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실에 있어요
아오야마 미치코 지음, 박우주 옮김 / 달로와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이 현실에서 이루어졌으면 하는 사항을 만족스럽게 그려 내는 장르라고 볼 때 이 소설은 이 조건에 참 안성맞춤이다. 이렇게 되었으면, 이런 도서실이 있고 이런 사서가 있고 이렇게 도서실을 찾는 이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 주변에 이미 있는데 내가 미처 모르고 있는 것일 수도.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사는 것을 고단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고 고맙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똑같은 조건이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것도 안다. 이왕이면 좋은 마음으로 좋은 생각으로 받아들이는 게 낫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이 또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 현재 직장에 다니고 있어도 마음에 차지 않아 방황할 수 있고,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마땅한 일을 못 만났다고 한탄할 수도 있고, 퇴직을 해서 더 이상 일을 하지 말라는데도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몰라 번민할 수도 있고. 그래서 인생에 답이 없다고 하는 것이겠지. 


소설은 다섯 명의 인물이 사서의 도움으로 삶의 새로운 길을 찾는 과정을 보여 준다. 따지고 보면 특별한 방법은 아니다. 그저 내 마음을 좀더 분명하게 들여다보고 확인하고 챙기는 것일 뿐. 이 과정에 사서가 권한 책 한 권이 큰 역할을 맡고 있고. 그러니 사서가 하는 말도 맞다. 책은 읽는 이의 태도에 따라 더 가까이 더 절대적으로 다가서게 되어 있는 존재라는 것.   


누군가에게 책을 권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할 수 있는 일인지 알았다. 무심코 전하는 메시지가 누군가의 삶의 방향을 가리키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는 일이니까. 책도, 책을 권하는 일도, 책을 읽는 일도, 참 다 좋다. 점점 추워지는 이 계절, 마음이 자꾸만 쓸쓸해지는 이들에게 권할 만하다. 자신만의 책을 찾을 수 있게 되리라고. (y에서 옮김202212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지상의 노래 - 2013년 제4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이승우 지음 / 민음사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경험은 참 놀라운 과정이다. 직접 해 보는 일이든 간접으로 해 보는 일이든. 나처럼 소심하고 겁도 많고 간도 작은 처지에서는 직접 경험보다 간접 경험에서 더 큰 가치를 얻는 일이 많은 편인데, 간접 경험의 대표인 소설읽기는 내게 퍽 중요하다. 특히 이승우의 이번 작품과 같은 경우에는 더더욱. 


내가 가진 종교가 없고, 종교를 가진 이들이 저지르는 잘못된 행태에 오랜 시간 동안 질려 있는 나로서는 종교를 소재로 삼고 있는 글에 너그러운 적이 별로 없다. 일부러라도 외면하곤 했는데 앞서 읽은 이 작가의 글에서는 그런 거부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신기하다, 신기하다 여기면서 이 책도 읽었다. 기대했던 내로 이 글에서도 나를 거슬리게 하는 대목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종교가 인간의 정신에 깃드는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종교조차 정치의 희생이 되는 과정을 확인하는 기회를 얻었다. 


그런가, 그랬던가, 종교가 문제가 아니라 정치가 문제였던가. 어쩌면 종교를 가진 이들 중 일부가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니라 종교를 가진 이들을 이용한 정치인의 잘못이었던가. 정치의 색깔을 완벽하게 숨기고 종교쪽으로만 잘못을 돌릴 줄 아는 교활한 정치인들의 책략으로 인한 희생 같은, 종교인 스스로도 모른 채 속히면서 희생되고 말았던. 그렇다면 이제까지 나도 잘못 보고 잘못 생각하고 잘못 판단해 온 것이라는 뜻이 되는데. 아, 무슨 소설이 내 정신 체계를 이토록 뿌리부터 흔들어 놓고 있단 말인지. 그럼에도 원망스러움보다 다행스러움이, 고마움이 더 솟고 있으니.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겪어 볼 수 없었을 흔들림이었을 것이고. 


글의 화자가 여럿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식은 아니나 인물들은 이어져 있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 각자는 이어져 있는 줄도 모른 채 이어져 있는 것이 우리네 사는 형편과 닮아 있다. 미처 모르고 있을 뿐 나와 연결된 이들과의 관계도 방사선처럼 펼쳐져 있는 것과 같이.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벗기고 나면 이 연결고리는 더 다양해지고 복잡해질 것이고. 하여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고받고 사는 것일 테니 어떤 인연은 죽음을 넘어서까지 이어져 있겠지. 그러니 누군가에게 마음의 한을 남기는 잘못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저지르면 안 되는 거다. 어떤 경우에라도.  


