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 리버 - 인류 문명을 만든 일곱 개의 강 이야기
버네사 테일러 지음, 박은영 옮김 / 미래의창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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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강과 자연을 문화적으로 어머니 같은 존재로 여겨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생태계와 생물 다양성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강은 그 자체로 매우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에 지도 위에 그어진 경계선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강은 서로 다른 인식과 주장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p.232


강은 오래전부터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켜주었다. 식수를 제공하고, 항로와 교역의 길을 열어주었다. 또한 권력과 부의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이 얽혀 있었다. 누가 수로와 운하, 강 하구의 군선들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결정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강은 문명을 잉태하고, 제국을 키우며, 역사의 방향을 바꾸어왔다. 또한 강은 신성한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고고학자들은 아주 먼 옛날부터 강이나 샘, 습지 같은 장소가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잇는 영적인 경계로 여겨졌다고 분석한다. 


이 책은 세계를 바꾼 일곱 개의 강을 따라 인류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나일강, 다뉴브강, 갠지스강, 템스강, 미시시피강, 니제르강, 양쯔강이다. 세계사를 연대기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강을 통해서 읽어 내는 거라 굉장히 색다른 역사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일곱 개의 강을 일곱 개의 파트로 구분했고, 각 장이 시작하기 전에 지도 수록되어 있어 위치부터 확인해볼 수 있도록 했다. 강과 유역들을 둘러싼 각기 다른 서사들이 펼쳐지는데, 각각의 강마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이 달라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지질학적 기원에서부터 시작하는 강도 있고, 인간의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서 차지한 위치를 그 출발점으로 삼는 강도 있다. 강의 이름에 얽힌 비밀과 그 속에 층층히 쌓인 언어의 역사를 파헤치기도 하고, 인간의 시간을 잇는 기후변화의 현장으로, 매끄러운 교통로이자 생기 넘치는 생태계로 살펴보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강이 우리 삶에서 맡는 역할도 달라졌다. 강은 물건을 나르는 핵심 통로였지만, 이제는 다른 수단들이 그 자리를 채우거나 보완하고 있다. 19세기에 지어진 다뉴브강 계속 철도부터 최근의 라인-마인-다뉴브 운하 그리고 중국의 '21세기 실크로드'라 불리는 일대일로 사업이 대표적이다. 또한 지난 250년 동안 강줄기를 따라 각종 배관(파이프라인)이 설치되면서 강의 기능을 보완하기도 했다.                   p.539


