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우습게 봤겠지만
베라 쿠리안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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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의 복수극과 연쇄살인마를 쫓는 심리 스릴러로서 탁월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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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으로 산다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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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갑작스러운 종영을 견딜 나름의 노하우를 찾아야 했고, 최대한 쉬운 방법을 택했다. 인물들의 이야기가 계속된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겠지. 누군가는 사랑에 빠지고, 또 누군가는 이별하겠지. 내 삶이 계속되는 것처럼, 그들의 삶도 계속 이어지겠지. 그 습관 때문인지, 소설을 쓰기 시작한 후 나는 내 이야기도 그렇게 읽히기를 원하게 됐다. 끝 이후의 다른 시작을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 그 상상이 신파적이어도 좋고, 구태의연해도 좋고, 인생이 뒤바뀌는 내용이어도 좋다. 어차피 상상이니까.               p.42


강화길 작가의 소설을 꽤 많이 읽어 왔다. 소설이 허구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한 작가의 작품을 계속 읽어 오다 보면 어느 정도는 내가 이 작가를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마련이다. 작가의 삶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은연 중에 소설 속에서 묻어날 거라고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강화길 작가의 첫 산문집을 읽으며 '낭만적으로 산다'는 제목의 의미가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모든 진실에는 대가가 따르게 마련이고, 어떤 사실은 모르고 사는 게 낫다고들 하지만, 이렇게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만나게 되어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작가는 언젠가 소중한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말라고. 그들이 그 사실만으로 너를 판단할 것이고, 어쩌면 약점을 잡을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이는 정말 가깝고, 상대를 아끼기 때문에 해줄 수 있는 말이다. 연약한 부분, 비밀, 무심코 내뱉은 별생각 없는 말이 나에게 불리하게 돌아올 수도 있다는 충고이니 말이다. 작가는 그때 자신이 충동적으로 쓸데없는 말을 해서 부담을 준 것 같다고 괜히 눈치가 보였다고 한다. 뭘 해주기를 바라고 한 말은 아닌데, 내가 그냥 이런 사람이라는 말을 한 것뿐인데, 가까운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내면으로 너무 깊이 초대한 것 같아서 미안했다고 말이다. '나만 아픈 게 아니니까, 다들 조금씩은 아프고, 큰 병을 앓는 사람도 많은데 내 통증이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자조하는 작가의 말에 마음이 아팠다. 어디가 좀 아파, 여기가 좀 안 좋아... 통증 앞에서 매번 더듬거리고 모국어를 잃어버린 기분이 든다는 문장 앞에서 한 동안 멈춰섰다. 좋아하는 작가였음에도, 이런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독자로서 미안했기 때문이다. 




때때로, 문학을 이해하는 방식은 너무 개인적이다. 참 사사롭다.

그래서 소중한 걸까.

... 나는 내가 쓴 글이 '이야기'라는 구조와 메타포 체계 안에서 다양한 함의를 지니기를 원하지, 내 인생을 은유하는 어떤 단서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인생은 별 볼 일 없으니까. 언제나 나는, 나보다 내 소설이 낫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나은 걸 만든다는 믿음으로 글을 쓴다. 세상에서 나를 지워버리고 싶은 욕망. 지금의 나를 잊고 싶은 갈망. 하지만 알고 있다. 그건 불가능하다는 것.                  p.93~94


