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클래스
이성모.정진.스토리랩 지음, 김래현 그림 / 다산어린이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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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월드컵은 전 세계 사람들이 열광하는 지상 최대의 축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나 이번 2026 북중미 월드컵은 48개국 참가라는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리고 있다. 오늘 오전까지 경우의 수를 헤아리며 다른 팀의 경기들을 챙겨봤지만, 끝내 우리나라는 32강 탈락이 확정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아직도 2022년 광화문에서 다같이 응원했던 대-한-민-국!!의 시간을 잊지 못하고 있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이번 결과는 아쉽기 그지 없다. 


조별리그 일정이 막을 내리면서 우리나라는 탈락했지만, 이번 북중미 월드컵은 내일부터 32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내일 오전 4시 남아공-캐나다의 경기를 시작으로 빅매치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으니 축구를 좋아한다면 놓치지 말아야겠다.  




이 책은 화면 너머로만 전해지던 축구의 뜨거운 열기를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생생하게 담아낸 축구 안내서이자, 2026 북중미 월드컵의 출전 나라와 선수들을 완벽하게 분석한 가이드이다. 월드컵은 4년마다 전 세계를 들썩이게 만드는 축구 축제이다. 이번에 사상 최초 세 나라가 함께 개최하는 월드컵이 되었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가 손을 잡고 역사상 처음으로 3개국 공동 개최를 결정한 것이다. 2030년에도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가 공동 개최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기존에는 본선에 진출하는 국가가 32개국이었는데, 이번 북중미 월드컵부터는 본선 진출국이 48개국으로 늘어났다. 덕분에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아 보는 나라도 생겼으니, 익숙한 강팀말고 첫발을 내디딘 팀들에게도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면 좋을 것 같다. 




멕시코,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한민국, 체코의 A조부터 잉글랜드, 크로아티아, 가나, 파나마가 속한 L조까지 각 조별로 팀들을 정리해 두어 찾아 보기도 매우 좋은 구성이었다. 각 나라별로 FIFA 랭킹과 월드컵 최고 순위, 열대 월드컵 성정과 지난 대회 성적, 주요 선수와 베스트 11, 이번 월드컵에서 주목할 선수들의 프로필까지 담았다. 중간 중간 월드컵 관련 만화도 흥미를 더해 준다. 손흥민 선수의 에피소드를 담은 만화부터 사라진 황금 트로피의 비밀, 단순한 경기 도구를 넘어 진화하는 축구공, 펠레, 마라도나 등 레전드 선수들이 현재로 돌아온다면 어떨지 상상해보는 만화까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다. 




그 외에도 흥미진진한 월드컵 만화와 상식 퀴즈, 두뇌를 자극하는 가로세로 퀴즈 등 어린이들의 몰입도를 높이는 콘텐츠가 다양하게 수록되어 있고,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인기 축구 크리에이터 ‘고알레’가 알려 주는 축구 팁과, 전국 유소년 축구 대회 ‘고다지컵’에서 활약한 또래 유망주의 인터뷰도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 유일 영국 축구기자협회 소속 이성모 기자의 특별 칼럼을 통해 최신 정보들을 만날 수 있어 월드컵을 더욱 깊이 있게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별책 부록으로 비밀 전술 노트를 받을 수 있는데, 실제 경기들을 기록하거나 스코어를 적고 작전을 짜볼 수 있는 노트이다. 국가별 전력 분석, 경기 결과, 명장면, 전술 분석실, 경기 최우수 선수 등을 기록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매 장마다 재미있는 축구 용어 풀이가 더해져 재미를 더해준다. 축구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즐기는 데 큰 지식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복잡한 규칙과 전술을 모르더라도 충분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이니 말이다. 하지만 뭐든 알고 보면 훨씬 더 재미있어 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과 함께 남은 월드컵 기간 동안 축구를 더 신나게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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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박쥐 - 진화가 빚어낸 가장 다재다능한 생명의 비밀
요시 요벨 지음, 조은영 옮김 / 어크로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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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곧이어 발견된 또 다른 사실은 인간이 자연의 사회성을 바라보는 방식을 뒤흔들어 놓았다. 군락 내에서 먹이를 공유하는 네트워크를 상세히 분석했더니, 흡혈박쥐 암컷은 아무하고나 음식을 나누지 않으며, 단순히 서로 알고 지낸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보다는 예전에 자기에게 피를 준 적이 있는 동료 뱀파이어에게 우선 피를 나눠주고 싶어 했다. 즉 두 개체는 혈맹을 형성한 사이였다. 일방적 이타성이 아닌, 상호 이타주의라는 말이다... 상호 호혜가 가능할 만큼 신뢰의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고, 또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p.33


