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의 세계 - 보이지 않는 숨, 질병, 그리고 생명의 역사
칼 짐머 지음, 이상훈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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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플뤼게는 어떤 세균이 공기를 통해 전파된다는 것을 확신했다. 물론 어떤 세균은 음식물, 물 또는 신체 접촉을 통해 새로운 숙주에 도달할 수 있음도 받아들였다. 그는 우리가 말할 때 나오는 미세한 물방울, 즉 비말이 공기 흐름을 타고 몇 시간 동안 떠다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공기로 퍼지는 질병이 결핵뿐만은 아닐 거라는 의구심을 가졌다... 플뤼게는 당시에는 호흡기 질환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천연두와 페스트까지도 공기를 통해 퍼져 나갈지 모른다고 추측했다.               p.104


인간이 살기 위해서는 공기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존재인 공기의 중요성을 자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공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미세먼지와 팬데믹 덕분이다. 미세먼지 상태가 매우나쁨인 빨간 색이 되는 날은 그야말로 종일 창문 한번 열지 못하니, 미세먼지 농도를 보여주는 어플을 매일 체크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미세먼지 농도를 체크해 외출 할 때는 마스크를 쓰고, 실내에선 창문을 닫고 공기청정기를 틀어 놓기도 하며 관리를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공기가 나쁠 때 벌어지는 불편함을 온몸으로 느끼다 보니 신선한 공기의 중요성을 체감하게 된 것 같다. 


보다 본격적으로 공기에 대해 사람들이 신경쓰게 된 것은 코로나19덕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과 지하철, 학원과 사무실처럼 밀폐된 공간에서 긴 시간을 보내다보니, 팬데믹 당시 환기와 공기질 모두 공중보건의 문제와 직결되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개인의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만으로 바이러스로부터 완벽하게 안전한 환경을 만들수 없었던 것은, 바이러스가 호흡과 기침을 통해 공기 중으로 전파되는 성질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지만 사실상 거의 이해하지 못했던 공기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이자 분자 생물 물리학 교수인 저자는 '팬데믹이 우리를 둘러싼 기체의 바다를 눈에 보이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 책에서 팬데믹 당시 스캐짓 밸리 합창단에서 벌어진 집단 감염 사건을 시작으로 공중 생물학의 역사를 마치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풀어내고 있다. 6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분량이지만, 굉장히 가독성있게 잘 읽히는 책이었다. 《뉴욕타임스》가 “우리가 아는 가장 명민한 과학 저술가”라고 극찬한 것이 너무도 이해가 되는 책이었다. 




21세기가 시작될 무렵의 공중생물학은 1930년대의 개척자들이 품었던 희망에서 너무나 멀리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이런 주장을 대체로 일축했으며, 일부는 지정학적 악몽을 촉발하는 데 이용했다. 하지만 새로운 세기가 도래하면서 공중생물학이 부활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질병이 등장하면서 과학계 일각에서는 웰스 부부를 재발견했다... 공중생물학을 죽음의 비를 내리는 수단으로 취급하는 대신 위를 올려다본 것이었다. 하늘과 그 안에 담긴 생명체, 그리고 구름과 그 너머를 말이다.             p.407


