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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헤일메리 ㅣ 앤디 위어 우주 3부작
앤디 위어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5월
평점 :
아무튼 이 모든 것의 의미는 한 가지뿐이다. 헤일메리호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왕복이 아니라 편도다..... 나는 자살 임무를 수행하러 왔다. 존, 폴, 조지, 링고는 집에 돌아가지만, 길고도 험난한 나의 여정은 여기에서 끝난다. 이번 임무에 자원했을 때 나는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그러나 기억상실증에 걸린 내 두뇌에게는 이 정보가 새롭기만 하다. 나는 여기에서 죽는다. 혼자서 죽게 된다. p.111
오랜 수면 끝에 눈을 뜬 나에게 로봇 팔들이 다가와 몸에 연결된 관을 제거하고, 컴퓨터가 질문을 한다. 2더하기 2는 무엇입니까?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벽은 플라스틱처럼 보이고, 방 전체가 둥근 이곳은 어딜까. 나는 자신이 누워 있던 침대 외에 두 대가 더 있고, 각각에 있는 남자와 여자는 이미 사망한 상태라는 걸 발견한다. 그리고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자신이 잇는 방의 중력이 너무 크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곳은 지구가 아니었고, 알 수 없는 우주 한복판이었던 것이다.
서서히 기억이 돌아오면서, 자신이 분자생물학 박사이자 과학 교사였던 라일랜드 그레이스라는 걸 알게 되고, 이곳이 헤일메리 호라는 것을 생각해낸다. ‘헤일메리Hail Mary’는 미식축구 용어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아주 낮은 성공률을 바라보고 적진 깊숙이 내지르는 롱 패스를 뜻한다. 그리고 우주선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지구는 미지의 생명체인 '아스트로파지'로 인해 멸망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다. 아스트로파지는 태양의 온도를 떨어트려서 태양의 출력이 서서히 감소하게 만들고 있었다. 태양광이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할 경우, 그러니까 태양이 죽어가게 되면 지구의 생명체들은 살아남을 수가 없다. 인류를 구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고,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그레이스 박사가 헤일메리호를 타게 된 것이다. 아스트로파지를 조사하고,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면서 진행되고, 그 과정에서 그레이스 박사는 자신이 왜 우주 한복판에서 깨어난 것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아스트로파지를 없앨 해결책을 자신이 찾게 된다고 하더라도 기술적인 한계로 지구로 정보를 보낼 수 있을 뿐, 자신은 돌아가지 못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애초에 헤일메리호는 왕복이 아니라 편도였고, 자신은 험난한 여정을 끝내고 나면 우주에서 혼자 죽을 예정이었던 것이다.
제정신인 사람이 우주선을 저런 모양으로 만들 리는 없다. 제정신인 지구인이라면 말이다. 나는 눈앞의 광경을 보고 몇 차례 눈을 깜빡인다. 침을 꿀꺽 삼킨다. 저건...... 저건 외계의 우주선이다. 외계인이, 우주선을 만들 정도의 지능이 있는 외계인들이 만든. 인류는 우주에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방금 우리의 이웃을 만났다.
"이런 씨발!" p.179
기억이 아직 모두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이 죽을 임무를 띠고 우주에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레이스 박사는 죽어야 한다면, 최소한 의미 있게 죽자고 마음 먹는다. 그리고 홀로 우주선에서 아스트로파지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애쓴다. 그런데 그 와중에 자신의 우주선 바로 옆에 다른 우주선을 발견하게 된다. 이상한 것은 선체 전체가 거대하고 납작한 표면으로 이루어져 있는, 최악의 방법으로 만든 우주선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다. 저건 우주선을 만들 정도의 지능이 있는 외계인이 존재한다는 증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과연 그는 지구를 구하기 위한 임무를 완수하고, 무사히 잘(?) 죽을 수 있을까. 거의 700페이지에 가까운 두툼한 두께의 이 작품은 엄청난 과학적 지식과 놀라운 상상력, 그리고 앤디 위어 특유의 유머 덕분에 단 한 페이지도 지루할 틈 없이 끝을 향해 달려간다. 그야말로 '페이지터너'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웬만한 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 보는 것보다 더 신나고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화성에서 조난당한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로 소설은 물론, 영화계까지 제대로 접수했던 <마션>, 달의 도시를 입체적으로 구현해 끝내주는 이야기로 탄생시켰던 <아르테미스>에 이어 앤디 위어는 이 작품 <프로젝트 헤일메리>까지 우주 3부작을 완성했다. 그는 행성들의 궤도를 파악하고 지구와의 통신 소요시간, 우주선의 항해 궤도 등을 확인해 보기 위해서 직접 코딩을 하고 프로그램을 짰을 정도로 소설들에 나오는 과학적 지식에 진심이다. 애매한 형태가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지식으로 토대를 쌓아 올린 이야기들이기에 그 누구라도 설득시킬 수밖에 없는, 굉장히 대중적이면서도 완벽한 SF 작품이 된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맴도는 문장은 딱 하나였다. 앤디 위어는 천재다! 이렇게 잘 읽히고, 쉬우면서도 재미있고, 놀랍도록 과학적이면서 엔터테인먼트적인 작품이 또 있을까. <프로젝트 헤일메리> 역시 영화화가 확정되었다. 라이언 고슬링 주연으로 만들어질 영화 버전도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