하늘을 날 수 있는 유일한 포유류이자, 전 세계 포유류 종의 2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박쥐에 대해서는 대체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박쥐는 그저 무서운 날짐승, 피에 굶주린 병균 덩어리, 혹은 바이러스를 매개하는 동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그래서인지 각종 공포, 호러 영화에서 불길함을 상징하는 존재로 항상 등장하는 존재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사실 박쥐는 아주 특별한 동물이다. 지금까지 식별된 1,500종 중에 다른 동물의 피를 마시면서 사는 종은 세 종에 불과하고, 일부는 시력이 아주 좋으며, 몸무게에 비해 그 어떤 포유류보다 장수한다. 그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인간이 미처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인류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감각의 영역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룬 존재이기도 하다. 


박쥐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요시 요벨은 열대우림의 진흙탕과 한낮 기온이 섭씨 40도까지 치솟는 아프리카 대륙을 비롯해 별이 쏟아지는 사막의 밤을 오가며 20년 넘게 박쥐를 연구해왔다. 1,000개가 넘는 GPS 추적 데이터와 수십 편의 논문을 바탕으로 10년에 걸쳐 집필된 이 책은 웬만한 다큐멘터리보다 더 생생하고, 한 편의 소설처럼 흥미진진한 박쥐의 세계를 보여준다. 인간이 미처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인간이 도달하지 못한 영역에서 탁월한 존재가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굶주린 동료에게 자신의 끼니를 내어주고, 피 한 모금으로 쌓은 신뢰를 수십 년 동안 기억하며, 같은 크기의 생쥐보다 20배 이상 오래 살며, 바이러스의 공격에 아주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면역계를 가지고 있어 전 세계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연구 대상이다. 이렇듯 인간의 잣대로는 번역되지 않는 천재성이 박쥐의 생명현상 안에, 그리고 박쥐의 사회 안에 가득하다. 이제 이 책의 제목이 왜 <The Genius Bat>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박쥐에게는 특히 먹이를 씹으며 듣는 능력이 아주 중요하다. 대부분의 박쥐는 공중을 날며 먹이를 먹는다. 그러면서 주변 물체에 부딪히지 않게 반향정위 신호를 계속 발사하고 그 반사음을 들어야 한다. "먹고 말하는 모든 순간에 계속 생각한다네. 그게 과학에 깊이 몰두했을 때 일어나는 일이지. 샤워할 때는 털에 대해서 생각하고, 씹을 때는 청각에 대해서 생각하고." 펜턴이 웃으면서 말했다.

진화의 문제가 늘 우리를 사로잡는 이유는, 아마도 그것을 규명하기가 너무도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소리를 사용해 곤충을 사냥한 최초의 박쥐가 내보냈던 반향정위 신호를 기록할 수만 있다면 나는 백만 달러라도 기꺼이 지불할 생각이다.                  p.302~303


솔로몬왕에서 닥터 두리틀까지 동물과의 대화는 항상 인간을 매료시켜 왔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동물에게 언어 능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대신 동물이 내는 소리를 '의사소통'이라고 표현한다. 인간의 언어는 단어라고 부르는 단위로 구성되어 유한한 단어를 나열해 의미가 다른 무한한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연구자들은 동물에게는 이런 능력이 없다고 말한다. 박쥐는 대단히 넓은 범위의 신호를 사용해 소통한다. 박쥐가 주변을 감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반향정위 신호는 짧고 정형화되었지만, 다른 박쥐와 소통하기 위한 신호는 길거나 짧고, 휘파람 같기도 지저귀는 소리 같기도 하고, 초음파일 때도 있고,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일 때도 있다. 어릴 때부터 언제나 동물을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에, 마당에서 지저귀는 직박구리의 소리를 듣고 새들의 대화를 상상하곤 했다는 저자가 성인이 되어 연구실을 꾸리고 박쥐의 말을 이해하려고 실험을 하며 이런 놀라운 책을 펼쳐내게 되었다는 서사 자체가 과학의 아름다운 측면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은 박쥐의 뇌와 감각 그리고 놀랍도록 복잡한 사회적 네트워크, 언어와 소통, 진화 순서의 논쟁 등 박쥐의 다양한 천재성을 차근차근 살펴본다. 사회성이 매우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박쥐 군락의 이타주의에 대해 실험하는 장도 매우 흥미로웠고, 박쥐의 의사소통을 형성하는 학습 과정, 다감각 방어 메커니즘을 확인하는 실험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뼈와 화석, 유전자라는 서로 다른 단서를 통해 수천만 년 전 최초의 박쥐가 하늘로 날아오른 극적인 진화의 순간을 재구성해 보려는 과정 또한 매우 놀라웠다. 저자는 말한다. 감히 자신의 빈약한 상상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진화는 아주 창조적인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이 책을 읽다 보면 누구나 그의 의견에 동의할 것이다. 인간은 다른 생물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절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과학 논픽션을 읽다 보면, 간접적으로나마 그 경이로운 세상을 체감하게 된다. 이는 우리가 과학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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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강은 그녀를 끌어내린다
윤지현 지음, 박지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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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가 들려." 수진이 말했다.