1864년 소르본대학교에서 루이 파스퇴르는 대담한 주장을 펼친다. 그는 원형 극장 내를 떠다니는 세균, 즉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생물이 인류가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 미생물은 때때로 질병이나 죽음을 가져옵니다. 장티푸스나 콜레라, 황열병을 비롯해 다른 많은 재앙의 형태로 말입니다." 당시만 해도 질병이 공기로 전파된다는 점에는 동의했지만, 파스퇴르의 생각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그런데 파스퇴르가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을 제시한 것이다. 각종 질병이 전염성 강한 세균에 의해 발생한다고, 증식한 미생물이 공기 중에 떠다니며 다음 희생자에게 옮겨 간다고 말이다. 이 책은 파스퇴르의 이야기외에도 콜레라와 결핵을 둘러싼 의학사의 논쟁, 하늘에서 미생물을 추적한 과학자들, 생물무기 연구가 남긴 어두운 유산 등 다양한 과학사의 순간들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를 둘러싼 공기의 바다를 눈에 보이게 만들었다. 투명했던 공기의 흐름이 사람들의 입과 코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말핵으로 가득차게 된 것이다. 사실 '비말'이라는 단어도 팬데믹 시기에 처음 들었다. 감염과 관련해서 주의해야할 사항이 너무도 많았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공기로 전파되는 병원체가 존재하고, 온실가스로 대기가 점점 뜨거워지고, 스모그로 공기가 오염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 책은 공기를 이해하게 만들어 준다. 우리가 매일 무엇을 들이마시고 있는지, 마음껏 숨 쉬어도 안전한 것인지,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 공기 안에 무엇이 있는지 이해하는 순간, 내가 매일 보던 세계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물론 팬데믹 이전에는 누구도 공기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매일 밀폐된 공간에서 공기를 타인과 함께 같은 공기를 나누며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공기를 다룬 인간의 역사에 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우리가 공기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고, 우리가 함께 숨 쉬는 사회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생각해 보게 만들어 준다. 지금 우리가 반드시 읽어야 할 중요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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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끝
김성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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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수식은 하나인데, 모든 구간의 데이터가 같은 그래프를 따르고 있다. 온도도 습도도 풍속도 그 무엇도, 이 수식 하나로 설명이 된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때 다시 등골이 서늘해진다. 책장에 꽂힌 서류철들을 하나씩 옆으로 넘기다가 이 일을 맡기 직전에 했던 과제를 찾아낸다. 날씨와는 전혀 관계없는, 지진 연구소의 지질학 데이터다. 그때 냈던 수식을 칠판의 빈자리에 옮겨 적는다.               p.42


야산에 괴물이 나타나고, 태평양 연안을 60미터 높이의 해일이 덮치고, 곳곳에서 테러가 벌어지며, 세상 곳곳에서 사교도들이 창궐하기 시작한 시대였다. 달이 파괴되어 밤하늘에는 산산조각난 달의 파편만 떠 있었고, 사교도의 주술때문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과학자도, 경찰도 이 기괴한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갈수록 세상은 더 흉한 곳이 되어가고 있었고, 누구나 세상이 조만간 끝나버릴 거라고 생각했다. 남편 지호가 남긴 수학 공식의 비밀을 쫓는 경찰청 사교도수사과 형사인 수영, 사교도들에게 납치되어 틸링해스트 수학을 계산하도록 강요받는 수학과 교수 지호, 그리고 파괴된 달을 복원하려는 의식을 준비 중인 사교 집단의 교주, 세 인물의 시점이 교차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교주는 오늘 아침 드디어 계산을 끝냈다. 틸링해스트 수학은 언젠가부터 시간과 겹치고 얽혀버린 '2차 시간'을 계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계산 결과는 시간이 끝난다는 것이었고, 시공간의 어떤 2차 시간 값으로도 양시간 축 등식의 델타 값이 일치하지 않았다. 시간이 끝난다는 것은 마침내 세상이 멸망한다는 뜻인 걸까. 지호가 가르치던 대학교는 교수들로 이루어진 사교 집단이 발견된 뒤로 폐교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학생들은 대거 휴학을 했고, 지호가 속한 자연대는 아예 학장이 사임하고 공식적으로 문을 닫았다. 직장은 문을 닫았지만, 지호는 자신이 맡은 연구 과제를 집에서라도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등골이 서늘해지는 결과와 마주한다. 수식은 하나인데, 모든 구간의 데이터가 같은 그래프를 따르고 있었던 거다. 세상 모든 것이 다 따르는 수식 같은 게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지호는 급하게 대학 연구실로 달려간다. 경찰청 사교도수사과 형사인 수영은 현재 휴직 상태이다. 남편의 작업실 책상에 쌓인 종이들에는 칸마다 숫자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난해한 논문을 번역기로 힘겹게 읽어나가면서 남편의 행적을 뒤쫓고 있다. 과연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세상의 멸망을 목전에 둔 시점에 다른 목적을 지닌 채 같은 지점을 향해 나아가는 세 사람의 서사가 교차로 진행되는데, 과연 그들은 각자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까. 




"선생님, 식은땀이..."

그러고 보니 머리카락부터 온몸이 흥건하게 젖어있다. 가벼운 현기증이 난다.