고대 이집트의 나일강을 따라 이어진 30개 왕조는 3,0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통치를 이어갔다. 그 어떤 강 문명도 나일강처럼 수천 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자연을 다스리며 번영을 누리고, 그토록 강력한 존재감을 유지하지는 못했다. 또한 나일강은 수많은 기원과 신화가 피어난 거대한 발원지이자 무대이기도 했다. 강이라는 존재가 그 물줄기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에게는 양날의 검과 같았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목마른 이들에게 물을 내어주고 메마른 땅을 옥토로 바꾸며, 교역로와 군사 수송로가 되어주는 생명의 통로인 동시에 그 자체로 단단한 방어벽이 되어주기도 했다. 그러다 강이 천연의 국경으로 선포되는 순간, 그곳은 순식간에 사투의 현장으로 변모한다. 전 유럽을 가로지르는 2,850킬로비터의 다뉴브강 또한 수많은 세력을 끌어들이며 분쟁의 중심지가 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미시시피강은 매우 오래된 강이다. 최소 2억 5,000만 년 전, 지구의 모든 땅덩어리가 하나로 뭉쳐 있던 초대륙 판게아 시절의 지층 흔적 속에서도 지질학자들은 원시 미시시피강이 남긴 흔적을 찾아냈다. 재미있는 것은 지질학적 스케일로는 최고참 격인 미시시피강도 인류사의 관점으로 보면 이 책에 등장하는 일곱 강 중 가장 막내 격이라는 점이다. 아메리카 대륙 그 어디에서도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보다 앞선 인류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은 상상 속에서 집단 기억을 매개하는 거대한 은유이자, 아득한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강을 다스리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수없이 변해왔다. 이제는 오늘날 강과 인류가 마주한 현실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지점이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선택에 따라 미래의 강줄기에 어떤 이야기가 쓰여질지 정해질 테니 말이다. 자, 일곱 개의 강에 담긴 우리 인류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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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우지 않아도 괜찮아 물리학 ㅣ 물화생지 문해력 기르기
이승재.오영훈 지음, 오얼수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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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물리학의 진짜 묘미는 바로 이 세상의 어떠한 복잡한 현상도 단순하고 친숙한 현상에 비유해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단순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용수철의 조화운동은 사실 수많은 물리 현상과 유사한 수학적 규칙을 따릅니다. 예를 들어 단진자라고 부르는, 쇠구슬을 실에 매달아놓은 장치는 모습이 용수철과는 매우 다르지만 용수철과 같은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p.79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우리가 아는 물질은 전체의 약 5퍼센트밖에 되지 않고, 우주에 존재하는 것의 대부분을 직접 보지도 못했으며, 정체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에게 과학이 필요하다. 현대물리학에서 설명하지 못하는 95퍼센트는 그만큼 앞으로 우리가 탐험해야 할 영역이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 말이다. '물화생지 문해력 기르기' 시리즈로 지구과학에 이어 물리학 편이 나왔다. <외우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제목처럼 암기하는 원리가 아니라, 개념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책이다. 100여 컷의 사이언티픽 일러스트가 컬러로 수록되어 있어서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4대 역학'을 다루고 있다. 고전역학, 전자기학, 양자역학, 열역학, 그리고 현대 우주론까지 담았다. 갈릴레이의 관성의 법칙, 뉴턴 역학을 시작으로 전자 기기가 작동하는 원리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전자기학, 오늘날 현대물리학의 두 기둥인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엔트로피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 열역학을 살펴본다. 양자역학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다양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던 덕분에 과학책이 관심이 많은 나도 다양한 버전의 양자역학 책들을 읽어 왔다. 그럼에도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건 쉽지 않았다. 리처드 파인먼도 '양자역학을 이해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난해한 학문이니 말이다. 이 책 속에서도 양자역학 파트가 있어 굉장히 기대하며 읽었다. 확실히 친근하고 쉽게 풀어내고 있어 양자역학에 한층 더 가까이 가게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한 가지 여운을 남깁니다. '존재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흐릿하고 역동적인 개념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물리학에서 무無도 이와 비슷합니다.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진공에서 가상 입자가 태어나고 소멸하는 가장 역동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양자역학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아무도 답을 알지 못하는 질문들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들이 열려 있는 한, 양자역학은 계속될 것입니다.               p.255


과학의 진짜 매력은 '상상하는 즐거움'에 있다. 위대한 과학적 발견들 또한 끊임없이 고민하고, 상상하며 만들어진 생각에서 출발한 것들이고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새삼 그 즐거움을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물리학을 한다는 것은 우리의 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일이라는 것, 세상 만물의 이치를 탐구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디서 왔는지를 궁금해하며 수많은 사유를 통해 더 나은 이론들을 쌓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물리학은 어렵고 딱딱한 학문이다. 흔히 떠오르는 어려운 수식들 때문일 것이다. 수식은 분명 물리학의 중요한 도구이지만, 이것 또한 결국 세상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물리학의 진짜 재미는 수식 너머에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수학과 친하지 않더라도 괜찮다. 공식과 원리들을 외우지 않아도 괜찮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속에 담긴 사유를 이해하고 고민하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물리학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물리학이 막막하게 느껴졌었다면 암기해야 할 지식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물리학을 통해 상상하며 고민하는 즐거움을 되찾게 만들어 준다. 방금 읽은 개념들을 바로바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잘 정리된 그림들이 이끌어 주고, 복잡한 과학 원리들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간단하게 정리되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뉴턴, 아인슈타인 등 곳곳에 깨알같이 등장하는 '고양이 과학자' 캐릭터들을 만나는 재미도 집중도를 높여준다. 초중고 교과서 핵심 개념을 바탕으로 최신 데이터까지 모두 담긴 버전이라 청소년들의 문해력에도 도움이 되고, 성인들의 과학 교양서로도 훌륭하다. 읽다 보면 저절로 쌓이는 지식과 교양! 부담없이 물리학을 시작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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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워진 세계
아사쿠라 히로카게 지음, 이구름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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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1

