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겨울 2023 소설 보다
김기태.성해나.예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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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설 속 상황의 본질이 갈등이라서 읽을 때마다 그러려니 하지만 그래도 늘 고달프다. 이런 기분을 얻자고 소설을 읽는 것은 아닌데 주제의 무게가 고달픈 쪽으로 더 기울면 회의가 생기곤 한다. 


세 편의 소설. 작품이 있고 작가와의 인터뷰가 있고. 작가가 작품만으로 다하지 못한 말-혹은 작가는 충분히 말했으나 그래도 독자를 더 돕겠다는 의도로-을 인터뷰로 보충하는 구성인데 이번 호에서는 반가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이 작품을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작가로서 어떤 바람을 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은 건지 등등에 대해 내놓은 말들이 예전 책들에 비해 썩 가까이 다가온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작가 쪽으로 다가선 것일 수도 있고.


김기태의 ‘보편 교양’은 꽤 껄끄러운 맛으로 읽었다. 배경이 낯설지 않아서이다. 곽과 같은 선생님, 은재와 같은 학생. 그리고 인문계 고등학교의 교실과 수업. 말하고 싶은 것보다 말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 더 강해서 소설은 내내 불편했다. 어느 누구도 살기 쉬운 게 아니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는 게 속상하기도 했고. 우리는 어쩌면 앞으로도 오랜 시간 이 수레바퀴 아래를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를 일이다.


성해나의 ‘혼모노’. 제목에 쓰인 말이 생소해서 찾아봐야 했다. 인터뷰에서 작가가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기는 한데 이 말을 이렇게 알게 된다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무속이라는 배경과 소재 역시 내가 즐겨 읽는 분야가 아니라 글을 읽는 데에 성실하지 못했다. 


예소연의 ‘우리는 계절마다’도 읽기 편한 소설은 아니었다. 폭력과 불행과 분노를 겪으며 자라는 청소년의 이야기라니. 현실에 이런 상황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소설로 확인하는 일이 달갑지는 않다. 이러다가 우리의 현대 소설 읽기를 고행으로 삼게 되는 건 아닐지. 


금방 읽을 수 있어도 금방 내려놓을 수 없는 무거운 독후감. 나는 그래도 다음 호를 기다린다. 새봄이 된다고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y에서 옮김202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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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가을 2023 소설 보다
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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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번 가을호의 소설 세 편을 읽고 보니 입맛이 쓰다. 제목부터 쓴 맛이 느껴졌는데 과연 그러하였다. 그런가, 쓰지 않을 수가 없는가, 세상이 쓴 맛 투성이였던가, 쓴 맛을 빼고는 글을 쓸 수 없는 시절인가, 현실도 쓴 맛인데 소설에서도 같아야 아니 더하고 마는가…… 


쓴 맛 소설이라고 해서 다 거북한 건 아닌데 이번 호에서는 산뜻한 글을 못 만났다. 글 때문인지 읽는 나 때문인지. 대체로는 현실에 불만을 갖고 있는 내 탓으로 돌리는 편인데 이번 호는 헷갈린다. 읽는 마음이 이렇게 고단해서야.


실제 삶에서는 도통 보이지 않는 희망을 소설의 마무리에서 얼핏 만날 때가 있다. 오죽하면 소설을 이렇게 맺었겠나 하다가도 소설이니까 이렇게라도 맺어야지 싶어 끄덕여지는데 요즘은 이것마저 시비를 걸게 된다. 소설에서라도 희망을 가지면 안 될 듯한 날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탓이다. 가장 먼저는 이 시대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내게 책임이 있는 것이니 누구를 원망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빚을 반려로 삼아야 하다니. 내일을 기대해서는 안 되는 날을 견디고 있어야 하다니. 여성과 엄마에게서 기쁨보다 슬픔이 먼저 다가오는 사정이라니. 정녕 나아질까, 우리는 앞으로 좀더 괜찮게 살 수 있을까, 아니 지금이 가장 괜찮은 때인 것일까, 어떤 상황에서도 삶이 죽음보다는 낫다는 것을 계속 믿을 수 있을까. 


다가오는 겨울이 걱정된다. (y에서 옮김2023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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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여애반다라 문학과지성 시인선 421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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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가 언제적 노래던가. 신라의 향가 중 하나다. 향찰로 적혔다는 신라 노래. 우리 글자가 없어서 한자를 이용해 우리말을 나타내려고 했던 갸륵한 의도로 기록된 노래. 시인은 풍요의 한 행으로 한 권의 시집을 꾸렸다. 풍요를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이제 이 시집은 서러움에 젖은 영혼들을 불러 모아 달래려 할 것이다.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의 몫일 테고.


'정선' 한 편을 얻는다. 한 권의 시집에서 온전한 한 편의 시를 얻었다면 이건 다행인가 아닌가.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기로 하고, 다행으로 여기려고 한다. 이마저 얻지 못했다면 얼마나 서운했을까. 이 시를 옮겨 쓰는 동안 정선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얼마나 했던지. 정선은 이제 이 시인에게 이름 불린 도시로, 이 시인으로 인해 시에 남은 도시가 되었다. 나는 이것도 좀 부러웠다. 


