주인공처럼 편의점 내의 물건들로 24시간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인생이 가엽기도 하고 그렇게라도 살아가는 게 다행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 더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물질적으로 발달하고 있다는 게 여러 모로 문제를 낳는다. 과연 관계의 단절은 편리한가, 불편한가.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돌봐 주는 것도 중요한데 그게 간섭이 되고 참견이 되면 불편해져서 벗어나고 싶어진다. 그 경계, 그 지점을 어떻게 맞추느냐 하는 것이 문제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온도가 다를 것이니, 나는 뜨거워서 싫다는데 상대는 차갑지 않은지 염려가 된다면서 부딪쳐 온다면, 아, 이건 좀 많이 거북해지는 상황이 되고 말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편의점 인간으로 살아도 괜찮다고 여긴다. 본인은 스스로 괜찮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전부 문제라고 말한다. 그들과 비슷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럴 수도 있다. 나와 아주 다른 사람이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 그가 대단해 보이는 것보다 내가 도리어 뭔가 아주 잘못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강요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맞다는 것을, 내가 바르다는 것을 굳이 상대가 납득하게 해서, 기어이 받아들이게 해서, 나를 인정받으려고 하는 마음 말이다.

 

e북으로 읽기에 많은 분량은 아니었다. 종이책 분량은 어느 정도일지 궁금할 만큼 짧은 시간에 읽었다. 편의점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좀 뜨악하게 만들어 버린 소설이지만 읽어야 할 때에 읽어야 할 소설이었다고 해야 할까. 앞으로 편의점에 들어가게 되면 거기 있는 사람들과 상품들을 한결 유심히 바라보게 될 것 같은 기묘하면서 흥미진진한 예감도 들고.

 

다만 걸리는 게 하나 있다. 일본의 편의점 체계와 우리 편의점 체계는 꽤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점. 우리와 비교했을 때 그래도 일본 편의점 직원의 대우가 훨씬 나아보이는데 그게 또 더 서글퍼진다. 우리나라 편의점 직원의 경우에는 최저생계비나 목숨 수당에까지 고민을 보태야 하는 처지일 테니. (y에서 옮김2016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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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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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글에 완전히 몰입하게 된 정도는 아니다. 최근에 계속 읽고 있고, 꽤 마음에 들고, 예전에는 왜 이만큼의 호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추측해 보는 중이다. 재미있다고 느끼는 글을 계속 읽을 수 있다는 게 지금의 내게는 큰 보상이다. 

2014년에 출간했으니 소설들의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이상이다. 모두 10편.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별로 바뀌지 않았거나 아주 더디게 흐르고 있거나 내가 10년 이상을 같은 기분으로 살고 있거나.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지금으로서는 어떤 대상을 향해서도 실망이나 원망이나 분노가 생기지 않으니. 그저 받아들이며 살아야 한다는 것으로 버텨야 할 뿐. 그러지 않은 때가 어디 있었겠는가마는.

소설 속 인물들이 가여우면 읽고 있는 나도 덩달아 가여워진다. 우리 모두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군요. 소설 속 배경이 한심하면 읽고 있는 내 처지도 한심해진다. 우리는 좀처럼 우리 주변을 바꾸지 못하고 마는군요. 글을 읽으며 느끼는 애틋한 동정이 나를 향한 것임을 금방 안다. 이 소설집은 내 안을 밝히는 데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어둡고 고요하며 감춰 두려고 했던 내 안의 쓸쓸한 무대를. 가난해서 무력해서 비굴해서 부끄러워서 못나서 자책했던 시절까지 담고 있던 내 지난 날의 시간과 공간을.

산뜻하지 않은데도 지루하지 않았다. 지긋지긋한 것은 아니었는데 고달팠다. 가끔은 맥이 빠지는 소설을 읽는데도 기분이 나아진다. 생은 묘하기 짝이 없다. (y에서 옮김202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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