"무슨 목소리?"

"생명을 되살릴 때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우리 가문 여자들의 목소리야."

"뭐야, 귀신 같은 거야? 말도 걸 수 있어?" 마크가 물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야. 뭐랄까......" 수진은 적당한 말을 생각했다. "기억의 콜라주 같아. 여자애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 내가 듣는 걸 통제할 수는 없어. 옆방에 서 누가 라디오 채널 돌리는 걸 엿듣는 것 같아."                    p.48~49


열일곱 수진에게 죽음은 낯설지 않은 것이었다. 7년 전 어머니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고, 작년 가을에 언니 미래가 강에 빠져 죽었기 때문이다. 언니 미래는 고작 한 살 많았는데도 무엇이든 담담히 견디는 대범한 성격이었고, 엄마처럼 수진을 챙겨주는 존재였다. 갈등이 있을 때마다 따뜻한 차를 내밀고 다정한 말을 건네며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언제나 미래였다. 수진은 언니의 죽음 이후 엉뚱한 딸이 살아남은 게 아닐까, 언니가 살아 남았다면 아버지의 삶은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어머니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메꿔 주던 존재이자 아버지에게 든든한 장녀였던 미래가 사라지고 열 달이 지났지만, 수진은 여전히 슬픔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해안가 작은 마을 ‘제이드 에이커’는 백인이 득세한 곳이었고, 이곳에서 한국인 자매와 가족은 소수자에 속했다.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수진의 집안에는 여성들에게만 전해 내려오는 마법이 있었다. 가문의 여성 혈통을 타고 전해지는 가보는 먼 옛날 참혹한 폐허와 굶주림에 허덕이던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마을 사람들 모두 굶주리던 저주받은 해의 저주받은 계절, 그들 가족은 닭 뼈를 땅에 묻고 그 흙에서 살아 있는 암탉을 꺼낸다. 가족의 비밀 암탉은 백 번의 죽음을 맞이하며 가족들을 살려냈다. 지금 수진은 반려 생쥐인 밀키스를 그런 식으로 십여 번 되살려냈다. 잘린 꼬리를 땅에 묻고 죽은 생명을 되살려 낼 때면 오래 전 가문의 여자들 목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소녀에서 소녀에게 전해 내려온 무형의 가보. 기적과도 같은, 생명을 불어넣는 여자들로 가득한 집이었지만, 정작 그들 자신은 구하지 못했다. 재능에는 대가가 따랐고, 작은 동물만 되살리기로, 그것도 자주 하지 않아야했다. 엄마와 언니가 죽었으니, 이제 수진은 재능을 가진 유일하게 남은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귀신이 되는 걸 너무 거창하게 생각해. 물에 빠져 죽은 아이의 엄마는 귀신의 부름 때문에 그리된 게 아니야. 아이를 보내지 못하는 자신의 간절한 마음 때문에 그렇게 됐지. 그 마음 때문에 죽고 만 거야. 마크, 그게 전부란다. 귀신이 되는 건 단 하나, 놓지 못하는 마음 때문이야. 우리를 괴롭히는 건 우리가 놓아줘야 떠나는 거야.”

