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티브 영어어휘력 사전 네이티브 영어표현력 사전
이창수 지음 / 다락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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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학습 후 작성한 후기입니다.





영어를 비롯해서 외국어를 공부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단어 암기일 것이다. 하지만 모래알과 같은 수천 개의 단어를 기억한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소요된다. 게다가 아무리 암기해놓아도 주기적으로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하지 않는 이상 오래 기억되지는 않는다. 영어 공부를 주기적으로 하려고 하는 편이라, 어휘력을 늘이는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이번에 흥미로운 책을 만났다. 바로 이창수 교수의 ‘네이티브 영어’ 시리즈 다섯 번째 책인 <네이티브 영어어휘력 사전>이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일대일 직역식 표현만을 떠올리는 한국인 영어 학습자를 위해 말의 '맥락'을 통해 어휘력을 확장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보통 무엇을 '만들다'를 영어로 표현할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make'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음식을 만드는 것도, 계정을 만드는 것도, 어떤 장치를 만들거나 팀을 만드는 것도 전부 'make'를 사용한다. 그러다보니 특정 맥락에 따라 내가 전달하고 싶은 말의 의도나 뉘앙스 등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실제 원어민들은 상황에 따라 '만들다'를 의미할 때 work on, prepare, create, form, build, fix, set 등 다양한 표현을 사용한다. 시간이나 노력을 투입해서 만들다, 시간을 갖고 신경 써서 만들다, 있는 소재를 사용해 즉흥적으로 만들다, 보고서 등을 급히 작성하다, 그룹이나 관계 등을 형성하다, 머릿속에서 생각해내서 발명하다 등 다양한 표현을 사용한다. 




우리 말의 '가다'에 해당하는 영어 기본 단어는 go로 'go to' 는 '~에/로 가다'는 뜻이다. go to the office, go to the hospital, go to school 등으로 활용된다. 하지만 거의 같은 의미이지만 head to를 사용하면 목적지로 향한다는 움직임의 느낌이 강조되고, run to를 사용하면 어디로 서둘러 급히 가는 것을 나타낸다. dash off to는 급히 가다는 뜻으로 미국보다는 영국, 그리고 문학 묘사에서 많이 쓰는 표현이다. 계획이나 약속을 하지 않고, 잠깐 동안 들르는 상황에서는 stop by, drop by를 사용하고, 확실한 목적이 있고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머무를 때는 visit를 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무작정 영어 표현을 외워서 아무데나 쓰는 것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잘못된 표현을 사용할 경우 말이 맥락과 안 맞거나 의도치 않은 뉘앙스를 전달하게 오히려 해당 표현을 안 쓰는 것보다 못한 상황을 만들게 되니 말이다. 





초, 중급 학습자를 위해 만들어진 교재라 고급스러운 격식체 표현부터 사적인 대화에 어울리는 캐주얼한 표현까지 폭넓게 배울 수 있다. 단어와 뜻, 예문만 나열된 사전식 구성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쓰이는지, 어떤 뉘앙스를 전달하는지, 얼마나 격식/비격식적인 표현인지, 어떤 명사, 전치사와 함께 자주 쓰이는지를 조목조목 알려줘 차근차근 따라갈 수 있도록 해준다. 딱딱하고 오래된 표현은 제외하고, 현재 미국 영어에서 가장 널리 쓰이고 사용도가 높은 표현들로 엄선했기 때문에, 단어를 외우면서 회화 실력을 늘리기에도 도움이 된다.


