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시대의 종말
비비언 고닉 지음, 홍한별 옮김 / 엘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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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탁월한 은유에는 자기 이해를 약속하는 공통의 경험이 담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게 되리란 약속, 혹은 알 수 없거나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리라는 약속이, 문학에서 한때는 자연을 통해, 다음에는 신을 통해, 다음에는 사랑이라는 은유를 통해 주어졌다. 지금으로서는 사랑이 자연과 신이 갔던 길을 따라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문학에서나 삶에서나 완전히 ‘홀로’ 던져져 표류한 채 새로운 힘을 얻게 해줄 은유적 요소를 찾으려고 우리가 쓰는 책 속을 더듬는다.                   p.27


버지니아 울프에 비견되는 문학비평, 특히 회고록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될 만큼 자전적 글쓰기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한 작가, 비비언 고닉을 좋아한다. 비비언 고닉 선집으로 나온 세 권도 인상깊게 읽었고, 자전적 글쓰기에 관한 책과 그외 여러 에세이들도 모두 흥미롭게 읽었다. 매번 놀랍도록 개인적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빛나는 독창성으로 기어코 보편성을 이끌어내고 있으니, 그야말로 자전적 글쓰기의 전범이자 고전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작품들이었다. 


엘리 북클럽 첫 번째 책이다.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비비언 고닉의 책으로 시작하게 되어 설레이는 마음으로 읽었다. 이 책은 20세기에 나온 탁월한 문학작품 속에서 사랑의 문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탐구하는 열한 편의 비평 에세이를 묶은 모음집으로 1997년에 출간되었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 읽기에도 매우 동시대적이고 탁월하다. 버지니아 울프, 이디스 워턴, 조지 엘리엇, 케이트 쇼팽, 헨리 제임스, 진 리스, 샬럿 브론테, 윌라 캐더, 한나 아렌트 등 위대한 작가들의 문학작품과 삶을 들여다보며 탐구한다. '이 세 작품 모두 입안에서 비린 피 맛을 느끼는 비범한 여자가 쓴 소설이다', '이것은 문학사상 두 번째로 비범한 장면이다', ''내가 지금으로서는'이라고 말했을 때의 그 지금이 100년 전 작품에 예비되었음을 확인하고 싶다면, <크로스에이스의 다이애나>를 읽어보라'는 식의 매우 강한 어조로 단정지어 말하는 표현들이 너무도 설득력있게 느껴졌다. 간결하면서도 군더더기없고,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매우 정확하면서도 깊숙이 짚어내면서 내가 읽었던 작품조차 완전히 다른 작품처럼 느끼게 해주었다. 문학비평이란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거구나,를 새삼 느꼈다고 해야할까. 정말 수준높은 글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책이었다. 




우리는 이야기의 한가운데로 던져진다 ─ 이 사람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전부 한꺼번에 우리에게 덮쳐 오는데 ─ 작가는 아무 힌트도 주지 않는다. 어조도 서술 시점도 작가가 누구에게 공감하는지 어떤 의도인지 드러내지 않는다. 폴릿 가족은 그냥 거기 있다. 과격하게, 압도적으로 존재하며 공기를 다 빨아들이고 공간을 전부 차지한다. 우리는 혼란과 불안을 느끼며 계속 읽는다. 조밀하고 격하고 예상을 벗어나는 구문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문장은 우리를 제자리에 붙들어 매두는 한편 글은 앞으로 마구 몰고 간다.                       p.145~146


영국에는 '불안정한' 여성 작가의 전통이 있다는 글도 흥미롭게 읽었다. 그들 작가들에 대해 고닉은 '애나 캐번은 집착을 넘어서지 못했고, 버지니아 울프는 애초부터 초월 이전 단계가 없었으며, 그 둘 사이에 진 리스가 있다'고 말한다. 이는 책에 수록된 진 리스의 작품에 대한 에세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고닉의 글을 읽다 보면 언어와 형식에 대한 재능뿐 아니라 놀랍고 예기치 못한 결실로 이어지는 진실에 대한 감각, 사람을 매혹시키는 능력, 그리고 삶에 대해서는 나약하고 무력했지만 글쓰기에 있어서는 강인하고 솔직했던 진 리스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질 것이다. 나 역시도 이 책을 읽고 진 리스의 작품들이 다시 읽고 싶어졌으니 말이다. 


온 세상이 사랑을 믿고, 여자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건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다. 사랑이 구원이며 삶의 가장 큰 성취라고 믿었던 시대는 가버렸고, 지금은 낭만적 사랑에 대한 정의가 많이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고닉은 이 책을 통해 “그렇게 그들은 결혼해서 평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의 시대가 완전히 끝났음을 보여주고 있다. 문학 작품 속 사랑과 결혼, 이별과 배신의 장면들을 통해서 말이다. 비비언 고닉의 글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 희미하게 짐작했던 것들을 구체화시켜서 바로 눈 앞에 들이미는 듯한 느낌을 안겨주곤 하는데, 그 명료함과 예리함, 밀도 높은 문장들을 좋아한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풀어낼 때도 지독할 정도로 솔직하고, 어떤 미화도 없이 적나라한 방식으로 심금을 울렸었는데, 문학 비평 또한 '고르고 고른 단어를 응축해 인간 보편 경험의 핵심을 찌르는 비범함'을 보여주고 있다. 매 페이지마다 지성과 통찰이 가득한,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낭만적 사랑의 신화뿐 아니라 문학적 상투성 또한 두려움 없이 해체하는 비비언 고닉의 독보적인 비평 에세이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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