그리고 방금까지의 계산 결과를 돌이켜본다.

방수연의 아들 신밀철은 여덟 살 생일을 맞이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어린 삶에는 끝이 오지 않는다.

민철이만이 아니다. 모든 것이 그저 영원하다. 시간은 끝나지만 세상은 끝나지 않는다.                 p.314


전작으로 제11회 SF어워드 장편 부문 대상을 수상하고, 2026년 로커스상에도 노미네이트된 작가 김성일의 신작이다. 이 작품은 우주가 이미 만들어진 4차원 시공간의 거대한 덩어리라는 '블록 우주' 개념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한꺼번에 존재하는 우주라니 쉽게 상상이 되지 않지만, 과거도, 미래도 이미 존재한다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이 우리의 착각일 뿐이라는 개념 자체가 매우 흥미로웠다. 우리가 알던 직선적 시간 위에 또 다른 차원의 시간 축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될까.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시간 뒤에서 과거가 흐르고 있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조차 어딘가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면 말이다. 작가는 “블록 우주는 이를테면 3차원 영화의 프레임이 줄줄이 나열된 필름이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구별은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의 처지에서 하는 착각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이미 모든 것이 다 정해져 있다면, 우리가 선택이라고 믿는 것 또한 자유의지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 작품의 주요 서사는 '2차 시간'이라는 토대 위에서 흘러간다. 극중 많은 인물들이 풀고자 하는 틸링해스트 수학이 바로 이 2차 시간을 다루는 것이다. 차 시간은 우리가 매 순간 경험하는 시간이지만, 2차 시간은 그 모든 순간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조종할 수 있는 차원의 시간이다. 작가는 이 두 겹의 시간을 통해, '자유의지'란 정말 존재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시한다. 틸링해스트 수학을 통해서만 시간의 반복을 멈출 수 있고, 혹은 영원히 반복하게 할 수 있다면 한강이 범람하고, 곳곳에서 테러가 벌어지고, 도시마다 괴물이 등장하는 어두운 시절을 끝낼 수 있을까. 수학이 우주의 진실을 끌어와서 세계를 구하고,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힘을 줄 수 있을까. 과연 이들은 이계의 괴물과 기이한 재해가 세상을 덮치는 원인이자 사교도 주술의 원천인 2차 시간을 계산해서 시간이 끝나는 것을 막아낼 수 있을까. 과학과 수학 개념이 복잡하게 등장하지만, 주요 서사는 미스터리 스릴러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자, 새로운 SF 스릴러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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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사회 프로젝트 - 노동과 여성·청년이 만나면 세상이 바뀐다
조돈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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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불평등체제를 참을 수 없다. 내가 김수영이면 침을 뱉어도 시가 되고, 내가 백석이라면 외로움과 쓸쓸함도 시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시인이 아니다. 그래서 불평등체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이행 전략을 논의한다. 《불평등 이데올로기》에 이어 이 책도 나의 불만과 분노를 담아서 쓴다. 이 책은 가볍고 편안하게 술술 읽히는 책이 아니다. 한여름 밤 마시는 한 잔의 맥주처럼 시원한 목 넘김을 기대하면 안 된다. 이 책은 술술 읽혀져서는 안 된다.                  p.28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에서 주인공 맥베스는 던컨 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뒤에도 친구 뱅코까지 의심하며 살해한다. 권력도 정당성이 없으면 권력자에게 안식을 가져다 줄 수 없는 것이다. 정당성을 거부당한 불평등체제는 불안정하고 지배세력은 불안감을 벗어날 수 없다. 지배세력이 권력을 독점하고 상생을 거부하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멀어지고, 다수의 행복이 없으면 소수의 행복도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 역시 불평등하고, 시민들은 불평등에 불만인데, 어떻게 불평등체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불평등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평등사회를 이룩할 방안과 전략에 대해 고민해본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 실태를 밝히고, 세계 최고의 성평등 복지국가이자 우리의 벤치마킹 대상인 스웨덴 모델의 역사와 특징을 살펴보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불평등 이데올로기>에서 왜 우리 사회가 불평등을 벗어나지 못하는지에 대해 분석했던 저자는 그 후속편으로 이 책에서 평등사회 대안과 이행 전략에 대해 이야기한다. 성평등을 실현하고 불평등 대물림을 차단하기 위한 진정성 있는 실천은 뭐가 있을까. 이 책은 여성들과 함께 성별 임금 격차를 제로로 만들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청년들과 함께 좋은 일자리 창출과 보육, 주거 국가책임제를 관철하는 등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는 대안들을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물론 자본주의 불평등체제에서 어떤 대안이건 모든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 주는 만병통치약은 없다. 그럼에도 보다 많은 논의가 활성화되는 것이 평등사회 실현을 위한 시발점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한다. 




