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나선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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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위로할 필요 없어.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 굳이 말하자면 지금 하는 일은 속죄야."

이 물리학자답지 않은 예민한 말투였다.         

"......어머님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신가요?"

"신만이 아시겠지. 아버지 말씀으론 반년 전 흡인성 폐렴에 걸린 이후로 몇몇 장기 기능이 저하된 모양이야."              p.127


도쿄 인근 바다에서 표류하는 시체가 발견된다. 사십 대 남성으로 추정되었으나 신원을 알 수 있는 물건은 없었고, 뒤에서 총에 맞았으니 자살 가능성은 낮았다. 최근 실종 신고된 인물이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는데, 신고한 동거 여성이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당연히 사라진 여성이 사건에 관여한 것처럼 보였으나, 남자의 사망 추정일에 그녀는 교토 여행 중이었다. 함께 간 친구가 있어 증인도, 알리바이도 있다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구사나기는 수사 과정에서 뜻밖에 오랜 친구인 유카와의 이름을 발견하고,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그는 구사나기의 요청은 단칼에 거절하며, 다른 형태라면 수사에 협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데... 과연 유카와는 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이 책으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후반부에 단편 <겹치다>라는 작품이 에필로그처럼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갈릴레오 시리즈 중 장편과 단편이 함께 엮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투명한 나선>에서 벌어졌던 사건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여운을 남겨주고,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도 가지게 만들어 주었다. 대부분의 시리즈가 그렇듯이 전편을 읽지 않더라도 전혀 상관없을 만큼 각각의 이야기가 완결된 구성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이 시리즈를 읽어 보지 않았다면 이 작품부터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괴팍한 학자의 개인사를 통해 수사에 협조할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고, 캐릭터에게 애정이 생긴다면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도 더 재미있게 읽을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나에의 가슴에 북받쳐 올라오는 것이 있었다. 그것을 억누르려고 침을 꼴깍 삼키고 마나부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까 다른 기회라고 했지? 자세한 사건 설명은 다른 기회에 얘기해 주겠다고. 그럼 나를 또 만나 줄 거니?"

"물론입니다. 저희는 가족이잖아요." 마나부가 미소를 지으며 뒷말을 이었다. "그렇죠. 어머니?"

숨이 멎을 정도로 가슴이 뜨거워졌다.                p.342


히가시노 게이고의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열 번째 작품이다. 이 시리즈는 1996년 처음 연재되어 올해 30주년을 맞이했다. 이 시리즈는 경시청 형사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난제에 부딪힐 때 친구인 대학 물리학 교수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일명 탐정 갈릴레오로 통하는 물리학자가 과학적 증거와 논리적인 추리를 기반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상식을 초월하는 불가사의한 사건이나 초자연적인 현상 등 비합리적인 것들을 과학적으로 명쾌하게 해결해내는 것이 이 시리즈만의 매력이기도 했다. <탐정 갈릴레오>, <예지몽>, <용의자 X의 헌신> 등 시리즈 작품들을 꽤 많이 읽어 왔기에, 이번 신작도 매우 기대가 되었다. 


특히나 이번 작품은 '유카와 교수와 구사나기 형사 콤비의 활약'이라기 보다 그 동안 유카와가 긴 세월 동안 혼자 끌어안고 살아온 비밀이 드러나면서 "인간 ‘유카와 마나부’를 마침내 발견해 낸 작품”으로서 더욱 의미가 있다. 유카와가 자신의 과거와 얽힌 수수께끼와 마주하는 이 작품에 대해 작가는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작품입니다.'라며 오랫동안 간직했던 이야기를 비로소 풀어냈다고 말했다. 천재 물리학자가 평생 숨겨 온 비밀이 궁금하다면, 그가 저지른 죄(?)의 정체를 알고 싶다면 이번 신작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냉정하지만 냉소적이진 않은, 인간 유카와'를 발견하게 될테니 이 시리즈를 오랫동안 읽어온 팬이라면 색다른 감회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전해진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식에 모두 놀랐을 것 같다. 나 역시 워낙 다작을 하는 작가라 영원히 작품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너무 이른 나이에 별이 되신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작품 집필 중이셨다고 하니 더 마음이 좋지 않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수십 년 동안 읽어온 독자로서 부디 그곳에서는 평안하시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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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이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9
장강명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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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뭐가 그렇게 슬퍼? 그는 아내에게 가끔 물었다.

