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사회 프로젝트 - 노동과 여성·청년이 만나면 세상이 바뀐다
조돈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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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불평등체제를 참을 수 없다. 내가 김수영이면 침을 뱉어도 시가 되고, 내가 백석이라면 외로움과 쓸쓸함도 시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시인이 아니다. 그래서 불평등체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이행 전략을 논의한다. 《불평등 이데올로기》에 이어 이 책도 나의 불만과 분노를 담아서 쓴다. 이 책은 가볍고 편안하게 술술 읽히는 책이 아니다. 한여름 밤 마시는 한 잔의 맥주처럼 시원한 목 넘김을 기대하면 안 된다. 이 책은 술술 읽혀져서는 안 된다.                  p.28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에서 주인공 맥베스는 던컨 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뒤에도 친구 뱅코까지 의심하며 살해한다. 권력도 정당성이 없으면 권력자에게 안식을 가져다 줄 수 없는 것이다. 정당성을 거부당한 불평등체제는 불안정하고 지배세력은 불안감을 벗어날 수 없다. 지배세력이 권력을 독점하고 상생을 거부하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멀어지고, 다수의 행복이 없으면 소수의 행복도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 역시 불평등하고, 시민들은 불평등에 불만인데, 어떻게 불평등체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불평등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평등사회를 이룩할 방안과 전략에 대해 고민해본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 실태를 밝히고, 세계 최고의 성평등 복지국가이자 우리의 벤치마킹 대상인 스웨덴 모델의 역사와 특징을 살펴보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불평등 이데올로기>에서 왜 우리 사회가 불평등을 벗어나지 못하는지에 대해 분석했던 저자는 그 후속편으로 이 책에서 평등사회 대안과 이행 전략에 대해 이야기한다. 성평등을 실현하고 불평등 대물림을 차단하기 위한 진정성 있는 실천은 뭐가 있을까. 이 책은 여성들과 함께 성별 임금 격차를 제로로 만들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청년들과 함께 좋은 일자리 창출과 보육, 주거 국가책임제를 관철하는 등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는 대안들을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물론 자본주의 불평등체제에서 어떤 대안이건 모든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 주는 만병통치약은 없다. 그럼에도 보다 많은 논의가 활성화되는 것이 평등사회 실현을 위한 시발점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한다. 




스웨덴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 권력이 최대수혜자의 특수이익이 아니라 최소수혜자까지 포용하는 보편 사회이익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고 높은 조세 국민부담률로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한편 생산현장은 물론 사회·정치·경제 전반에서 성평등을 제도화했다. 그렇게 보편 사회이익을 실천함으로써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실현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공리주의 공정성 원칙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권력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통치 철학이라 할 수 있다.                  p.588


세상이 평등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답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그렇다면 왜 부와 권력은 불평등을 허락하는 걸까. 불평등은 왜 문제가 되는 걸까. 그 동안 전 세계적으로 많은 불평등이 있어 왔다. 100년 전에 불평등은 이보다 훨씬 심했고, 200년 전에는 그보다 더 심했다. 그러니 길게 보면 진보가 이루어졌고, 세계는 더 평등한 쪽으로 움직여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불평등과 심화된 격차 문제를 안고 있다. 어떻게 하면 모두가 평등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경제적 불평등, 능력주의, 이민자 배척과 외국인 혐오 등 다양한 문제들로 가득한 오늘날, 이 책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저자는 평등사회 이행을 위해 노동의 중심적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성차별 지옥의 복합적 차별의 피해자인 여성과 불평등 대물림의 수저 계급 사회를 물려받은 청년과 노동의 평등사회 동맹을 제안한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 실태와 이데올로기 지형을 검토하며 스웨덴의 사례를 분석하고, 노동계급이 계급형성에 성공하고 평등사회 실현을 위한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살펴본다. 그리고 평등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을 제안한다. 노동자들과 함께 여성, 청년 등 불평등체제 피해자들의 주체 형성과 세력화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6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분량에 담고 있는 내용도 매우 방대해서 수월하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저자의 냉철한 분석과 날카로운 통찰은 여러 번 곱씹어 다시 생각해 볼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모두가 행복하게 상생하는 평등사회를 실현할 수 있기를, 촛불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고 응원봉의 성공을 실현하는 평등사회 프로젝트가 보다 본격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묵직한 책을 덮었다. 이 책이 평등사회 입문서로서, 불평등·불공정 논의의 종결이 아니라 더 다채로운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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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대연쇄
단요 지음 / 사계절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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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온전한 세계였으며, 여전히 유하였다. 칼리굴라는 나를 사랑했으며 나는 그럼으로써 모든 것이 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터였다. 나는 이제야 두 삶이 서로의 영역을 일방적으로 비집고 들어가면서 하나의 세계가 되는 일을 이해했고, 그 전율을 알게 되었다.

