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방에서 ㅣ 암실문고
브라이언 딜런 지음, 서민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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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린 시절의 사물들과 이후 그것들이 불러 낸 분신들 사이의 은밀한 친연성을 알아차리기 위해, 우리 삶이 그런 멜로드라마처럼 거창할 필요는 없다. 모든 삶은 사물들 사이의 숨겨진 상응 관계, 또한 어느 시기와 다른 시기 사이의 은밀한 공모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이런 연결들은 오직 우리가 하나의 대상에 집중했을 때에만, 즉 그것을 '이제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상상 속에서 떠올려 볼 수 있는 다른 대상과 견주어 보는 순간'에만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다.                p.108~109


하나의 문장이 감정 그 자체가 될 수 있을까. 문장은 단어들을 배열해 내용을 서술하는 것인데, 감정 그 자체가 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브라이언 딜런의 글을 읽다 보면 종종 그런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의 문장들을 읽다 종종 멈추곤 한다. 단순한 문장조차 수차례 다시 보게 만들고, 마구 펼쳐지는 생각의 향연을 경험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에세이즘>, <한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를 통해서 만났던 브라이언 딜런의 데뷔작이 암실문고로 나왔다. 전통적인 비평과 자전적 글쓰기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창적인 글쓰기를 선보여왔던 그의 전작들을 인상깊게 읽어왔기에, 그의 데뷔작인 이번 작품도 매우 기대하며 읽어 보았다. 


이 책은 브라이언 딜런이 처음으로 쓴 것으로 부모의 죽음을 계기로 기억과 상실에 대해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풀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기억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루는 인문학처럼 읽힌다. '애도라는 두터운 관문 너머에 숨겨져 있는 밀실이 그의 기억 저장소이다. 그는 부모의 죽음이라는 이중의 장벽이 철저히 밀봉된 방을 만들어 냈다고, 고 썼다. 그는 자신이 살았던 집을 떠올리고, 그 속에 있던 사물들에 대해 생각하고, 탐구한다. 집이란 우리가 매일 같이 만들어 내고 다시 만들어 가는 무엇이다. 집에 산다는 것은 어떤 장소를 부단히 개조하고 재구성하고 잊었다가는, 다시 떠올리면서 끊임없이 변화를 주는 것이다. 집을 기억의 저장소로 여기는 관념은 오래된 것인 만큼 익숙하면서도, 일종의 가정 고고학으로서 풀어 나가는 브라이언 딜런의 문장들은 그것을 낯설고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어 주고 있다. 




우리가 고집스레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의 증거일 뿐이다. 그 움직임이 남긴 흔적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 곳곳에 다양한 방식으로 새겨져, 우리에게 유익하게 쓰이거나 강렬한 깨달음을 준다. 시곗바늘의 움직임, 계절들이 내보이는 생동감이나 나른함, 얼굴이나 몸에 나타나는(아주 점진적일 수도, 반대로 아주 빠를 수도 있는) 노화의 흔적 같은 것들.                 p.375


