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낭만적으로 산다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갑작스러운 종영을 견딜 나름의 노하우를 찾아야 했고, 최대한 쉬운 방법을 택했다. 인물들의 이야기가 계속된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겠지. 누군가는 사랑에 빠지고, 또 누군가는 이별하겠지. 내 삶이 계속되는 것처럼, 그들의 삶도 계속 이어지겠지. 그 습관 때문인지, 소설을 쓰기 시작한 후 나는 내 이야기도 그렇게 읽히기를 원하게 됐다. 끝 이후의 다른 시작을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 그 상상이 신파적이어도 좋고, 구태의연해도 좋고, 인생이 뒤바뀌는 내용이어도 좋다. 어차피 상상이니까. p.42
강화길 작가의 소설을 꽤 많이 읽어 왔다. 소설이 허구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한 작가의 작품을 계속 읽어 오다 보면 어느 정도는 내가 이 작가를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마련이다. 작가의 삶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은연 중에 소설 속에서 묻어날 거라고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강화길 작가의 첫 산문집을 읽으며 '낭만적으로 산다'는 제목의 의미가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모든 진실에는 대가가 따르게 마련이고, 어떤 사실은 모르고 사는 게 낫다고들 하지만, 이렇게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만나게 되어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작가는 언젠가 소중한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말라고. 그들이 그 사실만으로 너를 판단할 것이고, 어쩌면 약점을 잡을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이는 정말 가깝고, 상대를 아끼기 때문에 해줄 수 있는 말이다. 연약한 부분, 비밀, 무심코 내뱉은 별생각 없는 말이 나에게 불리하게 돌아올 수도 있다는 충고이니 말이다. 작가는 그때 자신이 충동적으로 쓸데없는 말을 해서 부담을 준 것 같다고 괜히 눈치가 보였다고 한다. 뭘 해주기를 바라고 한 말은 아닌데, 내가 그냥 이런 사람이라는 말을 한 것뿐인데, 가까운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내면으로 너무 깊이 초대한 것 같아서 미안했다고 말이다. '나만 아픈 게 아니니까, 다들 조금씩은 아프고, 큰 병을 앓는 사람도 많은데 내 통증이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자조하는 작가의 말에 마음이 아팠다. 어디가 좀 아파, 여기가 좀 안 좋아... 통증 앞에서 매번 더듬거리고 모국어를 잃어버린 기분이 든다는 문장 앞에서 한 동안 멈춰섰다. 좋아하는 작가였음에도, 이런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독자로서 미안했기 때문이다.

때때로, 문학을 이해하는 방식은 너무 개인적이다. 참 사사롭다.
그래서 소중한 걸까.
... 나는 내가 쓴 글이 '이야기'라는 구조와 메타포 체계 안에서 다양한 함의를 지니기를 원하지, 내 인생을 은유하는 어떤 단서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인생은 별 볼 일 없으니까. 언제나 나는, 나보다 내 소설이 낫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나은 걸 만든다는 믿음으로 글을 쓴다. 세상에서 나를 지워버리고 싶은 욕망. 지금의 나를 잊고 싶은 갈망. 하지만 알고 있다. 그건 불가능하다는 것. p.93~94
통증으로 인해 새벽에 잠에서 깨고, 컨디션이 좋은 날이 채 며칠이 되지 않는, 만성질환의 세계란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통증과 피로를 지속적으로 겪으면서 사는 삶은 어떤 것일까 나는 알지 못한다. 증세가 악화되었다가 호전되기를 반복하고, 호전되더라도 이유가 명확하지 않으며, 애초에 통증이 시작된 계기가 원인이 없다는 것, 그것만큼 억울한 것이 또 있을까. 심리적인 문제, 내부장애, 만성 통증 등의 보이지 않는 장애는 타인으로부터 공감받기 어렵다. 당사자가 경험하는 고통에 대해 주변인들이 즉각적으로 인지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작가가 본 영화와 여러 책들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그것들이 다시 하루를 살아낼 수 있게 한다는 힘이 되고 있다는, 내게도 그렇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누구나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이 책에서 자신의 약점을 고스란히 고백하고 있다. 덕분에 앞으로 만나게 될 강화길 작가의 소설을 대하는 독자로서 나의 태도 또한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원래 좋아하는 작가였지만, 이 짧은 산문집 덕분에 더 애정하는 작가가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가 보통 '낭만'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현실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생각한다면, 강화길 작가의 낭만은 조금 다르다. 현실을 잊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과 불안을 견뎌내며 그 속에서 단단히 살아가는 것이다. 온 힘을 다해 끝까지, 쓸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다 쥐어짜내서 오늘도 글을 쓰고 있을 작가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자신의 약한 부분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끝내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 의지를 닮고 싶어졌다. 이 책 덕분에 나쁘지 않은 일상과 그럭저럭 괜찮은 하루에, 드라마틱한 전개는 없지만 평화로운 삶에 새삼 감사하다는 마음이 드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