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야 할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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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나의 자서전- 김혜진 소설
김혜진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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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는 생활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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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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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케이크의 맛
김혜진 지음, 박혜진 그림 / 마음산책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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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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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는가. 몰랐던 사정, 알고 보니 아주 흥미로웠던 사정을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그렇구나, 책이라는 게 작가가 쓴 글 자체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구나(그런 경우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겠지? 막연한 나의 짐작-나는 여전히 편집자보다 작가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일지도). 외국의 책에서 이런 내용을 본 적이 있는데 별로 신경쓰지 않고 넘겼던 생각이 난다.(뭐라고 해도 작가가, 작가의 글이 더 중요한 것이겠지, 편집인이야 옆에서 거드는 정도일 것이라고 여기면서.)  


소설가가 들려주는 편집인의 삶. 글을 읽는 나는 오락가락했다. 이 글 소설이었지? 작가가 편집인이 아니라 소설가였지? 이렇게 몰입시키면 당황스러워지는데? 중얼중얼, 석주의 뒤를 따르면서 내가 지금 누구를 따르고 있는 것인지, 굳이 구별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부터 새로 물어야 했다. 참 잘 읽혔다, 고맙게도.


등장인물들이 모조리 마음에 들었다. 이러하기도 쉽지 않은데. 작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어쩌면 이렇게 제대로 만들어 내었을까. 서로 비슷하고 또 다르고. 갈등하는 듯하다가도 다시 맞추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금방이라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은 인물들의 각자 이야기. 나무라고 싶은 부분은 하나도 없는 삶, 다들 너무 열심히 살고 있는데 이게 대견하기보다는 도리어 가여워지는 모습들을 가진 삶의 이야기. 소설이니까, 이 또한 현실이 아니니까, 그래서 내가 이렇게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책만 이런 복잡한 세상을 거쳐 나오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기획부터 디자인을 거쳐 제품을 만들고 마케팅 과정을 거쳐 소비자의 손에 들어오기까지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모든 물건들이 누군가에게는 오직 그 혹은 그녀의 것이 아닐지. 갑자기 함부로 구입할 수도 함부로 버릴 수도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 낭패감이라니. 


이 작가의 글은 계속 읽어도 좋아서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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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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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없다. 책을 읽고 나니 더더욱. 과연 작가가 제시하는 해결책에 우리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그러려는 사람이 있을까? 다들 나는 빼 달라고 말하지 않을까? 나는 빼고 너희들끼리 좀 해 보라고, 나는 눈 앞의 내 이익을 조금만 챙길 테니 너희들이 공동선에 따라는 공동체를 구성해 보라고. 나 한 사람 정도는 빠져도 괜찮지 않겠느냐며. 


이래서야 시작부터 공정해질 수가 없다.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 조금이라도 공정하도록 해 보려는 의도가 중요할 뿐. 누구도 자신이 마땅히 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말하지 않으리라. 심지어 남들이 보기에 지독히 우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들조차도 스스로는. 인류의 역사와 문화와 종교와 인간의 본능까지 어울려 몹시도 답을 구하기 어려운 문제다. 


책은 남의 나라 미국의 사례로 서술되어 있는데 어떻게 우리네 현실과 이토록 닮아 있다는 말인지. 사회의 부정을 저지르는 모습은 국가나 민족과는 관계없이 다들 비슷한 모양인가? 더 가지려고 더 누리려고 더 보호 받으려고 공정과 능력의 개념조차 비틀어 사용하고 있는 기득권자들, 나는 어느 위치에 얼마만큼 발을 들여 놓고 있는 것일까. 내가 갖고 있는 공정 의식도 편협하기 그지 없는데. 


내내 답답한 마음으로 읽었다. 그러리라 짐작한 만큼 답답하고 서글펐다. 작가의 위대한 통찰력이 글의 흐름에 따라 빛이 날수록 우리네 보잘것없는 의식 수준이 민망해졌다. 작가의 말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렸을까? 잠깐 흔들렸다가 곧 제자리로 돌아가고 말지는 않았을까? 자신은 공정한 편이라는 착각만을 여전히 품고서.     