이 책은 브라이언 딜런이 십 대 중반일 때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대학 입학 직후에 갑작스러운 심장 문제로 작고한 아버지에 관한 기억을 담고 있다. 아버지의 서재와 거실 한구석에 있는 키 큰 장식장, 유품상자와 사진 더미들, 어머니의 성경책과 그 속에 끼워둔 내용물들...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물려받은 물건들은 과거로 이어지는 끊기지 않는 통로가 되어 준다. 공간이나 사물이 매개체가 되어 과거의 마음들을 불러내고, 이해와 수수께끼 사이를 오가며 지적인 사유가 펼쳐진다. 사진에 관련된 사유들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는 그는 우연히 사들인 관광지 사진첩 속에 있는 한 여성의 뒷모습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한다. 마치 어머니가 그곳에 마치 기적처럼 나타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부모님의 사진들 중 대부분은 두 분이 모두 돌아가신 뒤에야 처음으로 보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대상이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존재하게 된 세상인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서재에 대한 에피소드도 매우 흥미로웠다. 아버지가 소장했던 대략 천 권 가량의 장서들은 어린 시절부터 강렬한 존재감을 지녔던 대상이었다. 그 서재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에 모종의 형태를 부여하려 애써 온 방식들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동시에, 그것을 견고하게 구현한 장소'이기도 했다. 백 권도 넘는 책을 손에 닿는 곳에 위태롭게 쌓아 두려는 아버지의 행동은 어머니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충동이었지만, 그에게는 끊이지 않는 경이로움을 선사하는 원천이었다. 서재의 책과 오래된 기록 뭉치들이 인생의 어느 한 시기에 관한 아카이브가 되어 자신이 몰랐던 아버지의 이미지를 구축하게 만들어 준다. 또한 자신의 책들 사이에 흩어져 있는 아버지의 책을 보면서, 자신이 뒤늦게 아버지의 정리 원칙을 물려받았음을 깨닫는다. 아버지의 무질서한 서재를 자신이 정확히 똑같이 재현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그 동안 읽어왔던 '회고록'과는 차원이 다르다. 매 페이지마다 밑줄 긋고, 여러 번 읽어 곱씹어 보고 싶은 문장들로 가득했다. 자, 폄하되거나 오독되어 왔던 에세이라는 장르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주는 브라이언 딜런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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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양자컴퓨터 - 수식 없이 단숨에 이해하는
후지이 게이스케 지음, 전종훈 옮김 / 부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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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대상의 정보를 얻기 위해 관측하면 반드시 대상에 영향을 미친다. 중첩이 어떤 상태인지 알기 위해 관측하면 그 중첩은 풀리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중첩되어 있다고 가정하고, 그 결과 발생하는 간섭을 관측함으로써 중첩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양자역학의 직관적인 이해를 어렵게 만드는 점이다. 고전역학의 세계에서는 당신이 관측을 하든 안 하든 달은 지구 주위를 돌고 있고 사과를 떨어뜨리면 낙하한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관측함으로써 관심 있는 대상에 영향을 주고 만다. 우리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세계인 것이다.              p.50


양자란 아주 작은 세계에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 단위를 말한다. 눈에 보이는 세계를 다루는 고전 역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양자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양자역학이고, 현대 과학과 기술의 상당수가 이 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양자컴퓨터란 그러한 양자역학의 원리로 계산하는 기계이다. 양자컴퓨터는 식량, 에너지, 신약 개발을 비롯해 전기자동차에 필수적인 리튬 이온 배터리의 성능 개선, 꿈의 에너지인 핵융합을 위한 재료 설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앞으로 미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AI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핵심 키워드가 바로 '양자컴퓨터'인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양자컴퓨터가 궁금한 이들에게 초심자의 눈높이에 맞춰 쓰였다. 수식을 전혀 쓰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이야기와 비유, 100장이 넘는 시각 자료 등을 활용하고 있어 진입장벽이 그다지 높지 않다. 양자역학의 역사부터 시작해 양자컴퓨터의 현재와 미래에 이르기까지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양자컴퓨터 연구는 1980년대에 그 개념이 형성되었고 1990년대에는 후술할 암호 해독과도 관계 있는 소인수분해 알고리즘이 발견되는 등 많은 연구자가 참여해 크게 발전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양자비트의 성능을 높이거나 개수를 늘리는 일이 어려워졌고, 이론 측면에서도 소인수분해 알고리즘에 버금가는 커다란 돌파구가 나타나지 않아 정체기를 맞이했다. 그 후 현재로 이어지는 양자컴퓨터 개발의 열기가 다시 시작된 것은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그리고 2014년 이후 양자컴퓨터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이런 세계관은 만화 《진격의 거인》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다. 거인(양자)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벽에 둘러싸인 세계에 사는 인류가 벽 밖으로 나감으로써 보다 고도의 지식과 물리 법칙과 기술을 접하며 세계의 진실을 알게 된다. 벽 안의 세계는 '고전역학'이며 인류는 뉴턴의 운동 방정식으로 기술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하고 결정론적인 세계'를 믿고 있다. 거인(직관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양자 현상)이라는 위협은 있지만 벽 안에 있는 한 닫힌 단순한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벽 밖에는 '양자역학'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p.262~263


