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 - 만물의 평등에 관하여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현주 옮김 / 쌤앤파커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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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과학 문제의 어려움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 것보다 당연해 보였던 생각에서 벗어나는 데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학은 확실하게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틀렸음을 발견하는 과정이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확실성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긴다면 지식의 발전을 방해하게 됩니다... 과학은 확실성에 기반해 발전하지 않고, 불확실성을 바탕으로 발전합니다. 절대적 확실성은 우리 삶과 무관하고, 도달할 수 없으며, 지식을 습득하는 데 장애물이 됩니다.                 p.62~63


지구에 사는 우리는 공통된 시간이 존재한다고 느낀다. 지구 내에서는 전화만 하면 뉴욕에 있는 사람과도, 상하이에 있는 사람과도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통화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넓은 우주로 범위를 확장하면 그렇지 않다. 가장 가까운 별까지도 신호가 왕복하는 데 수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통된 시간이라는 개념은 지구의 이웃들 사이에서는 통하지만, 우주 전체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사실 지구는 우주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곳이다. 지구에는 대륙의 견고함으로 고정된 장소가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주의 다른 곳에서는 통하지 않는 방식으로 공간을 생각한다.


여기서 카를로 로벨리는 흥미로운 가정을 시작한다. "나는 같은 자리에 있다"는 말은 '나는 지구의 단단한 표면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딛고 설 표면이 없는 거대 가스 행성 목성에서는 "나는 같은 자리에 있다"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불분명해진다는 거다. 그는 철학과에서 공부하는 한 청년과 토론하던 중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카를로 씨, 어떤 물체가 움직이거나 정지해 있다는 것을 완전하게 구분할 수 있는 기분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 학생은 관찰할 수 없음에도 절대운동이라는 실체가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의 생각은 어느 부분이 오류일까? 그 친구가 간과한 것은 개념이 경험의 산물이며, 우리의 경험이 항상 그렇듯 제한적이므로, 개념으로 현실 세계를 온전하게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2024년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진행된 카를로 로벨리의 강의를 엮은 것이다. 과학혁명의 철학적 의미에 관한 심도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의 전작들처럼 과학을 인문학처럼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우리가 세상을 관찰하고 연구할 때, 우리는 세상과 동떨어진 초월적 주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묘사하는 세상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현실에 낯선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 편안하게 자리 잡고 있는 존재입니다. 제가 이 책 전반에 걸쳐 주장한 것처럼, 주관적 관점은 물리학과 동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현실의 관계적 본질과 그로 인한 관점주의를 인식하면, 현대 과학과 일관되게 세계를 해석하기 위한 유일한 선택지가 바로 주관적 관점입니다. 진리는 주관적입니다.                  p.230


이 책에는 총 일곱 번의 강의가 담겨 있다. 양자 물리학의 이질적 핵심을 다루고, 지식과 세상 사이의 연결 고리를 어떻게 이을 수 있을지 논의하며, 20세기의 두 가지 개념적 도약인 양자와 아인슈타인의 공간, 시간, 중력에 관한 개념을 살펴본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대한 물리적 기반을 논의하고, 오늘날 우리가 자연에 관해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지 이야기하며, 확실성과 궁극적 근거를 갖추기 어려운 지식을 종합해 본다. 강의를 엮은 것이라 그만큼 수월하게 읽히지만, 여러 번 곱씹어 생각해 볼 만한 대목들이 많았다. 간단한 상황을 가정하거나,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되는 강의들이 많았는데 굉장히 싱거운 질문인 것처럼 느껴져도 이어지는 내용을 읽다 보면 계속 생각에 빠지게 만들어 주는 것이 신기했다.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과학은 확실하게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틀렸음을 발견하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는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과학 문제의 어려움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 것보다 당연해 보였던 생각에서 벗어나는 데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확신을 의심할 수 있을 때, 새로운 것을 배울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 우리 시대 과학의 핵심 메시지라고 그는 말한다. 어떤 관점에서도 옳은 진리, 변치 않는 고유성, 절대적 확실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 모두가 서로를 통해서,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며 의미를 지닌다는 것은 우리가 과학책을 읽을 때 전혀 기대하지 않던 통찰이다. 진리는 주관적인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우리는 서로, 세상과 함께 상호 작용하며 서로를 마주하고 살아간다. 무엇보다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세계와 과학이 설명하는 세계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 우리가 과학을 통해 알게 된 사실과 우리에게 보이는 세상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깨달음이 근사하게 느껴졌다. 카를로 로벨리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분명 양자역학을 비롯해서 각종 과학적 정보들로 가득한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사유를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 놀라웠다.  물리학을 새로운 방식으로 느껴보고 싶다면, 과학을 문학처럼 경험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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