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듣기 - 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완성하는 사랑
유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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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내가 들어온 것의 총체다. 수많은 이의 말은 나와 내 삶에 축적되었고, 나는 불시의 습격에 때로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 말이 과거의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를 살폈다. 그리고 아직 그 말이, 그 사람이, 내 안에 이렇게나 생생하게 남아 있음을 알아차리고는 안심했다. 그 기억은 문장으로 오기도 하지만 마치 동영상으로, 일부 구간만 반복 재생되는 동영상으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목소리의 톤, 표정, 손짓과 입고 있는 옷, 주변 환경까지 선명하게 기억난다.                     p.17


'듣기'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행위다. 우리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그에 맞춰 행동하거나 반응하게 된다. 듣기란 타인을 보는 창이 되기도 하고, 함께할 수 있는 놀이이기도 하며, 나와 내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누군가와 귀 기울여 듣고, 말하는 행위에는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고, 공감하려 애쓰고, 적절한 반응을 건네는 것까지 모두 포함이 되어 있으니 말이다. 


10년 동안 인터넷신문사 기자로 일하면서 타인의 말을 질리도록 들어왔다는 유지영 기자는 자신이 '듣는 사람'이라는 게 좋았다고 말한다. 자신은 언제나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고 싶었고, 동시에 더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고, 그것이 살면서 욕심을 낸 유일한 무언가라고 말이다. 이 책에 수록된 열아홉 편의 글에서 저자는 듣기를 인식한 인생 최초의 순간과 그 의미를 오인한 역사, 이윽고 듣기가 진정으로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결정적 순간 등 '듣기'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사유한다. 살아오며 만나 온 사람들, 마음과 시간을 나눈 사람들, 한순간 멀어진 사람들, 이유도, 까닭도 묻지 못하고 끝나 버린 관계들에 대해서, 그리고 다 기억나지도 않는,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말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저 사람은 왜 저런 말을 할까? 저 말에는 어떤 뜻이 숨겨져 있을까? 저 말이 궁극적으로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숨은 바를 집요하게 파악하려는 시도가 내 삶에 적잖은 이득을 가져다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냥 지나가는 사람의 말 한마디에서 그보다 더 깊은 의미를 발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타인의 말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 이는 결국 어떤 태도로 삶을 살 것인가 하는 물음과 닿아 있다. 가볍게 지나갈 수 있는 말을 무겁게 이고 지고 싶지 않았다.               p.172


이야기를 듣고, 강의를 듣고, 연설을 듣고, 음악을 듣는 행위는 얼핏 수동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순간에도 청자는 타인을 분석하고 해석하여 내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게 인식하고 추구하는 일이 바로 ‘심장 듣기’라고, 잘 듣는 일이란 '쓸모를 증명할 수 없으나 그 증명할 수 없음으로 인해 무가치해지지는 않는 일'이라고 말이다. '듣기'가 '누군가의 말을 받아들임으로써 내가 어제와는 다른 형태가 되는 일'이라는 저자의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저자인 유지영 기자는 여성들이 자유롭게 ‘몸’에 관해 이야기한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펴낸 적이 있다. ‘말하기’에 이어 이번에는 ‘듣기’의 영역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10년간 기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온 이력덕분인지 듣기의 정의에 대해 깊이 있는 사유를 만날 수 있었다.


타인의 말을 듣는 것이 직업인 기자뿐만 아니라 우리는 일상에서 가족으로서, 친구로서, 후배로서, 선배로서, 혹은 팀원으로서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 된다. '무엇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무언가를 듣고, 느끼고, 생각하며, 변화한다. 저자는 '듣는 일이 아닌 들어주는 일이란 침묵 속에서 동의하는 것이라고, 사실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상대방은 알지 못하므로 동의 여부가 중요한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은 듣는 법을 아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말을 그저 들어주는 법만을 알았다고, 그래서 오랜 시간 듣는 사람이 아니라 들어주는 사람으로 살았다고 말한다. 적극적이고 의식적이며 주체적인 외향적 행위인 말하기와 수동적이고 반응적이며 내향적 응대처럼 보이는 듣기라는 행위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실 흘려 듣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말을 새겨 듣는다는 것은 선택적 행위이기 때문에, 오히려 적극적인 상태에서만 가능한 것이니 말이다. 이 책을 통해 '마음 다해 귀 기울여온 한 사람의 조용한 목소리'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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