나는 착란의 입구에서 기쁜 깨달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 '사랑하는 신의 생일' 중에서, p.95


나는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도중에 오래된 유선 전화기를 발견한다. 유백색 플라스틱 코팅은 세월에 삭았지만, 전화선은 매끄럽고 부드러운 감촉을 유지하고 있었다. 추억이 되살아나면서 나를 둘러싼 시간이 뒤로 훌쩍 물러났고, 그러던 와중 벽면의 콘센트가 시야에 들어온다. 전화를 걸진 못하겠지만, 한번 연결해 볼까 하는 생각으로 플러그를 꽂았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소리가 되돌아온다. "오늘은 짐이 황위에 오른 해의 열째 달 셋째 날이다....."로 시작하는 사무적인 듯하면서도 오만함이 묻어나는, 남자 목소리였다. 자신이 누구라고 이름을 밝혔으므로, 검색해봤더니 로마제국의 세 번째 황제이자 사 년 만에 암살당한 폭군, 칼리굴라의 본명이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인 나에게, 서기 41년도의 로마제국 황제라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이벤트성 자동응답기 기능이 아닐까 생각한 나는 수화기를 들어 칼리굴라에게 그가 앞으로 겪게 될 역사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이런저런 현재의 이야기들도 들려주며 매일같이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안녕, 칼리굴라. 내 이름은 유하지만 기억할 필요는 없어. 네가 기억해야 하는 것만 짧게 말해줄게...." 로마에 열병이 돌고, 여동생이 죽고, 더 많은 사람이 너를 죽이려 할거라고 나는 칼리굴라에게 메시지를 남긴다. 그리고 위키피디아 문서에는 한 문단짜리 이런 문구가 생긴다. '가이우스는 자신이 신의 전령이라는 망상과 죽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당시 로마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신인 유하를 만들어내는데 이르렀다.....' 유하는 나였다. 자동응답기를 만나기 전에는, 로마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름. 나는 수신인이 없을 거라고, 건너편에 장본인이 있는 줄 알았더라면 말을 건네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과연 유하의 이야기로 로마제국의 역사는 바뀌게 된 것일까. 




그건 내 나쁜 습관이었다. 득점과 실점을 천칭에 올려놓고 승부를 시작해야 할 상황에, 일부러 한 발짝 물러남으로써 패배를 확정 짓는 것 말이다. 수도권 부동산이 침체기에 접어든다면 강원도 부동산은 처참한 꼴이 나겠지만 강원도 부동산의 상승률은 수도권에 영 못미친다. 요컨대 나는 하이리스크와 로우리턴의 가능성을 두려워하느라 그 둘을 동시에 확정하고 마는 인간이었고, 그래서 종종 속이 쓰렸다. 십 년 뒤의 나는 그때 안양 아파트를 샀어야 했다며 가슴을 치고 있겠지.                 - '존재의 대연쇄' 중에서, p.189~190