바닷물이 밀려 들어오듯이 밀려와, 슬픔이. 아내가 대답했다.

그 문장을 곱씹을 때 그는 안개가 자욱해서 수평선이 보이지 않고 사람 하나 없어 쓸쓸한 바닷가 갯벌에 자신과 아내가 서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들의 네 발은 이미 진창에 잠겨 있다. 슬픔은 밀려 들어온다기보다는 차오르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사실을 모른 채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웃고 있다.            p.23


소설가인 안시찬은 몸이 안 좋아서 일찍 집에 들어온 아내가 자다가 구토를 하고, 제대로 의식을 못 차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해 119를 부른다.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향할 때까지만 해도 그냥 좀 심한 감기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는 구급대원에게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어눌한 목소리로 엉뚱한 대답만 한다. 결국 아내는 뇌출혈이라는 진단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원을 하게 되는데,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사흘 동안의 그 모든 과정이 담담하게 펼쳐진다.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는 이야기라 그 속도 그대로 '바닷물이 밀려 들어오듯이' 고스란히 감정을 체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안시찬은 스스로에 대해 '마음 깊은 곳에서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 '타인의 불행에 진심으로 무심해서 냉소를 보내려는 수고조차 하지 않'는 소시오패스라고 생각했다. 들키지만 않는다면 온갖 악덕을 저지르고도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고, 그런 자신감이 때로 그에게 살아갈 힘을 주었다고 말이다. 그래서 응급실에서도 그는 자신이 '갑작스럽게 아내가 쓰러지는 바람에 침통해져서, 응급실 침상 옆에서 밤을 지새우며 아내를 돕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착한 남편'처럼 보이는 연기를 하고 있다고 여겼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침통한가? 정말 슬픈가?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도 아내 곁을 지킬 건가? 심한 감기에 불과한데 119를 부르는 바람에 시간을 뺏겼다고 원망하고 있지는 않은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그는 소시오패스가 아니었다. 그저 슬퍼하거나 공감하는 마음이 둔하고, 그에 비해 이성이 지나치게 분석적이고 조급할 따름이었다. 실감을 못할 만큼의 거대한 비극 앞에 마주선 적이 있다면 누구나 그를 이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침대 시트와 베갯잇을 건조기에서 말리는 동안에는 밀대에 끼우는 습식 물걸레로 바닥을 청소했다. 더러워진 청소포를 버리고 새 청소포를 밀대에 끼우려는데 손이 덜덜 떨려서 잘 되지 않았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왜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지 깨달았다.

그는 무서웠다.

너무너무 무서워서 다른 감정을 품을 겨를이 없었다.            p.162~163


현대문학의 핀 시리즈 쉰아홉 번째 작품이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개인의 윤리적 선택을 집요하게 탐구해온 장강명은 이번 신작에서는 부부 관계와 가족의 문제로 관심사를 확장한다. 갑작스러운 아내의 뇌종양 발병 이후, 병원과 현실적인 문제들 사이에서 흔들리던 남편의 심리를 따라가는 이 작품은 장강명 작가의 실제 경험담을 토대로 쓰여진 '소설'이다. 주변 인물을 비롯해 많은 부분이 허구인 소설이지만, 그의 아내에게 벌어진 일을 비롯해 주인공이 겪은 감정은 상당 부분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작품을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 역시 이십여 년 전에 비슷한 경험을 했었기에, 가족에게 갑작스럽게 큰 병이라는 비극이 닥쳤을 때의 그 기분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십 여 년 전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당시 119를 불러 구급차를 탔던 기억부터 혼잡했던 응급실 한켠, 병원을 오갔던 언덕길 등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행히도 엄마는 완쾌하셔서 여전히 건강하게 계신다. 