일상적으로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90개의 개념을 선별해 구성했으니 매일 하나의 개념씩 익히면 세 달만에 완독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일대일 직역식 표현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영어 수준이 훨씬 올라갈테니 영어를 네이티브 수준으로 해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이 책에 수록된 90개의 한국어 개념들이 모두 일상에서 굉장히 자주 사용하는 표현들이라 바로 실제 상황에서 적용해볼 만한 표현들이었다. 잘 읽혀서 사용하면 원어민처럼 상황과 맥락에 맞게 다양한 어휘를 구사하게 될 거라는 기대감도 들었고 말이다. 좋아하다는 표현으로 바로 떠올리는 것이 like라면 이 책에 수록된 좋아하다는 의미의 단어 표현은 무려 열한개나 된다. 무엇에 꽂혀 있다는 뉘앙스, 열광적인 관심을 갖다는 의미, 중독이라 할 정도로 매우 좋아한다는 뜻 등 생각해 보면 한국어 표현으로도 이렇게나 다양한데 영어 표현이 한가지라는 것부터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 책을 통해 직역식 영어 습관부터 고치고, 다층적인 영어 표현들을 익힌다면, 상황과 맥락에 맞게 어휘를 구사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책에 수록된 다양한 예문들은 모두 QR코드를 통해 무료 음원을 활용할 수 있다. 네이티브 발음으로 예문을 들으면서 표현들을 익히면 된다. 각각의 유닛마다 단어들을 구조화해서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해두었는데, 상황, 맥락, 뉘앙스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정리가 되어 있어 좋았다. 기본 단어만 쓰는 일대일 직역식 영어 습관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이 책을 통해 상황별로 어휘를 구사하는 능력을 키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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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들판 - 침묵은 어떻게 역사를 드러내는가
마거릿 주혜 리 지음, 장상미 옮김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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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가족사를 추적하는 일은 내게 삶의 목적이 되었을 뿐 아니라, 아버지를 다시 알아가는 수단이 되었다. 동시에, 가능성의 빛이 차츰 줄고 있었던 뉴욕에서 벗어나는 길이 되어주기도 했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도시에서, 명성은 높지만 보수는 형편없는 직장에 다니면서 또 한 번 연애에 실패하고, 회의감에 빠져 다시 나 자신을 찾으려 애쓰는 중이었다. 안정적으로 함께 가정을 꾸릴 사람을 만나기를 간절히 바랐건만, 그런 안정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상태였다.                 p.56


사람들은 다양한 제각각의 이유로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삶을 시작한다. 그러나 멀리 타국으로 떠나 다시 삶을 살아내는 것인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고, 그것은 이민자들의 2세대에게 더 크게 와 닿을 것이다. 자신이 속해 있던 곳에 대한 상실감, 잘 알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향수와 이곳에도 저곳에도 속할 수 없는 단절감이 자라오는 내내 뿌리깊게 박혀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것은 늘 이민자의 몫이었다. 디아스포라 문학이 발전해 온 것도 그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마거릿 주혜 리는 ‘너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느냐’는 질문에서 시작해 한 번도 본 적 없는 할아버지에 대한 수수께끼를 파헤쳐보기로 마음먹는다. 부모님이 태어난 나라에 가서 한국전쟁 중에 할머니가 불태워버린 경찰 기록과 신문 기록을 찾아내고, 잃어버린 역사를 추적한 과정으로 책으로 쓴다. 문학 편집자이자 기자로 활동했던 이력을 토대로 탐사 보도, 구술사, 기록 조사, 가족 구성원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장면 재현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20세기 한국 역사 속 가족사를 담아냈다. 저자는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자신만 다르게 생겼고, 먹는 음식도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들은 "넌 어디 출신이야?" 라고들 물었고, "휴스턴"이라고 대답하면 사람들은 다시 묻는다. "아니, 진짜로 어디서 왔냐니까?" 열 살이 되어 부모님이 태어난 나라에 갔었지만, 그 나라도 역시 편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조금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정작 말을 하는 것은 짤막한 구절로만 아기처럼 말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2000년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는 이 탐색을 시작한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는, 잊힌 가족의 과거와 대면하는 것이 미래로 길을 내는 데, 그리고 내 아이를 갖는 데 꼭 필요한 단계였음을 깨닫는다.

