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숲 - 제19회 중앙공론문예상 수상작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이소담 옮김 / 북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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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유는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밤의 숲이 무섭기 때문이다. 그것이 솔로 캠핑이 싫은 가장 큰 이유다. 캠핑하러 오면 늘 모닥불만 바라본다. 주변 나무숲을 응시하면 그 안에서 뭔가 움직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동물이라면 차라리 괜찮다. 동물이 아닌 무언가가. 솔로 캠핑을 오면 하룻밤을 통으로 잘 수 없다. 아무도 없는 한밤중의 숲에서 눈을 감으면, 그 순간 어둠 밑바닥에서 무언가가 기어나와 몸을 거의 덮칠 정도로 접근하는 기척을 느끼기에. 눈을 뜬 순간 그 무언가는 사라지지만.                 p.50~51


길을 잃으면 빠져나올 수 없다는 소문의 숲, 가미모리에서 다섯 살 자폐 아동 마히토가 실종된다. 수십 명이 수색을 벌였고, 경찰견과 드론도 투입되었지만 발자취조차 파악하지 못한다. 행방불명된 지 일주일, 겨울을 앞둔 숲에서 어린 아이가 생존할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가까웠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일주일만에 마히토가 발견되고, 쇠약해지긴 했으나 다친 곳도 전혀 없는 상태였다. 누군가 아이에게 물과 음식을 준 것처럼 보였으나, 아이는 '곰 아저씨가 도와줬어.'라고 말할 뿐 숲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편 숲의 폭력적인 어둠 속에서 누군가 손수레를 힘겹게 끌고 가는 중이다. 미나는 남들이 부러워할 결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을 소중히 대하지 않는 남자를 참고 만나왔는데, 그에게서 관계를 끝내자는 말을 듣고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 힘겹게 숲에 도착해 시체를 파묻으려는 순간, 손수레 너머의 풀숲이 바스락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 누군가 숲에 있었던 거다. 다쿠마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캠핑을 하는 유튜버였다. 월수입은 형편없었고, 솔직히 캠핑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여름이면 싫어하는 벌레가 우글거리고 겨울은 마냥 추웠다. 뭘 해도 잘 풀리지 않아 어쩔 수 없이 3년째 유튜버로 살고 있을 뿐이다. 그날도 숲에서 촬영 중이었는데, 등 뒤에서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난다. 누군가 어둠 속에 있는 것일까. 조직으로부터 도망치는 중인 남자와 자살하기 위해 숲에 도착한 국어 교사까지 이들은 각자 자신만의 사정으로 숲에 있었다. 마히토는 숲에서 이들을 만난 것일까? 




남에게 건방진 소리를 할 주제가 못 된다. 강하지 않다. 아이가 태어난 뒤, 돈을 벌어야 한다며 야근과 휴일 근무로 무리했던 하루타로가 평소라면 하지 않을 실수를 저질러 정비 중인 차에 깔려 죽었을 때는 마히토를 데리고 같이 죽으려고 했다. 다정하지도 않다. 마히토가 ASD인 걸 알았을 때는 왜 우리 아이한테 이러냐고 신을 원망했다. 우리 아이가 이렇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생각을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마히토가 숲에서 행방불명되었을 때 분명히 알았다. 마히토가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p.525~526