통증으로 인해 새벽에 잠에서 깨고, 컨디션이 좋은 날이 채 며칠이 되지 않는, 만성질환의 세계란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통증과 피로를 지속적으로 겪으면서 사는 삶은 어떤 것일까 나는 알지 못한다. 증세가 악화되었다가 호전되기를 반복하고, 호전되더라도 이유가 명확하지 않으며, 애초에 통증이 시작된 계기가 원인이 없다는 것, 그것만큼 억울한 것이 또 있을까. 심리적인 문제, 내부장애, 만성 통증 등의 보이지 않는 장애는 타인으로부터 공감받기 어렵다. 당사자가 경험하는 고통에 대해 주변인들이 즉각적으로 인지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작가가 본 영화와 여러 책들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그것들이 다시 하루를 살아낼 수 있게 한다는 힘이 되고 있다는, 내게도 그렇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누구나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이 책에서 자신의 약점을 고스란히 고백하고 있다. 덕분에 앞으로 만나게 될 강화길 작가의 소설을 대하는 독자로서 나의 태도 또한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원래 좋아하는 작가였지만, 이 짧은 산문집 덕분에 더 애정하는 작가가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가 보통 '낭만'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현실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생각한다면, 강화길 작가의 낭만은 조금 다르다. 현실을 잊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과 불안을 견뎌내며 그 속에서 단단히 살아가는 것이다. 온 힘을 다해 끝까지, 쓸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다 쥐어짜내서 오늘도 글을 쓰고 있을 작가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자신의 약한 부분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끝내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 의지를 닮고 싶어졌다. 이 책 덕분에 나쁘지 않은 일상과 그럭저럭 괜찮은 하루에, 드라마틱한 전개는 없지만 평화로운 삶에 새삼 감사하다는 마음이 드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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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마음에 이름 붙이기 - 현대인을 위한 정신분석사전
노은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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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왜'를 어떻게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너무 쉽게 묻거나 혹은 아무도 묻지 않는 것들, 그리고 함부로 말해지는 것들과 말할 수 없는 것들. 그 사이에서 알 수 없는 모호한 마음들이 제발 알아봐달라고 아우성친다. 알 수 없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위로받을 수도 없는 마음들이다. 이름 없는 마음은 여러모로 다루기 어렵다. 누군가 "마음이 어때요?"라고 물으면 제대로 대답할 수가 없다.              p.4


예전에는 조용하고 예의 바른 것이 미덕이었다면, 지금은 단정하게 감정을 다루고, 애쓰지 않은 듯한 모습으로 어려움을 소화해내야 하며, 실수조차 멋지게 감추어야 하는 자연스러운 완벽함이 추구되는 시대이다. 기름진 음식을 즐기지만 날씬한 몸을 유지하고, 갈등 상황에서 불편한 감정을 표현하되 다른 사람을 수용하며, 직장에서는 유능한 동시에 여유로운 동료여야 하고, 집에서는 따뜻하면서도 간섭하지 않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한 가지를 따르자니 다른 하나가 어긋나고, 둘 다 따르자니 자신을 부정해야 하는 쉽지 않은 요구가 끊임없이 계속 되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일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느끼면서도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과 마주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나 취약점, 특정 감정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쿨하지 않은' 진짜 내면은 숨겨지고 점점 고립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애쓰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하는 모순 속에 우리는 노력하는 모습을 들킬까 걱정하는 불안과 애써도 좋은 결과가 없을 까봐 부끄러운 수치심, 남에게 보이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다른데서 오는 분열, 감정 표현을 억제하고 완벽함을 유지하려다 완전히 소진되고 마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야근은 자율이라며 정작 매일 야근하는 상사, 하루 종일 남의 기분만 생각하느라 정작 나를 살필 여유는 없고, 너무 보고 싶은데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전혀 다른 감정의 공존과 애인과 함께 있어도 늘 혼자인 것 같은 기분에 시달리며, 절대로 남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는 마음과 후배가 내 자리를 뺏을까 걱정되는 심리 등 누구나 한번쯤 겪어본 감정들을 풀어내고 있어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감정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의 상태를 알려주는 신호다.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다. 스스로를 비난하는 대신, 왜 그런 감정이 생겼는지 자신에게 호기심을 갖는 것이 회복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착한 사람'이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과거의 관계를 지켜주었다면, 이제는 아팠던 내 감정을 돌볼 차례다. 상대방의 무심함이나 거절을 나의 결함으로 해석하지 않고, 그 상황에서 내가 느낀 감정에 주목해 보자... '착한 사람'의 외피를 벗고 나의 마음을 말할 수 있을 때, 관계도 나 자신도 건강해질 수 있다.                p.272


오래 사귄 연인과 이별했을 때, 헤어져서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좋으면서 밉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하면서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마음, 또는 나를 아프게 했던 사람을 그리워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하고 분노할 때, 좋은 사람이라 가까워지고 싶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멀리하게 되는 경우 말이다. 이처럼 서로 상반되는 감정과 태도, 경향성을 동시에 느끼는 것을 '양가감정'이라 부른다. 이러한 양가감정은 누구나 종종 경험하게 된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퇴사 결정에 후련하면서도 불안해지고, 동료의 승진 소식에 축하하는 마음과 질투를 동시에 느끼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양가감정은 우리가 자기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해준다. 중요한 것은 양가감정을 억누르거나 삭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괜찮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양가감정을 잘 다룰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니 말이다. 