저자는 양자가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고전적인 세계와는 다른, 우리의 직관을 넘어 상상력이 필요한 개념적인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양자의 신기한 매력과 기술적 가능성의 근원이기도 하며 동시에 난해함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저자는 대학교 3학년 때 처음 양자론 강의를 듣고는 마치 게임 같은 세계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고 한다. 세계의 이면에서 돌아가고 있는 톱니바퀴를 엿보고 만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양자역학의 원리로 움직이는 기계인 양자컴퓨터는 양자 얽힘, 양자 순간이동, 마법 증류 등 SF를 방불케 하는 온갖 키워드가 난무하는 분야라 푹 빠져서 연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양자역학이 탄생한 지 100년이 지났다. 지금 우리는 양자의 불가사의를 받아들이고 이를 제어해 응용하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단순히 빠른 계산기가 아니라 자연을 깊이 이해하고 인류 지식의 지평을 넓히는 새로운 망원경이자 현미경이다. 지구가 46억 년이라는 진화의 역사를 거쳐 도달한 생명, 물질, 에너지의 정교한 구조와 그 '최적해'를 풀어 낼 열쇠를 양자컴퓨터가 쥐여 주려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을 통해 난해하게만 느껴졌던 양자의 세계와 개념에 대해 첫 걸음을 내디딜 수 있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 그 어려움을 뛰어넘을 만한 흥미로운 내용들로 가득한 책이니 말이다. 또한 <매트릭스>, <진격의 거인>,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등 양자컴퓨터를 직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작품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어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부록으로 양자컴퓨터 연표를 통해 100년의 역사를 정리했고, 양자 핵심 용어집과 관련 책들을 소개해주는 양자도서실, 그리고 보다 전문적인 내용을 담은 번외편인 양자여담까지 풍부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수학을 몰라도, 양자역학 관련 지식이 전혀 없어도, 양자컴퓨터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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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노은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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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자기 삶에 빈틈없이 울타리를 둘러 운명의 모든 침입을 막아낼 수 있을 거라는 이 감동적인 믿음 속에는, 착실하고 소박한 인생관과 크고 위험한 오만함이 함께 담겨 있었다. 19세기 사람들은 자유주의적 이상주의 속에서 자신들이 '온 세상 최고의 세계'를 향해 곧고 바른길을 가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들은 전쟁과 기근, 폭동이 있었던 이전 시대를, 인간이 아직 미성숙하고 충분히 계몽되지 않았던 시대라고 여기며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이제 수십 년만 지나면 마지막 악과 폭력이 완전히 극복될 것이었다.             p.28


이 책은 <감정의 혼란>, <체스 이야기> 등 세계문학전집과 <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라는 미공개 에세이로 만났던 슈테판츠바이크 유일한 회고록이다. 국내에는 1995년에 출간된 적이 있는데, 30여 년 만의 새로운 번역으로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초판 1쇄는 양장본이었고, 2쇄부터는 무선 제본으로 나온다. 버건디 컬러 표지와 슈테판 츠바이크의 초상까지 너무 고급스럽다. 양장본이 더 아름답긴 하지만, 무선 제본은 겉 표지를 벗겨내면 안쪽에 근사한 문양이 숨겨져 있는 것도 깜짝 선물같다. 겉 표지를 뒤집어서 씌우면 새로운 북커버를 씌운 듯한 느낌도 난다. 