이제 적어도 개인의 행과 불행이 개인만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말은 당당히 할 수 있겠다. 그래 봤자 더 나은 실천력은 아직 갖추지도 못한 형편이지만. (y에서 옮김20221202)

‘공정한 능력주의 제도를 마련하자’, ‘사회적 위치가 재능과 노력을 반영하게 하자’며 되풀이되는 이야기는 우리가 성공(또는 패배)을 해석하는 방식에 잘못된 영향을 준다. 재능과 노력을 보상하는 체제라고 생각하는 건, 승자들이 승리를 오직 자기 노력의 결과라고, 다 내가 잘나서 성공한 것이라고 여기게끔 한다. 그리고 그보다 운이 나빴던 사람들을 깔보도록 한다.
능력주의적 오만은 승자들이 자기 성공을 지나치게 뻐기는 한편 그 버팀목이 된 우연과 타고난 행운은 잊어버리는 경향을 반영한다. 정상에 오른 사람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자격이 있는 것이고, 바닥에 있는 사람 역시 그 운명을 겪을 만하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기술관료적 정치의 도덕적 자세이기도 하다. - P52

프로테스탄트의 직업윤리는 자본주의 정신을 생겨나게 할 뿐만이 아니다. 자기 구제와 자기 운명에 대한 책임의 윤리, 즉 능력주의적 사고방식에 적합한 윤리를 장려한다. 이런 윤리의식은 큰 부를 축적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책임과 함께, 자수성가의 어두운 면이라 볼 수 있는 ‘불안하면서도 치열한 경쟁’을 초래한다. 은총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이 주었던 겸손함. 그것은 이제 자기 자신의 능력을 믿는 데서 나오는 오만으로 대체된다. - P76

만약 가장 잘나가는 사회구성원이 자기 이외의 요인, 가령 행운이나 신의 은총이나 공동체의 지원 덕분에 그 자리에 섰다면 그런 사람이 다른 이들의 운명에 힘을 보태줘야 한다는 도덕적 주장은 힘을 얻는다. 우리 모두가 공동 운명체라는 주장이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 P128

학력주의 편견은 능력주의적 오만의 한 증상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능력주의에 더욱 물들게 되면서, 엘리트들은 출세하지 못한 사람들을 깔보는 버릇마저 들었다. 대학에 가서 자신의 조건을 향상시키라고 노동자들에게 골백번 되풀이하는 말은 아무리 의도가 좋을지라도 결국 학력주의를 조장하고 학력 떨어지는 사람들의 사회적 인식과 명망을 훼손한다. - P151

연구자들은 능력주의적 사회에서 대학 진학이 계속 강조됨으로써 비대졸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강화된다고 본다. "교육이야말로 사회문제 해결의 만병통치약이라는 식의 권고는,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지위의 집단이 더욱 부정적으로 평가되면서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강화될 위험성을 키운다." 이는 사람들이 불평등을 더 선뜻 받아들이게 하며, 성공은 능력 나름이라고 믿기 쉽도록 한다. "교육을 개인 책임이라 여기게 되면 교육 격차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비판이 줄어들 것이다. 교육 성과는 대체로 개인 하기 나름이라 여겨지게 되고, 그에 따른 사회적 성공 및 실패 또한 그렇게 된다." - P161

민주사회를 통치하려면 반대 의견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반대에 직면하며 통치하면 어떻게 그런 반대가 나오게 되었는지 알게 되고, 그것을 극복하려면 어떤 공적 목표를 달성해야 할지도 꿰뚫고 있어야 한다. - P172

정치 이전에 ‘우리 모두는 어떤 기본 사실에 전원 동의해야 하며, 그 이후에 우리 각자의 의견과 신념을 가지고 토론하면 된다’는 생각은 기술관료적 기만이다. 정치 토론은 종종 의제와 연관된 사실을 어떻게 잡아내고 정의할지에 대해 벌어진다. 어느 쪽이든 사실을 프레임화하는 데 일단 성공하면, 그는 장기적으로 그 논쟁에서 이긴 셈이다. 모이니한의 말과는 정반대로 우리의 의견은 우리의 인식을 사로잡는다. 의견이란 것은 사실이 명확히 규명되고 정립된 뒤에 비로소 생겨나는 게 아니다. - P179

능력주의는 지성과 교육을 고등교육의 상아탑에 온통 몰아넣어 두고서, 누구에게나 그 상아탑에 들어올 공평한 경쟁이 보장되리라고만 약속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접근권 배분은 노동의 존엄을 떨어뜨리며 공동선을 오염시킨다. 시민교육은 담쟁이가 넝쿨진 캠퍼스 못지않게 지역사회 대학, 직업훈련소, 노조에서 잘될 수 있다. 향상심 있는 간호사와 배관공들이 야심적인 경영 컨설턴트보다 민주적 논쟁에서 뒤떨어질 까닭은 없다. - P300

