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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이다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9
장강명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뭐가 그렇게 슬퍼? 그는 아내에게 가끔 물었다.
바닷물이 밀려 들어오듯이 밀려와, 슬픔이. 아내가 대답했다.
그 문장을 곱씹을 때 그는 안개가 자욱해서 수평선이 보이지 않고 사람 하나 없어 쓸쓸한 바닷가 갯벌에 자신과 아내가 서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들의 네 발은 이미 진창에 잠겨 있다. 슬픔은 밀려 들어온다기보다는 차오르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사실을 모른 채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웃고 있다. p.23
소설가인 안시찬은 몸이 안 좋아서 일찍 집에 들어온 아내가 자다가 구토를 하고, 제대로 의식을 못 차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해 119를 부른다.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향할 때까지만 해도 그냥 좀 심한 감기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는 구급대원에게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어눌한 목소리로 엉뚱한 대답만 한다. 결국 아내는 뇌출혈이라는 진단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원을 하게 되는데,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사흘 동안의 그 모든 과정이 담담하게 펼쳐진다.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는 이야기라 그 속도 그대로 '바닷물이 밀려 들어오듯이' 고스란히 감정을 체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안시찬은 스스로에 대해 '마음 깊은 곳에서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 '타인의 불행에 진심으로 무심해서 냉소를 보내려는 수고조차 하지 않'는 소시오패스라고 생각했다. 들키지만 않는다면 온갖 악덕을 저지르고도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고, 그런 자신감이 때로 그에게 살아갈 힘을 주었다고 말이다. 그래서 응급실에서도 그는 자신이 '갑작스럽게 아내가 쓰러지는 바람에 침통해져서, 응급실 침상 옆에서 밤을 지새우며 아내를 돕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착한 남편'처럼 보이는 연기를 하고 있다고 여겼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침통한가? 정말 슬픈가?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도 아내 곁을 지킬 건가? 심한 감기에 불과한데 119를 부르는 바람에 시간을 뺏겼다고 원망하고 있지는 않은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그는 소시오패스가 아니었다. 그저 슬퍼하거나 공감하는 마음이 둔하고, 그에 비해 이성이 지나치게 분석적이고 조급할 따름이었다. 실감을 못할 만큼의 거대한 비극 앞에 마주선 적이 있다면 누구나 그를 이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침대 시트와 베갯잇을 건조기에서 말리는 동안에는 밀대에 끼우는 습식 물걸레로 바닥을 청소했다. 더러워진 청소포를 버리고 새 청소포를 밀대에 끼우려는데 손이 덜덜 떨려서 잘 되지 않았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왜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지 깨달았다.
그는 무서웠다.
너무너무 무서워서 다른 감정을 품을 겨를이 없었다. p.162~163
현대문학의 핀 시리즈 쉰아홉 번째 작품이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개인의 윤리적 선택을 집요하게 탐구해온 장강명은 이번 신작에서는 부부 관계와 가족의 문제로 관심사를 확장한다. 갑작스러운 아내의 뇌종양 발병 이후, 병원과 현실적인 문제들 사이에서 흔들리던 남편의 심리를 따라가는 이 작품은 장강명 작가의 실제 경험담을 토대로 쓰여진 '소설'이다. 주변 인물을 비롯해 많은 부분이 허구인 소설이지만, 그의 아내에게 벌어진 일을 비롯해 주인공이 겪은 감정은 상당 부분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작품을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 역시 이십여 년 전에 비슷한 경험을 했었기에, 가족에게 갑작스럽게 큰 병이라는 비극이 닥쳤을 때의 그 기분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십 여 년 전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당시 119를 불러 구급차를 탔던 기억부터 혼잡했던 응급실 한켠, 병원을 오갔던 언덕길 등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행히도 엄마는 완쾌하셔서 여전히 건강하게 계신다.
장강명 작가의 글은 감상적이지 않아서 더 와닿는 부분이 많았다. 응급실의 풍경을 묘사하는 부분이라던가, 자살에 실패해 난동을 부리는 젊은 여성을 바라보며 무심코 생각하는 것들까지... 너무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자살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왜 그렇게 불확실한 방법으로 죽으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곧 이사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잔금을 지불하기 위해 아내 명의 통장의 비밀번호를 알아내야 하는 문제라든가...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이 서사에 핍진성을 부여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정말 진짜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는 글이었다는 거다. 하지만 그래서 더 읽는 내내 슬프기도 했다. '서성이다'라는 제목처럼 누구나 살다 보면 어찌할 바를 몰라 서성이고, 한 동안 떠나지 못해 그 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시간과 마주하게 된다. 두려움과 불안함, 죄책감과 자기혐오, 걱정과 사랑... 한 남자가 겪는 심리적 압박은 비슷한 경험을 한 모든 사람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부디 우리 가족이 이겨낸 것처럼 작가님도, 아내 분도 극복하고 이겨내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섣부른 기대와 낙관을 말하고 싶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필요한 순간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