마침내 집에 온 기분이다. 특정한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사는 베이 에어리어는 아이와 함께 있는데도 여전히 거쳐 가는 곳으로 느껴지고, 한국은 좀 더 익숙하지만 그래도 외국이다. 나에게 집이란 장소가 아니다. 존재의 상태다.                p.380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수차례 항일 시위를 조직했었던 독립운동가였다. 저자는 수년 동안 공부해 부모님의 언어를 어느 정도 읽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제국주의 일본의 통치에 저항한 십대 공산주의 혁명가라고 기록된 할아버지의 삶을, 잃어버린 가족의 역사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잊힌 할아버지의 생애는 일제강점기와 제2차 세계대전, 분단, 미군정, 한국전쟁, 재건, 군사독재를 거쳐 세기말에 민주주의와 번영을 이루기까지 격동으로 가득 찼던 20세기 한국사와 얽혀 있었다. 그렇게 가족사를 추적하는 일은 삶의 목적이 되었을 뿐 아니라, 아버지를 다시 알아가는 수단이 된다. 저자는 편집자 생활을 그만두고 근대 한국사 수업을 듣고, 도서관에서 일제강점기 조선 관련 정보를 찾아보며 거의 알지 못했던 미국 이민 이전의 삶에 관해 아버지에게 더 많은 질문을 던진다.


직업적 야망은 제쳐두고, 가족의 비밀을 풀어 내면 삶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게 될까? 대체 왜 과거로 향하는 이 여정에 뛰어든 것인지, 저자는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 그리고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할머니와의 세 번째 인터뷰 전에 저자는 알게 된다. 왜 할머니가 남편의 신념이 담긴 물적 증거를 파기한 것인지. 전쟁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과 자식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말이다. 잊혀진 한 사람의 삶을 복원해내는 과정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분단 이후를 통과하며 감춰온 기억과 비밀 속에 담긴 역사를 보여준다. 개인의 가족사이자 대한민국 현대사를 함께 만날 수 있다는 것에 이 책의 특별한 점이 있다. 정지아 작가의 말처럼 역사와 동떨어진 개인은 없으니 말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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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다 거짓이야
대니얼 나예리 지음, 김래경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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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난 못생겼고 희한하게 말한다. 가난하다. 옷은 중고품이고 음식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난다. 콧구멍도 판다. 당신이 좋아할 농담이나 이야기는 모른다. 게임의 규칙도 모른다. 누가 내게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당신처럼, 난 신중하게 창조되었다. 자신이 지은 것을 보고 기뻐하신 신이 나를 지었다. 

당신처럼, 난 친구를 원한다.             p.31


<천일야화>에서 셰에라자드는 왕이 자신을 죽이지 않도록 매일 밤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천일 하고도 하룻밤 동안. 왕은 왕비의 부정에 충격을 받아 매일 밤 처녀와 잠자리를 하고 날이 밝으면 그 처녀를 죽였는데, 셰헤라자데는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왕에게 밤마다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매일 밤 이어지는 그녀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흥미진진하고, 에로틱하고, 달콤하고, 자극적이어서 왕은 그녀를 죽일 수가 없게 된다. 그녀는 밤마다 이야기를 끝맺지 않고 멈췄기 때문에 나머지를 듣기 위해 왕은 하루하루 처형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야기가 남은 목숨이었던 것이다. 


이 작품 속 열두살 소년 대니얼도 고대 페르시아 신화로 직조해 낸 이야기를 끊임없이 우리에게 들려준다. 모든 것을 잃어버렸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공포에 질린 소의 목에서 흐르는 시뻘건 피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부터 아버지가 운전하던 차를 타고 주말마다 여행길에 올랐던 가족의 여정과 커다란 베틀로 페르시아 양탄자를 짜는 할머니에 대한 기억들 위로 이란에서 탈출해 두바이, 이탈리아를 거쳐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살게 된 가족의 생존기가 그렇게 펼쳐진다. 덕분에 소년은 페르시아어와 이탈리아어, 영어, 세 개의 언어를 말하게 되었지만, 평생 이상하게 말한다는 소리를 들어왔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 또한 '무슨 열두 살짜리가 이렇게 말한담?'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대니얼은 '조각보 같은 이야기는 난민의 수치'라고 말하면서도, 슬픔의 밑바닥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들을 솜씨좋게 엮어 내어 아름다운 마법의 양탄자로 재탄생시킨다. 




무너진 마음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우리 삶에서 하도 큰 부분을 차지하기에 그 고통을 느끼지조차 못한다.

아예 무감각해졌다. 지속되기 때문이다.

지루할 만큼 사실이다.