숲에서 돌아온 마히토는 예전의 마히토와는 다른 아이처럼 보였다. 짜증을 내지 않는 착한 아이가 된 것이다. 마치 숲에서 분노나 슬픔의 감정을 잃어버리고 온 것처럼. 한 번 헤맸다가는 다시는 빠져 나오지 못한다는 그 숲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마히토가 그간의 상황에 대해 말로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삼촌인 도야가 숲에서 있었던 일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마히토는 숲에서 곰 아저씨를 만났다고 했는데, 그가 남자였는지, 여자였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을 만난 것일 지도 모르겠다. 도야는 홀로 조사를 이어가며 마히토가 숲에서 여러 사람들과 마주쳤다는 사실과 그들이 아이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도와주긴 했으나, 누구나 아이를 경찰에 인계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대체 숲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문>,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등의 작품으로 만났던 오기와라 히로시의 신작이다. 이 작품은 출간된 해에 문학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중견 작가의 소설에 수여하는 중앙공론문예상을 수상했다. 작가는 평소 식물을 돌보며 신비로움을 느끼던 그는 식물의 집합체인 숲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항상 쓰고 싶었다고 한다. 숲이란 사람을 치유하는 장소인 동시에 사방으로 자라난 식물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어 섬뜩한 장소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일주일간 실종되었다가 돌아온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아이가 숲에서 홀로 보냈던 시간을 추적해 가는 이 이야기는 미스터리 서사로 속죄와 구원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이가 숲에서 만난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죄를 짊어지고 있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막막하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게 해주었던 작품이었다. 어디로도 나아갈 수 없어 기적이 필요한 순간, 이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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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잊힌 사람들
발레리 페랭 지음, 장소미 옮김 / 엘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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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노인들은 도망치지만 어디로 갈지 모른다. 그들은 예전으로 돌아가는 길을 잊었다. '그들의 집'은 다달이 오르탕시아 요양원의 거주비를 대느라 매물로 나왔다. 그들의 정원은 텅 비고, 그들의 고양이는 다른 곳으로 보내졌다. 이제 그들의 집은 그들의 기억 속에서만, 그들 각자의 서가에서만 존재한다. 나는 그 각각의 서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나를 가슴 아프게 하는 건 오전 10시만 되면 출입구에 모여들어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하는 중앙 현관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기다린다.            p.62~63


프랑스 동부 시골 마을의 숲 가장자리에 있는 오르탕시아 요양원에는 최근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누군가 일요일에 잊힌 사람들, 그러니까 일요일에 면회객이 하나도 없는 노인들의 가족에게 전화해 그들이 죽었다는 거짓 소식을 알린 것이다. 작년 12월 25일에 시작된 이 일은 이후 다섯 번이나 반복되고 있었다. 전화를 받은 가족들이 장례를 치르기 위해 요양원에 도착하면, 영면해 있어야 할 집안의 어른이 예기치 않은 자손의 면회에 행복해하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다. 전화를 받은 가족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동안 한 번도 면회를 온 적이 없다는 것이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각각의 면회 횟수를 헤아린 뒤 전화를 돌린 것처럼 말이다. 


스물한 살 쥐스틴은 오르탕시아 요양원에서 삼 년째 일하고 있는 요양 보호사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고 조부모 손에 자랐다. 사촌인 쥘의 부모도 함께 사고를 당했기에 남동생처럼 같이 조부모와 가족을 이루고 살았다. 쥐스틴은 낮에는 요양 보호사로 일하고, 밤에는 노인들의 두런거림 속에서 책을 읽고, 토요일 밤이면 클럽에 가서 춤을 춘다. 쥐스틴은 요양원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19호실 할머니 엘렌이다. 사람들은 아흔이 넘은 엘렌을 '바닷가의 여인'이라고 부른다. 하루종일 바닷가 파라솔 밑에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엘렌은 쥐스틴에게 자신의 모든 삶을 들려주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엘렌의 말수가 줄었다. 마치 삶이라는 노래가 음반의 끝에 이르러 볼륨이 줄어드는 것처럼. 




그동안 그녀는 이 순간을 수천 가지 상황으로 상상해왔다. 낮에, 밤에, 저녁에, 겨울에, 정오에, 일요일에, 여름에. 하지만 그녀가 카페 밖에 있고 그가 안에 있는 이런 상황은 결코 상상하지 못했다. 카페 문을 미는 것이 그가 아닌 그녀가 되리라는 것은. 그녀는 자신이 달려가 그의 품에 안기면 그가 그녀를 안아 올려 빙 돌리고, 그 순간 모든 것이 폭발하여 찬란한 광휘와 환희가 분출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왜 항상 우리가 기대하는 일들은 우리가 그것을 더 이상 기대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것일까? 왜 모든 것이 결국 타이밍의 문제일까?                  p.308~309


