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박쥐 - 진화가 빚어낸 가장 다재다능한 생명의 비밀
요시 요벨 지음, 조은영 옮김 / 어크로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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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곧이어 발견된 또 다른 사실은 인간이 자연의 사회성을 바라보는 방식을 뒤흔들어 놓았다. 군락 내에서 먹이를 공유하는 네트워크를 상세히 분석했더니, 흡혈박쥐 암컷은 아무하고나 음식을 나누지 않으며, 단순히 서로 알고 지낸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보다는 예전에 자기에게 피를 준 적이 있는 동료 뱀파이어에게 우선 피를 나눠주고 싶어 했다. 즉 두 개체는 혈맹을 형성한 사이였다. 일방적 이타성이 아닌, 상호 이타주의라는 말이다... 상호 호혜가 가능할 만큼 신뢰의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고, 또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p.33


하늘을 날 수 있는 유일한 포유류이자, 전 세계 포유류 종의 2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박쥐에 대해서는 대체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박쥐는 그저 무서운 날짐승, 피에 굶주린 병균 덩어리, 혹은 바이러스를 매개하는 동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그래서인지 각종 공포, 호러 영화에서 불길함을 상징하는 존재로 항상 등장하는 존재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사실 박쥐는 아주 특별한 동물이다. 지금까지 식별된 1,500종 중에 다른 동물의 피를 마시면서 사는 종은 세 종에 불과하고, 일부는 시력이 아주 좋으며, 몸무게에 비해 그 어떤 포유류보다 장수한다. 그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인간이 미처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인류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감각의 영역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룬 존재이기도 하다. 


박쥐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요시 요벨은 열대우림의 진흙탕과 한낮 기온이 섭씨 40도까지 치솟는 아프리카 대륙을 비롯해 별이 쏟아지는 사막의 밤을 오가며 20년 넘게 박쥐를 연구해왔다. 1,000개가 넘는 GPS 추적 데이터와 수십 편의 논문을 바탕으로 10년에 걸쳐 집필된 이 책은 웬만한 다큐멘터리보다 더 생생하고, 한 편의 소설처럼 흥미진진한 박쥐의 세계를 보여준다. 인간이 미처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인간이 도달하지 못한 영역에서 탁월한 존재가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굶주린 동료에게 자신의 끼니를 내어주고, 피 한 모금으로 쌓은 신뢰를 수십 년 동안 기억하며, 같은 크기의 생쥐보다 20배 이상 오래 살며, 바이러스의 공격에 아주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면역계를 가지고 있어 전 세계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연구 대상이다. 이렇듯 인간의 잣대로는 번역되지 않는 천재성이 박쥐의 생명현상 안에, 그리고 박쥐의 사회 안에 가득하다. 이제 이 책의 제목이 왜 <The Genius Bat>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박쥐에게는 특히 먹이를 씹으며 듣는 능력이 아주 중요하다. 대부분의 박쥐는 공중을 날며 먹이를 먹는다. 그러면서 주변 물체에 부딪히지 않게 반향정위 신호를 계속 발사하고 그 반사음을 들어야 한다. "먹고 말하는 모든 순간에 계속 생각한다네. 그게 과학에 깊이 몰두했을 때 일어나는 일이지. 샤워할 때는 털에 대해서 생각하고, 씹을 때는 청각에 대해서 생각하고." 펜턴이 웃으면서 말했다.

진화의 문제가 늘 우리를 사로잡는 이유는, 아마도 그것을 규명하기가 너무도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소리를 사용해 곤충을 사냥한 최초의 박쥐가 내보냈던 반향정위 신호를 기록할 수만 있다면 나는 백만 달러라도 기꺼이 지불할 생각이다.                  p.302~303


솔로몬왕에서 닥터 두리틀까지 동물과의 대화는 항상 인간을 매료시켜 왔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동물에게 언어 능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대신 동물이 내는 소리를 '의사소통'이라고 표현한다. 인간의 언어는 단어라고 부르는 단위로 구성되어 유한한 단어를 나열해 의미가 다른 무한한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연구자들은 동물에게는 이런 능력이 없다고 말한다. 박쥐는 대단히 넓은 범위의 신호를 사용해 소통한다. 박쥐가 주변을 감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반향정위 신호는 짧고 정형화되었지만, 다른 박쥐와 소통하기 위한 신호는 길거나 짧고, 휘파람 같기도 지저귀는 소리 같기도 하고, 초음파일 때도 있고,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일 때도 있다. 어릴 때부터 언제나 동물을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에, 마당에서 지저귀는 직박구리의 소리를 듣고 새들의 대화를 상상하곤 했다는 저자가 성인이 되어 연구실을 꾸리고 박쥐의 말을 이해하려고 실험을 하며 이런 놀라운 책을 펼쳐내게 되었다는 서사 자체가 과학의 아름다운 측면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은 박쥐의 뇌와 감각 그리고 놀랍도록 복잡한 사회적 네트워크, 언어와 소통, 진화 순서의 논쟁 등 박쥐의 다양한 천재성을 차근차근 살펴본다. 사회성이 매우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박쥐 군락의 이타주의에 대해 실험하는 장도 매우 흥미로웠고, 박쥐의 의사소통을 형성하는 학습 과정, 다감각 방어 메커니즘을 확인하는 실험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뼈와 화석, 유전자라는 서로 다른 단서를 통해 수천만 년 전 최초의 박쥐가 하늘로 날아오른 극적인 진화의 순간을 재구성해 보려는 과정 또한 매우 놀라웠다. 저자는 말한다. 감히 자신의 빈약한 상상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진화는 아주 창조적인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이 책을 읽다 보면 누구나 그의 의견에 동의할 것이다. 인간은 다른 생물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절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과학 논픽션을 읽다 보면, 간접적으로나마 그 경이로운 세상을 체감하게 된다. 이는 우리가 과학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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