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문 - 2010년 제3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이상문학상 작품집
박민규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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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 때쯤이면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사서 읽어왔는데. 언젠가부터는 내가 그냥 좋아서 찾아 읽는 게 아니라 직업적 의무감으로 읽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책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읽는 내 자신이 나이가 들면서 좀 변하여 이전보다 재미를 덜 느끼는 것이리라 짐작해 왔는데. 


아후, 모르겠다. 아니다, 알 것도 같다. 수상 작가들이 내 나이보다 어려지면서 내 흥미가 떨어진 건가 그런 생각도 든다. 60-70년대 수상집들을 읽을 때에는 그저 존경스럽다는 마음이었고, 80년대 수상집들은 동시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본다는 동질감에 매번 읽고 있는 자신이 뿌듯하기까지 했고, 90년대 수상집들을 지나오면서는 들쑥날쑥 하다가 2000년대로 와서는 어라? 실망스럽기도 한데? 수상작이 이런 글이란 말이야? 혼자 반문하기도 했고. 


그래도 한 해 한 번 나오는 책이니, 읽어 봐야지 하는 마음만은 여전하니, 앞으로도 읽기는 계속 읽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읽는 맛이 쓰다. 그것도 많이 쓰다. 안 읽어도 된다면 좋겠지만 그래도 안 읽을 수 없다 싶으니 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담긴 소설 어느 한 편에서도 유쾌한 맛을 느끼지 못했다. 내가 그렇게 느낀 원인은 글 자체가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있는지도 모른다. 답답한 세상, 답답하게 살아가는 사람, 답답한 미래, 그리고 답답한 글. 책 처음에 나오는 수상작부터 마지막 심사평에 이르기까지,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답답해서, 이토록 답답한 글을 읽고 있는 내가 답답해서 소설들을 읽는 내내 좀 슬펐다. 이전의 소설들은 끔찍하게 슬펐어도 희망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는데.(1988년 임철우의 붉은 방은 얼마나 무서웠던 글이었나.)   


그나마 박민규의 글에 대한 내 인상이 조금 나아졌다는 것, 배수아의 글에는 여전히 내가 끌리지 않는다는 것, 기억해야지 싶은 작가는 없었다는 것. 괜히 손해 본 느낌이 든다. (y에서 옮김2010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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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은 톰과 잤다
손홍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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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설에 대한 내 관심을 키우고자 애쓰는 중에 반가운 선물 같은 글을 만났다. 이런 글을 만나면 그동안 왜 몰랐던가 하는 한탄도 크게 일어나지만 이제라도 볼 수 있게 되어 좋구나 하는 마음이 더 크다. 나는 이렇게 또 하나의 세계를 얻는다. 앞서 읽은 산문집에서 기대했던 바가 어긋나지 않았다. 

 

먼저 소설들은 상쾌하지 않았다고 쓴다. 뭔지 애잔해 보이는 인물들인데 희한하게도 주눅들어 있지 않다. 2010년 즈음에 나온 소설들인데, 등장 인물들의 나이가 대체로 젊다. 10년 전, 나는 어떠했던가. 내 주변은 어떠했으며, 당시 우리 사회는 어떤 상태였던가. 그때 나는 지금보다는 젊었겠지만 소설 속 인물만큼 젊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한 편 한 편 읽어 나갈 때마다 나는 자꾸만 먼먼 과거의 나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주 젊었던 나, 소설 속 인물들처럼 대학생이었던 나, 비슷하게 가난하고 비슷하게 고단하고 비슷하게 서글펐던 내가 자꾸만 튀어 나오면서 지금의 나와 바꿔 앉는 것이었다.   