<비올레트, 묘지지기>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발레리 페랭의 데뷔작이다. <비올레트, 묘지지기>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어느 작은 마을의 묘지지기인 한 여성의 삶과 묘지를 찾는 이들의 추억을 섬세하고 다정하게, 시적이면서도 우아하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과거와 현재, 죽은 자와 산 자의 삶이 교차되고, 빛과 어둠이, 부재와 존재가 한데 어우러져 놀랍도록 아름다운 마법을 보여줘 정말 좋아했던 작품이다. 이 책이 프랑스에서 100만 부 이상 판매되며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켜, 데뷔작 또한 역주행 베스트셀러가 되어 전 세계적으로 15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읽어보니 과연 '역주행'이 될만한 너무 멋진 작품이었다. <비올레트, 묘지지기>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상실과 슬픔, 고통과 기억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엘렌과 특별한 우정을 나누는 쥐스틴은 그녀의 삶을 파란 공책에 받아 적는다. 이야기는 과거 엘렌의 삶과 현재가 교차 서술된다. 난독증을 앓던 엘렌은 뤼시앵을 만나 열여섯 살에 처음으로 글을 익히게 된다. 점자책을 통해서 알파벳을 만지면서 익히게 된 것이다. 그녀는 비로소 태어나는 기분, 숨 쉬는 법을 배우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단어들이, 문장들이 다가오면서 그녀의 삶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독서가 빗장을 풀어 그녀의 몸짓과 행동까지 완전히 변화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전쟁을 겪으며 파란만장했던 엘렌의 삶과 함께 그녀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쥐스틴의 현재 삶도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쥐스틴은 우연히 부모의 교통사고에 정황상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단순한 사고인줄 알았는데, 경찰이 수사를 벌였던 사건이었다는 거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쥐스틴에게 대체 뭘 숨기고 계신 걸까. 그렇게 요양원의 거짓 부고 사건과 쥐스틴의 과거 부모님 사고에 대한 미스터리와 엘렌의 이야기에 얽혀 있는 비밀이 차곡차곡 쌓여 가면서 아름답고도 슬픈 서사가 펼쳐진다. 


흔히 노인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고들 한다. 한 사람이 살아온 삶에는 그많큼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도서관 서가마다 수많은 책들이 각기 다른 이야기와 경험을 담고 있듯이 말이다. 지금의 세대가 겪지 못했던 시간 속에서 개인의 역사뿐만 아니라 사회의 그것 또한 함께 살아 있다. 그래서 노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는 쥐스틴의 마음이 참 예쁘게 느껴졌다. 쥐스틴은 모두에게 두 가지 삶이 있는 법이라고, 생각한 대로 말하는 삶과 말이 침묵 뒤로 사라지는 다른 삶이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세상에서 잊혀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삶의 끝자락에서 여전히 반짝이는 기억들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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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듣기 - 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완성하는 사랑
유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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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내가 들어온 것의 총체다. 수많은 이의 말은 나와 내 삶에 축적되었고, 나는 불시의 습격에 때로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 말이 과거의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를 살폈다. 그리고 아직 그 말이, 그 사람이, 내 안에 이렇게나 생생하게 남아 있음을 알아차리고는 안심했다. 그 기억은 문장으로 오기도 하지만 마치 동영상으로, 일부 구간만 반복 재생되는 동영상으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목소리의 톤, 표정, 손짓과 입고 있는 옷, 주변 환경까지 선명하게 기억난다.                     p.17


'듣기'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행위다. 우리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그에 맞춰 행동하거나 반응하게 된다. 듣기란 타인을 보는 창이 되기도 하고, 함께할 수 있는 놀이이기도 하며, 나와 내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누군가와 귀 기울여 듣고, 말하는 행위에는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고, 공감하려 애쓰고, 적절한 반응을 건네는 것까지 모두 포함이 되어 있으니 말이다. 