실은 우리 뇌가 두려운 나머지 우리 가슴속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렸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p.233


오클라호마의 한 중학교, 밀러 선생님 반 아이들은 페르시아인은 다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만나본 페르시아인은 대니얼 밖에 없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아이들은 대니얼을 피부색이 어둡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도시락을 싸오며 늘 거짓말투성이인 이야기를 지어내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니얼이 하는 이야기는 동정심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허풍을 떠는 것도 아니다. 적대감으로 가득한 교실에서 대니얼은 <천일야화>의 셰에라자드처럼 살아남으려고, 진실을 지키려고 이야기를 엮는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전부 다 사실이다. 그렇게 이 작품은 조각난 기억의 파편을 주워 모아 빚어낸 아름다운 신화가 된다. 


이 작품은 뉴베리 아너상 연속 수상으로 영미문학계에 가장 독보적인 거장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대니얼 나예리의 신작이다. 작가는 이란에서 태어나 난민 생활을 거쳐, 일곱 살에 가족과 함께 오클라호마로 이주했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열두 살 ‘호스로’로 분해, 어린 시절에 겪은 뼈아픈 상실과 난민의 삶을 펼쳐 보인다. 가장 행복했던 기억조차 가장 슬픈 기억으로 돌변해 버릴 수 있는, 아무도 환영해주지 않는 곳에서 참혹한 기억으로 살아가야 하는 난민 소년의 이야기는 시처럼 아름답고, 동화처럼 신비로우며, 신화처럼 매혹적이다. 실제 작가의 자전적인 경험으로 바탕으로 쓰인 이 작품은 뼈아픈 상실과 난민의 삶을 서늘하고도 유쾌한 농담으로 풀어내며 먹먹한 감동을 자아낸다. 문학이 어떻게 완벽한 구원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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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못생기게 나오는 카메라
신이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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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암만 그래봐라, 내가 너 싫어하나.'

까탈스러운 어린이인 나를 키우며 엄마는 계속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어쩌면 생각에 힘이 있는 건 아닐까. 엄마의 그 생각이 주문처럼 내게 걸려 있다고도 상상해본다. 어느덧 주문은 내 목소리로 들린다. 설령 세상 사람들이 전부 나를 싫어한다 해도 나까지 나를 싫어할 수는 없지. 어쩔 수 없지. 이 또한 무리에서 벗어난 존재의 생존 본능이다. 나를 보호하는 건 내 마음이다.              p.39~40


시의적절 시리즈의 <이듬해 봄>과 <나 외계인이 될지도 몰라>라는 시집으로 만났던 신이인 시인의 신작 산문집이다. '이렇게 된 이상 활짝 펼쳐진 책 같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엉뚱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시인이 그리는 반항과 낙천, 그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일상 이야기도, 낙천적이지만은 않은 '명랑'으로, 자신만의 독립된 우주를 펼쳐 보이며 경쾌하게 읽히지만 결코 가볍지는 않은 시집도 좋았기에 이번 신작 역시 매우 기대가 되었다. 표지 디자인과 책의 판형부터 시인의 개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아 책을 읽기도 전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나 외계인이 될지도 몰라>에서는 '못돼처먹은'이 되어야만 버틸 수 있는 세계에서, 안팎을 가르는 경계를 넘어, 낙천적이지만은 않은 '명랑'으로, 자신만의 독립된 우주를 펼쳐 보였다. 발칙하고 자유로운, 유쾌하고 귀여운, 어수룩하면서도 되바라진 시 속 화자들이 놀라울 만큼 매력적인 시집이었다. <이듬해 봄>에서는 '이렇게 된 이상 활짝 펼쳐진 책 같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엉뚱함이 유독 기억에 남았다. 시인은 그 산문집에서 새 학기를 시작하는 이들의 가방에 이 책을 넣어주고 싶다고, 이유 없는 경박스러움, 이유 없는 진지함, 이유 없이 어긋났기 때문에 가능한 자신의 낙천을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것 또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인의 자유로운 영혼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말이라 좋았다. 스스로를 ‘외계인’이라 부르는 것에 망설임이 없는 시인이기에 페이지마다 담겨 있는 날 것 그대로의 감성이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들었었다. 




