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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책방 도감 ㅣ 이야기가 있는 디테일 도감
마사키 데쓰야 지음, 백운숙 옮김 / 윌북 / 2026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나무는 설계를 맡은 건축사의 제안으로 설치한 거대 서가다. 자유로운 곡선으로 잘라낸 합판으로 만든 선반을 일정한 간격으로 쌓아 올렸는데, 마치 움푹 주름 잡힌 커다란 느티나무를 보는 듯하다. 텅 빈 책나무 내부는 아이들을 위한 비밀 독서 공간이다. 매장에 발을 들인 손님들은 하나같이 매장 입구에 우뚝 솟은 책나무를 올려다본다. 그러고는 책나무에 꽂힌 그림책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한다. 책나무를 둘러싼 계단을 하나둘 오르다 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 그림책과 어린이책의 세계에 빠져든다. p.23
도서관, 혹은 책방의 도서관 문을 여는 순간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마법과도 같다. 서가에 가득찬 책들의 냄새와 조용한 분위기가 방금 전까지 소란스럽던 세상의 소음을 다 없애준 듯한 느낌도 든다. 그래서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서점이란, 낯선 곳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효과를 발휘한다. 해외 여행을 가면 현지의 책방을 꼭 들르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처음 가는 도시에 있는, 읽을 수도 없는 언어로 된 책들로 가득한 서점에서도 특유의 분위기와 공기로 인해 익숙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은 일본의 개인 서점, 사설도서관, 북카페 등 '책이 있는 공간'을 찾아가 공간을 실측해서 그린 입체 도면을 한데 엮은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공간 마흔네 곳은 거의 일본 전역에 분포되어 있는데, 이 책을 들고 일본 책방 투어 여행을 떠나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도호쿠, 간토, 고신에쓰 지역, 호쿠리쿠, 도카이, 긴키 지역, 주고쿠, 시코쿠 지역, 규슈, 오키나와 지역으로 구분해 책이 있는 공간들을 정리해두었다. 지역도서관과 대형 서점 체인점이 임팩트 있는 큰 공간을 연출하는데 비애, 개인 서점, 사설도서관, 북카페 등은 작지만 늠름하게 자기만의 공간을 가꿔나가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서점 내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실측 기반 공간 분석 일러스트를 구경하는 것만으로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다. 서점 해부도는 각각의 요소들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어 굉장히 디테일하며, 일러스트 자체가 너무 아름다워 페이지를 넘겨가며 서점 도면들을 보아도 참 좋았다.

금방이라도 책에 파묻힐 것 같은 서가 공간을 지나면 카페 공간이 나온다. 카페 공간의 두 벽면에 난 커다란 전면 창이 시원한 개방감을 안겨준다. 서가가 책변색을 피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안쪽 벽면에 모인 덕이다. 카페 공간은 주방 급배수를 위해 높게 올린 카운터 바닥보다 한 단 낮아서 탁 트인 공간인데 아늑하기까지 하다. 예전 매장에서는 아예 분리돼 있던 카페 공간과 서가 공간이 어우러진 레이아웃은 혼자서 두 공간을 오가야 하는 주인에게는 효율적인 동선이다. p.171
옛 정취 물씬 나는 술집 골목에 자리한 서점의 서가에는 헌책과 신간이 의도적으로 섞여 있고, 고등학생이 연 무인서점은 1년마다 책장 주인이 바뀌는 운영 방식이 인상적이다. 디자이너 겸 책방지기기 완성한 서점은 다양한 색감을 활용한 인테리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고, 목재 창고를 리노베이션한 서점은 높은 천장과 비스듬한 기둥을 살린 역동적인 인테리어가 매력적이다. 서가를 한 바퀴 돌면 세계 여행을 한 듯한 기분이 드는 서점도 있고, 폐관한 영화관에 딸린 작은 티켓 창구를 리모델링해 문을 연 서점은 남의 서재를 몰래 들여다보는 듯한 착각이 드는 공간배치가 매력적이다. 초록색 공중전화 부스를 활용해서 만든 사방 80cm의 초소형 도서관도 있고, 심야 열한 시에서 새벽 세 시까지 4시간만 영업하는 헌책방도 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매력의 책방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저자는 직접 이 공간들을 찾아가 줄자로 공간의 치수를 재고 집기의 배치까지 1mm 단위로 실측해 기록했다. 이렇게 탄생한 애정 어린 도면과 일러스트들은 일본 현지에서도 건축 관계자는 물론 서점 덕후들에게 큰 화제를 모았다고 한다. 책과 서점을 사랑한다면, 언젠가 나만의 서점을 운영해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면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더할 나위 없이 편한 인터넷 서점에서 클릭 한 번이면 바로 책이 내 집 현관 앞으로 오는 시대에 굳이 수고롭게 동네 책방을 찾아 가는 이유가 뭘까. 책방이 단순히 책이라는 물건을 사고 파는 장소가 아니라 '타인과 공존하는 곳이자 지친 마음들이 위로 받고 연결되는 곳'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프랜차이즈 서점이 등장했다 금세 사라지고, 온라인 쇼핑이 엄청나게 성장하고, 전자책 독자들이 탄생하면서 책과 서점이 여전히 의미가 있는 가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도 있지만, 이런 책을 보고 있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방이 없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책이 있는 공간을 사랑한다면 이 아름다운 책을 놓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