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정원 일의 즐거움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이레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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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원을 갖고 꽃과 나무를 키우는 일은 사람이 자연을 소유하는 것일까 아니면 사람이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일까. 아직까지 꽃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키워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정원을 가꾸는 기쁨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흙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이 다른 사람의 말로 들을 때만 낭만적이겠거니 하고 여길 뿐, 정작 내가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은 아직 들지 않는 까닭이다. 그런데 이제 나에게도 정원을 가꾸어야 할 때가 다가왔다. 마당이 넓은 시골로 이사를 가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꽃과 나무를 좋아하기는 한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 생명을 키운다는 것이 어디 웬만큼 어려운 일이랴.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라고 믿고 있는 나로서는 좀처럼 마당에 꽃이나 나무를 심고 키우는 일이 내키지 않는 상태이지만, 이제는 비워 둔 마당 한쪽에서부터 생명을 피워올려야 하게 된 처지에 이른 것이다. 그게 상추든, 고추든, 금잔화든, 봉숭아든. 이 책을 쓴 헤세는 참 많은 꽃과 나무를 키웠다. 그 하나하나에 대한 헤세의 애정도 따사롭기 그지 없다. 나도 이렇게 될 수 있을까.

시를 쓰는 헤세, 나무에 물을 주는 헤세, 자신이 키우는 꽃을 그림으로 그리는 헤세. 그 동안 소설로만 알아온 헤세라는 작가에 대해 새로운 생각이 든다. 이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토록 맑은 소설을 쓸 수 있었구나. 학생 때 읽었던, 지금은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는 헤세의 작품들에서 느낄 수 있었던 감동이 여운으로 남아 이 책의 곳곳에서 새로 배어 나오는 느낌이다.

어느 새 나도 어른이 된 모양이다. 나무와 꽃을 가꾸는 일이 옛날처럼 마냥 두렵고 귀찮지만은 않다. 이러다가 보면 나무와 꽃들에 깃들여 사는 벌레들도 어여쁘게 보이게 될까, 헤세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사를 하고 봄이 되면 이 책을 다시 펼쳐보게 될 것만 같다. (y에서 옮김20020114)

[인상 깊은 구절]
아주 이따금, 씨앗을 뿌리고 수확하는 어느 한 순간, 땅 위의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유독 우리 인간만이 이 같은 사물의 순환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사물의 불멸성에 만족하지 못하고, 한 번뿐인 인생인 양 자기만의 것, 별나고 특별한 것을 소유하는 인간의 의지가 기이하게만 여겨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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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지 가드너 1
마일로 지음 / 북폴리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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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에 대한 관심을 느즈막히 갖게 되면서 이 자료 저 자료 찾아보고 있던 중에 만난 반가운 책이다. 만화책이라 더더욱 내게 안성맞춤인 책. 다 자란 식물들의 그림이 아주 쪼끔 무서운 듯 싶지만, 아기 식물들은 또 예쁘게 보여서 좋다. 4권을 먼저 보고 첫권으로 돌아와 마주한 건데 남은 2권과 3권도 구해 봐야겠다 싶으니 이 정도면 잘 만난 셈이다.

다른 책에서는 사진과 글로만 얻을 수 있었던 정보를, 이 책을 통해 약간의 스토리와 약간의 엄살과 약간의 허세가 섞인 만화로 접하다 보니 매우 흥미롭다. 지금의 내 수준에 도움이 많이 될 내용들이다. 특히 벌레를 처치하는 방법이라든가 다육이를 관리하는 방법, 물 조절을 하는 방법 등에 대해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재미도 있고 눈에도 쏙쏙 들어온다. 바로바로 외우지 못해서 계속 들여다 봐야 될 듯하기는 하지만 이것대로 또 괜찮겠다.

식물을 투자 대상으로 삼아 키우는 이야기도 별스럽지만 이해할 만하다. 평범하지 않고 흔하지도 않은 무늬를 가진 식물들이 비싸게 거래되다 보니 이런 쪽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인데 나야 가장 평범한 식물이 가장 예뻐 보이니 달리 걱정할 일은 안 생길 것 같다. 너무너무 흔하고 평범하고 튼튼하다는 식물조차 가끔 잃고 마는 일이 있어 나로서는 이것만이 안타까울 노릇이고.

제목처럼 미칠 정도가 아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래저래 내 식대로 키우고 번식도 시켜 보면서 더불어 살아가면 될 일이다. 다음 권에서는 어떤 경험담을 접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y에서 옮김202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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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문자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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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의도가 없는 일이란 없겠다. 좋은 일을 하든 그렇지 않은 일을 하든 뭔가 의도나 동기가 있게 되어 있다. 특히 나쁜 일은 더 그럴 것 같다. 좋은 일이야 '그저 좋으리까'라는 이유에도 납득이 될 수 있겠지만 나쁜 일이라면 납득할 수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가 아니라 자신에게 말이다. 하지 않아야 할 일은 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게다가 위험이나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저지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게 무섭고 대단한 일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답게 양심이라는 것에 대해 적당한 무게의 책무감을 갖게 한다. 주변의 상황에 신경쓰지 않을 만큼의 집중도를 취할 만큼 재미도 있다. 사람의 의도라는 것, 생각보다는 어둡고 깊은 것일 수도 있다. 모르는 척 지나가는 때가 일상이어서 못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고.