 

성가시지 않았다. 억울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 시절의 내가 좀 애틋했다. 쓰다듬고 안아 주고 싶을 만큼. 그래서 그렇게 했다. 한 편 읽고 끌어 안고 또 한 편 읽고 끌어 안고. 소설의 줄거리는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다. 전개 과정도 주제까지도 희미하게만 보였다. 문장만 자꾸 도드라졌다. 낯선 우리말 단어들도 쉼 없이 끼어들었다. 나는 문장 하나하나가 드러내는 분위기에 매혹되었던 것 같다. 사전을 먹는 것으로 낱말을 먹고 싶어 했던 소설 속 어느 주인공만큼이나 내가 문장을 통째로 갖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꼈다. 문학에 대한 청년 시절의 갈망은 인생의 사춘기만큼이나 보편적인 것일까. 어쩌자고 나는, 내 주변인들은, 젊었던 시절 당시 문학이라는 것을 그렇게나 꿈꾸려고 했던 것일까. 지금 와서 보면, 다들 그런 적이 있었던가 시치미만 떼면서.    

 

책이 나온 지 10년이 지났는데, 강산은 별로 변한 것 같지 않고, 사람살이도 별로 변한 것 같지 않다. 역사는 진보하는 게 아니라 순환한다고 적힌 책 속의 말이 예사롭지 않게 남는다. 그때 그 가난했던 문학 청년들은, 지금도 문학을 하고 있을까? 문학을 하고 있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례한 게 아닐까. 작가가 그려 낸 인물들은 쉬지도 못하고 매번 자신과 싸우다가 지쳐 나자빠지다가 다시 일어나서 비틀거렸는데, 읽기만 하고 있는 나는 미안해서 손이 떨렸다. 그렇게그렇게 밥도 집도 되지 못한 문학을 붙잡고 살아남아야 했던 무수한 문학 청년들에게 진 빚을 나는 어떻게도 살려 낼 수가 없다.    

 

요즘 들어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과의 만남에 정성을 쏟는 시간이 늘고 있다. 내가 나를 잘 보살필 줄도 모르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어떻게 소통을 할 수 있겠는가 싶다. 내가 많이 늦었다는 것을 안다. 이 책 속의 톰처럼, 진작 나도 나와 함께 자기도 했어야 하는데. 나를 잘 만난 다음날에는 내 마음이 한층 너그러워진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으니. (y에서 옮김2019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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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
주경철 지음 / 사계절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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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보기 아까운 책. 다른 사람들에게 읽으라고 권하고 싶은 책. 내 아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기대하는 책.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강제로라도 읽게 하고 싶은 책. 그런 책. 더 일러 무엇하리오.


기회가 된다면 이 책으로 독서토론수업을 했으면 좋겠다. 중고등학생들에게는 아주 적절한 교재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말하고 있는 바에 대해 동의를 하든 그렇지 않든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소재가 될 테니까. 작가가 소개하고 있는 책들을 미리 읽고 자신의 생각과 작가의 생각을 서로 견주어 볼 수도 있겠지만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작가가 소개하고 있는 내용만으로 충분히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이미 많은 양의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바로 실천할 수 없는 내 처지가 딱하다. 당장 시험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독서에 대한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탓이다. 무엇보다 내 아이 둘에게도 지금 바로 이 책을 읽어 보라고 말할 수 없는, 바로 그 이유. 시험 공부를 해야 하니까.


안다는 것, 알고 나면 왜 기쁜가 생각을 더 해 볼 일이다. 남들 앞에서 아는 척 할 수 있다는 것 기쁜 이유 중의 하나이기는 하겠지만,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면 자신이 전보다 좀더 커진 기분, 좀더 나아진 기분, 좀더 살만해진 기분이 드는 것, 그래서 세상에 태어나 살고 있다는 게 그만큼 더 고맙게 느껴지는 이유 때문이 아닐까. 


지구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 그들에 대한 내 관심이 점점 더 넓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게 요즘 내가 행복을 느끼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y에서 옮김201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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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월급사실주의
남궁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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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할 때 답답한 소설을 읽으면 답답함이 좀 가실까 더할까? 소설은 갈등을 기본 요소로 삼고 있는 글의 장르라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런데도 기대고 싶어진다. 갈등 없는, 답답함이 없는, 투명하고 환하고 벅찬 세상을.