... 그건 어떤 기분일까? 어떤 대상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자기 삶을 완전히 버린 채 바다로 헤치고 들어가는 마음이란?             p.284~285


수진은 물에 빠져 죽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았다. 언니의 시신이 발견되고 첫 한 달 동안에 같은 꿈만 꾸었기 때문이다. 잠들 때마다 물에 빠졌고, 숨을 헐떡이며 물 밖으로 올라가려고 몸부림치다 잠에서 깨곤 했다. 그 감각은 이름 없는 유령이 되어 자지 않을 때도 예고 없이 수진을 덮치곤 했다. 목구멍이 꽉 막히는 느낌에 주변 시야가 축축하게 젖어들며 어두워졌다. 수진은 너무도 외로웠고, 언니가 그리웠다. 결국 수진은 축축한 구덩이에 언니의 젖니를 넣고 흙을 덮은 다음 무릎을 꿇는다. 밀키스를 되살리던 것과는 달랐다. 수진은 자신이 없었고 성공하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끝내 금기를 어기고 죽은 언니를 되살려낸다.  언니는 원래 모습 그대로 다시 돌아왔다. 특유의 습관도 달라지지 않았고, 기억력도 완벽했으며, 눈에 띄는 부분은 거의 모든 게 그대로였다. 하지만 미래는 수진이 알던 그 언니가 맞는 것일까. 금기를 어긴 수진은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까. 


이 작품은 한국계 미국 작가 윤지현의 첫 장편소설이다. ‘장화 홍련’ 설화를 감각적이고 현대적인 스릴러로 재해석한 작품이라고 해서 매우 기대하며 읽었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가 창가 화분에 심은 대파 뿌리가 다시 살겠다는 의지로 빛을 향해 힘겹게 솟아오르듯, 땅에 묻힌 뼈도 되살아날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비옥한 흙 사이로 흰 깃털이 어렴풋이 보이기를 기다리며 마당에 닭 뼈를 묻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경험이 이 작품의 토대가 되었다. 슬픔에 잠긴 소녀가 죽은 언니의 치아를 땅에 묻어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죽음과 협상해 이겼다고 가정해 본다면 말이다. 죽은 이를 되살렸다고 해서 죽기 전과 같아질 수 있을까. 그렇게 하는 것이 되살아난 사람에게, 공동체에게 정말 더 나은 일인 걸까, 생각해 본 것이다. 작가의 결론은 '슬픔을 묻어두기보다는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장화 홍련’처럼 불온한 운명에 빠진 여성들의 설화를 음울하고도 아름답게, 우아하고도 기이하게 그려내고 있다. 강렬한 표지 이미지만큼이나 압도적인 몰입감을 주는 매혹적인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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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책방 도감 ㅣ 이야기가 있는 디테일 도감
마사키 데쓰야 지음, 백운숙 옮김 / 윌북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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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나무는 설계를 맡은 건축사의 제안으로 설치한 거대 서가다. 자유로운 곡선으로 잘라낸 합판으로 만든 선반을 일정한 간격으로 쌓아 올렸는데, 마치 움푹 주름 잡힌 커다란 느티나무를 보는 듯하다. 텅 빈 책나무 내부는 아이들을 위한 비밀 독서 공간이다. 매장에 발을 들인 손님들은 하나같이 매장 입구에 우뚝 솟은 책나무를 올려다본다. 그러고는 책나무에 꽂힌 그림책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한다. 책나무를 둘러싼 계단을 하나둘 오르다 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 그림책과 어린이책의 세계에 빠져든다.              p.23


도서관, 혹은 책방의 도서관 문을 여는 순간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마법과도 같다. 서가에 가득찬 책들의 냄새와 조용한 분위기가 방금 전까지 소란스럽던 세상의 소음을 다 없애준 듯한 느낌도 든다. 그래서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서점이란, 낯선 곳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효과를 발휘한다. 해외 여행을 가면 현지의 책방을 꼭 들르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처음 가는 도시에 있는, 읽을 수도 없는 언어로 된 책들로 가득한 서점에서도 특유의 분위기와 공기로 인해 익숙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은 일본의 개인 서점, 사설도서관, 북카페 등 '책이 있는 공간'을 찾아가 공간을 실측해서 그린 입체 도면을 한데 엮은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공간 마흔네 곳은 거의 일본 전역에 분포되어 있는데, 이 책을 들고 일본 책방 투어 여행을 떠나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도호쿠, 간토, 고신에쓰 지역, 호쿠리쿠, 도카이, 긴키 지역, 주고쿠, 시코쿠 지역, 규슈, 오키나와 지역으로 구분해 책이 있는 공간들을 정리해두었다. 지역도서관과 대형 서점 체인점이 임팩트 있는 큰 공간을 연출하는데 비애, 개인 서점, 사설도서관, 북카페 등은 작지만 늠름하게 자기만의 공간을 가꿔나가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서점 내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실측 기반 공간 분석 일러스트를 구경하는 것만으로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다. 서점 해부도는 각각의 요소들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어 굉장히 디테일하며, 일러스트 자체가 너무 아름다워 페이지를 넘겨가며 서점 도면들을 보아도 참 좋았다. 