10년 동안 인터넷신문사 기자로 일하면서 타인의 말을 질리도록 들어왔다는 유지영 기자는 자신이 '듣는 사람'이라는 게 좋았다고 말한다. 자신은 언제나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고 싶었고, 동시에 더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고, 그것이 살면서 욕심을 낸 유일한 무언가라고 말이다. 이 책에 수록된 열아홉 편의 글에서 저자는 듣기를 인식한 인생 최초의 순간과 그 의미를 오인한 역사, 이윽고 듣기가 진정으로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결정적 순간 등 '듣기'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사유한다. 살아오며 만나 온 사람들, 마음과 시간을 나눈 사람들, 한순간 멀어진 사람들, 이유도, 까닭도 묻지 못하고 끝나 버린 관계들에 대해서, 그리고 다 기억나지도 않는,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말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저 사람은 왜 저런 말을 할까? 저 말에는 어떤 뜻이 숨겨져 있을까? 저 말이 궁극적으로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숨은 바를 집요하게 파악하려는 시도가 내 삶에 적잖은 이득을 가져다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냥 지나가는 사람의 말 한마디에서 그보다 더 깊은 의미를 발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타인의 말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 이는 결국 어떤 태도로 삶을 살 것인가 하는 물음과 닿아 있다. 가볍게 지나갈 수 있는 말을 무겁게 이고 지고 싶지 않았다.               p.172


이야기를 듣고, 강의를 듣고, 연설을 듣고, 음악을 듣는 행위는 얼핏 수동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순간에도 청자는 타인을 분석하고 해석하여 내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게 인식하고 추구하는 일이 바로 ‘심장 듣기’라고, 잘 듣는 일이란 '쓸모를 증명할 수 없으나 그 증명할 수 없음으로 인해 무가치해지지는 않는 일'이라고 말이다. '듣기'가 '누군가의 말을 받아들임으로써 내가 어제와는 다른 형태가 되는 일'이라는 저자의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저자인 유지영 기자는 여성들이 자유롭게 ‘몸’에 관해 이야기한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펴낸 적이 있다. ‘말하기’에 이어 이번에는 ‘듣기’의 영역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10년간 기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온 이력덕분인지 듣기의 정의에 대해 깊이 있는 사유를 만날 수 있었다.


타인의 말을 듣는 것이 직업인 기자뿐만 아니라 우리는 일상에서 가족으로서, 친구로서, 후배로서, 선배로서, 혹은 팀원으로서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 된다. '무엇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무언가를 듣고, 느끼고, 생각하며, 변화한다. 저자는 '듣는 일이 아닌 들어주는 일이란 침묵 속에서 동의하는 것이라고, 사실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상대방은 알지 못하므로 동의 여부가 중요한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은 듣는 법을 아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말을 그저 들어주는 법만을 알았다고, 그래서 오랜 시간 듣는 사람이 아니라 들어주는 사람으로 살았다고 말한다. 적극적이고 의식적이며 주체적인 외향적 행위인 말하기와 수동적이고 반응적이며 내향적 응대처럼 보이는 듣기라는 행위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실 흘려 듣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말을 새겨 듣는다는 것은 선택적 행위이기 때문에, 오히려 적극적인 상태에서만 가능한 것이니 말이다. 이 책을 통해 '마음 다해 귀 기울여온 한 사람의 조용한 목소리'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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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교실 - 개정증보판
김규아 지음 / 북스그라운드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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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가 왜 이런 벌을 받는 걸까?

"정우야, 벌이 아니야.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마."