이 책은 기쁨, 슬픔, 즐거움, 불안, 두려움 등 명료한 감정들 외에 모호한 마음에도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28가지 심리학 개념과 정신분석 이론을 기반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겪는 생각과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준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되, 그 과정에서 힘들어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을 지칭하는 EP문화,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적인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내면의 감정과 욕구는 억압된 심리상태인 노모패시, 타인을 기쁘게 하느라 내 감정은 뒷전인 피플 플리저... 그 외에도 리머런스, 판타즘, 말비빔, 시블링 트라우마, 데드마더 콤플렉스 등 일상에서 우리를 힘들게 만들었던 감정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보고, 탐구하고, 해석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이해하기 어려웠던 마음들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이게 되는 시간이었다. 이 책은 정신분석의 언어를 빌려 낯설고 모순된 마음들에도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지금의 감정이 어떤 관계와 경험 속에서 만들어졌는지 이해하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 책을 읽으며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이름 없는 마음에 이름을 붙이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되찾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었던 감정과 경험이 ‘생각되고’ ‘견딜 만해’지면서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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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하는 고고학자 - 고대 인류 문명의 모습과 소리, 냄새, 맛을 재현하는 과학자들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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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무는 시간이 지나면 분해되어 발굴 현장에 남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고고학자들은 나무 자루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에렌은 사색에 잠겨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우리가 발견하지 못하는 것─예컨대 나무─이 옛날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긴 것일 수 있어요. 어쩌면 석기 시대가 아니라 목기 시대라고 불러야 할지도 몰라요." 이것은 정말로 참신한 통찰인데, 고고학 교과서에서는 결코 접할 수 없는 통찰이다. 이 통찰을 얻으려면, 실제로 나무와 돌로 도구를 만들어봐야 한다.               p.107


과학과 의학 분야에서의 도덕성과 윤리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해주었던 <과학 잔혹사>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샘 킨의 신작이다. 과학과 스토리텔링을 함께 엮어 내는 그의 뛰어난 재능이 빛을 발하는 책이다. 보통 고고학이라고 하면 유물을 발굴하고 연구하는 학문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사람들이 남긴 물리적 흔적으로 통해 그들이 살아가던 사회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물만으로 옛사람들에 대해서 온전하게 이해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여기서 '실험고고학'이 등장한다. 


실험고고학자들은 과거 사람들의 행위를 직접 재현하며 유물에서는 떠올리기 힘든 '과정'을 복원해낸다. 이 책은 과학과 기술이 고고학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 현장을 누비며 실험에 직접 참여하는 동시에, 고대인들의 삶을 픽션으로 현실감 있게 풀어내고 있다. 우리가 결코 체험할 수 없는 과거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세계 곳곳에 묻혀 있던 새로운 역사를 밝혀낸다는 점이 흥미로웠기에 고고학을 다룬 책들을 꽤 많이 읽어본 편이다. 그럼에도 '실험고고학'이라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너무 신기했다. 석기 시대의 뗀석기를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 보고, 고대의 수렵채집인들이 사냥에 사용했던 창을 그대로 구현해보기도 하고, 피라미드가 건설되는 동안 노동자들에게 지급되었던 이집트 빵과 맥주를 당시 레시피로 만들어 먹어보는 것은 그저 유물들을 보고 관찰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으니 말이다. 