소설이 주는 교훈은 늘 아프다는 생각을 한다. 잘 사는 게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 건지, 좋은 사람으로 살다 떠나는 게 왜 꼭 해내야 할 생의 몫인지, 소설만큼 절절하게 겪게 하는 경험도 없으리라. 춥고 스산한 이 계절에, 추모도 제대로 못 받은 채 누군가는 이승을 떠나고 있는데, 이 소설은 이렇게 나를 떨게 만들고 있다. (y에서 옮김202111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요즘 사는 맛 2 - 오늘도 열심히 살아낸 나를 위한 만찬 ㅣ 요즘 사는 맛 2
고수리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먹는 이야기를 쓴 글을 찾다가 만난 책이다. 열두 명의 작가들이 쓴 열두 가지의 맛 이야기. 눈으로 먼저 맛을 읽고 입으로 맛을 느낄 수 있는 음식 정보를 얻으려는 의도를 품고 읽었으나 앞쪽만 성공하고 뒤쪽은 성공하지 못했다. 읽는 내내 달달하고 배불렀으나 읽는 도중 단 한 가지도 먹고 싶다거나 먹겠다거나 그래서 찾아 먹은 것은 없었으니. 


그래도 재미있었다. 얼마나 괜찮았는가 하면 몇몇 작가의 다른 책도 읽고 싶어 도서관 사이트에서 검색해 놓았다. 대출해서 봐야지, 보면서 또 눈으로 먹어야지, 상상으로 먹으면서 행복을 느껴야지, 배부름 상태를 유지해 보아야지...... 읽고 싶은 책을 가상으로 또 현실로 쌓아두는 일 또한 얼마나 흐뭇한지.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가는 가수 스탠딩 에그. 흠, 이런 생각을 하고 이렇게 먹으면서 노래를 만들고 노래를 하시는군요. 정겹게 듣고 있던 노래들이 더 달콤해지게 생겼다. 


책은 두 권으로 나와 있고 내가 읽은 책은 두 번째 나온 책이다. 처음에 나온 책을 볼까 말까 망설이는 중이고 먹을까 말까 만큼이나 내게는 머뭇거리는 일이 된다.


예전과 다르게 지금의 내 삶은 점점 더 먹는 쪽으로만 치우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먹으면서 다음에 먹을 것을 고민하고, 어떻게 먹을까와 어디에서 먹을까를 궁리하고, 누구와 언제 만나 무엇을 먹을까를 의논하게 되고, 먹고 먹고 또 먹으면서 이게 사는 일의 전부가 아닌가 물으면서.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실제 먹는 일 말고 사는 일에 무엇이 더 있나 싶기도 하고. 그러니 잘 먹고 잘 살자 다짐하게 되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피라네시
수잔나 클라크 지음, 김해온 옮김 / 흐름출판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환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환상문학, 환상영화, 환상 어쩌고저쩌고. 말도 안 되는 환상에 빠져서 헛된 짓이나 하는 일이라고 여겨 왔다. 내가 이렇게 여기기에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어서 좀 많이 쑥스러운 기분이기는 하지만. 이 책이 이랬던 내 취향을 바꿔 놓는다. 그렇다면 이전에 내가 본 작품들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지. 혹은 내가 바뀌었거나.

이 사이트에서 필사 이벤트를 열고 있다. 나는 이 책으로 정하여 참여했고, 필사할 10군데를 집중해서 찾고 적었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요즘 필사라는 작업은 일부러라도 하지 않으면 하지 않게 되는, 꼭 해야 할 때만 하게 되는 일이라 내게도 흥미로웠다. 손으로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 창작이 아니라 단순히 보고 쓰고 그리는 일마저도 아무 때나 하지 않는다. 좋은 현상인 것만은 아닌 것 같지만...

