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 튤립의 땅, 모든 자유가 당당한 나라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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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읽고 나면 그지없이 흐뭇해진다. 참 많은 것을 얻은 기분이 들도록 해 주는 책이다.(내가 얼마나 외웠느냐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읽는 도중이 무척 충만한 기분이었다는 뜻이니까.)-이 책을 권해 주신 이웃(껌정드레스)님께 또 감사의 인사 말씀을 남겨 두자. 이 책과 작가가 너무 마음에 들어 또 다른 책이 뭐 있나 검색해 보았더니 껌정드레스님이 이미 이 작가의 책을 섭렵해 놓았음을 발견했다는 것. 나도 따라 가리라. 


네덜란드라는 나라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에 읽었던 것인데, 네덜란드만 읽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유럽이라는 곳이 원래 그렇게 복잡하고 정신없는 곳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보면서 또 확인했다. 네덜란드만 읽고자 해도 결국 유럽을 읽게 되고 유럽 전부를 알아야만 이해가 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유럽의 역사를 읽는 것이 재미있어서 그게 다행이다 싶다. 읽어도 읽어도 이름들이 외워지지 않아 기억력의 한계 때문에 질릴만도 하건만, 나로서는 안 외워지는 바로 그 한계가 책을 읽는 재미를 유지시켜 주는 장치로 여겨지고 있으니.   


작가의 이력이 풍부하니 책을 읽는 재미도 풍부해진다. 경제학과 역사학을 모두 공부한 사람이 전해 주는 유럽의 역사. 자본주의의 성장과정과 한계를 전해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많이 알고 글도 잘 쓰고 독자에게 전해 주려는 의도도 성실하고, 기억하고 싶은 작가이다. 


전쟁. 전쟁은 우리를 죽이기도 하지만 살아남게도 한다, 거 참. 살아남겠다고 전쟁을 하자고 할 수는 없지만 전쟁에서 이기고 살아남기 위해 인간이 쌓아온 무수한 결과물들. 그 결과물이 바로 문화이고, 기술이고, 학문이겠지. 지구 위에서 우리는 결국 싸울 수밖에는 없는 것일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아, 사람이란......  (y에서 옮김20120428)



정치가 지루할수록 국민은 행복한 것이다. - P61

루돌프 사슴은 1939년에 시카고의 한 백화점이 만들어낸 캐릭터인데, 이것이 크게 성공을 거두어서 전세계에 퍼져나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원래의 크리스마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20세기 미국의 발명품이다. - P141

자본주의 질서는 결코 그런 것을 허용치 않는다. 부의 증대는 부의 집중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부유해지는 법은 없다. 부자들이 존재하려면 그 밑에 훨씬 더 많은 수의 빈민들이 있어야 한다. - P230

아무리 상대적으로 잘사는 사회라고 해도 빈민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는 결국 이들을 힘으로 억압하는 수밖에 없다. 원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사회 질서란 결국 ‘불평등의 유지‘인 것이다. 다수의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상태로 계속 존재하면서 열심히 일해야만 부자와 권력자들이 존립 가능하지 않겠는가. 이런 질서에 순응치 않는 빈민은 가혹하게 억눌러주어야 하는 법이다. - P233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은 어떤 기능을 하는가? 힘있는 자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법원은 부유한 시민들을 일시에 파산 상태에 밀어넣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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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여름 캐드펠 수사 시리즈 18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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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전쟁으로 살고 또 죽던 시절의 이야기. 다행히 지금의 우리에게는 닥치지 않은 일이지만 여전히 세상 어딘가에는 험난한 전쟁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상상도 하기 싫지만. 전쟁이란 내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또 이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어떤 하찮은 일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책을 읽고 몇 가지 다짐이라도 해야 하는 일과 같은. 


교회의 사절로 임무를 수행하는 마크 수사를 따라 웨일즈를 방문하게 된 캐드펠 수사. 두 사람의 여정 안에서 언제 어떤 사건이 일어날 것인가, 초조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읽어 나갔다. 그러다가 등장하는 덴마크인들. 이와 관련된 역사적 자료를 찾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설을 읽다가 말고 서유럽의 중세 시대 사정을 살폈다. 잉글랜드, 웨일즈, 바이킹, 덴마크 등등 서로 간의 관계를 들여다 보고 있자니 내가 이미 아는 것도 있고 모르는 것은 더 많고 알아갈수록 더 재미있고 읽고 싶은 책은 자꾸만 늘어나고. 아, 이게 독서의 한없는 즐거움이구나 여기면서. 


