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ㅣ 앨리 스미스 계절 4부작 1
앨리 스미스 지음, 김재성 옮김 / 민음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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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 작품이다. 책의 표지가 유달리 눈에 들어왔다. 가을이라 내가 좀 싱숭생숭해졌나 보다.

 

책장은 잘 넘어갔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글은 잘 읽히지 않았다. 이 현상은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이어졌다. 내가 즐겨 읽는 방식과는 거리가 있는 서술방식을 가진 소설이었다. 나는 왜 등장인물의 독백 형태를 즐기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절대로 중얼중얼일 리가 없는 혼잣말 방식을 끝내 견디지 못하고 만다.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나 좋다는 평이 많은 작품인 것을.   

 

작품 자체보다는 작품에 대한 글을 더 많이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대니얼도 엘리자베스도 책 바깥에서 더 자세하게 만났다. 주제는 주목할 만하다. 오늘날의 영국 사회, 영국과 이어져 있을 모든 세계 사람들과 나누어야 할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까. 멀어 보이는 우리 사정과도 이어져 있다. 그래서 이 소설에 대한 관심을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도 드러냈던 것이겠지. 소설 본연의 역할을 다하는 작품으로서.

 

브렉시트, 이민, 난민, 정체성, 방랑...... 또 있다. 노인, 죽음, 사회적 소수자, 사랑 혹은 우정에 대하여. 세상 사는 문제가 어느 새 전 세계인들의 공통 과제로 압축되어 가는 것 같다. 이제는 나만 잘 살 수 있는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라고 하는 것처럼. 이렇게 모자란 대로 이 소설을 품는다. (y에서 옮김2019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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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토리노를 달리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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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 보고 싶어하는 것, 보기 위해 다른 뭔가를 시도하는 것, 끝내 보고 마는 것까지. 이것도, 이것도 우리가 가진 본능 중 하나일까? 그럴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오랜 기간, 누구나 할 것 없이 구경을 하러 떠돌아다닌 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 쉽게 말해 제 눈으로 봐야 위험한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고, 위험하지 않다는 판단을 한 이후에는 또 얼마나 나를 안심시켜 주고 만족시켜 주는가에 따라 더 오래 구경하고 싶었을 테니.  

 

썩 유쾌한 말은 아니지만 구경 중에 자신에게 직접적인 영향만 미치지 않는다면 물 구경, 불 구경, 싸움 구경이 최고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영화가 그래서 흥행하는 것일 테다. 내 것이 아닌 재난, 내 것이 아닌 싸움이니까. 갈등도 그런 것일까. 나만 싸우지 않는다면, 남들 싸움은 재미를 줄 수밖에 없는 것일까. 소설도 드라마도 스포츠도 전쟁까지도 한 겹 유리벽만 놓인다면, 내놓고 즐기고 숨긴 채 즐기고 그렇게 된 걸까, 우리 인간이라는 종들은.

 

올림픽 경기를 구경하겠다고 올림픽이 열리는 나라까지 제 땅으로부터 지구 반 바퀴 돌아가는 사람이 있다. 예상 외로 많을 것이다. 직접 참여하는 것도 아니고, 구경만 하는 것 뿐일 텐데, 그 구경을 위해 돈도 시간도 체력도 들이는 구경꾼들. 나처럼 못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대단하다 싶을 것인데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또 거기에 그만한 명목을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취미든 꿈이든 욕망이든.   

 

이 작가의 에세이는 처음 읽은 셈이다. 에세이의 일반적인 형식이 아니라서 절반은 소설로 읽힌다. 고양이가 말을 하고 사람처럼 구니까. 흠, 이런 형식으로 독백체를 확장하면 재미있는 글쓰기가 될 듯도 하다.(학생들에게 글쓰기를 하라고 할 때 시도해 볼 만한 형식이다, 좋아하는 사물을 의인화하여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글을 써 보라고.)

 

동계 올림픽은 하계 올림픽보다 대중적이지 않은 것도 맞다. 책을 읽으면서 동계 스포츠와 관련된 많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작가가 하려고 하는 말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낀 것은 없었지만. 어떤 대상에 대한 작가의 애정, 그게 사물이든 사람이든 동계 스포츠든 관심을 갖고 애정을 쏟을 대상이 있다는 것은 없는 것보다 분명히 축복받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는 게 그만큼 풍요로워지니까.    

 

앞으로 이 작가가 동계 스포츠를 소재로 하는 작품을 써 낸다면 훨씬 친숙해지겠구나 싶다. 그러면 된 게 아니겠는가. (y에서 옮김2017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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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되찾다
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한수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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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름을 외우지는 못했으나 이 작가의 글을 연달아 읽고 있다. 이러고 싶을 만큼 흥미를 느끼고 있는데 읽고 난 후의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다. 읽는 재미는 있으나 남는 느낌이 거북하다고 해야 하나? 글이나 작가의 문제가 아니라 다루고 있는 현실 쪽에서 받는 거북함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왜 이런가, 사람은 왜 이런가, 우리는 모두 왜 이렇게 사나 등등등.