다문화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현실적인 이야기부터 종교와 철학적 사유가 버무려진 판타지까지, 청소년문학과 스릴러, SF소설을 넘나들며 부지런히 작품 세계를 넓혀가고 있는 단요 작가의 신작이다. 이렇게나 폭넓은 상상력으로, 이야기로서의 재미도 놓치지 않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다니 놀랍다는 마음으로 매번 작품을 읽게 되는 것 같다. 그만큼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 왔는데, 이번 신작은 6편의 작품을 수록한 SF 소설집이다. 컴퓨터과학, 신학, 중세철학을 소재로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독특한 상상력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오래된 유선전화기를 통해 로마제국 황제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교통사고를 당한 딸을 살려내고자 인공 척추를 사용한 임상시험을 시도한 부모가 있으며, 감전 사고로 신의 계시를 받았다 주장하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세상에 낮과 밤이 생긴 기원이 기린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이야기와 투시 능력자들, 예언자와 마술사들이 사실은 눈으로 온도를 식별하는 사람들에 불과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명확히 보이고 이해할 수 있는 세계 너머'를 바라보는 이야기들이기에 수월하게 읽히진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매혹적인 서사와 독보적인 상상력을 빚어낸 이야기임에는 분명하다. 게다가 읽는 내내 너무 재미있다. 어떻게 이런 상상을 했을까, 감탄하며 읽게 되기 때문이다. 매번 단요 작가의 신작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직은 알지 못하는 것들이 도사려' 있는, 곧 만나게 될 새로운 감각의 미래 세계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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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한번은 오디세이아 - 삶이 흔들릴 때 나를 지키는 고전 수업
샘 아크바 지음, 박미경 옮김 / 부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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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러나 영웅들에게 그러하듯, 아니 우리 모두에게 그러하듯, 삶은 언제나 다른 계획을 품고 있다. 튀르키예 해안에서 그리스 서쪽의 이타카섬까지 금세 닿을 것 같던 귀향길은, 결국 지중해 곳곳을 떠도는 10년의 고난으로 바뀐다. '오디세이아'라는 단어가 바로 여기서 생겨났다.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겪어야 했던 파란만장한 여정, 그 여정은 투쟁과 상실, 적응과 변화가 뒤얽힌 길이었다. 오디세우스가 기대하거나 바라던 노스토스는 결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p.37


<오디세이아>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쓴 서사시로, 10년에 걸친 트로이전쟁을 마친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까지 또다시 10년을 떠도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기상천외한 모험담뿐만 아니라 귀환과 복수라는 주제 또한 시대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품들 속에서 무수히 변주되고 반복되어 왔다. 일상에서 어려운 여행에 비유하는 대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저 젊은 날의 영웅담이 아니라, 세월에 닳고 상처 입은 한 인간이 자신의 집과 삶을 되찾으려 애쓰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3,0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 넘어 평범한 우리의 삶과 깊이 공명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고전학자이자 심리학자의 시선으로 <오디세이아>를 다시 읽어낸다. 


<오디세이아>라는 시대를 초월한 서사에 현대 심리학의 실천적 통찰을 포개어, 고대의 지혜와 지금 당장 활용할 수 있는 도구를 함께 보여준다. 각각의 장은 오디세우스가 거쳐 간 섬들처럼, 우리가 삶에서 지나게 되는 여러 단계에 해당한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에 대한 서두로 항해를 시작해 무기력에서 탈출하는 기술, 나를 지탱해 줄 관계, 나라는 정체성을 확립하고, 상실과 유혹이라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을 거쳐 삶의 목적지를 분명하게 정하고, 상처를 지혜로 바꾸는 방법을 통해 목적지보다 여정 그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눈앞에 아찔한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까. <오디세이아>의 수많은 인물들이 그런 것처럼 '결정적 행동 없이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직접 나서서, 도전을 받아들이고, 행동을 취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저자가 이끌어 주는 이 과정들을 통해서 누구도 나를 하찮은 존재로 여기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우리는 각자 중요하고 가치 있는 존재이며, 우리의 삶에는 궁극적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오디세이아>는 우리에게 오디세우스 같은 영웅이 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각자의 여정을 분명히 자각하며 살아가라고 말한다. 그 지혜를 받아들여 당신답게 나아가라. 앞으로 나아갈 때에도, 잠시 뒤로 물러설 때에도, 내딛는 모든 걸음이 여정의 일부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당신의 이타카는 어쩌면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아니라 삶의 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여정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배우며, 거듭해서 다시 시작하고, 여정 자체가 이미 보상임을 아는 삶 말이다.                   p.293