역사는 미루고 소설로 돌아왔다. 마크 수사와 캐드펠이 웨일스와 덴마크인들과의 전쟁에서 포로가 된다. 전쟁 포로라니, 당장 목숨에 위협을 받는 처지가 될 줄 알았는데 포로라고 해도 꽤나 정중한 대접을 받는 우리의 수사님들. 소설이라 그런 건가, 아니면 실제로 당시의 전쟁에서는 이처럼 인간적인 교류가 있었던 것일까? 전쟁의 풍속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과 끝내 모르고 말겠다는 의지가 계속 오간다. 전쟁이란 끔찍하다는 것 말고는 어떤 말로도 바람직하게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을.


배경이 전쟁이다 보니 독자의 입장에서는 다른 책보다 훨씬 긴장감을 느끼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형제 간의 전쟁으로 시작하여 국가 간의 전쟁으로 커지는 모습, 권력을 향한 욕망이 지긋지긋하게만 보인다. 내가 곧 죽더라도, 죽기 직전까지 전쟁을 해서 얻고 싶단 말이지? 그 사이사이에서 삶을 도모해야만 하는 종교인과 여자들의 운명까지. 


가 볼 계획이 없는 웨일즈와 아일랜드와 덴마크를 향한 동경심만 키운다. 정녕 멋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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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음식문화 유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3
맛시모 몬타나리 지음, 주경철 옮김 / 새물결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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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그 개인 혹은 그 문화 속 사람들의 삶의 내용을 알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먹을 거리라는 게 어느 날 하루 아침에 문득 결정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동물성이든 식물성이든 먹고 괜찮다는 혹은 몸에 더 좋다는 증거가 나올 때까지 때로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걸어야 할 실험이기도 했을 테니까.  


이 책은 유럽을 배경으로 음식과 역사와 문화를 서로 연결지어 살펴볼 수 있게 해 주는 책이다.(책의 가치에 대해 뭐라고 말할 입장은 못되고, 개인적으로 내게는 읽는 재미가 덜했다. 좀 지루했고, 연결시키기에도 귀찮았고, 읽다 보니 그래서 그랬나 보군, 그 이상의 반응이 생기지 않았던 탓이다. 아마 나는 이런 학술적인 내용보다 가볍고 일상적인 에피소드들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역사 자료로서의 정보는 넉넉하게 보인다. 배경지식으로 활용하기에 큰 도움이 될 듯하다. 어떻게 이런 자료를 다 거두었을까 그런 단순한 의문도 생겼고(물론 또 다른 책을 찾아보고 알아냈겠지만), 이렇게 정리를 해 놓았으니 다음 연구자는 수월하겠군 그런 참견하는 마음도 들고, 내가 먹는 것이 내 삶의 총체적인 문화로구나, 그렇다면 나는 참 빈한한 사람이구나 자각이 되고. 


책에는 저자가 맛시모 몬타나리로 나와 있고 주경철 교수가 옮긴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도 내가 착각했던 정보 중의 하나였나 보다. (y에서 옮김20130718)



자연의 사용은 문화적인 현상이며, 자연과 문화 사이의 대조는 실제의 대립이라기보다는 이데올로기적인 선택의 산물이다. - P66

물고기의 소비는 일련의 문화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서 이것이 진짜 ‘인기 있는’ 음식이 되지는 못했다. 보존 처리된 생선은 가난을 의미했다. 신선한 생선은 부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되, 원래 생선은 배를 채워주지 못하는 음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탐나는 부의 이미지는 못되었다. 생선은 부활절에 먹는 ‘가벼운’ 음식으로서, 일상적인 굶주림에 직면하지 않는 사람들만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음식이었다. - P132

풍요와 결핍의 대조는 생리적인 사실일 뿐 아니라 심리적인 사실이기도 하며, 또 구체적인 사회적 상황에 적응하면서 역사적으로 변화해왔다. 스스로에 대해 즐겁게 만족하는 행복한 빈곤 내지 검소함의 이미지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오직 일부 특권 계급 사람들에 한정된다. 사실 적게 먹는 것이 좋은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많이 먹는 사람(적어도 많이 먹을 수 있는 사람)만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 P154

서민들의 음식이 갈수록 집단화되고 더 단일화되는 방향으로 ‘단순화’ 되었다는 것은 과거에 비해 실질적으로 빈곤화되었음을 뜻한다. 우리는 이미 옥수수에 기반한 단일 음식 섭취가 일으킨 장기적인 영양결핍과 극적인 질병 상태에 대해 살펴본 바 있다. 또 아일랜드에서처럼 감자 단일경작이 일으키는 엄청난 비극도 보았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라고 해도 전체적으로 서민들의 식사 수준이 떨어지고 빈곤해졌다. - P228

