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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나선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6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위로할 필요 없어.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 굳이 말하자면 지금 하는 일은 속죄야."
이 물리학자답지 않은 예민한 말투였다.
"......어머님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신가요?"
"신만이 아시겠지. 아버지 말씀으론 반년 전 흡인성 폐렴에 걸린 이후로 몇몇 장기 기능이 저하된 모양이야." p.127
도쿄 인근 바다에서 표류하는 시체가 발견된다. 사십 대 남성으로 추정되었으나 신원을 알 수 있는 물건은 없었고, 뒤에서 총에 맞았으니 자살 가능성은 낮았다. 최근 실종 신고된 인물이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는데, 신고한 동거 여성이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당연히 사라진 여성이 사건에 관여한 것처럼 보였으나, 남자의 사망 추정일에 그녀는 교토 여행 중이었다. 함께 간 친구가 있어 증인도, 알리바이도 있다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구사나기는 수사 과정에서 뜻밖에 오랜 친구인 유카와의 이름을 발견하고,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그는 구사나기의 요청은 단칼에 거절하며, 다른 형태라면 수사에 협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데... 과연 유카와는 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이 책으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후반부에 단편 <겹치다>라는 작품이 에필로그처럼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갈릴레오 시리즈 중 장편과 단편이 함께 엮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투명한 나선>에서 벌어졌던 사건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여운을 남겨주고,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도 가지게 만들어 주었다. 대부분의 시리즈가 그렇듯이 전편을 읽지 않더라도 전혀 상관없을 만큼 각각의 이야기가 완결된 구성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이 시리즈를 읽어 보지 않았다면 이 작품부터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괴팍한 학자의 개인사를 통해 수사에 협조할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고, 캐릭터에게 애정이 생긴다면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도 더 재미있게 읽을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나에의 가슴에 북받쳐 올라오는 것이 있었다. 그것을 억누르려고 침을 꼴깍 삼키고 마나부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까 다른 기회라고 했지? 자세한 사건 설명은 다른 기회에 얘기해 주겠다고. 그럼 나를 또 만나 줄 거니?"
"물론입니다. 저희는 가족이잖아요." 마나부가 미소를 지으며 뒷말을 이었다. "그렇죠. 어머니?"
숨이 멎을 정도로 가슴이 뜨거워졌다. p.342
히가시노 게이고의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열 번째 작품이다. 이 시리즈는 1996년 처음 연재되어 올해 30주년을 맞이했다. 이 시리즈는 경시청 형사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난제에 부딪힐 때 친구인 대학 물리학 교수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일명 탐정 갈릴레오로 통하는 물리학자가 과학적 증거와 논리적인 추리를 기반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상식을 초월하는 불가사의한 사건이나 초자연적인 현상 등 비합리적인 것들을 과학적으로 명쾌하게 해결해내는 것이 이 시리즈만의 매력이기도 했다. <탐정 갈릴레오>, <예지몽>, <용의자 X의 헌신> 등 시리즈 작품들을 꽤 많이 읽어 왔기에, 이번 신작도 매우 기대가 되었다.
특히나 이번 작품은 '유카와 교수와 구사나기 형사 콤비의 활약'이라기 보다 그 동안 유카와가 긴 세월 동안 혼자 끌어안고 살아온 비밀이 드러나면서 "인간 ‘유카와 마나부’를 마침내 발견해 낸 작품”으로서 더욱 의미가 있다. 유카와가 자신의 과거와 얽힌 수수께끼와 마주하는 이 작품에 대해 작가는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작품입니다.'라며 오랫동안 간직했던 이야기를 비로소 풀어냈다고 말했다. 천재 물리학자가 평생 숨겨 온 비밀이 궁금하다면, 그가 저지른 죄(?)의 정체를 알고 싶다면 이번 신작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냉정하지만 냉소적이진 않은, 인간 유카와'를 발견하게 될테니 이 시리즈를 오랫동안 읽어온 팬이라면 색다른 감회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전해진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식에 모두 놀랐을 것 같다. 나 역시 워낙 다작을 하는 작가라 영원히 작품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너무 이른 나이에 별이 되신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작품 집필 중이셨다고 하니 더 마음이 좋지 않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수십 년 동안 읽어온 독자로서 부디 그곳에서는 평안하시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