"살면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특별한 경험이야. 정우는 아주 조금 더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것뿐이야..."           p.123~124


아빠와 둘이 사는 정우는 매일 땅을 보고 걷는다. 아빠와 자꾸 다투던 엄마는 언젠가부터 따로 살기 시작했고, 말다툼 소리가 사라지자 집은 고요하기만 하다. 강인하고 멋진 늑대를 좋아하는 정우에게는 늑대에 관련된 책만 열 권 넘게 있다. 어떤 방법이든 풀어낼 수 있는 수학의 확실한 세계를 좋아하는 정우는 학원에서 우등반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음악 수업시간에 새로 선생님이 오셨는데, 늑대 선생님이었다. 빛을 보면 눈이 아파서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선생님은 음악 수업을 해가 지고 난 뒤에 해보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늑대 선생님과 아이들의 '밤의 교실'이 시작된다. 


한편, 정우는 요즘 눈이 자꾸 흐릿해지는 기분이라 아빠와 안과에 갔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눈에 병이 생겼는데 치료 방법이 없다고, 언젠가 끝없는 밤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실명이라니... 모두가 밝은 세상에 있는데 나에게만 여전히 밤인 세상이 될수도 있다니... 정우는 걱정이 되고 불안하다. 부모의 이혼과 시력 상실이라는 위기모두 어린 정우에게는 이해할 수 없고,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다. 수학 문제처럼 긴 시간을 들여 고민해봐도 정답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런 정우를 곁에서 지켜보는 부모님과 친구들은 걱정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늑대 선생님의 특별한 음악 수업덕분에 정우는 조금씩 어둠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나만의 연주를 찾아 가는 과정을 배워간다. 




"마치 인생 같아. 예상할 수 없는 기쁜 일, 슬픈 일이 모여서 인생이 되는 것처럼.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생각해. 내 삶이 하나의 곡이라면 어떻게 연주하고 있는 걸까.              p.149


늑대 선생님은 개나리꽃이 피는 3월에 태어났다. 그런데 아주 어릴 적부터 이유를 알 수 없이 빛을 보면 눈이 너무 아파 두 살 때부터 선글라스를 써야 했다. 보통의 늑대 친구들처럼 사냥 수업에 나가지 못해서 친구도 별로 없었다. 늑대들은 타고나길 합창을 좋아했는데, 합창 연습은 대부분 밤에 이루어졌다. 눈이 약한 선생님에게는 제일 즐거운 시간이었고, 그래서 음악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은 모두 밤에 하는 수업을 고대하며 기다린다. 그렇게 미지근한 바람이 부는 여름밤, 꿈을 꾸듯 몽롱한 표정의 아이들이 학교에 모여 즐겁게 수업을 받는다. 늑대 선생님은 정우에게 말한다. 나에겐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걸 사랑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그래서 낮보다 밤이 더 편한 눈을 가진 것이 그리 속상하지 않다고 말이다. 


볼로냐 라가치 상 만화 부문 우수상을 받은 김규아 작가의 <밤의 교실>이 새로운 에필로그가 더해진 개정증보판으로 돌아왔다. 아이의 마음을 섬세하게 그린 그래픽 노블로, 색연필 화풍의 따스한 그림으로 담담하면서도 의연한 시선으로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특히 좋았던 것은 정우에게 벌어진 일들을 단순한 비극으로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극복하고 성장해내는 과정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소중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면,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느끼게 해줘 위로받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초판으로 만났던 독자라면 그 뒷이야기가 에필로그로 수록되어 있어 더 반가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정우와 늑대 선생님의 뒷이야기가 궁금했다면 이번 개정판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아이가 읽어도, 부모가 읽어도 공감할 만한 부분들이 많은 작품이다.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정말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살면서도, 그것조차 돌아볼 여유가 없는 어른들에게 특히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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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에두아르 르베 지음, 정영문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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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여름비를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의 실패는 나 자신의 실패보다도 더 슬프다. 나는 적들의 실패에 기뻐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바보 같은 선물을 주는 이유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선물은 적절한 것이 아니면 내가 주는 사람일 때도 받는 사람일 때도 어색한데, 적절한 것인 경우가 드물다. 사랑은 내게 큰 기쁨을 주지만 너무 많은 시간을 앗아간다.                p.16


