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강은 그녀를 끌어내린다
윤지현 지음, 박지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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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목소리가 들려." 수진이 말했다.

"무슨 목소리?"

"생명을 되살릴 때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우리 가문 여자들의 목소리야."

"뭐야, 귀신 같은 거야? 말도 걸 수 있어?" 마크가 물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야. 뭐랄까......" 수진은 적당한 말을 생각했다. "기억의 콜라주 같아. 여자애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 내가 듣는 걸 통제할 수는 없어. 옆방에 서 누가 라디오 채널 돌리는 걸 엿듣는 것 같아."                    p.48~49


열일곱 수진에게 죽음은 낯설지 않은 것이었다. 7년 전 어머니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고, 작년 가을에 언니 미래가 강에 빠져 죽었기 때문이다. 언니 미래는 고작 한 살 많았는데도 무엇이든 담담히 견디는 대범한 성격이었고, 엄마처럼 수진을 챙겨주는 존재였다. 갈등이 있을 때마다 따뜻한 차를 내밀고 다정한 말을 건네며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언제나 미래였다. 수진은 언니의 죽음 이후 엉뚱한 딸이 살아남은 게 아닐까, 언니가 살아 남았다면 아버지의 삶은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어머니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메꿔 주던 존재이자 아버지에게 든든한 장녀였던 미래가 사라지고 열 달이 지났지만, 수진은 여전히 슬픔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해안가 작은 마을 ‘제이드 에이커’는 백인이 득세한 곳이었고, 이곳에서 한국인 자매와 가족은 소수자에 속했다.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수진의 집안에는 여성들에게만 전해 내려오는 마법이 있었다. 가문의 여성 혈통을 타고 전해지는 가보는 먼 옛날 참혹한 폐허와 굶주림에 허덕이던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마을 사람들 모두 굶주리던 저주받은 해의 저주받은 계절, 그들 가족은 닭 뼈를 땅에 묻고 그 흙에서 살아 있는 암탉을 꺼낸다. 가족의 비밀 암탉은 백 번의 죽음을 맞이하며 가족들을 살려냈다. 지금 수진은 반려 생쥐인 밀키스를 그런 식으로 십여 번 되살려냈다. 잘린 꼬리를 땅에 묻고 죽은 생명을 되살려 낼 때면 오래 전 가문의 여자들 목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소녀에서 소녀에게 전해 내려온 무형의 가보. 기적과도 같은, 생명을 불어넣는 여자들로 가득한 집이었지만, 정작 그들 자신은 구하지 못했다. 재능에는 대가가 따랐고, 작은 동물만 되살리기로, 그것도 자주 하지 않아야했다. 엄마와 언니가 죽었으니, 이제 수진은 재능을 가진 유일하게 남은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귀신이 되는 걸 너무 거창하게 생각해. 물에 빠져 죽은 아이의 엄마는 귀신의 부름 때문에 그리된 게 아니야. 아이를 보내지 못하는 자신의 간절한 마음 때문에 그렇게 됐지. 그 마음 때문에 죽고 만 거야. 마크, 그게 전부란다. 귀신이 되는 건 단 하나, 놓지 못하는 마음 때문이야. 우리를 괴롭히는 건 우리가 놓아줘야 떠나는 거야.”

... 그건 어떤 기분일까? 어떤 대상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자기 삶을 완전히 버린 채 바다로 헤치고 들어가는 마음이란?             p.284~285


수진은 물에 빠져 죽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았다. 언니의 시신이 발견되고 첫 한 달 동안에 같은 꿈만 꾸었기 때문이다. 잠들 때마다 물에 빠졌고, 숨을 헐떡이며 물 밖으로 올라가려고 몸부림치다 잠에서 깨곤 했다. 그 감각은 이름 없는 유령이 되어 자지 않을 때도 예고 없이 수진을 덮치곤 했다. 목구멍이 꽉 막히는 느낌에 주변 시야가 축축하게 젖어들며 어두워졌다. 수진은 너무도 외로웠고, 언니가 그리웠다. 결국 수진은 축축한 구덩이에 언니의 젖니를 넣고 흙을 덮은 다음 무릎을 꿇는다. 밀키스를 되살리던 것과는 달랐다. 수진은 자신이 없었고 성공하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끝내 금기를 어기고 죽은 언니를 되살려낸다.  언니는 원래 모습 그대로 다시 돌아왔다. 특유의 습관도 달라지지 않았고, 기억력도 완벽했으며, 눈에 띄는 부분은 거의 모든 게 그대로였다. 하지만 미래는 수진이 알던 그 언니가 맞는 것일까. 금기를 어긴 수진은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까. 


이 작품은 한국계 미국 작가 윤지현의 첫 장편소설이다. ‘장화 홍련’ 설화를 감각적이고 현대적인 스릴러로 재해석한 작품이라고 해서 매우 기대하며 읽었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가 창가 화분에 심은 대파 뿌리가 다시 살겠다는 의지로 빛을 향해 힘겹게 솟아오르듯, 땅에 묻힌 뼈도 되살아날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비옥한 흙 사이로 흰 깃털이 어렴풋이 보이기를 기다리며 마당에 닭 뼈를 묻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경험이 이 작품의 토대가 되었다. 슬픔에 잠긴 소녀가 죽은 언니의 치아를 땅에 묻어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죽음과 협상해 이겼다고 가정해 본다면 말이다. 죽은 이를 되살렸다고 해서 죽기 전과 같아질 수 있을까. 그렇게 하는 것이 되살아난 사람에게, 공동체에게 정말 더 나은 일인 걸까, 생각해 본 것이다. 작가의 결론은 '슬픔을 묻어두기보다는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장화 홍련’처럼 불온한 운명에 빠진 여성들의 설화를 음울하고도 아름답게, 우아하고도 기이하게 그려내고 있다. 강렬한 표지 이미지만큼이나 압도적인 몰입감을 주는 매혹적인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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