내가 나를 먹여 살리는 일. 마땅히 이렇게 되어야 한다. 문제는 공평하지 못하다는 현실에 있다. 누군가는 아무리 애를 써도 나를 먹여 살리는 일이 어렵고 힘들기만 하고 누군가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데도 저절로 먹고 살 게 주어져 있고. 소설은 힘든 처지에 있는 인물들만이 주인공이 될 수 있나 보다. 그렇겠지, 먹고 살 게 절로 주어지는 인생에 무슨 갈등이 있겠는가.

책 제목은 실려 있는 8편의 소설 중 하나와 같다. 나는 8편의 소설이 이 제목 아래에 놓이는 줄 알고 읽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편집 쪽의 기획에 따라 만들어진 책이라 주제는 통한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 특히나 사는 일이 만만치 않아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한 처지에 놓인 인물들의 이야기.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알아야 하지만, 알아야 한다는 게 또 답답하기 그지없는 노릇이라 소설 읽기는 고달프기 짝이 없다.

최근 답답하고 힘든 상황을 글로 묘사하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님을 경험했다. 기억을 떠올리는 것조차 싫어서 그저 잊어버리고만 싶은데 그걸 되살려 표현을 해야 한다니. 글이든 그림이든 현실을 그려 낸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작가의 숙명이라고 하더니, 그래서 이런 말이 나온 모양이다. 남의 이야기든 지어내는 이야기든 암울한 현실을 그려 내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작가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내가 읽지 못하는 점은 다른 문제이고.

우리의 내일은 괜찮은 걸까? 어제 염려하고 바꾸고자 했던 바는 바람대로 될까? 오늘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는 것일 테지. (y에서 옮김202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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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황홀 - 성석제의 음식 이야기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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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즐거워하면서 읽었다. 이렇게 유쾌한 마음으로 책을 읽은 기억이 근래에는 없었는데. 내가 왜 이 작가를 놓치고 있었던가, 진작 몰랐던 것이 안타깝기까지 했다.(이 작가의 글을 읽게 된 계기는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는 작가의 글 덕분이다. 학생들에게 더 읽게 할 자료를 찾다가 본 것인데, 정작 학생들에게 읽혀 보니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내게 더 유용한 책이 된 셈이다. 글을 통해 풍자라는 개념을 가르칠 때 정말 효과적인 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막상 학생들이 글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하니, 그 원인이 풍자에 대한 내 설명이 부족한 탓인지 작가의 글이 어려운 것인지 빨리 판단이 안 되기는 한다. 아무려나 유쾌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작가와 글을 발견한 기쁨은 크기만 하다. )

음식 이야기다. 먹는 이야기는 아무리 많이 읽어도 새롭고 즐겁다. 내가 먹는 일에 그리 매달리지는 않는 편인데, 글로 읽는 음식은 어찌 이리 맛있기만 한지 모르겠다. 어쩌면 입으로 못 느끼는 즐거움을 눈과 생각만으로 즐기는 맛이 더 큰 탓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작가의 냉소적(작가 스스로 표현한 성격임)인 성격과 말투와 행동도 재미있고 이를 구경하는 맛이 참 쏠쏠하다.(나는 전혀 그렇게 못 하고 사니까 더 그런 것일까.) 구경꾼으로서의 자질이 내 속에 많이 숨겨져 있는가 싶다.

갈수록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한 시대가 되고 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질수록 더 가치를 두게 되는 것 같다. 간단하게 먹어도 세 끼, 우아하게 먹어도 세 끼, 그 세 끼를 위해 우리가 바치는 모든 수고로움이 어떨 때는 눈물겨울 만큼 절실하다. 본의에 어긋나서 한 끼를 놓쳤을 때의 서러움이란, 정말 말할 필요도 없고.

술 이야기가 제법 많이 나온다. 맥주, 막걸리, 소주, 양주, 폭탄주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세계 곳곳에서 만든 추억들이 낯선 곳을 향한 동경과 함께 마음을 잡아 끈다. 나도 그렇게 해 봤으면 싶은 자그마한 소원으로. 술 이야기가 많아서 학생들에게 이 책을 통째로 권하지 못하겠다는 아쉬움도 좀 남고.

일상이 지루하고 팍팍해서 잠깐씩 웃고 싶다는 바람을 가진 분들께 권한다. 재미있을 것이다. (y에서 옮김201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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