표지는 산뜻하고 제목도 가벼운데 글의 내용은 발랄하지 않다. 아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모의를 하고 이런 행동을 하다니. 어른을 놀리는 것도 아니고 경고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아이들이 바르게 이롭게 자라지 못한다면 어떤 어른이 되고 말 것인가. 지금의 사회 문제를 앞선 세대가 남긴 과제로 보아야 한다는 것과 상통하는 것으로 여긴다면 불안해지고 두려워진다.


작가의 전개 솜씨는 매력적이다. 계속 찾아 읽고 싶을 만큼. 글을 읽어도 안 읽어도 시간은 흐를 테니 읽으면서 보내는 것이 더 나은 일이 아니겠나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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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삶 - 개정판 ㅣ 그르니에 선집 4
장 그르니에 지음, 김용기 옮김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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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란 무엇일까. 시절이 수상하다 보니 일상이라는 말에서조차 낯선 느낌이 든다. 어떤 게 일상이었던가, 어떤 모습이 일상의 그림이었던가. 일상이라는 게 누군가에게는 평범하게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좀처럼 얻기 힘든 것이 될 수도 있어서 함부로 말하기도 어렵다. 그래도 더듬어 생각해 본다. 이 책을 보면서, 작가가 펼쳐 놓은 일상과 그에 견주는 나의 일상과 남의 일상들을.


모두 12개의 소제목. 여행, 산책, 포도주, 담배, 비밀, 침묵, 독서, 수면, 고독, 향수, 정오, 자정. 하나씩 타이핑을 하다 보니 내 일상을 12개의 단어로 나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차례로 떠오르는 단어들을 속으로 삼키면서 이렇게 각자의 일상이 조끔씩 다른 모습으로 펼쳐지는 것이겠구나 짐작한다. 누군가에게는 일상,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일, 똑같지 않은 것이고 똑같을 수도 없는 것이고. 


글은 읽기 쉬운 듯 보였으나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광범위하게 인용한 자료들을 챙기며 읽는 것(내 배경지식의 부족 탓)이 수월하지 않았고, 서술하는 방식이 낯설다(외국의 산문에서 종종 느껴지는)는 느낌도 강하게 들었으며, 나로서는 번역된 문장의 형태에도 영향을 크게 받았다. 조금 더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바꿀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떠나지 않았으니까.  


여행, 산책, 독서, 수면, 자정에 해당하는 글에서 오래 머물렀다. 여행을 일상으로 볼 수 있는가 아닌가 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또는 여행 중에서도 일상과 가까운 여행이 있을 것이고 일상을 떠난 여행도 있을 것이니 이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으리라. 그러다가 산책이 자신이 누리는 일상으로서의 여행과 어떤 경로에서 만나는지 확인해 보는 일도 흥미로울 것이고. 이 책을 통해 내 독서와 수면을 일상의 관점에서 헤아려 본 것도 괜찮았다. 이런 일상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무엇이며 왜 위험한 것인지도.  


그르니에의 산문은 쉽지 않다. 이건 이것대로 또 좋기도 하다. (y에서 옮김2022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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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골목 ㅣ 창비시선 179
천양희 지음 / 창비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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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 자신이 무척 내 마음에 들 때가 있다. 또 어떨 때는 내 자신이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도 있다. 나는 두 경우가 결국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에 꼭 들거나, 마음에 전혀 들지 않거나. 그럴 때 내가 찾게 되는 시집이 천양희의 이 시집이다.

자신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신에 대해 그전보다 더 잘 알 수 있게 될까. 혹은 자신에 대해 진정 알 수 있기는 한 것일까. 나는 나를 잘 모르겠다고 느끼면서 사는 때가 참 많다. 그러하니 주위 사람들로부터 듣는 내 평이 오히려 더 맞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내가 왜 나인지, 내가 왜 이러는지, 궁금하거나 속상하거나 설레일 때 천양희의 이 시집을 읽으면서 난 시인을 몹시 부러워한다.

시를 읽는 일은 시인을 읽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은 오래 전부터다. 시를 통해 시인을 더듬어 보는 일은 나 아닌 한 사람의 삶과 정신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러므로 시를 읽으면서 내가 느끼는 부러움이란 곧 시인의 삶과 정신에 대한 부러움이다. 어떻게 이렇게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자신의 모자란 부분과 남는 부분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 성찰할 수 있는지, 무엇보다 자신을 이토록 사랑할 수 있게 되었는지.

한 편 한 편 베껴 쓰기도 한다. 한 줄 한 줄 외워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늘 부족하다. 한 순간 한 순간 그를 따라 살 수는 없는 까닭이리라. 그래서 나는 오늘처럼 내가 내 마음에 드는 날, '오래된 골목'으로 간다. (y에서 옮김20010208)

[인상깊은구절]
세상은 나 없이도 가득 차 있고 흐르는 물은 몇 개 웅덩이를 키우면서 내려갔습니다 아름다운 꽃이 언제 말하며 피겠습니까 다른 사람 나만큼 사랑할 때 나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옛 자리는 그리워해보는 것이지 가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옛 우물 옛 거울 없어진...... 물음표의 모든 것은 바꾸고 싶지 않아도 바뀌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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