‘사람들은 시장이 각자의 재능에 따라 뭐든 주는 대로 받을 자격이 있다’는 능력주의적 신념은, 연대를 거의 불가능한 프로젝트로 만든다. 대체 왜 성공한 사람들이 보다 덜 성공한 사회구성원들에게 뭔가를 해 줘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우리가 설령 죽도록 노력한다고 해도 우리는 결코 자수성가적 존재나 자기충족적 존재가 아님을 깨닫느냐에 달려 있다. 사회 속의 우리 자신을, 그리고 사회가 우리 재능에 준 보상은 우리의 행운 덕이지 우리 업적 덕이 아님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운명의 우연성을 제대로 인지하면 일정한 겸손이 비롯된다. "신의 은총인지, 어쩌다 이렇게 태어난 때문인지, 운명의 장난인지 몰라도 덕분에 나는 지금 여기 서 있다." 그런 겸손함은 우리를 갈라 놓고 있는 가혹한 성공 윤리에서 돌아설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능력주의의 폭정을 넘어, 보다 덜 악의적이고 보다 더 관대한 공적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 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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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어리 목격자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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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니까, 소설처럼 생각해 본다. 돈이 많은 사람은, 죽고 나서 물려 줄 게 많은 사람은 죽음조차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없을 상황이 되나 보다. 돈이 많다는 이유로, 남도 아닌 가족으로부터 죽음에의 위협을 느끼는 모양이니까. 얼마나 갖고 있으면 죽이고 싶어지는 것일까? 뉴스로도 더러 접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인간의 욕심이라는 게, 참 뭐라고 말할 수가 없다.  

 

푸아로 경감이 나오는 책이다. 두 달 전에 죽은, 돈 많은 할머니로부터의 편지. 이미 죽은 사람이지만, 자연사처럼 보이는 죽음이었지만, 편지로 인해 아닐 것임을 짐작하고 활약을 펼쳐 보이는 푸아로 경감. 따라다니는 헤이스팅스는 늘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구박을 받는데, 내 처지와 같아서 딱하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했다. 도대체 그 상황에서 그런 비밀을 어떻게 알아낸단 말인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따라다니면서 사건이 해결되는 것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구박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겠고.  

 

본성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작가가 글을 쓰면서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말도 본 것 같은데. 유전과 본성의 관계는 묘하다. 본성이 유전된다는 것에 대해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우리처럼 보통의 처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쉽게 믿게 되는 사실이다. 부모의 나쁜 점이 자녀에게 이어진다는 것, 좋은 점이 이어지는 것처럼 이 또한 당연한 일이겠지만 어쩐지 나쁜 점만은 이어지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게 평범한 소망이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종종 무서운 일들이 일어나서 우리를 놀래키곤 하지.

 

며칠, 정신이 어지러운 일들이 있어 이 책을 봤다. 현실의 문제를 잠깐 잊어버리는 데에는 추리소설만한 게 없다. 이제 산뜻한 기분으로 나의 사소한 문제도 해결해야지. (y에서 옮김20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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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마리의 자장가 14마리 그림책 시리즈
이와무라 카즈오 지음, 박지석 옮김 / 진선아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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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보내고 자야 되는 시간이 온다. 한때는 안 자 보겠다고, 잠을 줄여서 뭔가 해 보겠다고 전전긍긍하던 어리석은 시절도 보냈다. 이제는 삶 안에서 잠이 얼마나 중요한 시간이며 필요한 시간인지 안다. 이를 알게 되기까지 나는 소중한 나의 것들을 몇몇 잃었다. 잃고서야 깨닫게 되다니, 한심하지만 더 잃지 않기 위해서는 잘 자야 한다. 무엇보다 잘 살아 있기 위해서는.  


14마리 생쥐 가족의 잠자는 시간. 평온하고 아늑하다. 세상 근심이 하나도 없다. 아픈 생쥐도 없고 애먹이는 생쥐도 없고 싸우는 생쥐도 없고. 생쥐들이라서 그런가? 14명의 사람이 모여 있어도 이렇게 평화로운 저녁을 맞이할 수 있을까? 결국 사람이 문제인 것인가? 14마리 생쥐가 잠자는 모습을 그려 놓은 그림을 보면서 나는 또 회의를 품는다. 세상에는 생쥐보다 못한 인간들도 있으니까. 


엄마 생쥐의 자장가를 들으면서 잠든 아기 생쥐들. 달빛이 들어오는 창문 앞에 벌레 두 마리가 놀고 있다. 벌레라면 딱 싫어하는데 이 둘은 귀엽다. 작가 덕분이다. 예쁜 마음으로 보면 예쁘게 보인다는 것을 이렇게 또 깨닫는다. 


14마리 그림책 시리즈가 나를 위로하는 요즘이다. 단순하고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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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23 2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4-28 23: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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