금방이라도 책에 파묻힐 것 같은 서가 공간을 지나면 카페 공간이 나온다. 카페 공간의 두 벽면에 난 커다란 전면 창이 시원한 개방감을 안겨준다. 서가가 책변색을 피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안쪽 벽면에 모인 덕이다. 카페 공간은 주방 급배수를 위해 높게 올린 카운터 바닥보다 한 단 낮아서 탁 트인 공간인데 아늑하기까지 하다. 예전 매장에서는 아예 분리돼 있던 카페 공간과 서가 공간이 어우러진 레이아웃은 혼자서 두 공간을 오가야 하는 주인에게는 효율적인 동선이다.              p.171


옛 정취 물씬 나는 술집 골목에 자리한 서점의 서가에는 헌책과 신간이 의도적으로 섞여 있고, 고등학생이 연 무인서점은 1년마다 책장 주인이 바뀌는 운영 방식이 인상적이다. 디자이너 겸 책방지기기 완성한 서점은 다양한 색감을 활용한 인테리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고, 목재 창고를 리노베이션한 서점은 높은 천장과 비스듬한 기둥을 살린 역동적인 인테리어가 매력적이다. 서가를 한 바퀴 돌면 세계 여행을 한 듯한 기분이 드는 서점도 있고, 폐관한 영화관에 딸린 작은 티켓 창구를 리모델링해 문을 연 서점은 남의 서재를 몰래 들여다보는 듯한 착각이  드는 공간배치가 매력적이다. 초록색 공중전화 부스를 활용해서 만든 사방 80cm의 초소형 도서관도 있고, 심야 열한 시에서 새벽 세 시까지 4시간만 영업하는 헌책방도 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매력의 책방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저자는 직접 이 공간들을 찾아가 줄자로 공간의 치수를 재고 집기의 배치까지 1mm 단위로 실측해 기록했다. 이렇게 탄생한 애정 어린 도면과 일러스트들은 일본 현지에서도 건축 관계자는 물론 서점 덕후들에게 큰 화제를 모았다고 한다. 책과 서점을 사랑한다면, 언젠가 나만의 서점을 운영해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면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더할 나위 없이 편한 인터넷 서점에서 클릭 한 번이면 바로 책이 내 집 현관 앞으로 오는 시대에 굳이 수고롭게 동네 책방을 찾아 가는 이유가 뭘까. 책방이 단순히 책이라는 물건을 사고 파는 장소가 아니라 '타인과 공존하는 곳이자 지친 마음들이 위로 받고 연결되는 곳'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프랜차이즈 서점이 등장했다 금세 사라지고, 온라인 쇼핑이 엄청나게 성장하고, 전자책 독자들이 탄생하면서 책과 서점이 여전히 의미가 있는 가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도 있지만, 이런 책을 보고 있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방이 없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책이 있는 공간을 사랑한다면 이 아름다운 책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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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균열내기 - 뒤라스, 카뮈, 에르노를 지나 다만 내가 되기 위해
신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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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라스의 산문집 <물질적 삶>에서 그의 주방 벽에 붙어 있던 물건의 목록을 본 적이 있다. 가는소금부터 락스, 철수세미, 절연 테이프까지 꼼꼼히 적혀 있던 생필품들. 두 번의 전쟁을 겪었던 그의 어머니가 늘 벽장 속에 채워뒀던 물품들과 꼭 닮은 목록이다. 우리는 어머니가 만든 집을 떠나 어머니를 닮은 집을 만들며 살아간다. 어머니가 우리에게 돌아갈 집 그 자체가 되어줬던 것처럼,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집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여자들이다. 뒤라스의 세계에서 집으로 유토피아를 창조하고, 스스로 집이 되고, 그곳에 결국 '혼자' 남게 되는 것은 언제나 여자들이다.                p.16~17


아니 에르노의 작품을 한국에서 가장 많이 번역한 프랑스 문학 번역가이자 소설과 산문을 발표하기도 한 작가 신유진의 신작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알베르 카뮈, 프랑수아즈 사강, 장 그르니에, 아니 에르노, 밀란 쿤데라, 조르주 페렉, 엘렌 식수 등 프랑스 작가들의 문장과 삶을 따라가며 근사한 사유가 펼쳐진다. 글을 쓸 때마다 갇힌 것과 깨부수는 장면을 동시에 상상한다는 저자는 접힌 모서리를 펼치고, 매끄러운 막 아래 숨은 자신을 꺼내면 어떤 내가 나올까 생각하며 이 책을 썼다. 작가의 책을 펼치고, 그와 함께 그의 근원지로 내려가면서 그곳에서 나의 진짜 기억과 마주하고, 나의 수치심을 넘어 타인의 수치심을 만났던 기억이 이 책을 쓰게 했다. 그래서 이 책은 날카롭게 갈린 언어로 표면의 막을 내리찍어 부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쩍, 소리를 내며 갈라지도록.