장강명 작가의 글은 감상적이지 않아서 더 와닿는 부분이 많았다.  응급실의 풍경을 묘사하는 부분이라던가, 자살에 실패해 난동을 부리는 젊은 여성을 바라보며 무심코 생각하는 것들까지... 너무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자살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왜 그렇게 불확실한 방법으로 죽으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곧 이사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잔금을 지불하기 위해 아내 명의 통장의 비밀번호를 알아내야 하는 문제라든가...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이 서사에 핍진성을 부여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정말 진짜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는 글이었다는 거다. 하지만 그래서 더 읽는 내내 슬프기도 했다. '서성이다'라는 제목처럼 누구나 살다 보면 어찌할 바를 몰라 서성이고, 한 동안 떠나지 못해 그 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시간과 마주하게 된다. 두려움과 불안함, 죄책감과 자기혐오, 걱정과 사랑... 한 남자가 겪는 심리적 압박은 비슷한 경험을 한 모든 사람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부디 우리 가족이 이겨낸 것처럼 작가님도, 아내 분도 극복하고 이겨내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섣부른 기대와 낙관을 말하고 싶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필요한 순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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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숲 - 제19회 중앙공론문예상 수상작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이소담 옮김 / 북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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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유는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밤의 숲이 무섭기 때문이다. 그것이 솔로 캠핑이 싫은 가장 큰 이유다. 캠핑하러 오면 늘 모닥불만 바라본다. 주변 나무숲을 응시하면 그 안에서 뭔가 움직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동물이라면 차라리 괜찮다. 동물이 아닌 무언가가. 솔로 캠핑을 오면 하룻밤을 통으로 잘 수 없다. 아무도 없는 한밤중의 숲에서 눈을 감으면, 그 순간 어둠 밑바닥에서 무언가가 기어나와 몸을 거의 덮칠 정도로 접근하는 기척을 느끼기에. 눈을 뜬 순간 그 무언가는 사라지지만.                 p.50~51


길을 잃으면 빠져나올 수 없다는 소문의 숲, 가미모리에서 다섯 살 자폐 아동 마히토가 실종된다. 수십 명이 수색을 벌였고, 경찰견과 드론도 투입되었지만 발자취조차 파악하지 못한다. 행방불명된 지 일주일, 겨울을 앞둔 숲에서 어린 아이가 생존할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가까웠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일주일만에 마히토가 발견되고, 쇠약해지긴 했으나 다친 곳도 전혀 없는 상태였다. 누군가 아이에게 물과 음식을 준 것처럼 보였으나, 아이는 '곰 아저씨가 도와줬어.'라고 말할 뿐 숲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편 숲의 폭력적인 어둠 속에서 누군가 손수레를 힘겹게 끌고 가는 중이다. 미나는 남들이 부러워할 결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을 소중히 대하지 않는 남자를 참고 만나왔는데, 그에게서 관계를 끝내자는 말을 듣고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 힘겹게 숲에 도착해 시체를 파묻으려는 순간, 손수레 너머의 풀숲이 바스락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 누군가 숲에 있었던 거다. 다쿠마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캠핑을 하는 유튜버였다. 월수입은 형편없었고, 솔직히 캠핑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여름이면 싫어하는 벌레가 우글거리고 겨울은 마냥 추웠다. 뭘 해도 잘 풀리지 않아 어쩔 수 없이 3년째 유튜버로 살고 있을 뿐이다. 그날도 숲에서 촬영 중이었는데, 등 뒤에서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난다. 누군가 어둠 속에 있는 것일까. 조직으로부터 도망치는 중인 남자와 자살하기 위해 숲에 도착한 국어 교사까지 이들은 각자 자신만의 사정으로 숲에 있었다. 마히토는 숲에서 이들을 만난 것일까? 