이 책을 읽다 보니, 트라우마, 회복탄력성, 감정 지능이라는 말이 생기기 전부터 호메로스가 그 모든 것을 탐구해왔다는 것을, 그래서 삶의 온갖 시련 앞에서 호기심과 회복력과 내면의 힘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사실 '멘토'라는 단어도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의 충실한 조언자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오디세우스 왕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멘토르가 오디세우스 왕이 20여 년간 전쟁을 치르는 동안 왕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맡아 그의 친구요 스승이자 상담자로, 혹은 때로 아버지가 되어 그를 훌륭한 사람으로 양육한 것에서 비롯되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서구 문학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 가운데 하나인 <오디세이아>가 오늘날 우리의 갖가지 고민과 여전히 맞닿아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인간은 누구나 인생이란 끝없이 펼쳐진 바다 한 가운데에서 쉽게 길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파도에 흔들리거나, 폭풍우에 휩쓸리거나 혹은 난파되어 물에 빠지거나.. 무한한 가능성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도처에 어려움이 산재한 것이 바로 삶이란 바다이고, 그런 면에서 인생이란 일종의 『오디세이아』일수밖에 없다. 그 동안 호메로스의 작품이 다소 어렵게 느껴져 원작을 읽는 데 주저함이 있었다면 이 책으로 시작해 보면 어떨까 싶다. 물론 이 책이 <오디세이아> 해설서로 쓰인 것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오디세이아>의 서사를 따라가며 풀어내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고전학자로 시작해 이후 임상심리학자의 길을 걸어온 저자의 이력도 이 책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 준다. 고전 분석에 충실하면서도, 인간의 심리를 세심하게 포착해내어 읽어내 주고 있으니 말이다. 덕분에 최근에 읽었던 자기계발서 중에 가장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고,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다. 각 장의 끝에 수록된 연습 문제를 통해 호메로스의 지혜를 직접 내 삶에 적용해 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옥스퍼드대 고전학자이자 심리학자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오디세이아>가 궁금하다면,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게 하는, 시대를 초월한 항해 지도가 필요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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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시대의 종말
비비언 고닉 지음, 홍한별 옮김 / 엘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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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탁월한 은유에는 자기 이해를 약속하는 공통의 경험이 담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게 되리란 약속, 혹은 알 수 없거나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리라는 약속이, 문학에서 한때는 자연을 통해, 다음에는 신을 통해, 다음에는 사랑이라는 은유를 통해 주어졌다. 지금으로서는 사랑이 자연과 신이 갔던 길을 따라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문학에서나 삶에서나 완전히 ‘홀로’ 던져져 표류한 채 새로운 힘을 얻게 해줄 은유적 요소를 찾으려고 우리가 쓰는 책 속을 더듬는다.                   p.27


버지니아 울프에 비견되는 문학비평, 특히 회고록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될 만큼 자전적 글쓰기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한 작가, 비비언 고닉을 좋아한다. 비비언 고닉 선집으로 나온 세 권도 인상깊게 읽었고, 자전적 글쓰기에 관한 책과 그외 여러 에세이들도 모두 흥미롭게 읽었다. 매번 놀랍도록 개인적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빛나는 독창성으로 기어코 보편성을 이끌어내고 있으니, 그야말로 자전적 글쓰기의 전범이자 고전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작품들이었다. 


엘리 북클럽 첫 번째 책이다.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비비언 고닉의 책으로 시작하게 되어 설레이는 마음으로 읽었다. 이 책은 20세기에 나온 탁월한 문학작품 속에서 사랑의 문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탐구하는 열한 편의 비평 에세이를 묶은 모음집으로 1997년에 출간되었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 읽기에도 매우 동시대적이고 탁월하다. 버지니아 울프, 이디스 워턴, 조지 엘리엇, 케이트 쇼팽, 헨리 제임스, 진 리스, 샬럿 브론테, 윌라 캐더, 한나 아렌트 등 위대한 작가들의 문학작품과 삶을 들여다보며 탐구한다. '이 세 작품 모두 입안에서 비린 피 맛을 느끼는 비범한 여자가 쓴 소설이다', '이것은 문학사상 두 번째로 비범한 장면이다', ''내가 지금으로서는'이라고 말했을 때의 그 지금이 100년 전 작품에 예비되었음을 확인하고 싶다면, <크로스에이스의 다이애나>를 읽어보라'는 식의 매우 강한 어조로 단정지어 말하는 표현들이 너무도 설득력있게 느껴졌다. 간결하면서도 군더더기없고,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매우 정확하면서도 깊숙이 짚어내면서 내가 읽었던 작품조차 완전히 다른 작품처럼 느끼게 해주었다. 문학비평이란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거구나,를 새삼 느꼈다고 해야할까. 정말 수준높은 글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책이었다. 