에두아르 르베의 대표작 <자화상>이 아름다운 옷을 입고 10년 만에 재출간되었다. 책의 만듦새를 그대로 담은 필사 노트도 너무 예쁘다. '극도로 절제된 글을 쓰는 작가', '비움으로써 본질을 드러내는 사진가', '마지막 원고를 넘기고 열흘 뒤 생을 달리한' 작가라는 점때문에 굉장히 궁금했었다. 절판본이 매우 고가로 거래되고 있었기에 재출간이 되었다는 소식이 정말 반가웠다. 특히나 표지가 굉장히 아름답다. 점묘화로 표현된 표지 이미지가 이 작품의 글쓰기 방식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이 책은 끊임없는 문장들의 나열로 이루어져있는데, 문단 구분이 없고, 쉼표로 연속적으로 이어지거나, 마침표 하나로 끊기는 방식이다. 무수한 문장들이 모여 평면처럼 보이는 입체가 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하나의 문장과 그 다음 문장에 아무런 논리적 연결 고리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나는 좋아하지 않는 것들을 잊어버린다, 나는 누군가를 죽인 누군가와 그 사실을 모르는 채로 얘기를 했을 수도 있다. 나는 막다른 길들을 바라볼 것이다.'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는 문장들이 계속 이어진다. 한마디로 왜?가 없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이유는? 나는 내게 무엇이 부족한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끝보다 시작을 좋아한다. 왜? 불특정한 과거와 글을 쓰고 있는 현재가 무작위로 이어지는 평면의 문장들이 차곡차곡 쌓여 하나의 입체가 되는 작품인 것이다. 그래서 다소 얇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다. 어려운 문장은 하나도 없는데, 지독하게 가독성이 떨어지는 작품이다. 그런데 또 이상한 것은 자꾸만 다시 읽고 싶게 만든다는 점이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모른다. 나는 기념물보다는 유적을 좋아한다. 나는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에서 차분하다. 나는 송년회에 별 반감이 없다. 내가 언제 죽든 열다섯 살은 내 인생의 중간이다. 나는 삶 후의 삶은 있지만 죽음 후의 죽음은 없다고 믿는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지 묻지 않는다. 내가 거짓 없이 '죽어가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잇는 건 오직 한 번뿐이다. 내 인생 최고의 날은 이미 지나갔을 수도 있다.                 p.143


'나는 자살 시도를 한 번 했고, 자살 시도 유혹을 네 번 느꼈다.'는 문장 뒤에 바로 이어지는 것은 '여름에 멀리서 들려오는, 잔디 깎는 기계 소리는 행복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불러일으킨다.'이다. 인과관계가 없는 것뿐만 아니라 중요한 문장과 가벼운 문장의 구분 또한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다 또 어느 페이지에서는 자신의 독서 편련에 대해 몇 페이지에 걸쳐 이야기를 한다. 읽은 것을 다시 읽고, 끝까지 읽지 못한 것이 읽은 것만큼이나 많고, 소설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것이 문학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며, 오후보다 아침과 저녁에 더 많이 읽고, 안경 없이 읽으며, 5분 후에 제대로 읽기 시작한다는 등 독서 습관과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문장들이 이어진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수영하기 좋은 곳과 전시장에서 있었던 일과 사랑 편력에 대해서 말한다. 그야말로 삶의 무작위성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작품이었다. 


에두아르 르베는 “내 삶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삶을 사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연히 그 어떤 자세한 설명도 한 인간의 삶을 온전히 보여주기란 불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그래서 감정과 인과관계를 배제한 채 무작위로 나열한 문장들이 한 인간의 초상으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누구나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이 파편화된 문장들의 모음이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자서전인지도 알 수가 없지만, 그럼에도 무수하게 많은 '나는...'으로 시작하는 문장들을 읽으며 나 자신은 어떤지 돌아보게 만드는 이상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다. 그야말로 제목 그대로 에두아르 르베의 '자화상'이자, 책을 읽는 이의 '자화상'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요절한 천재 작가가 그려낸 한 인간의 초상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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