남에게 건방진 소리를 할 주제가 못 된다. 강하지 않다. 아이가 태어난 뒤, 돈을 벌어야 한다며 야근과 휴일 근무로 무리했던 하루타로가 평소라면 하지 않을 실수를 저질러 정비 중인 차에 깔려 죽었을 때는 마히토를 데리고 같이 죽으려고 했다. 다정하지도 않다. 마히토가 ASD인 걸 알았을 때는 왜 우리 아이한테 이러냐고 신을 원망했다. 우리 아이가 이렇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생각을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마히토가 숲에서 행방불명되었을 때 분명히 알았다. 마히토가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p.525~526


숲에서 돌아온 마히토는 예전의 마히토와는 다른 아이처럼 보였다. 짜증을 내지 않는 착한 아이가 된 것이다. 마치 숲에서 분노나 슬픔의 감정을 잃어버리고 온 것처럼. 한 번 헤맸다가는 다시는 빠져 나오지 못한다는 그 숲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마히토가 그간의 상황에 대해 말로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삼촌인 도야가 숲에서 있었던 일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마히토는 숲에서 곰 아저씨를 만났다고 했는데, 그가 남자였는지, 여자였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을 만난 것일 지도 모르겠다. 도야는 홀로 조사를 이어가며 마히토가 숲에서 여러 사람들과 마주쳤다는 사실과 그들이 아이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도와주긴 했으나, 누구나 아이를 경찰에 인계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대체 숲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문>,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등의 작품으로 만났던 오기와라 히로시의 신작이다. 이 작품은 출간된 해에 문학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중견 작가의 소설에 수여하는 중앙공론문예상을 수상했다. 작가는 평소 식물을 돌보며 신비로움을 느끼던 그는 식물의 집합체인 숲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항상 쓰고 싶었다고 한다. 숲이란 사람을 치유하는 장소인 동시에 사방으로 자라난 식물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어 섬뜩한 장소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일주일간 실종되었다가 돌아온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아이가 숲에서 홀로 보냈던 시간을 추적해 가는 이 이야기는 미스터리 서사로 속죄와 구원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이가 숲에서 만난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죄를 짊어지고 있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막막하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게 해주었던 작품이었다. 어디로도 나아갈 수 없어 기적이 필요한 순간, 이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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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잊힌 사람들
발레리 페랭 지음, 장소미 옮김 / 엘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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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노인들은 도망치지만 어디로 갈지 모른다. 그들은 예전으로 돌아가는 길을 잊었다. '그들의 집'은 다달이 오르탕시아 요양원의 거주비를 대느라 매물로 나왔다. 그들의 정원은 텅 비고, 그들의 고양이는 다른 곳으로 보내졌다. 이제 그들의 집은 그들의 기억 속에서만, 그들 각자의 서가에서만 존재한다. 나는 그 각각의 서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나를 가슴 아프게 하는 건 오전 10시만 되면 출입구에 모여들어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하는 중앙 현관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기다린다.            p.62~63


프랑스 동부 시골 마을의 숲 가장자리에 있는 오르탕시아 요양원에는 최근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누군가 일요일에 잊힌 사람들, 그러니까 일요일에 면회객이 하나도 없는 노인들의 가족에게 전화해 그들이 죽었다는 거짓 소식을 알린 것이다. 작년 12월 25일에 시작된 이 일은 이후 다섯 번이나 반복되고 있었다. 전화를 받은 가족들이 장례를 치르기 위해 요양원에 도착하면, 영면해 있어야 할 집안의 어른이 예기치 않은 자손의 면회에 행복해하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다. 전화를 받은 가족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동안 한 번도 면회를 온 적이 없다는 것이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각각의 면회 횟수를 헤아린 뒤 전화를 돌린 것처럼 말이다. 


스물한 살 쥐스틴은 오르탕시아 요양원에서 삼 년째 일하고 있는 요양 보호사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고 조부모 손에 자랐다. 사촌인 쥘의 부모도 함께 사고를 당했기에 남동생처럼 같이 조부모와 가족을 이루고 살았다. 쥐스틴은 낮에는 요양 보호사로 일하고, 밤에는 노인들의 두런거림 속에서 책을 읽고, 토요일 밤이면 클럽에 가서 춤을 춘다. 쥐스틴은 요양원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19호실 할머니 엘렌이다. 사람들은 아흔이 넘은 엘렌을 '바닷가의 여인'이라고 부른다. 하루종일 바닷가 파라솔 밑에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엘렌은 쥐스틴에게 자신의 모든 삶을 들려주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엘렌의 말수가 줄었다. 마치 삶이라는 노래가 음반의 끝에 이르러 볼륨이 줄어드는 것처럼. 