아사히는 이제야 사노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쓸모없다며 버려지고, 아무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 쓰레기들이 어쩐지 가엾고 안쓰러웠다. 그래서 아사히는 처음부터 불필요한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 애쓰며, 물건을 최소한으로 줄여 생활해 왔다. 아사히는 생각했다. 사노와 자신은 네거티브 필름과 포지티브 필름처럼 겉으로만 반대일 뿐, 결국 뿌리는 같은 존재가 아닐까.                p.121~122


아사히는 학교를 졸업하고 교육계 출판사에 지원했다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지만, 부모님께는 붙었다고 거짓말을 한 뒤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집안 구석구석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깨끗하게 관리해야 마음이 편한 아사히가 가장 싫어하는 일을 하고 있는 이유는 아버지로부터 멀리 달아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거의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작은 얼룩 한 점, 먼지 한 톨까지 놓치지 않는 사람이었고, 덕분에 어머니는 늘 어딘가를 청소하며 집을 무균실처럼 유지했다. 그게 싫어 독립한 뒤로는 자신을 바꾸고자 아버지가 절대 거들떠보지도 않을 일을 시작하게 된 거다. 하지만 집은 쾌적하며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을 중요시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이렇다 할 취미도, 수집벽도 없었기에 불필요한 물건은 아예 사지 않았고, 미니멀리스트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옆집에 사는 사노라는 여자를 우연히 마주하게 된다. 잡담을 나눌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라 인사만 하고 지나쳐 가려는데, 쓰레기를 잔뜩 들고 있는 걸 보게 된다. 그런데 쓰레기라면 집 안에 들여놓을 게 아니라 분리수거장에 내놓아야 하는 게 아닌가. 무거운 카트를 들이는 데 애를 먹는 것 같아 무심코 문을 잡아 주다, 그녀의 집 안 상태를 목격하게 된다. 하얀 비닐봉지가 산처럼 쌓여 있고,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한 처참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쓰레기집에서 살고 있었던 거다. 여자 혼자 사는 집이, 어떻게 폐기물 처리장처럼 되어 버린 걸까. 아사히는 더러운 옆집의 위생 상태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 놓고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강박적으로 깔끔한 환경을 유지하려는 아버지를 증오했지만, 부정하고 싶어도 아사히 역시 아버지의 성격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이다.  지독한 결벽증을 가진 청소회사 직원 남자와 버리지 못한 물건들로 집안을 가득 채운 여자, 정반대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두 사람은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난 그런 줄거리를 전혀 모르는 드라마를 중간부터 보는 걸 좋아해."

"왜? 난 금방 채널 돌리는데."

"등장인물의 사정도 모르고 배경도 모르니까 나랑 전혀 상관없는, 지나가는 사람의 인생을 조금 엿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 그런 사람들이 울고, 웃고, 화내는 걸 보고 있으면 다들 저마다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구나 싶고, 왠지 마음이 따뜻해지고 안도감이 든다고 해야 할까."               p.324


남자는 지나치게 깨끗한 일상 속에 자신을 가둔 채 살고 있다. 처음부터 불필요한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 애쓰며, 물건을 최소한으로 줄여 생활한다. 문제는 결벽증을 혐오하지만 좀처럼 바꾸지 못한다는 거다. 자신을 싫어했고, 자신감이 없었다. 괴롭힘을 당한 적은 없지만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도 거의 없었고, 취직 문제는 허울 좋은 거짓말로 얼버무리고 아버지와 마주치는 것도 계속 피하고 있었다. 지저분한 환경에 불안과 분노를 느꼈고, 자신의 공간 만은 철두철미하게 깨끗하게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사는 게 전혀 즐겁지가 않았다는 거다. 