스웨덴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 권력이 최대수혜자의 특수이익이 아니라 최소수혜자까지 포용하는 보편 사회이익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고 높은 조세 국민부담률로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한편 생산현장은 물론 사회·정치·경제 전반에서 성평등을 제도화했다. 그렇게 보편 사회이익을 실천함으로써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실현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공리주의 공정성 원칙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권력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통치 철학이라 할 수 있다.                  p.588


세상이 평등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답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그렇다면 왜 부와 권력은 불평등을 허락하는 걸까. 불평등은 왜 문제가 되는 걸까. 그 동안 전 세계적으로 많은 불평등이 있어 왔다. 100년 전에 불평등은 이보다 훨씬 심했고, 200년 전에는 그보다 더 심했다. 그러니 길게 보면 진보가 이루어졌고, 세계는 더 평등한 쪽으로 움직여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불평등과 심화된 격차 문제를 안고 있다. 어떻게 하면 모두가 평등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경제적 불평등, 능력주의, 이민자 배척과 외국인 혐오 등 다양한 문제들로 가득한 오늘날, 이 책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저자는 평등사회 이행을 위해 노동의 중심적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성차별 지옥의 복합적 차별의 피해자인 여성과 불평등 대물림의 수저 계급 사회를 물려받은 청년과 노동의 평등사회 동맹을 제안한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 실태와 이데올로기 지형을 검토하며 스웨덴의 사례를 분석하고, 노동계급이 계급형성에 성공하고 평등사회 실현을 위한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살펴본다. 그리고 평등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을 제안한다. 노동자들과 함께 여성, 청년 등 불평등체제 피해자들의 주체 형성과 세력화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6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분량에 담고 있는 내용도 매우 방대해서 수월하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저자의 냉철한 분석과 날카로운 통찰은 여러 번 곱씹어 다시 생각해 볼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모두가 행복하게 상생하는 평등사회를 실현할 수 있기를, 촛불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고 응원봉의 성공을 실현하는 평등사회 프로젝트가 보다 본격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묵직한 책을 덮었다. 이 책이 평등사회 입문서로서, 불평등·불공정 논의의 종결이 아니라 더 다채로운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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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대연쇄
단요 지음 / 사계절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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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온전한 세계였으며, 여전히 유하였다. 칼리굴라는 나를 사랑했으며 나는 그럼으로써 모든 것이 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터였다. 나는 이제야 두 삶이 서로의 영역을 일방적으로 비집고 들어가면서 하나의 세계가 되는 일을 이해했고, 그 전율을 알게 되었다.

나는 착란의 입구에서 기쁜 깨달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 '사랑하는 신의 생일' 중에서, p.95


나는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도중에 오래된 유선 전화기를 발견한다. 유백색 플라스틱 코팅은 세월에 삭았지만, 전화선은 매끄럽고 부드러운 감촉을 유지하고 있었다. 추억이 되살아나면서 나를 둘러싼 시간이 뒤로 훌쩍 물러났고, 그러던 와중 벽면의 콘센트가 시야에 들어온다. 전화를 걸진 못하겠지만, 한번 연결해 볼까 하는 생각으로 플러그를 꽂았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소리가 되돌아온다. "오늘은 짐이 황위에 오른 해의 열째 달 셋째 날이다....."로 시작하는 사무적인 듯하면서도 오만함이 묻어나는, 남자 목소리였다. 자신이 누구라고 이름을 밝혔으므로, 검색해봤더니 로마제국의 세 번째 황제이자 사 년 만에 암살당한 폭군, 칼리굴라의 본명이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인 나에게, 서기 41년도의 로마제국 황제라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이벤트성 자동응답기 기능이 아닐까 생각한 나는 수화기를 들어 칼리굴라에게 그가 앞으로 겪게 될 역사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이런저런 현재의 이야기들도 들려주며 매일같이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안녕, 칼리굴라. 내 이름은 유하지만 기억할 필요는 없어. 네가 기억해야 하는 것만 짧게 말해줄게...." 로마에 열병이 돌고, 여동생이 죽고, 더 많은 사람이 너를 죽이려 할거라고 나는 칼리굴라에게 메시지를 남긴다. 그리고 위키피디아 문서에는 한 문단짜리 이런 문구가 생긴다. '가이우스는 자신이 신의 전령이라는 망상과 죽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당시 로마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신인 유하를 만들어내는데 이르렀다.....' 유하는 나였다. 자동응답기를 만나기 전에는, 로마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름. 나는 수신인이 없을 거라고, 건너편에 장본인이 있는 줄 알았더라면 말을 건네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과연 유하의 이야기로 로마제국의 역사는 바뀌게 된 것일까. 