그동안 그녀는 이 순간을 수천 가지 상황으로 상상해왔다. 낮에, 밤에, 저녁에, 겨울에, 정오에, 일요일에, 여름에. 하지만 그녀가 카페 밖에 있고 그가 안에 있는 이런 상황은 결코 상상하지 못했다. 카페 문을 미는 것이 그가 아닌 그녀가 되리라는 것은. 그녀는 자신이 달려가 그의 품에 안기면 그가 그녀를 안아 올려 빙 돌리고, 그 순간 모든 것이 폭발하여 찬란한 광휘와 환희가 분출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왜 항상 우리가 기대하는 일들은 우리가 그것을 더 이상 기대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것일까? 왜 모든 것이 결국 타이밍의 문제일까?                  p.308~309


<비올레트, 묘지지기>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발레리 페랭의 데뷔작이다. <비올레트, 묘지지기>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어느 작은 마을의 묘지지기인 한 여성의 삶과 묘지를 찾는 이들의 추억을 섬세하고 다정하게, 시적이면서도 우아하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과거와 현재, 죽은 자와 산 자의 삶이 교차되고, 빛과 어둠이, 부재와 존재가 한데 어우러져 놀랍도록 아름다운 마법을 보여줘 정말 좋아했던 작품이다. 이 책이 프랑스에서 100만 부 이상 판매되며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켜, 데뷔작 또한 역주행 베스트셀러가 되어 전 세계적으로 15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읽어보니 과연 '역주행'이 될만한 너무 멋진 작품이었다. <비올레트, 묘지지기>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상실과 슬픔, 고통과 기억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엘렌과 특별한 우정을 나누는 쥐스틴은 그녀의 삶을 파란 공책에 받아 적는다. 이야기는 과거 엘렌의 삶과 현재가 교차 서술된다. 난독증을 앓던 엘렌은 뤼시앵을 만나 열여섯 살에 처음으로 글을 익히게 된다. 점자책을 통해서 알파벳을 만지면서 익히게 된 것이다. 그녀는 비로소 태어나는 기분, 숨 쉬는 법을 배우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단어들이, 문장들이 다가오면서 그녀의 삶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독서가 빗장을 풀어 그녀의 몸짓과 행동까지 완전히 변화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전쟁을 겪으며 파란만장했던 엘렌의 삶과 함께 그녀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쥐스틴의 현재 삶도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쥐스틴은 우연히 부모의 교통사고에 정황상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단순한 사고인줄 알았는데, 경찰이 수사를 벌였던 사건이었다는 거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쥐스틴에게 대체 뭘 숨기고 계신 걸까. 그렇게 요양원의 거짓 부고 사건과 쥐스틴의 과거 부모님 사고에 대한 미스터리와 엘렌의 이야기에 얽혀 있는 비밀이 차곡차곡 쌓여 가면서 아름답고도 슬픈 서사가 펼쳐진다. 


흔히 노인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고들 한다. 한 사람이 살아온 삶에는 그많큼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도서관 서가마다 수많은 책들이 각기 다른 이야기와 경험을 담고 있듯이 말이다. 지금의 세대가 겪지 못했던 시간 속에서 개인의 역사뿐만 아니라 사회의 그것 또한 함께 살아 있다. 그래서 노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는 쥐스틴의 마음이 참 예쁘게 느껴졌다. 쥐스틴은 모두에게 두 가지 삶이 있는 법이라고, 생각한 대로 말하는 삶과 말이 침묵 뒤로 사라지는 다른 삶이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세상에서 잊혀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삶의 끝자락에서 여전히 반짝이는 기억들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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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듣기 - 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완성하는 사랑
유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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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내가 들어온 것의 총체다. 수많은 이의 말은 나와 내 삶에 축적되었고, 나는 불시의 습격에 때로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 말이 과거의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를 살폈다. 그리고 아직 그 말이, 그 사람이, 내 안에 이렇게나 생생하게 남아 있음을 알아차리고는 안심했다. 그 기억은 문장으로 오기도 하지만 마치 동영상으로, 일부 구간만 반복 재생되는 동영상으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목소리의 톤, 표정, 손짓과 입고 있는 옷, 주변 환경까지 선명하게 기억난다.                     p.17