여자는 직장에서 따돌림을 당해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풀기 시작했다. 옷이나 신발 같은 걸 인터넷으로 잔뜩 사들이다가 돈이 점점 부족해지면서 어느 날부턴가 쓰레기를 모으게 된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남들한테 민폐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어릴 때 엄마가 쌓아 올린 쓰레기산에서 발견돼 구조되었던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엄마는 유부남과 사귀다 쓰레기처럼 버려졌고, 자신들처럼 버려진 쓸모없는 쓰레기를 모아 그걸 성벽 삼아 자신들만의 왕국을 만들었다. 그곳에서라면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고 안심하고 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구출되어 아동보호시설에서 자란 여자도 어쩌다 보니 자신의 엄마처럼 살게 된 것이다. 어쩌면 '나도 사회의 쓰레기구나'라는 생각이 그녀를 쓰레기 왕국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완전히 정반대의 방식으로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삶을 조금씩 변하게 만드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아버지가 만든 규칙 속에서 살아오며 사람들과의 관계를 스스로 끊어낸 채 살아온 남자와 자신의 인생이 중간부터 보기 시작한 드라마 같다고, 삶을 티브이 속 이야기 보듯 멀리서 바라보며 살아온 여자는 서로가 친구가 되어 주며 스스로의 삶을 다시 되돌아 본다. 오랜 시간 외면해 온 자신의 상처가 마주하며, 쌓아둔 벽을 허물고 세상 속으로 걸어 나간다. 이 작품을 읽으며 '누군가의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이해할 수 없어 보이는 모습 뒤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쓸모없다며 버려진 곳에서 피어난 따뜻하고, 다정한 세계를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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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의 가장자리 - 부서진 유년의 파편에서 출현한 신경과학자 이야기
데이비드 수실로 지음, 이충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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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새로운 이해에 감탄하고 있던 그 순간에도, 정작 과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내 삶과 맞닿아 있는 근본적인 질문들과 씨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물질에서 어떻게 마음이 생겨날까? 정신 질환이란 무엇인가? 왜 어떤 아이들은 잘 성장하는 반면, 어떤 아이들은 어려움을 겪는가? 이것들은 과학의 기반 자체를 뒤흔드는 질문들이기 때문에, 과학의 기반을 간략하게 살펴보는 것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p.57~58


뇌는 의심이 여지 없이 인류가 알고 있는 것 중 가장 복잡한 물질이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이해하고, 해석하고, 창조하고, 느끼는 모든 것들은 수십억 년에 걸친 진화 끝에 이루어진 것이니 말이다. 잠시 멈춰 서서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면, 그것은 그야말로 기적에 가깝다. 신경과학자들은 이러한 인간의 뇌를 이해하려고 오랜 시간 연구해 왔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 머릿속의 물리적 물질과 전기 신호로부터 생각과 감정이 나타나는가에 대한 수수께끼는 여전히 거의 밝혀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오랫동안 인공신경망과 인간의 뇌가 어떻게 정보를 처리하고 행동을 만들어내는지를 연구해온 과학자다. 그는 부모님이 마약 중독자였기 때문에,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고아원에서 자랐다. 청년이 될 때까지 10년 동안 그 시스템에 갇혀 살았다. 두 곳의 보호시설, 고모 부부와 삼촌 부부 집에서도 잠깐 살았다. 가족은 가난했고, 제대로 된 돌봄을 받을 수 없었다. 그는 똑똑한 아이였지만, 쇠로 만든 로봇도, 다른 행성에서 온 영웅도 아니었기에, 심오한 것과 아름다운 것, 끔찍한 것, 그 모든 것들이 깊이 각인되었다. 정상 경로에서 이탈하며 시작되었던 그는 어떻게 구글 x 메타에서 마음을 연구하는 신경과학계 거물이 될 수 있었을까. 왜 어떤 아이들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살아남는 반면, 어떤 아이들은 그러지 못할까? 물질에서 어떻게 마음이 생겨날까? 저자는 그에 대한 답을 인간의 뇌와 자신의 삶에서 찾아낸다. 