그건 내 나쁜 습관이었다. 득점과 실점을 천칭에 올려놓고 승부를 시작해야 할 상황에, 일부러 한 발짝 물러남으로써 패배를 확정 짓는 것 말이다. 수도권 부동산이 침체기에 접어든다면 강원도 부동산은 처참한 꼴이 나겠지만 강원도 부동산의 상승률은 수도권에 영 못미친다. 요컨대 나는 하이리스크와 로우리턴의 가능성을 두려워하느라 그 둘을 동시에 확정하고 마는 인간이었고, 그래서 종종 속이 쓰렸다. 십 년 뒤의 나는 그때 안양 아파트를 샀어야 했다며 가슴을 치고 있겠지.                 - '존재의 대연쇄' 중에서, p.189~190


다문화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현실적인 이야기부터 종교와 철학적 사유가 버무려진 판타지까지, 청소년문학과 스릴러, SF소설을 넘나들며 부지런히 작품 세계를 넓혀가고 있는 단요 작가의 신작이다. 이렇게나 폭넓은 상상력으로, 이야기로서의 재미도 놓치지 않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다니 놀랍다는 마음으로 매번 작품을 읽게 되는 것 같다. 그만큼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 왔는데, 이번 신작은 6편의 작품을 수록한 SF 소설집이다. 컴퓨터과학, 신학, 중세철학을 소재로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독특한 상상력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오래된 유선전화기를 통해 로마제국 황제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교통사고를 당한 딸을 살려내고자 인공 척추를 사용한 임상시험을 시도한 부모가 있으며, 감전 사고로 신의 계시를 받았다 주장하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세상에 낮과 밤이 생긴 기원이 기린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이야기와 투시 능력자들, 예언자와 마술사들이 사실은 눈으로 온도를 식별하는 사람들에 불과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명확히 보이고 이해할 수 있는 세계 너머'를 바라보는 이야기들이기에 수월하게 읽히진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매혹적인 서사와 독보적인 상상력을 빚어낸 이야기임에는 분명하다. 게다가 읽는 내내 너무 재미있다. 어떻게 이런 상상을 했을까, 감탄하며 읽게 되기 때문이다. 매번 단요 작가의 신작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직은 알지 못하는 것들이 도사려' 있는, 곧 만나게 될 새로운 감각의 미래 세계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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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한번은 오디세이아 - 삶이 흔들릴 때 나를 지키는 고전 수업
샘 아크바 지음, 박미경 옮김 / 부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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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러나 영웅들에게 그러하듯, 아니 우리 모두에게 그러하듯, 삶은 언제나 다른 계획을 품고 있다. 튀르키예 해안에서 그리스 서쪽의 이타카섬까지 금세 닿을 것 같던 귀향길은, 결국 지중해 곳곳을 떠도는 10년의 고난으로 바뀐다. '오디세이아'라는 단어가 바로 여기서 생겨났다.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겪어야 했던 파란만장한 여정, 그 여정은 투쟁과 상실, 적응과 변화가 뒤얽힌 길이었다. 오디세우스가 기대하거나 바라던 노스토스는 결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p.37


<오디세이아>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쓴 서사시로, 10년에 걸친 트로이전쟁을 마친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까지 또다시 10년을 떠도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기상천외한 모험담뿐만 아니라 귀환과 복수라는 주제 또한 시대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품들 속에서 무수히 변주되고 반복되어 왔다. 일상에서 어려운 여행에 비유하는 대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저 젊은 날의 영웅담이 아니라, 세월에 닳고 상처 입은 한 인간이 자신의 집과 삶을 되찾으려 애쓰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3,0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 넘어 평범한 우리의 삶과 깊이 공명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고전학자이자 심리학자의 시선으로 <오디세이아>를 다시 읽어낸다. 