'듣기'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행위다. 우리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그에 맞춰 행동하거나 반응하게 된다. 듣기란 타인을 보는 창이 되기도 하고, 함께할 수 있는 놀이이기도 하며, 나와 내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누군가와 귀 기울여 듣고, 말하는 행위에는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고, 공감하려 애쓰고, 적절한 반응을 건네는 것까지 모두 포함이 되어 있으니 말이다. 


10년 동안 인터넷신문사 기자로 일하면서 타인의 말을 질리도록 들어왔다는 유지영 기자는 자신이 '듣는 사람'이라는 게 좋았다고 말한다. 자신은 언제나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고 싶었고, 동시에 더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고, 그것이 살면서 욕심을 낸 유일한 무언가라고 말이다. 이 책에 수록된 열아홉 편의 글에서 저자는 듣기를 인식한 인생 최초의 순간과 그 의미를 오인한 역사, 이윽고 듣기가 진정으로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결정적 순간 등 '듣기'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사유한다. 살아오며 만나 온 사람들, 마음과 시간을 나눈 사람들, 한순간 멀어진 사람들, 이유도, 까닭도 묻지 못하고 끝나 버린 관계들에 대해서, 그리고 다 기억나지도 않는,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말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저 사람은 왜 저런 말을 할까? 저 말에는 어떤 뜻이 숨겨져 있을까? 저 말이 궁극적으로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숨은 바를 집요하게 파악하려는 시도가 내 삶에 적잖은 이득을 가져다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냥 지나가는 사람의 말 한마디에서 그보다 더 깊은 의미를 발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타인의 말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 이는 결국 어떤 태도로 삶을 살 것인가 하는 물음과 닿아 있다. 가볍게 지나갈 수 있는 말을 무겁게 이고 지고 싶지 않았다.               p.172


이야기를 듣고, 강의를 듣고, 연설을 듣고, 음악을 듣는 행위는 얼핏 수동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순간에도 청자는 타인을 분석하고 해석하여 내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게 인식하고 추구하는 일이 바로 ‘심장 듣기’라고, 잘 듣는 일이란 '쓸모를 증명할 수 없으나 그 증명할 수 없음으로 인해 무가치해지지는 않는 일'이라고 말이다. '듣기'가 '누군가의 말을 받아들임으로써 내가 어제와는 다른 형태가 되는 일'이라는 저자의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저자인 유지영 기자는 여성들이 자유롭게 ‘몸’에 관해 이야기한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펴낸 적이 있다. ‘말하기’에 이어 이번에는 ‘듣기’의 영역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10년간 기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온 이력덕분인지 듣기의 정의에 대해 깊이 있는 사유를 만날 수 있었다.


타인의 말을 듣는 것이 직업인 기자뿐만 아니라 우리는 일상에서 가족으로서, 친구로서, 후배로서, 선배로서, 혹은 팀원으로서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 된다. '무엇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무언가를 듣고, 느끼고, 생각하며, 변화한다. 저자는 '듣는 일이 아닌 들어주는 일이란 침묵 속에서 동의하는 것이라고, 사실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상대방은 알지 못하므로 동의 여부가 중요한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은 듣는 법을 아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말을 그저 들어주는 법만을 알았다고, 그래서 오랜 시간 듣는 사람이 아니라 들어주는 사람으로 살았다고 말한다. 적극적이고 의식적이며 주체적인 외향적 행위인 말하기와 수동적이고 반응적이며 내향적 응대처럼 보이는 듣기라는 행위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실 흘려 듣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말을 새겨 듣는다는 것은 선택적 행위이기 때문에, 오히려 적극적인 상태에서만 가능한 것이니 말이다. 이 책을 통해 '마음 다해 귀 기울여온 한 사람의 조용한 목소리'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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