작가와 작품은 완전히 별개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삶을 통해 그 작품을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편이다. 작품이 허구의 창작물이라 해도, 분명 작가의 삶에서부터 묻어 나오는 부분이 있을 테니 말이다. 아마도 그래서 작가의 흔적을 따라 그가 태어난 곳부터 살았던 장소들을 찾아가보기도 하면서 실제 그 곳을 느끼고 경험하려고 하는 것일테고 말이다. 그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실제 장소가 아니라, 작가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글쓰기의 근원이자 기억의 장소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간다는 발상 자체가 너무도 흥미로웠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의 조건들이 다르게 마련이고, 그것이 어떻게 작용해 문학 작품을 이루게 되었는지를 고스란히 따라가 보는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이 책은 한 사람이 끝내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무엇을 부수고 다시 세울 수 있는지 함께 탐색해보는 아름다운 순간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어떤 장소나 대상을 관찰할 때, 그것이 가진 모든 세부 사항을 남김없이 기록하여 더 이상 쓸 것이 없을 때까지 밀어붙이는 방식을 취했다. 단순히 물건을 적는 게 아니라,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의 표면 아래에 숨겨진 실체를 바라보려고 한 것이다. 동사가 사라진 자리에 빽빽하게 들어찬 명사들의 숲을 헤치며, 페렉은 묻는다. 사물의 목록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존재는 그만큼 더 선명해지고 있는지 아니면 그 속에 파묻혀 지워지고 있는지. 이 욕망의 숲에서 벗어나기 위해 페렉이 제안하는 방법은 그것들을 다시 제대로 응시함으로써 감각을 되찾는 것이다.             p.162~163


뒤라스 사후에 그의 아들이 어머니의 레시피를 모아서 출간한 책 <마르그리트의 요리>에 대한 글 뒤에는 뒤라스의 파 수프 레시피가 수록되어 있고, 카뮈의 <이방인>과 <페스트>에서 태양이 한 역할에 대한 글 끝에는 태양의 성지를 찾아 떠나는 카뮈의 지중해 가이드가 담겨 있다. 아니 에르노와 에두아르 루이의 삶을 오디세우스들의 서사로 풀어낸 글 뒤에는 오디세우스의 항해 일지가, 다니엘 페나크의 몸에 대한 사유를 그려낸 글 뒤에는 다니엘 페나크의 몸 번역 노트와 번역가를 위한 몇 가지 조언이 담겨 있다. 한 작가의 삶과 문학을 이루는 저변에 사소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단서들을 찾아내 글로 풀어내고 있어 너무 흥미롭게 읽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에게는 파 수프가, 아니 에르노에게는 오디세우스의 서사가, 알베르 카뮈에게는 이방인이, 조르주 페렉에게는 장소가, 아고타 크리스토프에게는 적어가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어떤 작품을 읽을 때 '책 속에 있는 그들과 책 너머에 있는 이들이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때'가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 근원지를 찾아 사다리를 타고 깊숙이 내려간다. 뒤라스의 눈으로 여자와 바다를 보자면 현실의 부정이 아니라 반복의 중독이 있고, 카뮈의 부조리는 눈을 멀게 하는 빛과 숨을 조이는 더위, 지친 육체라는 몸의 감각에서 태어났다. 사강의 사진은 대체로 드레스를 입은 파티걸의 모습이지만, 진짜 좋아했던 것은 미니 블랙 드레스가 아니라 포근한 스웨터라는 사실에서 스웨터는 나 자신과 타자를 감쌀 만큼 온기를 가진 문학적인 옷이 된다. 한 번도 모방과 흉내 내기를 하지 않으며 적어에 복종한 적이 없었던 ㅏ고타 크리스토프의 고집스러운 싸움을 알게 되면 그의 작품 속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눈에 들어오게 된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은 그렇게 문학의 길고 긴 터널을 지나 다시 나에게로 당도하는 여정이기도 했다. 작가와 문학을 읽어내는 가장 독창적인 방식이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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