우리는 이 모든 것─존재, 언어, 생각 자체─을 당연하게 여긴다.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배우자에게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가 슈퍼마켓에 들르겠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도 평범한 일이라서 굳이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하지만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곰곰이 생각해보라. 원자들로 이루어진 분자들, 분자들을 자르는 화학 반응들, 그리고 세대 간에 유전되는 부호화 능력인 DNA. 네트워크 위에 네트워크가 있고, 또 그 위에 네트워크가 계속 이어지는데, 이 모든 것은 수십억 년에 걸친 진화 끝에 마침내 우리를 이렇게 평범한 잡일을 계획하고 소통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p.366


이 책이 특별한 것은 고단한 인생사를 역경을 극복한 성공담으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처는 성공으로 아물어지지 않는다. 성취가 과거를 지워주지도 않는다. 살아남았다는 사실도 삶을 구원해주진 못한다. 그럼에도 약물 중독 부모에게서 태어나 폭력과 방임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보호시설을 전전하던 소년은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었다. 보육원의 낡은 컴퓨터 앞에서 프로그래밍 책을 붙들고 끙끙대던 아이는 어떻게 지금의 자신이 될 수 있었을까. 그는 자신의 삶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살아 있다는 것일까, 생각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여기서 신경과학의 ‘창발emergence’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창발'은 여러 요소가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개별 요소만으로는 예상하기 어려운 새로운 특성이나 패턴이 나타나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다. 우리는 단순히 자극에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며, 뇌의 활동 역시 복잡한 왈츠와 같다. 복잡한 의식과 지능이 단순한 신경세포들의 상호작용에서 창발하듯, 한 사람의 삶 역시도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너무도 복잡한 리듬에 맞춰 돌아가기 때문에, 아주 작은 진동조차도 예측 불가능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일견 사소해 보이는 한 가지가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고, 결국 예상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에 이르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현실세계가 결코 단순하지 않은 것처럼, 읽고 성찰하는 능력을 가진 마음이 있는 인간 또한 마찬가지다. 이 책이 흥미로웠던 이유 중 하나는 개인적인 것과 과학적인 것, 감정적인 것과 분석적인 것이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색다른 방식으로 과학을 이야기하는 책이라니 매우 신선했고, 또 감동적이었다. 게다가 이 책은 산산조각 난 인생에서 현재의 위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자서전처럼 가볍게 풀어 내고 있지만, 그 모든 이야기의 배경에 과학적 통찰이 담겨 있다. 그래서 과학자의 에세이처럼 읽히지만, 탁월한 신경과학책이기도 하다. '카오스'라는 수학적 현상을 통해 우리 세계의 본질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놀라운 작품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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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지도
우케쓰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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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가슴속에 위화감이 쌓였다.

이 마을은 뭔가 이상하다. 하지만 좀처럼 위화감의 정체에 다다를 수 없었다.

어느 집에 들어가니 방 한구석에 책이 놓여 있었다. 소설, 학술서, 도감 등 다양한 종류의 책이 줄지었다. 그 모양새에 머릿속 한구석이 움찔 반응했다.

비슷하다. 외할머니 방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근거는 없지만 그런 직감이 찾아왔다.              p.163~164