그리고 남은 시들은 섭섭하게도 내 취향에서 멀었다. 이성복의 시들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어서 이 시집도 기대하고 읽었는데. 이유를 또 따져 본다. 내가 어떤 부분에서 거북했는지. 시어들 때문이다. 내가 그다지 아끼지 않는 시어들, 따라 써 보고 싶지 않은 구절들, 그리고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거친 이미지들. 내가 시에 대해 편협된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이제 와서 내가 좋아하는 시의 분위기를 놓치거나 바꾸고 싶지는 않으니까.   


시와 시어에 대해서만큼은 나만의 아름다운 기준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확실하게 느낀다. (y에서 옮김2018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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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매트 위의 명상 - 요가적인 삶에 관한 365일 명상
롤프 게이츠 지음, 카트리나 케니슨 엮음, 김재민 외 옮김 / 침묵의향기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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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타이핑 하려다가 포기했다. 읽다 보니 이러다가는 글 전부를 옮겨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렇게도 만나는구나, 요가와 관련된 자료를 찾다가 드디어는. 아무렴, 이래야 보람도 느끼지, 그 동안의 방황이 헛된 탐색이 아니었음을.

책도 독자와의 궁합이 있다고 했던가. 어떤 이에게 절실하게 닿았다고 해도 내게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다. 내게 절실하다고 다른 이에게까지 그러하지는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이 책 안의 글은, 내게 마치 종교처럼 온다. 오고 있다. 그렇다고 이대로 종교인이 되겠다는 것은 아니고. 그저 끄덕이며 끄덕이며 읽고 있는 중이다. 요가하는 마음이 이러해야 하는 것을.

요가의 근원에 대해 알고 싶었다. 이를테면 어떤 이론 같은 게 있는지, 사상이라든가 지침이라든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고 싶어 구한 책인데 내 바람에 딱 맞는 책이라는 생각으로 읽고 있다. 다 읽은 게 아니라 1부만 읽었다. 그리고 쓴다. 다 읽었다고 덮을 날이 없을 듯해서다.

책은 365일을 나누어 놓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1년 동안 하루에 한 편씩. 책을 받고 이렇게 읽으려고 했다. 이틀째 포기했다. 이것조차 요가의 정신에 반하는 어떤 욕망이라고 욕심이라고 나무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았지만 계속 읽었다. 읽고 싶었다. 내게는 인내심이 없었고 호기심이 넘쳤고 더 깊이 더 빨리 들어서고 싶다는 실천 의지만 생생했다. 그나마 1부에서 멈추고 이 글을 쓰고 있는 건데 더 읽고 싶을 뿐이다.

글을 계속 읽고 싶은 마음은 요가에 이대로 더 다가서야겠다는 마음과도 통한다. 그동안 요가를 하면서 내가 했던 생각이나 느꼈던 감정들이 조금 더 환하게 떠오른다. 자칫 앞서 나가려고 했던 조급함과 자만도 떠오른다. 그래, 그래서는 안 되었던 거지. 요가를 하면서 경쟁을 하려고 했다니. 적어도 그건 아니었던 거다.

요가의 동작도 명상도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새롭게 열리는 기분이 든다. 요가 책을 통해 이런 전환점을 느끼기는 처음이다. 좋은 글, 그런데 권할 수가 없다. 종교처럼 여겨진다는 게 부담이 되는 탓이다. (y에서 옮김2023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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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여름 2023 소설 보다
공현진.김기태.하가람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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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소설 세 편. 2022년과 2023년에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른바 신인 작가들의 작품이다. 이들이 소설을 어떻게 써 나가려고 하는지, 이를 알고 싶은 나에게는 아주 작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다. 잘 만난다면 나로서는 순수한 기쁨 하나를 챙기게 될 테니까.

세 편 중 공현진의 글(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에 끌렸다. 처음 읽을 때 인상적이었고 남은 두 편을 다 읽은 뒤에도 첫글만 나를 잡아당겼다. 등장인물의 힘이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웅이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닌 이가 소설의 주인공일 경우 대체로 읽는 마음이 고단하게 마련이다. 현실과의 대결 상태에서 번번이 지는 쪽에 처해 있기 일쑤이므로. 이들이 지는 원인이나 지는 모습이나 지고 난 후의 절망 등은 소설에서 꽤나 자주 다루고 있는 편이고 이런 내용을 나는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 이 소설처럼 읽는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게 되면 작가의 이름을 한번 더 새긴다. 기억에 남아 있기를 바라면서. 다음에 나오는 글도 반갑게 읽게 되기를 기다리면서.

단편소설은, 소설이 쓰인 시대를 가장 가깝게 느끼게 해 준다고 생각한다. 해당 시대의 문제, 해당 시대의 성과, 해당 시대의 삶과 죽음을 작가의 주된 관심과 연결시켜 있을 법한 이야기로 엮어 놓고 있다고. 그러니 지금 나오는 소설에서는 지금 우리가 느끼는 각종 사회 문제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지독하게 답답하고 막막하게도.

작가들은 사는 게 얼마나 불편하고 얼마나 조급할까. 요즘처럼 곳곳에서 사람 사는 어려움의 증거들이 터져 나오고 있을 때 작가들이 쓰고 싶다는 의욕은 사명감에 더 커질까 절망으로 인해 줄어들까. 괜히 쓸데없는 궁금증만 돋는 더운 날이다.
(y에서 옮김20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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