무려 700페이지가 넘는 엄청난 두께의 이 책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고스란히 겪었던 그 시간들을 모두 담고 있다. 그가 이 책을 집필할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직후이고, 육십 세가 되어가는 나이에 망명객의 신세로 타국을 떠돌고 있던 때이다. 그런 시기이다보니 잃어버린 유럽에 대한 추억과 회한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이 책을 쓴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볼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국의 붕괴, 베르사유체제, 인플레이션, 파시즘의 부상, 나치의 집권, 망명과 추방, 제2차 세계대전.... 이러한 세계사의 거대한 사건들을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개인의 '경험'이자 문학적 '회고'로 만날 수 있다는 데 이 책의 특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은 살아생전 단 한번도 경험해 볼 수 없는 사건들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역사 교과서에서 만났던 거대한 사건뿐만 아니라, 그러한 일이 벌어졌을 때 세계는 어떤 분위기였고, 사람들은 무엇을 느끼고 두려워했는지를 통해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가서 함께 경험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모든 장황하고 지루한 것에 대한 이러한 반감은 필연적으로 타인의 작품을 읽는 것으로부터 나 자신의 작품을 쓰는 일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고, 나로 하여금 특별한 경계심을 갖도록 훈련시켰다. 본래 나는 가볍게 물 흐르듯 창작을 한다. 책의 초고를 쓸 때 나는 느슨하게 펜이 가는 대로 내버려두며, 마음에 두고 있는 것들을 줄줄이 써 내려간다. 마찬가지로 전기작품에서는 우선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상상 가능한 모든 종류의 세세한 기록물들을 다 활용한다.              p.524


이 책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유년 시절부터 시작된다.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 넘치고, 집중적으로 독서를 했던 학창 시절에 대한 글들은 청춘의 아름다운 빛깔로 가득하다. 필하모닉 단원들의 리허설에 몰래 들어가기도 하고, 헌책방을 뒤지고 다녔으며, 어제 이후로 새로 나온 책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매일 서점의 진열장을 꼼꼼히 살펴보고, 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읽었던 시절. 빈의 커피하우스에 대한 대목도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듬뿍 느끼게 해주었다. 문학적 열정 덕분에 일찍부터 끊임없는 토론과 분석을 통한 비판적인 식별력을 갖추게 되는데, 그 시절의 예술에 대한 강박적 열광과 미적인 것에 대한 터무니없을 정도의 과대평가가 결국 그를 작가로 이끈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츠바이크를 비롯해 젊은이들은 스스로의 문학적 야망에 완전히 파묻혀 정치와 사회 문제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도시가 들끓고 대중이 들고 일어났지만, 그들은 시를 쓰고 그것에 대해 토론했다. 그리고 수십 년이 흐른 후 지붕과 벽이 머리 위로 무너져 내렸을 때에야 비로소 그들은 새로운 세기가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20세기 초 이성과 진보에 대한 믿음이 그 어느 때보다 굳건했던 순간과, 그 모든 것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산산조각 나는 것을 모두 지켜본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이토록 혼란스러운 시대를 통과하면서도 문학과 삶을 향한 애정과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던, 한 인간의 초상은 먹먹한 감동과 가슴 아픈 여운을 남겨 주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전쟁이란 뉴스 화면에서나 접하게 되는 너무나 먼 일이다. 지구촌 어디에선가 늘 벌어지고 있는 것이 전쟁이고, 한 나라를 둘로 쪼개어 살고 있는 우리이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전쟁이라는 것이 한 개인에게 어떻게 다가오는 것인지, 한순간에 삶이 산산조각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럼에도 그 모든 일들이 언젠가는 지나가고 시간은 흐르고 역사가 쌓여 오늘이 되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츠바이크는 이 책의 출간도, 세계대전의 끝도 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그럼에도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기록은 한 시대에 대해 남긴 20세기 최고의 증언이다. 폐허 위에서도 삶은 다시 시작되고, 감당하기 너무나 벅찬 순간도 결국은 지나가게 마련이다. 이 책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버텨낼 수 있다는 위로와 희망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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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노은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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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역사의 순간들을 개인의 ‘경험‘이자 문학적 ‘회고‘로 만날 수 있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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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 - 만물의 평등에 관하여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현주 옮김 / 쌤앤파커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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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과학 문제의 어려움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 것보다 당연해 보였던 생각에서 벗어나는 데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학은 확실하게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틀렸음을 발견하는 과정이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확실성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긴다면 지식의 발전을 방해하게 됩니다... 과학은 확실성에 기반해 발전하지 않고, 불확실성을 바탕으로 발전합니다. 절대적 확실성은 우리 삶과 무관하고, 도달할 수 없으며, 지식을 습득하는 데 장애물이 됩니다.                 p.62~63


지구에 사는 우리는 공통된 시간이 존재한다고 느낀다. 지구 내에서는 전화만 하면 뉴욕에 있는 사람과도, 상하이에 있는 사람과도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통화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넓은 우주로 범위를 확장하면 그렇지 않다. 가장 가까운 별까지도 신호가 왕복하는 데 수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통된 시간이라는 개념은 지구의 이웃들 사이에서는 통하지만, 우주 전체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사실 지구는 우주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곳이다. 지구에는 대륙의 견고함으로 고정된 장소가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주의 다른 곳에서는 통하지 않는 방식으로 공간을 생각한다.