곧 졸업을 앞둔 대학생 구리하라는 입사 지원을 한 회사마다 불합격 통지서를 받는 중이다. 건축학과인 구리하라는 성적도 좋고, 자격증도 있었다. 다만 면접에 요령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무뚝뚝하고 솔직한 성격이라 생각을 숨김없이 꺼내 놓는 탓에 번번히 불합격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다섯 살 때 돌아가신 어머니는 건축공학 부교수였다. '알고 싶은 마음은 말릴 수가 없다며' 자신이 연구에 집중하는 이유를 말해준 적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몰두했던 학문에 대해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구리하라도 건축학을 전공하게 된 것이다. 유일하게 1차에 합격한 한 회사의 2차 면접이 열흘 뒤로 남은 어느 날, 아버지가 어머니의 본가를 처분하는 문제로 그를 부른다. 집을 처분하기 전에 살펴보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찾은 그곳에서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그리고 할머니가 한 장의 고지도를 손에 쥔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외할머니가 자살한 이유를 찾기 위해 애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죽기 직전까지 조사를 계속했지만 진상을 알아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해 생각하고, 구리하라는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홀로 조사를 시작한다. 대체 외할머니는 뭘 조사했고, 뭘 발견한 걸까. 그것이 무엇이길래 죽음을 선택해야 했을까. 구리하라는 외할머니의 노트와 기묘한 그림이 있는 으스스한 지도 한장을 토대로 조사를 계속했고, 고지도에 표시된 장소에 직접 찾아가 보기로 한다. 2차 면접이 있기 전까지만 조사해보기로 기한을 정해두고, 한적한 시골 마을로 향한다. 이 지도는 언제, 누가, 뭘 위해 만든 걸까. 외할머니는 왜 이것을 갖고 있었는가. 산에 그려진 요괴는 뭘 의미하는가. 조사는 난항을 예고하고 있었고,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았다. 과연 구리하라는 할머니의 죽음에 감춰진 비밀의 실체를 알아낼 수 있을까.




삐삐뽀뽀, 삐삐뽀뽀, 하고 엇박자로...... 아무래도 두 개의 사이렌 소리가 서로 겹친 듯했다. 어째선지 가슴속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사태는 해결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텐데도,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왜일까.

문득 안주인을 보았다. 그 순간 등골이 얼어붙었다.

겉모습은 무엇 하나 변하지 않았는데, 방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그곳에 서 있었다.                p.369


<이상한 집>, <이상한 그림>, <이상한 집 2>를 잇는 우케쓰의 '이상한 시리즈' 그 네 번째 작품이다. '우케쓰'는 전신에 검은 타이즈를 입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가오나시’를 연상시키는 흰 가면을 쓴 정체불명의 유튜버로 주로 호러?오컬트에 관련된 영상을 올리는 콘텐츠 크리에이터이다. 나이도 성별도 거주지도 밝혀지지 않은, 그야말로 베일에 싸여 있는 인물이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주택 평면도에 숨겨져 있는 ‘위화감’을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찾아내는 내용이었던 ‘부동산 미스터리 일본의 이상한 집'이라는 컨텐츠가 조회수 1,000만 뷰를 돌파하며 큰 인기를 누렸는데, 그 영상을 보고 먼저 출판사에서 연락을 했고, <이상한 집>이라는 책으로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현재는 시리즈 누계 750만부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며, 호러, 미스터리의 지형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집과 그림에 이어 이번에는 지도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상한 시리즈'는 집의 도면과 그림, 지도 등 글 외에 다양한 방식으로 서사를 풀어낸다. 추리 과정을 도식화하여 정리하고, 그림을 보여주며 독자들도 함께 그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줘 재미를 더해준다. 다양한 이미지와 도표를 통해 마치 텍스트가 아니라 영상을 보는 것처럼 가독성 넘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일곱 마리 요괴가 그려진 그림, 스산한 폐촌과 사당, 여자의 뒷모습, 돌아선 석탑 방향… 남겨진 단서라고는, 한 장의 지도뿐... 실제로 이 책에는 특대 사이즈 3단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지도와 표식, 각종 자료들을 따라가다 보면 기묘한 경로 속에서 극중 구리하라와 함께 진실을 추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생생하게 든다. 마치 눈앞에 영상이 재생되는 것 같은 입체적인 독서 경험을 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 동안 출간되었던 '이상한 시리즈' 세 권을 모두 읽었는데, 그 중에서도 이번 <이상한 지도>가 가장 재미있었고, 가장 탄탄하게 잘 쓰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작품 전체가 정교하게 설계된 거대한 지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페이지를 넘기기가 아까울 정도로 정말 재미있는,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놀라운 이야기를 경험해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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