<오디세이아>라는 시대를 초월한 서사에 현대 심리학의 실천적 통찰을 포개어, 고대의 지혜와 지금 당장 활용할 수 있는 도구를 함께 보여준다. 각각의 장은 오디세우스가 거쳐 간 섬들처럼, 우리가 삶에서 지나게 되는 여러 단계에 해당한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에 대한 서두로 항해를 시작해 무기력에서 탈출하는 기술, 나를 지탱해 줄 관계, 나라는 정체성을 확립하고, 상실과 유혹이라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을 거쳐 삶의 목적지를 분명하게 정하고, 상처를 지혜로 바꾸는 방법을 통해 목적지보다 여정 그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눈앞에 아찔한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까. <오디세이아>의 수많은 인물들이 그런 것처럼 '결정적 행동 없이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직접 나서서, 도전을 받아들이고, 행동을 취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저자가 이끌어 주는 이 과정들을 통해서 누구도 나를 하찮은 존재로 여기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우리는 각자 중요하고 가치 있는 존재이며, 우리의 삶에는 궁극적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오디세이아>는 우리에게 오디세우스 같은 영웅이 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각자의 여정을 분명히 자각하며 살아가라고 말한다. 그 지혜를 받아들여 당신답게 나아가라. 앞으로 나아갈 때에도, 잠시 뒤로 물러설 때에도, 내딛는 모든 걸음이 여정의 일부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당신의 이타카는 어쩌면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아니라 삶의 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여정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배우며, 거듭해서 다시 시작하고, 여정 자체가 이미 보상임을 아는 삶 말이다.                   p.293


이 책을 읽다 보니, 트라우마, 회복탄력성, 감정 지능이라는 말이 생기기 전부터 호메로스가 그 모든 것을 탐구해왔다는 것을, 그래서 삶의 온갖 시련 앞에서 호기심과 회복력과 내면의 힘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사실 '멘토'라는 단어도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의 충실한 조언자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오디세우스 왕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멘토르가 오디세우스 왕이 20여 년간 전쟁을 치르는 동안 왕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맡아 그의 친구요 스승이자 상담자로, 혹은 때로 아버지가 되어 그를 훌륭한 사람으로 양육한 것에서 비롯되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서구 문학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 가운데 하나인 <오디세이아>가 오늘날 우리의 갖가지 고민과 여전히 맞닿아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인간은 누구나 인생이란 끝없이 펼쳐진 바다 한 가운데에서 쉽게 길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파도에 흔들리거나, 폭풍우에 휩쓸리거나 혹은 난파되어 물에 빠지거나.. 무한한 가능성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도처에 어려움이 산재한 것이 바로 삶이란 바다이고, 그런 면에서 인생이란 일종의 『오디세이아』일수밖에 없다. 그 동안 호메로스의 작품이 다소 어렵게 느껴져 원작을 읽는 데 주저함이 있었다면 이 책으로 시작해 보면 어떨까 싶다. 물론 이 책이 <오디세이아> 해설서로 쓰인 것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오디세이아>의 서사를 따라가며 풀어내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고전학자로 시작해 이후 임상심리학자의 길을 걸어온 저자의 이력도 이 책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 준다. 고전 분석에 충실하면서도, 인간의 심리를 세심하게 포착해내어 읽어내 주고 있으니 말이다. 덕분에 최근에 읽었던 자기계발서 중에 가장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고,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다. 각 장의 끝에 수록된 연습 문제를 통해 호메로스의 지혜를 직접 내 삶에 적용해 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옥스퍼드대 고전학자이자 심리학자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오디세이아>가 궁금하다면,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게 하는, 시대를 초월한 항해 지도가 필요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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