우리가 안뜰에서 실험을 마무리할 때, 해리는 지난 몇 년 동안 알래스카 도자기를 재현하려는 시도들에서 겪은 실패들을 회상했다... 우리는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웃을 여유가 있다. 우리가 만든 못생긴 도자기가 부서져도 잃는 것은 자존심과 약간의 노동뿐이며, 그 과정에서 오히려 지식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북극 지방의 빙상에 있던 아마루크에게는 훨씬 큰 것이 걸려 있었다. 그곳에서는 잘못 만든 도자기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p.536


고대 이집트는 인류 최초의 문명은 아니지만, 가장 거대하고 가장 오래 지속된 문명으로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반짝이는 보물과 불가사의한 미라, 그리고 고대 세계의 가장 경이로운 업적인 피라미드까지 이집트의 유산이니 말이다. 피라미드 건축은 전 사회가 동원된 노력이었고, 통념과 달리 피라미드 건축을 위해 일한 사람들은 박해받는 노예가 아니라, 이집트의 영광을 위해 노력한 자부심 높은 노동자들이었다. 가장 미천한 하인부터 가장 고귀한 왕족까지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식사 때마다 빵을 먹고 맥주를 마셨다. 4000여 년 전, 피라미드 노동자들이 먹던 빵은 어떤 맛이었을까?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이자 이집트 미식학자인 시머스 블랙리는 이집트학자와 미생물학자의 자문을 통해 고대 이집트 빵을 구현해 낸다. 실제 이집트로 가서 고대 도기에서 효모를 채취했고, 파라오 시대의 화덕을 만들고 아카시아 나무를 구해와 1년 동안의 연습 끝에 제대로 된 빵을 만들어 낸다. 저자는 그를 만나 그가 구현해낸 고대 이집트의 빵 한 덩이를 직접 먹어본다. 스펀지처럼 폭신하면서도 쫄깃하고, 아주 맛있는 효모의 톡 쏘는 맛이 살아 있는 빵이었다. 이렇게 고대 인류 문명의 맛을 현대에 재현해내는 것이 실험고고학이다. 


실험고고학자들은 직접 돌을 깨고, 불을 피우고, 창을 만들어 던지며, 동물의 사체를 파묻기도 하고, 심지어는 사람의 시신을 기증받아 직접 미라를 만들어보기도 한다. 과거와 관련된 개념을 실험실에서건 자연에서건 실험을 통해 검증해보는 것이다. 물건을 발굴하고 수동적으로 그것에 대한 가설을 세우는 대신, 실제로 어떤 행동을 '하면서' 능동적으로 과거를 재현해내는 것이다. 그렇게 바이킹의 맥주를 양조하고, 전차를 몰고, 아즈텍인의 공놀이를 직접 해보고, 투탕카멘 왕이 먹었던 시큼한 맛의 빵을 굽는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고고학인 셈이다. 어떻게 고대 이집트의 빵이나 수백만 년 전의 도구를 현대에 재현할 수 있었을지 궁금하다면 이 놀라운 책을 놓치지 말자. 논픽션과 픽션을 근사하게 버무려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과거를 온몸으로 경험해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책이니 말이다. 너무 재미있어서 7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 짧게 느껴질지도 모르니, 시간을 충분히 두고 천천히 읽어 보길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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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시온 지음, 김은경 옮김 / 시공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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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흘 정도 그런 날들을 보냈을 때,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도 텔레비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텔레비전이 없는 숙박 시설에 체류하고 있는데 어째서 일에 진전이 없는가 미심쩍던 참에, 수수께끼가 풀려 마음이 한결 가뜬하다. 텔레비전의 유무 같은 자질구레한 일 따위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 나의 집중력은 언제 어느 때건 그냥 없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바위처럼 굳건하게 집중력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런 말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슬슬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일하지 않으면 정말 곤란하다. 쓰고 또 쓰고 왕창 쓰겠다!                   p.149


<배를 엮다>, <사랑 없는 세계> 등의 작품으로 만나온 미우라 시온의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2012년부터 2022년까지 여러 잡지와 신문에 연재했던 글과 단발성 작품을 모은 것으로 분량이 꽤 많아 매우 즐겁게 읽었다. 대부분의 에세이들은 분량이 작아 아쉬웠던 적이 많았는데, 이 책은 웬만한 소설보다 묵직해 아껴가며 읽을 수 있었다. 코로나 시기에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의 일상을 담은 에피소드부터 일본 근교의 소도시 여행기, 책 소개와 독서에 관한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소재로 쓰인 글들이 담겨 있다.


