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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의 세계 - 보이지 않는 숨, 질병, 그리고 생명의 역사
칼 짐머 지음, 이상훈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플뤼게는 어떤 세균이 공기를 통해 전파된다는 것을 확신했다. 물론 어떤 세균은 음식물, 물 또는 신체 접촉을 통해 새로운 숙주에 도달할 수 있음도 받아들였다. 그는 우리가 말할 때 나오는 미세한 물방울, 즉 비말이 공기 흐름을 타고 몇 시간 동안 떠다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공기로 퍼지는 질병이 결핵뿐만은 아닐 거라는 의구심을 가졌다... 플뤼게는 당시에는 호흡기 질환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천연두와 페스트까지도 공기를 통해 퍼져 나갈지 모른다고 추측했다. p.104
인간이 살기 위해서는 공기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존재인 공기의 중요성을 자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공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미세먼지와 팬데믹 덕분이다. 미세먼지 상태가 매우나쁨인 빨간 색이 되는 날은 그야말로 종일 창문 한번 열지 못하니, 미세먼지 농도를 보여주는 어플을 매일 체크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미세먼지 농도를 체크해 외출 할 때는 마스크를 쓰고, 실내에선 창문을 닫고 공기청정기를 틀어 놓기도 하며 관리를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공기가 나쁠 때 벌어지는 불편함을 온몸으로 느끼다 보니 신선한 공기의 중요성을 체감하게 된 것 같다.
보다 본격적으로 공기에 대해 사람들이 신경쓰게 된 것은 코로나19덕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과 지하철, 학원과 사무실처럼 밀폐된 공간에서 긴 시간을 보내다보니, 팬데믹 당시 환기와 공기질 모두 공중보건의 문제와 직결되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개인의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만으로 바이러스로부터 완벽하게 안전한 환경을 만들수 없었던 것은, 바이러스가 호흡과 기침을 통해 공기 중으로 전파되는 성질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지만 사실상 거의 이해하지 못했던 공기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이자 분자 생물 물리학 교수인 저자는 '팬데믹이 우리를 둘러싼 기체의 바다를 눈에 보이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 책에서 팬데믹 당시 스캐짓 밸리 합창단에서 벌어진 집단 감염 사건을 시작으로 공중 생물학의 역사를 마치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풀어내고 있다. 6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분량이지만, 굉장히 가독성있게 잘 읽히는 책이었다. 《뉴욕타임스》가 “우리가 아는 가장 명민한 과학 저술가”라고 극찬한 것이 너무도 이해가 되는 책이었다.

21세기가 시작될 무렵의 공중생물학은 1930년대의 개척자들이 품었던 희망에서 너무나 멀리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이런 주장을 대체로 일축했으며, 일부는 지정학적 악몽을 촉발하는 데 이용했다. 하지만 새로운 세기가 도래하면서 공중생물학이 부활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질병이 등장하면서 과학계 일각에서는 웰스 부부를 재발견했다... 공중생물학을 죽음의 비를 내리는 수단으로 취급하는 대신 위를 올려다본 것이었다. 하늘과 그 안에 담긴 생명체, 그리고 구름과 그 너머를 말이다. p.407
1864년 소르본대학교에서 루이 파스퇴르는 대담한 주장을 펼친다. 그는 원형 극장 내를 떠다니는 세균, 즉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생물이 인류가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 미생물은 때때로 질병이나 죽음을 가져옵니다. 장티푸스나 콜레라, 황열병을 비롯해 다른 많은 재앙의 형태로 말입니다." 당시만 해도 질병이 공기로 전파된다는 점에는 동의했지만, 파스퇴르의 생각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그런데 파스퇴르가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을 제시한 것이다. 각종 질병이 전염성 강한 세균에 의해 발생한다고, 증식한 미생물이 공기 중에 떠다니며 다음 희생자에게 옮겨 간다고 말이다. 이 책은 파스퇴르의 이야기외에도 콜레라와 결핵을 둘러싼 의학사의 논쟁, 하늘에서 미생물을 추적한 과학자들, 생물무기 연구가 남긴 어두운 유산 등 다양한 과학사의 순간들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를 둘러싼 공기의 바다를 눈에 보이게 만들었다. 투명했던 공기의 흐름이 사람들의 입과 코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말핵으로 가득차게 된 것이다. 사실 '비말'이라는 단어도 팬데믹 시기에 처음 들었다. 감염과 관련해서 주의해야할 사항이 너무도 많았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공기로 전파되는 병원체가 존재하고, 온실가스로 대기가 점점 뜨거워지고, 스모그로 공기가 오염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 책은 공기를 이해하게 만들어 준다. 우리가 매일 무엇을 들이마시고 있는지, 마음껏 숨 쉬어도 안전한 것인지,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 공기 안에 무엇이 있는지 이해하는 순간, 내가 매일 보던 세계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물론 팬데믹 이전에는 누구도 공기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매일 밀폐된 공간에서 공기를 타인과 함께 같은 공기를 나누며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공기를 다룬 인간의 역사에 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우리가 공기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고, 우리가 함께 숨 쉬는 사회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생각해 보게 만들어 준다. 지금 우리가 반드시 읽어야 할 중요한 책이다.