음식의 과잉이 항구적이고 사회적으로 널리 퍼진 현상이 되었을 때 그것은 지금껏 기근의 공포가 드리워져 있던 문화에 대해 새롭고 어려운 문제를 제기한다. 기근의 공포는 여전히 사람들의 태도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비록 결핍과 낭비, 조심스러운 절약과 거친 탐닉 사이의 전통적인 정신분열은 새로운 상황과 분명히 안 맞아떨어지긴 하지만 말이다. 풍요가 일상적인 실제 상황이 되어 있는 오늘날, 과잉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은 수천년의 기근이 각인되어 있는 우리의 몸과 마음에 충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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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모노레일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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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상상력이 기발하다고 느끼는 것이 내 정신 나이를 증명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1971년생이라니 작가의 나이도 이제 만만치 않아 보이건만, 이런 상상력은 스무 살 무렵에 발휘하는 것인 줄로만 알았으니. 나이 들어가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노년도 거부감 없이 맞이하겠다고 하면서도 나는 이렇게 이율배반적인 느낌에 잡힌다.(이 소설의 상상력에 멈칫 하는 스스로에게 도리어 멈칫 하는 낯선 반응)

잘 읽힌다. 재미도 있었다. 다만 후반부로 가면서 고갑수 쪽으로 쏠린 갈등 해결 방안이 거슬렸다. 내가 거슬림을 느낀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겠으나, 발랄함이라는 분위기가 생뚱맞음으로 바뀌어서 다소 실망했다고나 할까. 모노의 입장에서 마무리되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 남겨 놓고.

이 작가의 산문집을 한 권 더 봐야겠다. 소설보다 산문을 보고 싶다는 것은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남아 있다는 뜻일 테고, 산문으로 인간성을 짐작한 후에 긍정적이라면 다시 그의 소설을 찾게 되겠지.(이것도 내가 나이 들었다는 증거일까, 소설을 소설로 보기 전에 작가의 인간성 판단에 근거해서 읽겠다고 생각하는 태도. 흐흐흐, 나는 어쩔 수 없는 기성세대가 되었군.)

개인적으로 게임을 즐기지 않는 편이라 요즘의 게임 세대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다. 다른 사람과 대놓고 겨룬다는 게 영 못마땅한 나로서는(은근히 숨기면서 겨루는 것은 좋아하는 나, 도대체 무슨 내숭인가.) 게임을 소재로 소설을 펼쳐 놓고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그럴 듯하기도 했다. 그래서 게임 좋아하는 딸에게 이 소설을 권하기는 했는데, 괜히 내가 궁금하다. 뭐라고 반응할지.

세계 여행 게임과 세계 여행 소설과 직접적인 세계 여행과 도피적인 삶. 우리네 삶의 범위가 확실히 지구 차원으로 넓어진 것은 맞겠다. 다만 이렇게 넓어졌으면 더 좋다고 더 만족스럽다고 해야 할 텐데, 상대적인 박탈감은 더 커지고 이로 인한 열등감도 많은 사람을 슬프게 한다. 사는 게 원래 만족스럽지 못한 것일까. (y에서 옮김201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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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는 24시
김초엽 외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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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우를 만나보기 드문데 이 책에 실린 작가의 이름을 다 알고 있다. 내가 즐겨 읽는 글을 쓴 작가가 그렇지 않은 작가보다 많다. 기대가 되었고 살짝 흥분도 했다. 한꺼번에 너무 즐거워지면 어떻게 하지? 한 편씩 천천히 읽어야지, 아끼며 읽어야지...

그러나, 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어느 작가의 글도, 어느 에피소드도, 어떤 SF 장치도. 이러기도 쉽지 않은데 골고루 아쉬웠다. 한 편에 하나의 요소 이상으로. 글은 잘 읽히지 않았고 내 눈은 더듬거렸고 인물들은 어중간했으며 주제는 뻔했다. 차라리 이 불만 요소들이 작품의 한 쪽으로 몰렸더라면, 얻을 것은 얻고 버릴 것은 버릴 수 있었으련만. 

즐거움, 놀이, SF, 가정, 소설이 공통 요소들이다. 작가들은 저마다 제 글 안에서 가장 잘 놀아 보겠노라고 장담하고 있는데 나는 제대로 못 놀았다. 작가의 다른 책에서 이미 읽은 작품도 있었는데 이마저도 섭섭했다.(배명훈-수요 곡선의 수호자, 김금희-첫눈으로) 기억이 나는 것은 기억이 나서, 기억이 안 나는 것은 안 나서. 

아마도 내가 놀면서 취하려는 것과 작가들이 놀이를 통해 얻는 즐거움의 영역이 다른 것일 테지. 우리는 이 대목에서 어울리지 못한 것이겠지. 어느 한쪽의 모자란 점 때문이라고 하기보다는 각자 좋아하는 놀이의 질감이 달랐던 탓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의 모든 것을 좋아할 수는 없는 것처럼. 그렇게 되지도 않고. 

아쉬웠지만 이 작가들의 다른 글을 계속 읽을 예정이니까 내 근본 취향이 바뀐 것은 아니다. 이것은 맞다. (y에서 옮김2025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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