우리는 이야기의 한가운데로 던져진다 ─ 이 사람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전부 한꺼번에 우리에게 덮쳐 오는데 ─ 작가는 아무 힌트도 주지 않는다. 어조도 서술 시점도 작가가 누구에게 공감하는지 어떤 의도인지 드러내지 않는다. 폴릿 가족은 그냥 거기 있다. 과격하게, 압도적으로 존재하며 공기를 다 빨아들이고 공간을 전부 차지한다. 우리는 혼란과 불안을 느끼며 계속 읽는다. 조밀하고 격하고 예상을 벗어나는 구문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문장은 우리를 제자리에 붙들어 매두는 한편 글은 앞으로 마구 몰고 간다.                       p.145~146


영국에는 '불안정한' 여성 작가의 전통이 있다는 글도 흥미롭게 읽었다. 그들 작가들에 대해 고닉은 '애나 캐번은 집착을 넘어서지 못했고, 버지니아 울프는 애초부터 초월 이전 단계가 없었으며, 그 둘 사이에 진 리스가 있다'고 말한다. 이는 책에 수록된 진 리스의 작품에 대한 에세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고닉의 글을 읽다 보면 언어와 형식에 대한 재능뿐 아니라 놀랍고 예기치 못한 결실로 이어지는 진실에 대한 감각, 사람을 매혹시키는 능력, 그리고 삶에 대해서는 나약하고 무력했지만 글쓰기에 있어서는 강인하고 솔직했던 진 리스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질 것이다. 나 역시도 이 책을 읽고 진 리스의 작품들이 다시 읽고 싶어졌으니 말이다. 


온 세상이 사랑을 믿고, 여자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건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다. 사랑이 구원이며 삶의 가장 큰 성취라고 믿었던 시대는 가버렸고, 지금은 낭만적 사랑에 대한 정의가 많이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고닉은 이 책을 통해 “그렇게 그들은 결혼해서 평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의 시대가 완전히 끝났음을 보여주고 있다. 문학 작품 속 사랑과 결혼, 이별과 배신의 장면들을 통해서 말이다. 비비언 고닉의 글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 희미하게 짐작했던 것들을 구체화시켜서 바로 눈 앞에 들이미는 듯한 느낌을 안겨주곤 하는데, 그 명료함과 예리함, 밀도 높은 문장들을 좋아한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풀어낼 때도 지독할 정도로 솔직하고, 어떤 미화도 없이 적나라한 방식으로 심금을 울렸었는데, 문학 비평 또한 '고르고 고른 단어를 응축해 인간 보편 경험의 핵심을 찌르는 비범함'을 보여주고 있다. 매 페이지마다 지성과 통찰이 가득한,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낭만적 사랑의 신화뿐 아니라 문학적 상투성 또한 두려움 없이 해체하는 비비언 고닉의 독보적인 비평 에세이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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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1
솔베이 발레 지음, 손화수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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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일어날 수 없고,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 믿었던 일이 일어나 한순간에 모든 것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인식이 머리를 든다. 그때 우리는 시간이 멈추고, 중력이 사라지며, 세상의 논리와 자연의 법칙이 붕괴하는 순간을 목격한다. 그리고 우리가 믿어온 세계의 지속성은 불안한 토대 위에 놓여 있음을 깨닫는다. 아무런 보장도 없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확실하다고 여겨온 모든 것의 이면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예외, 갑작스러운 균열, 상상할 수 없는 질서의 파열이 도사리고 있다.                   p.47~48