사람 사귀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다들 너무 자란 탓이다. 어쩐지 나이 차이가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편하다. 나를 덜 자란 애로 봐주는 분들에게 마구 치대고 뒹굴고 싶고, 내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다가오는 어린이 같은 친구들과 비눗방울처럼 놀고 싶다. 비눗방울처럼 놀고 싶다는 말은 좀 웃긴가. 내가 되고 싶어 한 건 늘 그런 결이었다. 예쁜 쓰레기. 내가 쓰는 시도 다 허울 좋은 쓰레기 같다.              p.95


이 책은 시인의 두 번째 산문집이다. 제목이 유독 시선을 사로잡았는데, 시인은 산문을 쓰는 작업이 '유난히 못생기게 나오는 카메라 앞에 나를 들이미는 과정과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한다. 굉장히 신선한 표현인데도, 또 너무 공감되는 문장이었다. 시인이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썼을지 막 상상이 되면서, 어쩐지 귀여운 마음도 들었고 말이다. 시인은 이 책에서 집을 사랑으로 채워놓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는 가족들부터, 자신의 보금자리인 '뒤주'를 마련해 독립하게 된 과정, 반려 도마뱀과 함께 하게 된 에피소드 등 일상 속 이야기와 주변의 관계들, 그리고 그로 인해 드러나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포착해낸다. 얼굴을 가리던 손을 내려놓는 기분으로, 물러날 곳은 없다는 마음으로, 그러나 심각하지 않게, 거친 부분과 일그러진 부분도 감추지 않고 고스란히 그려내고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지하철 빌런과 치한과 바바리맨을 웃어넘기며 그들을 이해하고자 했다는 부분이었다. 그들도 얼핏 보면 악역이지만 알고 보면 평범하거나, 가련하거나, 일탈을 즐기는 히어로일 수도 있다고. 다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보면 세상이 귀여워진다고 말이다. 그러한 '이해가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는 방법 중 하나였다'는 문장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가능한 한 모든 여지를 상상해가며 세상의 기묘한 역학 관계를 이해해보고 싶었다는 시인의 마음을 이해할 것도 같았기 때문이다.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혼란 속에서, 어떻게든 발붙일 곳을 마련해서 지키고 살아가기 위해서 선택한 전략이 '외계인 되기'였다는 시인의 마음을 공감하는 사람들 많지 않을까. '저는 이상한 사람이 맞으니까 받아들이세요. 대신 재미있기도 할 겁니다. 예쁘게 봐주세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든 그렇지 않든, 이런 마음 가짐이라면 자신만의 방식과 시선으로 세상을 자유롭게 살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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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우습게 봤겠지만
베라 쿠리안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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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복수란 차갑게 냈을 때 가장 맛있는 요리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요리가 테이블 바로 옆 카트에서 김을 모락모락 내고 있는 마지막 순간에 기다린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말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윌이 내 손아귀에 완전히 붙들려 몸부림치기를 바랐다. 복수가 완벽하기를 바랐다. 기다려야 한다.             p.50


스물두 건의 살인 혐의를 인정해 사형 판결을 받은 연쇄살인범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심리학자가 있다. 온 국민이 그에게 사형을 처하라고 소리를 질러대던 때에 "그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괴물이 아닙니다. 저는 그가 죽어도 싼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며 연쇄살인범을 변호한 것이다. 와이먼 박사는 사이코패스가 반사회적인인격장애보다 '나쁜'게 아니라 '다른'거라고 생각했다. 사이코패스가 고전적인 의미의 '성격장애'라고 믿지 않았으며, 사이코패스가 조현병 같은, 생물학적 근거가 있는 다른 질환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구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어렸을 때 발견하면, 결코 범죄의 길로 빠지지 않는다는 게 와이먼 박사의 주장이었다. 사이코패스의 사회화 가능성을 믿는 그는 자신이 속해 있는 대학에서 '다기법 사이코패스 패널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지난 30년간 워싱턴 경찰의 자문으로 있었던 것이 사이코패스 패널 연구를 진행하도록 허가를 얻는 데 도움이 되었다. 몇몇은 프로그램을 거쳐 사회의 생산적 구성원이 되었고, 현재 연구 대상은 신입생과 재학생 일곱 명으로 이들의 신원은 철저히 보호된다.