식물 가꾸기를 좋아해 제법 많은 식물들을 키우고 있지만 대부분 이름도 모른다거나, 입체물을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해 수박 자르는 게 서툴어서 난처하다거나, 이파리에서 꿀이 나오는 식물 덕분에 개미와의 전투를 벌이고 나서는 왜 작은 생물들과 이토록 진심으로 싸우고 마는 것이냐고 생각하는 모습이 너무도 귀여웠다. 그녀는 마음에 드는 물건이 너무 비싸서 살 수 없어도, 눅눅한 날씨 덕에 한참 빨래를 못해도 한숨 쉬지 않는다. 이렇게 살면 매일이 행복할 수밖에 없겠구나 싶은 글들이었다. '타인의 존재가, 인기척이, 일상에 빛을 내려주고 때로는 충돌을 일으킨다'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이 세상 아름다움의 근본이 '다양한 것',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는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기분이 몽글몽글해졌다. 나도 매일 하루치의 행복을 만끽하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자연스레 드는 시간이었다. 




나는 일단 어떤 대상을 좋아하기 시작하면 언제까지고 좋아하는 편이다. 어느 순간 '쿵' 하고 구멍에 빠지듯이 좋아진다. 구멍 안이 새카매도, 가슴께까지 흙이 차올라도, 그곳에서 빠져나오려 하지 않는다. 더듬더듬 그 세계를 탐험하고 "오오, 안쪽이 꽤 깊은데"라든가 "벽에서 신기한 버섯이 자라고 있어!"라든가 자그마한 뭔가를 발견하고는 혼자서 기뻐한다. '질린다'라는 감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좋아하기 시작하면 일편단심'이라고 말하면 듣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변화와 성장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p.247~248


혼자 사는 친구가 이사할 때가 되어 집 찾기를 도와주었다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만화와 옷을 좋아해서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친구였는데, 어느 정도냐면 다다미 여섯 장 크기의 방 벽면을 천장까지 닿는 책장으로 모조리 채우고, 방바닥 전체에 허리까지 올라올 만큼 만화를 쌓아도 부족할 정도였다고. 만화책이 이 정도였으니 옷장도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그래서 집을 고를 때 건물의 건축 시기도, 역과의 거리도, 방범 수준이 좋은지 어떤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지만 수납에 관해서 만큼은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영원히 세련되고, 물건이 적어 깔끔한 집에서는 살 수 없는 운명이라는 친구의 말에 공감하며, 인간의 마음과 가치관이란 정말 이상하고도 다양하다고 함께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나 역시 미우라 시온과 그녀의 친구와 같은 입장이었으니 말이다. '역시 만화용 집을 따로 빌려야 할까 봐'라는 친구의 말에 공감하며, 나 역시 수납공간이 넉넉한 집을 꿈꿔 보았다. 


미우라 시온의 소설도 좋아하지만, 에세이는 소설과는 또 다른 결로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많았다. 침대 위에도, 침실 바닥에도, 식탁 위에도 아직 읽지 않은 책으로 바리케이드를 쳐두어 이 집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는 글렀다고 생각하면서도 도 책을 사고 마는 모습도, 실수가 있더라도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더라도 그저 속 편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태도도, 어떤 대상이든 한번 좋아하면 영원히 계속 좋아하는 사랑스러운 성향도 너무 공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봄은 벚꽃이 만개해서, 여름은 산이 울창해서, 가을은 단풍이 아름다워서, 겨울은 폭신폭신한 침구에 감싸여 잠드는 행복감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얼굴 찌푸리고, 기분이 나빠질 일이 뭐가 있을까. 그런 마음이라면 일년 내내 허투루 보낼 날은 하루도 없지 않을까. 매일이 다른 방식으로 행복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시선이 책을 읽는 사람까지 긍정적인 마인드가 되도록 만들어 주는 느낌이었다. 해피 바이러스가 필요한 이들에게 적극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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