오로지 상상 속 공간을 마련해 보라고 하면 사람들은 어떤 곳을 만들어 낼까? 나는 어떤 공간을 꾸며 낼 수 있을까?(지금 상태의 의식으로는 아무 공간도 만들어 내지 못할 듯하지만) 상상이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자주 잊고 산다. 상상도 창조도 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 직접적인 경험이든 간접적인 경험이든 보고 겪은 바가 있어야 확장되고 심화된다. 거기에 결핍까지 느껴 본 사람이라면 더더욱 잘 할 수 있지 않을까?(난 결핍은 충분하게 가진 듯한데 뭐가 모자라나? 무엇이 모자라서 상상이 잘 안 되는 것일까?)

피라네시는 작가의 상상 속 공간에 사는 사람의 이름이다. 상상이든 다른 차원이든 내가 또 다른 나로 살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는 일은 멋지겠다. 두 공간을 왔다갔다, 오가는 것까지 인식할 수 있다면 더더욱. 지금 이곳의 현실이 고달프고 힘겨울수록 상상 속 내가 사는 곳은 현실과 반대의 모습을 보여 줄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제야 해보는 생각인데 공간이 달라진다고 해도, 상상 속이라고 해도, 그곳이 낙원이라는 법은 없을 테니까. 어쩌면 거기도 거기대로 살기에 마냥 쉽지만은 않은 곳이지 않을까. 산다는 것 자체가 그러하니까. 삶이 만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많은 방과 문과 벽들, 많은 조각상들, 계속 날아오는 새들, 넘쳤다가 빠졌다가 하는 바닷물과 그 안에 살고 있는 생물들. 글을 읽은 것만으로 내가 세운 공간이 작가가 그려 보이고자 한 공간과 얼마나 가까운지는 모르겠다. 굳이 같아야 할 필요는 없을 테고, 내가 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에, 피라네시를 사귀는 데에 도움이 되었을 만큼 제대로 세웠다면 좋겠다. 나로서는 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의 색다른 공간은 아니고, 이런 공간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 것만으로도 충분하니.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조각상들을 이제는 어떻게 마주하나 약간 긴장이 된다. 딱딱한 조각상이 우리 자신의 다른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상상만으로 떨리는 기분이다. (y에서 옮김202408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성에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그랬다. 내가 이제까기 찾고 기다리고 헤매 왔던 것이 바로 이 작가가 말하는 환상이었다. 나는 그게 현실이 되어 줄 것을 기대하고 살아왔는데 현실이 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내 마음이 어찌 이토록 편안해지는 것인지.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일이 있을까 싶기는 했다.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나는 옛사랑도 그러려니와 그 사랑에서 지난날의 감정을 읽을 수 있다는 것도 부질없어 보이기는 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있는 이유가 바로 그러한 환상의 힘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나는 진작부터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참나무, 박새, 청솔모, 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도 색다르다. 우리가 그들을 자연의 일부로 보고 사는 것처럼 그들도 우리를 자연의 일부로 보고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환상이 어쩌면 그들의 환상과도 맞닿아 있는 것이리라.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힘의 근원에 그 환상이 있는 것이라고, 언뜻 생각하면 환상이라는 것이 삶을 맥빠지게 만드는 것으로 보일 테지만 사실은 환상이 있어서 우리가 남은 날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라고 책을 읽는 동안 그런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내 환상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해 주었던 것이, 그 환상이 비교적 건강한 것이라는 확신이 나를 안도하도록 해 주었다.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 (y에서 옮김20040806)


[인상깊은구절]

..환상을 대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은 맹목적으로 그것에 끌려가거나 일방적으로 그것을 쫓아가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내면에 어리석은 환상 따위는 키우지 않는다고 큰소리쳐서도 안 되며, 재수 없는 환상이라는 놈을 기어이 때려잡아 박멸하고야 말겠다고 기염을 토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조심할 일은 환상을 현실 속에서 성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환상은 손에 넣는 순간 즉시, 필히 환멸로 바뀌고 말 것이기 때문이었다. 달콤한 행복을 기대했던 결혼 생활이 피 터지는 갈등으로 변하고, 일상을 털어내듯 출발한 여행에서 더 곤고한 일상을 맞닥뜨린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만약 불행하게도 환상이 현실이 되어 환멸이 찾아온다면 그 환멸을 또 하나의 현실로 인정한 다음 결코 실현될 수 없는 멀고 먼 환상을 새롭게 영접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마음껏 빛나고 아름다운 것, 현실과 무관하며 허황된 것, 가장 충만해서 서러운 것으로 다시 환상을 골라 잡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