그런데 어느 날, 프로그램 참여자 한 명이 누군가에게 살해 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칼에 찔린 채 쓰러진 그를 발견한 것은 또 다른 프로그램 참여자였다. 그리고 몇 주 뒤 다른 참여자가 산탄을 삼킨 채 MRI 기계에 들어가 금속이 온몸을 찢고 나온 처참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이 몇 주 만에 두 명이나 살해당한 것이다. 사이코패스 한 명은 우연일지 모르지만, 두 명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캠퍼스에 사이코패스 일곱 명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 소수밖에 없다면, 용의자 명단은 그리 길지 않다. 학생들은 자신이 다음 타깃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용의자를 직접 찾아 나서기 시작하는데, 과연 누가 이런 일을 벌이고 다니는 것일까. 




"너 설마...... 뭔가 하려는 건 아니지?" 윌이 물었다.

클로이가 거리 모퉁이를 돌아 떠나려는 순간 찰스가 팔을 뻗어 그녀의 팔꿈치를 잡았다.... "클로이...... 오랫동안 원했던 뭔가를 얻으면 행복해질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보통은 그렇게 되지 않더라."

클로이가 한숨을 쉬었다. "너한테 인간관계에 관해 조언할 시간은 없어, 찰스."                p.383


한편, 와이먼 박사의 연구실에서 진행하는 사이코패스 연구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 클로이는 누군가를 죽일 계획이다. 6년 전, 열두 살 때 자신을 강간했던 윌 바크먼이 다니는 존 애덤스 대학에 들어오기 위해서 연구에 참여하기로 했던 것이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는 것은 8월 24일이었고, 클로이가 윌을 죽이기로 신중하게 계획한 날은 10월 23일이었다. 그냘 대규모 시위가 예정되어 있었고, 경찰이 시위대와의 사소한 충돌로 여유가 없고, 도시가 아수라장이 될 것이기에 윌을 죽이기엔 완벽한 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클로이는 대학에 입한한 후 윌의 주변 사람들을 포섭하고, 그와 가까워지는 등 순조롭게 살인 계획을 실행해 나갔다. 그러다 돌연 캠퍼스에서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이 곧 저지를 살인까지 연쇄살인범이 한 일로 된다면 오히려 좋겠다 싶었는데, 어느 순간 누군가 자신을 뒤쫒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윌의 집에 숨어 들었다가 그 사람과 칼싸움을 하면서 죽을 뻔한 경험을 하게 되자, 클로이는 연쇄살인범을 찾아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과연 클로이는 연쇄살인의 진상을 파헤치고, 자신의 복수를 성공시킬 수 있을까.  




이 작품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베라 쿠리안의 첫 작품이다. 베라 쿠리안은 이 작품으로 에드거상 최우수 데뷔 장편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일단 시작부터 자신의 살인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이코패스의 일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당황스러웠는데, 클로이의 일인칭 시점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의 3인칭 시점으로도 교차 진행되기 때문에 금방 서사에 몰입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이코패스들은 일반적인 의미의 사이코패스와는 조금 달랐다. 우리는 ‘사이코패스’ 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살인자들, 성폭력범들, 연쇄살인범들만 떠올리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도 평범해서 정상적인 사람들과 문제없이 지내는 사이코패스들이 실제로는 더 많다고 한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연쇄살인범들은 실패한 사이코패스이고 반면 사악한 기업인이나 파렴치한 정치인 등은 성공한 사이코패스라고 말이다.  어쩌면 우리 주변에도 있을 평범한 얼굴을 한 사이코패스들의 이야기라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도 많은 작품이었다. 


자신을 강간했던 남자를 죽이려는 사이코패스와 사이코패스들을 죽이고 다니는 연쇄살인범이라는 팽팽한 대립구도로 완성된 서사부터 굉장히 흥미로운 작품이기도 했다. 그 속에 사이코패스의 사회화 가능성을 믿는 심리학자의 연구 프로젝트까지 더해지니, 복수극과 심리 스릴러로서의 매력도 탁월했다. 이런 작품이 데뷔작이라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 작품 이후에 발표한 두 번째 작품 <어둠을 지나 한 걸음>도 호평을 받았다고 하니, 곧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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