프랑스 북부의 작은 마을에 사는 타라는 남편 토마스와 함께 고서적상을 하고 있다. 타라는 11월 17일에 2박 3일 예정으로 출장을 떠나 보르도 경매장을 방문하고 파리 호텔에서 묵었다. 다음날 고서점들을 들러 필요한 서적을 구입하고, 고대 화폐점을 운영하는 친구를 만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 19일 아침, 파리의 호텔 방에서 깨어나 전날과 정확히 같은 일을 겪는다. 왜냐하면 다시 11월 18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남편과 전화 통화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토마스에게 11월 18일은 처음 맞이하는 날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타라는 벌써 122번째 11월 18일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여전히 오늘은 11월 18일이다. 매일 저녁, 침대에 몸을 눕힐 때와 잠에서 깨어나는 아침에도 날짜는 11월 18일이다. 타라는 더 이상 자신이 11월 19일에 깨어날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남편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에게는 처음이자 유일한 날이었다. 이상한 것은 끝없이 반복되는 하루에 어떤 불규칙성이 있었다는 거다. 새로운 11월 18일이 되었을 때 어떤 것들은 사라졌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먹었던 음식은 다시 채워져 있었지만, 가방과 옷은 사라지지 않았고, 기념품 동전은 사라졌지만, 전날 구매한 책들은 그대로 있었다. 타라는 왜 반복의 순환 속에 놓여진 것일까. 왜 시간의 균열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걸까. 시간이 부서졌음에도 왜 날들은 계속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타라는 하루의 작동 방식을 조사하고, 끊임없이 질문하며, 불규칙함 속에서 하루가 되돌아오는 시점을 찾으려 애쓴다. 그녀는 과연 11월 18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해야 11월 18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어쩌다가 그 안으로 들어왔을까? 혹시 잘못된 문으로 들어온 걸까? 반복의 문으로? 나는 알 수 없다. 나는 출구를 찾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들어올 수 있었다면, 나갈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열리지 않는 문은 어떻게 여는 걸까? 발로 차서 부수면 될까? 뜯어내면 될까? 불을 지르면 될까?... 알 수 없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해본다. 무언가가 바뀌어야 한다고. 내가 어떤 실수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적절한 순간을 찾아내고, 그때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p.219


전부터 궁금했던 솔베이 발레의 작품을 드디어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솔베이 발레는 1990년대 덴마크 문학의 걸작 《법에 따르면》의 작가로 이 작품으로 30여 년 만에 세계문학계로의 복귀를 알렸다. “사변소설(SF) 장르에 있어서 시의적절한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2022년 북유럽의회문학상(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타임루프' 소재로 유명한 영화 〈사랑의 블랙홀〉이 개봉하기 6년 전인 1987년에 처음 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소재는 유사해보여도 막상 작품을 읽어 보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쓰인 거라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 질 것이다. 이 작품은 다양한 길이의 일기 형식으로 쓰였는데, 사실적이면서도 사색적이고, 철학적이며, 실존적인 고민을 끊임없이 해나가는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으니 말이다. 


<부피의 계산에 대하여>는 7부작이며 현재 5부까지 출간되었고, 1부가 2025년 국제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번에 국내에 출간된 것은 소설 연작의 서막을 여는 첫 두 권이다. 전체 7부작의 첫 번째 이야기를 먼저 읽어 보았다. 같은 시간을 계속 반복해 겪게 되는 '타임루프'를 소재로 한 작품은 기존에도 있어 왔지만, 솔베이 발레는 스릴과 서스펜스에는 관심이 없다. 최면에 걸린 듯 끝없이 반복되는 하루를 재구성하고, 그 속에서 존재의 의미와 삶에 대한 사유를 철학적으로 풀어낸다. 그래서 어떻게 타임루프에서 벗어나느냐보다,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것일까에 대한 탐구가 더 밀도있게 펼쳐지고 있다. 그래서 별다른 사건이 벌어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점점 더 이야기 속으로 훅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다. 나선형으로 된 회오리에 점점 더 휘말리는 느낌이랄까. 흥미로운 것은 이 이야기가 무려 7부작으로 구성되었다는 거다. 당장 2권에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서사를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지 너무 궁금하다. 부서져버린 시간, 반복되는 하루,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경험들...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는 세계, 지금 바로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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