파주에서 이 책을 사고 출판단지 '행간과 여백'이라는 카페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리뷰를 쓴다. (y에서 옮김2015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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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 감정의 연대기 1929~1939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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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이 책을 읽는 일에 실패했다. 다 못 읽었고 제대로 못 읽었고 앞으로도 안 읽게 될 것 같은 책. 오랜 나의 책친구로부터 소개받은 책인데 어긋났다. 이럴 수도 있지, 하지만 아쉬운데, 아쉬움의 대상이 책이 아니라 책친구의 의도에 이르지 못한 점이 문제이지만.(소개를 못 받게 될까 봐.)


책의 시작은 신선해서 괜찮았다. 자잘한 에피소드를 길지 않은 분량으로 소개해 주는 듯한 구성. 이러다가 언제 본문으로 들어가나? 뒤쪽을 넘겨 보니 같은 형식이다. 흠, 이런 방식으로 계속 전개해 나간다고? 읽다 보니 앞에 언급했던 인물의 새로운 연애 사정이 다시 나온다. 끊어 읽기가 되는 것인가? 내 기억력은 어떻게 하지? 점점 헷갈린다. 앞에 나왔던 그 사람의 사정은 무엇이었지? 누가 누구와 연인이었던 거지? 에잇...


책 옆에 공책이나 메모지를 두고 한 사람의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읽어야 할 글, 사람이 바뀌면 메모지도 바꿔 가면서 다시 정리하며 읽으면 좋을 글, 끝도 없이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개별적인 관심을 갖고 그들의 미친 사랑을 신기하게 여기며 읽으면 재미있을 글. 나는 이 쪽이 아니었던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사람들은 아직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을 모르고 살았겠지만, 증오의 시대였겠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사랑이나 실컷 하고 살자? 이 사랑이 남들 보기에 미친 사랑 같을지라도? 


그래서 서서히 읽기를 포기했다. 서서히라는 말은 책장을 천천히 끝까지 넘겨 보았다는 것. 넘기다가 아는 이름이 나오면 잠시 들여다보고 금방 다시 잊고. 이렇게 하면 읽은 것일까, 안 읽은 것일까, 나는 이 글을 써도 되는 것일까?


어쩌면 내가 좀 더 젊었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관심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독서 마인드맵을 한창 활용하던 시기에 이 책을 만났더라면 거대한 인물 지도처럼 만들어 볼 수도 있었겠는데. 그들의 이름과 그들의 사랑과 그들의 작품까지 다 정리되어 있는. 지금은 생각만으로도 딱 귀찮아져서.


취향과 정서에 맞는 독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겠다. 우리는 이렇게 다르게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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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3 1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8-23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클릭, 서양미술사 - 동굴벽화에서 개념미술까지 ㅣ 클릭 시리즈
캐롤 스트릭랜드 지음, 김호경 옮김 / 예경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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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에 선물받은 책이다. 받을 때도 기분이 좋았고 들여다볼 때도 기분이 좋았는데 끝내 정독을 하지는 못했다. 이를테면 발췌독 정도였다고 해야 하나. 시작은 근엄하였으나 몇 장 넘기지 못해서 긴장은 풀어지고 그 다음부터는 설렁설렁 넘기다가 아는 이름이나 그림이나 사진 앞에서 망설였다가, 그래서 결국은 아는 것만 다시 보고 모르는 것들은 여전히 모르는 채로 남게 되고 마는 독서. 이렇게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구나 하면서 보았다. 이만큼 본 것만 해도 어딘가.


그림, 사진, 건축.. 들을 모른다. 많이 모른다. 어린 한때는 내 생의 숙제나 의무처럼 여기고 익혀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시작부터 만만치 않은 부담감을 안고 있었다 보니 즐겨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소질도 딱히 없었던 것이리라. 미술관도 박물관도, 그러니 나로서는 심심한 공간이었다고 할 수밖에. 지금은 인정한다. 내게는 이 방면으로의 관심이나 호기심이 보통의 수준보다 훨씬 적다는 것을. 이게 딱히 부끄럽다거나 민망하지는 않고 좀 섭섭하고 쓸쓸하다는 느낌은 있다. 알았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정도로. 


그래서 이 책도 한참이나 내 옆에서 닫힌 채로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펼쳐 보아야 할 텐데, 펼쳐 보는 게 좋을 텐데,... 마음은 열리지 않고 있는데 의지만 매달아 둔 상태로. 마침내 오늘 아침 천천히 넘겨 보았다. 이제는 가벼운 인상기 정도로만 남겨도 좋겠다는 생각에.    


제목이 알려주듯 서양 미술의 역사책이다. 인류 역사가 시작되었으리라 보는 시절부터 남겨져 있는 작품들을 통해 그 가치를 헤아려볼 수 있게 해 준다. 다만 용어 정리부터 각 작품의 특징까지 비교적 짧은 내용으로 요약되어 있다 보니 관심이 생겨서 조금이라도 자세한 사정을 알아보고 싶어지면 다른 자료를 더 찾아 보아야 할 듯하다. 어쩌면 이런 길을 열어 주려는 의도로 쓰여진 책일지도 모르겠다. 이 한 권으로 더 많은 자료를 찾는 길을 발견해 보세요~~ 하듯.


서양 미술은 기독교 사상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또한 역사와 함께 한 과정이었으니 이해 못할 바는 아니고. 다만 종교에 대한 내 관심이 지극히 적다 보니 대부분의 작품들도 와 닿지 않는다는 한계를 느낀다.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다만 살면서 미술이나 음악의 도움으로 누추한 현실을 견디는 힘을 얻는다는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는 계속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우리 옆에 미술이나 음악이나 체육이 없다면, 아, 그건 좀 많이 힘들 것 같으니까.      


나도 분명히 좋아하는 그림이나 미술 영역이 있을 텐데, 뭘까, 그걸 알면 조금 더 신나게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싶건만. (y에서 옮김2022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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