여기서 카를로 로벨리는 흥미로운 가정을 시작한다. "나는 같은 자리에 있다"는 말은 '나는 지구의 단단한 표면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딛고 설 표면이 없는 거대 가스 행성 목성에서는 "나는 같은 자리에 있다"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불분명해진다는 거다. 그는 철학과에서 공부하는 한 청년과 토론하던 중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카를로 씨, 어떤 물체가 움직이거나 정지해 있다는 것을 완전하게 구분할 수 있는 기분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 학생은 관찰할 수 없음에도 절대운동이라는 실체가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의 생각은 어느 부분이 오류일까? 그 친구가 간과한 것은 개념이 경험의 산물이며, 우리의 경험이 항상 그렇듯 제한적이므로, 개념으로 현실 세계를 온전하게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2024년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진행된 카를로 로벨리의 강의를 엮은 것이다. 과학혁명의 철학적 의미에 관한 심도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의 전작들처럼 과학을 인문학처럼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우리가 세상을 관찰하고 연구할 때, 우리는 세상과 동떨어진 초월적 주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묘사하는 세상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현실에 낯선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 편안하게 자리 잡고 있는 존재입니다. 제가 이 책 전반에 걸쳐 주장한 것처럼, 주관적 관점은 물리학과 동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현실의 관계적 본질과 그로 인한 관점주의를 인식하면, 현대 과학과 일관되게 세계를 해석하기 위한 유일한 선택지가 바로 주관적 관점입니다. 진리는 주관적입니다.                  p.230


이 책에는 총 일곱 번의 강의가 담겨 있다. 양자 물리학의 이질적 핵심을 다루고, 지식과 세상 사이의 연결 고리를 어떻게 이을 수 있을지 논의하며, 20세기의 두 가지 개념적 도약인 양자와 아인슈타인의 공간, 시간, 중력에 관한 개념을 살펴본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대한 물리적 기반을 논의하고, 오늘날 우리가 자연에 관해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지 이야기하며, 확실성과 궁극적 근거를 갖추기 어려운 지식을 종합해 본다. 강의를 엮은 것이라 그만큼 수월하게 읽히지만, 여러 번 곱씹어 생각해 볼 만한 대목들이 많았다. 간단한 상황을 가정하거나,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되는 강의들이 많았는데 굉장히 싱거운 질문인 것처럼 느껴져도 이어지는 내용을 읽다 보면 계속 생각에 빠지게 만들어 주는 것이 신기했다.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과학은 확실하게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틀렸음을 발견하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는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과학 문제의 어려움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 것보다 당연해 보였던 생각에서 벗어나는 데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확신을 의심할 수 있을 때, 새로운 것을 배울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 우리 시대 과학의 핵심 메시지라고 그는 말한다. 어떤 관점에서도 옳은 진리, 변치 않는 고유성, 절대적 확실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 모두가 서로를 통해서,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며 의미를 지닌다는 것은 우리가 과학책을 읽을 때 전혀 기대하지 않던 통찰이다. 진리는 주관적인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우리는 서로, 세상과 함께 상호 작용하며 서로를 마주하고 살아간다. 무엇보다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세계와 과학이 설명하는 세계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 우리가 과학을 통해 알게 된 사실과 우리에게 보이는 세상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깨달음이 근사하게 느껴졌다. 카를로 로벨리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분명 양자역학을 비롯해서 각종 과학적 정보들로 가득한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사유를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 놀라웠다.  물리학을 새로운 방식으로 느껴보고 싶다면, 과학을 문학처럼 경험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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